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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04 16:15:59

박원희

1. 개요2. 일생3. 원래부터 머리 나쁜 사람은 없다4. 기타5. 이력
5.1. 수상 경력

1. 개요

1986년생. 대전광역시 유성구 출신.

민족사관고등학교 국제반을 나온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인기 저서 '공부 9단 오기 10단', '스무살 청춘! A+ 보다 꿈에 미쳐라'의 저자이다.

현재 미국 대기업 페이스북 본사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언어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를 원어민급 수준으로 구사가 가능하다.출처

2. 일생

박원희는 어린 시절부터 영어, 과학 등 여러 가지에 재능을 보이고 열정적으로 배우는 밝은 아이로 자랐다. 그러나 박원희네 가족이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갑자기 대전광역시로 이사를 가면서 배치고사를 보지 못하고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한 직후 한 불량 여학생(J)이 자신에게 공격을 한 것을 시작으로 심한 왕따를 당했다. 이 때문에 힘든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전교 1등을 하는 학교 친구(조한얼 ; 남학생)를 보고 자극을 받아 본격적으로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해서 드디어 1학기 중간고사 때 전교 1등을 찍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 시험에서 본인뿐만 아니라 그 친구도 전교 1등을 했다. 즉 공동 1등을 한 것인데, 억울하게도 그 친구가 1반이고 본인이 4반이라는 이유로 그 친구만 상을 타게 되어 잘난 척을 한다는 오해를 받아[1] 계속 왕따로 고통받았다. 박원희는 이 때문에 매우 힘들어 했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꾸준히 열심히 공부를 했고, 전화위복으로 J는 결국 자기가 몰고 다니던 서클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며[2] 왕따에서 벗어나게 되고 친구들도 많아졌다.[3] 그리고 1학기 기말고사 때는 드디어 단독 1등을 해내며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졌다. 참고로 박원희가 미국 명문대의 합격 통지서를 받은 후 중학교에 다닐 때 살던 아파트 근처를 지나가다가 길모퉁이에서 J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녀는 박원희를 보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똑바로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가 버렸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박원희 입장에서도 통쾌한 복수를 하게 됐으니...

하지만 모두가 부러워하는 전교 1등이었음에도, 박원희는 수학 때문에 매우 힘들어한 적이 있다. 전교 1등이었지만 다른 과목은 모두 만점을 받았음에도 수학만 아슬아슬한 91점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딸이 수학에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박원희를 학원 수학경시반에 보냈는데, 박원희는 그 곳에서 자신보다 수학 실력이 훨씬 뛰어난 아이들을 보며 좌절하고 힘들어했다. 심지어 어느 날 경시반에서 한 번 수학시험을 봤을 때 38점이라는 최하위 점수를 받았으며, 칠판 앞에서 문제를 잘 풀지 못하자 선생님으로부터도 "넌 경시반에서 공부하면서 이런 것도 못 푸냐?"라는 질책까지 들어 그 자리에서 서러워서 울기까지 했고 수학경시반을 그만둘까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었으나, 결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박원희는 수학에서 모르는 문제가 보이더라도 이를 끝까지 고민한 끝에 풀어내고, 끝내 풀지 못한 문제만 해설지를 꼼꼼히 보면서 열심히 수학공부를 했으며, 학원에서 마지막으로 떠나는 봉고차를 탈 때까지 오랜 시간 동안 학원에 남아 수학공부를 하거나 집에서도 새벽 2시나 3시까지 공부하는 등 이를 악물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 끝에 결국 그 해에 치른 수학 경시대회에서 유일한 2학년 수상자[4]가 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5] 이때부터 박원희는 교내에서 더더욱 유명해지며 우등생으로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박원희는 중학교 3학년 무렵,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지는 일이 생겼다. 고등학교 진학 문제를 놓고 부모님과 의견에 차이가 생긴 것이다. 박원희는 대전외국어고등학교 일본어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해 국제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부모님이 박원희에게 "우리 딸이 좀 더 꿈을 크게 가졌으면 좋겠어. 공부하다가 기회가 된다면 더 넓은 세계로 나가 공부하는 것도 괜찮을 거야."라며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권유한 것이다. 박원희는 처음에는 대전외고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결국 민사고에 견학을 다녀오고 꿈을 더 크게 가지라며 본인을 진심으로 권유하는 부모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민사고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으며, 민사고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교생활을 적응하는 데 굉장히 힘들어했다.[6] 왕따 문제 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는데, 민사고에 입학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자신있다고 생각했던 영어 실력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느꼈을 정도로 영어의 장벽이 매우 높았고[7] 다른 동급생들 대부분이 자신과 같은 지방 출신이 아닌 서울 및 수도권 출신이라는 것에 소외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원희는 자신을 끝까지 이끌어주신 은사님들(민사고 교사들)과 자신을 챙겨주는 친구들 덕분에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한 끝에 결국 민사고를 조기졸업했고, 하버드 대학교 등 미국의 여러 명문대에 합격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성적은 하위권. 그래도 애초에 민사고에 들어갔을 정도라면 공부를 전국구급으로 매우 잘 한 편에 속한다. 박원희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결코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아가 노력한 덕분에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하버드 대학교를 유학을 간 박원희는 경제학을 전공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3. 원래부터 머리 나쁜 사람은 없다

박원희는 원래부터 머리 나쁜 사람은 없다고 강조한다. 공부는 재능보다는 노력임을 강조하며 본인이 지금의 위치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도 오기 덕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박원희의 부모가 민족사관고등학교 진학을 권유한 것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전술했듯 박원희는 중학교 때 전교 1등을 유지한 천재지만, 전국에서 엄청난 천재들만 모이기로 유명한 민족사관고등학교[8]에서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이 모두 금수저 재벌 집안 자녀들에다가 전교 1등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외국 유학까지 많이 다녀온 것은 당연하고 거기다가 거의 서울 출신이었으니.

