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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2-29 00:35:39

박도백

성명 박도백(朴道伯)
생몰 1892년 4월 19일 ~ 1939년 5월 24일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출두리
사망지 중국 지린성 안도현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도백은 1892년 4월 19일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출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9일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양봉근(楊奉根) 등이 주도한 동래 구포시장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를 주도했다. 오후 3시경 김윤길 등 주동자 12명이 경찰에 체포되자, 박도백을 비롯한 군중 1,200명이 구금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로 돌진해 주먹과 몽둥이로 주재소 유리창을 파괴했다. 이에 일본 경찰은 총탄을 쏘며 이들을 해산시키려 했다. 이때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던 박도백은 총탄을 맞아 부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그 는 이 일로 8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3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해 지린성 안도현에 거주하며 독립운동에 가담하던 그는 1939년 5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1996년 박도백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6년에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해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으며, 그의 후손인 박승천씨와 박금련씨에게 대한민국 국적 증서를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