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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14:17:12

발레리 치칼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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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치칼로프
Вале́рий Чка́лов | Valery Chkalov
파일:발레리 치칼로프.jpg
본명 발레리 파블로비치 치칼로프
Вале́рий Па́влович Чка́лов
Valery Pavlovich Chkalov
출생 1904년 2월 2일[1]
러시아 제국 니즈니노브고로드현 바실레바
(現 러시아 볼가 연방관구 니즈니노브고로드주 치칼롭스키구 치칼롭스크)[2]
사망 1938년 12월 15일 (향년 34세)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묘소 크렘린 벽 묘지
복무 노농적군 비행대[3]
1919년 ~ 1924년
붉은 공군[4]
1924년 ~ 19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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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ffe300> 부모 친부 파벨 그리고리예비치 치칼로프[5]
친모 이리나 이바노브나 치칼로바
계모 나탈리아 게오르기예브나 치칼로바
배우자 올가 에라스모브나 치칼로바[6]
자녀 장남 이고르[7]
장녀 발레리아
차녀 올가
최종 계급 여단 사령관 (붉은 공군)
주요 서훈 레닌훈장 (2회)
소비에트 연방 영웅
적기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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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첫 번째 사고2.2. 복귀2.3. 두 번째 사고2.4.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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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군인, 항공기 조종사.

2. 생애

1911년에 입학한 바실렙스카야 초등학교를 1916년 졸업했다. 학업 능력과 기억력, 성격이 좋아 인기가 많았으며 수영을 좋아해 맨몸으로 볼가강을 건너기도 했다. 그림 재주도 훌륭해 미술 관련 교육을 받길 원했으나 미술학교의 폐교와 가정 환경 때문에 일찍이 포기하고 아버지를 도와 증기선소방관으로 근무했다.

1919년, 항공기에 흥미를 가진 치칼로프는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항공기 조립공장 감독이로 근무했던 블라디미르 프롤리셰프를 만났다. 프롤리셰프는 자원입대 후 항공기 관련 병과를 담당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15세의 치칼로프는 견습 조립공으로 복무하기 시작했다. 재능이 뛰어났던 덕에 그는 2년 후 아브로 504를 단독으로 조종할 수 있었다. 유능한 조종사로 이름을 날리려고 할 때 음주비행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받게 됐다.[8]

2.1. 첫 번째 사고

고멜에서 브랸스크로 가는 항공기에서 부기장을 맡은 치칼로프는 당시 주변 구조물을 피하기 위해 고도를 3~5미터 가량 올렸다가 가공전차선을 들이받아 체포됐다. 결국 1928년 10월 30일 벨로루시 군관구 군사재판의 판결에 따라 계급 박탈과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인명피해는 없었기 때문인지 야코프 알크스니스,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에 의해 16일 후 석방됐다.

2.2. 복귀

1930년 11월, 다시 군복을 입고 적군 공군과학시험연구소에 파견돼 테스트 파일럿으로 복무했다. 비행 실력이 탁월한 덕분에 유리 가가린이 치칼로프를 존경하며 테스트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2.3. 두 번째 사고

1938년 12월 15일, 호딘스코예 중앙비행장에서 I-180 테스트 비행 당시 사망했다. 2주 전부터 기체엔 190여 개의 결함이 발견됐으며,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체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다 시가지 뒤편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기체는 목재 폐기물 더미에 추락했으며, 치칼로프는 조종석에서 튕겨나와 사고현장 10~15미터 근처에서 발견됐다. 머리를 크게 다친 듯한 상태였는데 기체 보강용 금속에 부딪힌 것으로 추정된다. 비행장 내 화물 트럭 뒤에 치칼로프를 태운 뒤 보트킨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오후 4시 45분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2.4. 사후

해당 I-180 정비 관련 직원들이 체포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치칼로프의 시신은 돈스코이 화장터에서 화장돼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됐다.


[1] 구력: 1월 20일[2] 치칼로프를 추모하기 위해 개명됐다.[3] 1924년 이전까지 소련 공군이 사용하던 명칭[4] 1946년 이전까지 소련 공군이 사용하던 명칭[5] 보일러 공장 직원[6] 혼전성은 오레호바. 레닌그라드의 교사였다.[7] 러시아 공군 대령[8] 1년형이었으나 감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