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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열

박상열의 수상 결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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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82


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01

{{{#ffffff [[OB 베어스|OB 베어스]] 등번호 9번}}}
팀 창단 박상열
(1982~1988)
김종석
(1989~2000.5.31.)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79번}}}
결번 박상열
(1996~1998)
결번
SK 와이번스 등번호 79번
팀 창단 박상열
(2000)
김성래
(2001~2009)
{{{#fff [[두산 베어스|두산 베어스]] 등번호 75번}}}
하기룡
(1999)
박상열
(2001~2004)
권명철
(2005~2009)
LG 트윈스 등번호 83번
임형길
(1997~1998)
<colbgcolor=#000><colcolor=#fff> 박상열
(2005~2006)
김인호
(2009~2014)
SK 와이번스 등번호 75번
김동재
(2003~2006)
박상열
(2007~2011)
김용희
(2012~2013)
한화 이글스 등번호 72번
조경택
(2006~2014)
박상열
(2015~2016)
김해님
(2017~2020)
}}} ||
파일:OB 베어스 박상열 투수(2).jpg
박상열
朴相悦 | Park Sang-Yeol
출생 1955년 8월 5일 ([age(1955-08-05)]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서대전초등학교 (졸업)
대전중학교 (졸업)
동대문상업고등학교 (졸업)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 기업은행 야구단 (1975~1976)
포항제철 야구단 (1980~1981)
OB 베어스 (1982~1988)
지도자 태평양 돌핀스 2군 투수코치 (1989~1991)
OB 베어스 1군 투수코치 (1992~1995)
쌍방울 레이더스 1군 투수코치 (1996~1999)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00)
두산 베어스 1군 불펜코치 (2001~2003)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 (2004)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05)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 (2006)
SK 와이번스 2군 투수코치 (2007~2011)[1]
고양 원더스 투수코치 (2012~2014)
한화 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15)[2]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5)[3]
한화 이글스 육성군 투수코치 (2016)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2)
병역 육군 경리단 (1977~1979)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주요 성적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한국프로야구의 지도자. 2015 시즌부터 2016 시즌까지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2. 선수 경력

파일:OB 베어스 박상열 투수.jpg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OB 베어스 선수 시절

동대문상고의 에이스로 실력을 인정받아 고교 졸업과 동시에 1975년 기업은행에 입단하며 실업야구 선수로서의 삶을 바로 시작했다. 이 시기에 김성근과의 인연을 처음 맺었다. 기업은행의 에이스로 뛰면서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등 상당한 활약을 보였고,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육군 경리단 복무를 통해 실업야구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제대 후에는 포철 야구단으로 이적하여 프로 출범 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982년 프로 출범과 함께 OB 베어스에 입단해서 1988년까지 뛰었다. 선수로서의 전성기는 1983년과 1984년으로, 당시 박철순이 이탈했음에도 OB가 나쁘지 않은 투수진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데 큰 공헌을 한 선수였다. 그리고 이 두 해의 활약이 절정이었고, 그 뒤로는 쭉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내려갔다. 그래도 김성근이 OB에 재임하던 시절에는 꾸준히 팀에 남을 수 있었지만, 1988 시즌을 끝으로 김성근이 태평양 돌핀스로 떠나면서 박상열도 선수로서 유니폼을 벗고, 김성근과 함께 코치로서 태평양으로 이동했다.

팀 후배인 김영신과 얽힌 에피소드가 있는데, 1985년 시즌 중반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 원정 경기 후 박상열이 아들을 얻은 기념이라며 숙소인 수성관광호텔에서 동료들끼리 한 잔 하다가 술이 다 떨어지자 근처의 수성못 포장마차에서 2차까지 치렀다. 술자리를 끝내고서는 김영신이 박상열과 잔뜩 취해서 숙소로 돌아가던 중에 박상열이 수성못에서 수영 내기를 하자고 제의했고, 김영신이 수영 못한다고 하자 박상열은 "내가 해병대 출신이다. 물에 빠지면 건져줄게"[4]라는 통에 결국 김영신은 박상열과 수성못에 뛰어들었지만 김영신은 절반도 못 가 돌아왔다. 그런데 물에 들어간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박상열이 나올 생각을 않자 김영신은 큰일났다 싶어 숙소로 뛰어가 김성근 감독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선수단은 발칵 뒤집혀 밤새도록 수성못 주변에서 박상열을 애타게 찾았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동이 틀 무렵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경찰에 신고하려던 차에 자기 방이 아닌 계형철의 방 침대 밑에 곯아떨어져 있던 박상열이 발견되었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김성근이 박상열을 2군으로 내려버리면서 박상열 수성못 익사사건(?)은 일단락 되었다.[5] 그리고 이듬해 김영신은 익사하고 말았다.[6] 기사

