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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 미야모토 쇼모쿠(宮本勝默)[1] |
| 출생 | 1922년 10월 1일 |
| 전라북도 금산군 금산면 중도리 460번지[2] (현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 | |
| 사망 | 1976년 5월 26일 (향년 53세) |
| 충청남도 금산군 | |
| 묘소 |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 선산 |
| 본관 | 반남 박씨[3]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1990년 추서)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1922년 10월 1일 전라북도 금산군 금산면 중도리(현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 460번지에서 아버지 박현양(朴賢陽, 1884 ~ ?.2.14)[4]과 어머니 창원 황씨(1885 ~ ?.1.20)[5] 사이에서 4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전라북도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6] 171번지로 이주하여 본적을 두었고[7], 사립 심광(心光)보통학교에 진학하였으나 1939년 3학년 때 가정 형편으로 중퇴하였다. 1939년 10월부터 둘째 형 박승인(朴勝仁, 1919.1.11 ~ ?)[8]이 경영하는 포목상에서 형의 일을 도우며 지냈다.1940년 5월 11일 금산면 읍내 각종 업소에 근무하는 18세 내외의 청년 7명과 더불어 친목을 위장한 항일결사 시장친우계(市場親友契)를 조직했다. 시장친우계는 그해 7월 진락동지회(進樂同志會)로 명칭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펴나갔다.
진락동지회는 항일운동의 방안으로 우선 일제의 지원병 강제모집에 반대하여 불합격자초운동(不合格自招運動)을 펴기로 하고 매월 15일에 모임을 갖고 이의 추진상황을 검토했다. 또한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독립군(韓國獨立軍)과 접선하여 항일운동의 방안을 모색할 목적으로 동지인 최병무를 중국에 파견하였다. 이에 필요한 여비 2백원은 동 회원들이 40원씩 분담하여 마련했다.
한편 그는 1940년 9월 17일 오전 11시에 문대식·정해안[9]·엄창수(嚴昌樹)[10] 3명과 함께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의 관광명소인 진악산에 올라 문대식이 산 중턱 등산로 옆 병풍처럼 우뚝 솟은 바위면에 붉은색 및 푸른색 페인트를 사용해 직경 50cm의 태극기를 그리고, 문대식, 정해안과 함께 그 왼쪽 아래 바위에 흰색 페인트로 '조선'이라 크게 썼다. 또한 문대식은 이 바위 북동쪽 250미터 떨어진 영천수굴(靈泉水窟) 앞 돌로 만든 제단 위에 미리 만들어 둔 높이 약 25.5cm, 폭 약 7.2cm의 나무 판자 앞면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윗면에는 직경 약 3.3cm의 태극 모양을 조각한 후 붉은색 및 파란색 페인트로 색칠하였다. 이어 판자 아래에는 '조선독립만세'라는 문자를 조각한 후 흰색 페인트를 칠해 등산객들에게 선명하게 보이도록 팻말을 세워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일련의 활동이 발각되면서 1941년 2월 17일 일본 제국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2년 5월 13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11] 복역하였다.
1976년 5월 26일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사망하였다. 198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 1942년 5월 13일 전주지방법원 판결문[2] 1942년 5월 13일 전주지방법원 수형인명부[3] 직장공파(直長公派)-풍정파(楓井派) 24세 승(勝) 항렬.[4] 자는 춘수(春水).[5] 황향연(黃香淵)의 딸이다.[6] 반남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찬웅도 이곳 출신이다.[7]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1942년 5월 13일 전주지방법원 수형인명부[8] 창씨명은 미야모토 쇼진(宮本勝仁)이다.[9] 창씨명: 河東海晏[10] 창씨명: 富春昌樹[11] 1942년 5월 13일 전주지방법원 판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