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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2:06:54

박필조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박필조
朴泌祚[1]祚로 등재되어 있다.]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윤화(潤化) / 서암(西巖)
본관 월성 박씨(月城)[2]
출생 1872년 10월 4일
경상도 의흥현 내화면 하라동
(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하라마을)[3]
사망 1961년 2월 22일[4] (향년 88세)
묘소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달산리 덕골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필조는 1872년 10월 4일 경상도 의흥현 내화면 하라동(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하라마을)에서 아버지 박현우(朴顯宇, 1847. 7. 9 ~ 1891. 12. 26)와 어머니 인동 장씨(1843. 12. 21 ~ 1890. 10. 16)[5] 사이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0년 음력 8월경, 군위군에서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 8인조에 가입하여, 겉으로는 종교 활동을 표방하며 독립운동에 진력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는 1924년에 흠치교의 힘에 의해 조선이 독립이 될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자금모집 및 교도증대에 힘을 쏟던 중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박필조는 이 일로 인해 1921년 6월 2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 공소하여 그해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 형사제2부에서 원심 판결이 취소되어 면소 처분을 받고 곧 출옥하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이후 1961년 2월 22일 사망하였다.

200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월성박씨대동세보 권2 427쪽에는[2] 유촌공파(柳村公派) 59세 조(祚) 항렬.[3] 인근의 미성리와 함께 월성 박씨 집성촌이다. 박배근 전 대구직할시장, 박영언 전 군위군수와 독립유공자 박무조·박승조·조성우도 이 마을 출신이다.[4] 월성박씨대동세보 권2 427쪽에는 1957년 11월 29일에 사망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5] 장영규(張永奎)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