3. 지도자 경력

태평양에서 처음 코치로 출발한 박상열은 김성근이 태평양에서 삼성으로 건너갈 시점에는 친정 팀인 OB로 다시 돌아갔다. 아마도 같은 학교 출신인 윤동균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동균도 1994년을 끝으로 물러나자 새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부임한 김성근을 따라 쌍방울로 이적했고, 여기서 쌍방울의 전성기와 해체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쌍방울의 선수단을 인계받은 SK 와이번스가 창단할 때, SK의 코치로 재직하다가 2001년 다시 친정인 두산 베어스으로 돌아가 두산에서 1군 불펜 코치 생활을 했고, LG 트윈스에서도 코치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2007년 김성근SK 와이번스의 감독으로 취임하자 합류하여 2011년 김성근이 해임될 때까지 1군과 2군을 오가면서 SK의 투수코치로 재직했다. 김성근이 해임된 후, SK를 떠나 이번에는 김성근과 함께 고양 원더스에 합류하여 투수코치로 재직했다. 그리고 고양 원더스가 해체된 후에는 다시 한화 감독으로 부임한 김성근을 따라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부임했다.

2015년 9월, 성적 부진에 따른 선수단 개편으로 이상군 코치와 교대되어 2군 투수코치로 내려갔다. 김성근의 투수 대삽질로 인해 니시모토 다카시 1군 투수코치와 더불어 제 할 일을 못 하고 있는 중.

2018년, 독립구단 수원 로보츠에서 코치직을 역임한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투수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1982 OB 25 111 10 5 0 0.667
(공동 4위)
4.30 120 7 34 9 35 1.39
1983 30 173⅓ 10 9 0 0.526 2.49
(4위)
162 11 44 14 68 1.19
1984 30 133 12 7 0 0.632 2.57 108 8 49 10 47 1.18
1985 22 109 3 6 0 0.333 4.13 109 6 41 5 25 1.38
1986 17 64⅓ 0 6 1 0.000 3.92 66 3 28 6 15 1.46
1987 16 58⅔ 3 3 1 0.500 3.84 73 2 26 3 15 1.69
1988 13 46⅔ 0 3 0 0.000 5.59 53 9 23 4 12 1.63
KBO 통산
(7시즌)
153 696 38 39 2 0.494 3.50 691 46 245 51 217 1.35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2년 3완투 0완봉
1983년 7완투 1완봉
1984년 1완투 0완봉
1985년 2완투 0완봉
1986년 1완투 0완봉
통산 14완투 1완봉
역대 타자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1982 OB 1 .000 0 0 0 0 0 0 0 0 0 1 .000 .000
KBO 통산
(1시즌)
1 .000 0 0 0 0 0 0 0 0 0 1 .000 .000

5. 관련 문서



[1] ~8월 17일[2] ~7월 31일[3] 8월 1일~[4] 사실 박상열은 해병대가 아닌 육군 경리단에서 복무했다.[5] 그 와중에 외야수 윤동균이 무단 외출을 했다는 사실도 들통나는 바람에(물론 100% 무단은 아니고 최주억 수석코치에게 "대구의 친척을 만나고 오겠다"고 보고했지만 워낙 살벌한 분위기여서 최 코치도 해명을 못할 상황이었다.), 벌금 110만원을 물어야 했다(…).[6] 대신 이 사건처럼 장난으로 놀다 사고난 것이 아니라, 자살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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