하지만 박원희는 그러거나 말거나 '마이 웨이'를 밀어붙이면서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찾아내어 마침내 민사고를 조기졸업했다. 물론 이건 박원희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도록 끝까지 응원해준 은사님들 덕분이다. 대표적으로 유럽사를 가르치는 간제 선생님이 있다. 박원희 스스로도 내 생애 최고의 은사님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간제 선생님은 박원희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신 분이다. 박원희와의 첫 만남에서 간제 선생님은 박원희의 영어 실력이 매우 형편없음을 느끼고 다시는 내 수업에 들어오지 말라고 독설을 내뱉었을 정도였지만, 박원희는 그 덕분에 오기가 생겨 간제 선생님의 수업을 빠짐없이 수강했고 마침내 간제 선생님으로부터 칭찬까지 받게 되었다고 한다. 간제 선생님은 박원희에게 별다른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기본적인 것만 설명하고 잘 하는 옆 자리 친구와 비교해서 자신의 방법을 분석하는 것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참고로 박원희의 어머니도 이 점을 강조한다. 박원희의 어머니는 자식 교육은 갓난아이 때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아이들의 호기심을 무한히 발휘하도록 부모가 신경을 써야 된다는 점을 말했다.

4. 기타

5. 이력

5.1. 수상 경력



[1]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 J가 박원희를 향해 시비를 걸듯 등수를 물었는데, 전교 1등을 했다고 하자 놀라며 더 이상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걸 보고 안도했다가, 결국 다른 전교 1등 친구가 상을 받는 걸 보고 다시 박원희를 공격한 것이다. 심지어 박원희는 어느 날 선생님들끼리 "원희는 아마 어쩌다 시험을 잘 본 것 뿐이겠지."라고 험담하는 것까지 듣고 말았다.[2] J는 7명의 친구들을 모아 서클을 만들어 박원희의 왕따를 주도했는데, 문제는 J가 뒤에서 몰래 자기 서클에 있던 친구들을 욕하기도 했던 것. 이 때문에 서클 내에서 분열이 일어나면서 편가르기가 시작되었고, 결국 J만 외톨이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3] 사실 다른 친구들도 박원희의 첫인상을 안 좋게 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J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박원희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한 친구들이 많아졌고, 마침내 J가 몰락한 이후 박원희와 친구 관계를 굳건히 하게 된 것이다.[4] 나머지는 모두 3학년.[5] 박원희를 질책했던 경시반 선생님도 "너는 순전히 오기발동형이구나. 정말 장하다."라고 칭찬하기까지 했다![6] 참고로 민사고는 합격생들이 입학하기 전에 교내에서 예비과정을 따로 시행한다. 즉, 이는 박원희가 민사고에 합격하고 본격적인 고등학교 1학년을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7] 수업 시간에 원어민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못 알아들어 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선생님께 여러 번이나 "Pardon?(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을 말해 반 친구들이 웃은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유럽사를 가르치는 간제 선생님(독일인)으로부터 "너는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구나. 계속 국제반에 있어도 좋을지 잘 생각해 봐라."라는 지적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이 외에도 공부를 하며 보게 되는 모르는 단어와, 그 단어를 영영사전으로 찾았을 때 나오는 설명에 있는 모르는 단어를 또 찾느라 애를 먹기도 했고, 영어 원서를 읽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겪으며 기숙사 룸메이트가 하루 만에 다 읽은 원서를 다 읽는 데 2주나 걸린 적도 있었다. 그래서 박원희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숙제를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었고, 하루에 무조건 2시간씩 영어 원서 읽기를 하는 등 영어 공부를 별도로 더 하느라 늦게 자는 일이 많아서 수업 시간에 여러 번 졸기도 했다.[8] 신입생이 70명밖에 되지 않는다. 다만 2006년~2007년 당시 1991년생들~1992년생들이 신입생이 75명이 되어서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가 다시 70명으로 줄었다.[9] 교사들과 학생들이 서로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매우 강하며, 대표적인 게 잘못을 저지른(국어&국사 시간을 제외한 평상시 때 한국어 사용, 조회 및 수업시간에 지각, 자습시간 때 딴짓하기, 친구들과 다투기, 교사에게 반항, 남녀간 연애 등) 학생들을 징계하는 학생법정이 있다. 3학년 학생회장이 판사 역을, 2학년 학생자치위원회장이 검사 역을, 교사가 잘못을 한 학생들을 체벌(회초리)하는 역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