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농구부 시절까지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창원 LG 세이커스 입단 후에는 극단적인 수비농구와 버나드 블런트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인 공격농구로 대표되는 이충희 당시 LG 감독의 농구에서 그의 수비재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준주전급으로 나서게 되어 LG의 창단 첫 2위 돌풍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가드로서 극강의 스피드를 앞세운 스틸 능력과 쏠쏠하게 터지는 3점을 앞세워 그는 KBL 최고의 식스맨 혹은 준주전으로써 입지를 굳혔고, 상대의 에이스 스탑퍼(특히 허재)로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드로서는 당시 스타 출신 슈팅 가드였던 김병철과는 다르게 치명적인 리딩능력의 부재와 더불어 공격옵션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었고, 이것은 그가 주전으로 올라서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2004년 모비스로 트레이드 된 후 바로 FA를 선언하여 전자랜드로 이적했으나, 출장시간은 늘어난데 비해 위의 한계 때문에 공격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못했고, 팀도 흑역사의 정점을 찍었다.
2006~2007 시즌에는 4년만에 LG에 복귀하면서 주장으로서 팀의 정규리그 2위에 공을 세웠고, 그 후 두 시즌을 더 활약한 후 2008~2009 시즌을 대학 후배였으며 자존심이 강했던 슈퍼스타 출신으로 많이 혼냈던 현주엽과 함께 같이 은퇴를 했다.
LG 소속으로 최다경기 출장을 했는데 이후 2013-2014 시즌 자신의 은퇴 이후 후배들인 기승호와 양우섭 이전의 최다경기 출장의 주인공이 바로 창단 멤버였던 박규현이었다.
박규현은 353경기를 LG에서 활약했으며 전체 2위였다. 1위는 신선우 감독이 KBL 드래프트 1라운드 9순위로 뽑고간 기박사라 불렸던 기승호[2]의 356경기 였고 3위는 김진 감독이 트레이드로 데리고 왔던 자신과 비슷한 늑대 양우섭의 335경기였다.
실제로 박규현 선수는 2006-2007 시즌부터 2008-2009 시즌까지 LG의 3년 연속 주장이었다.[3]
[1] 01-02 시즌 중반에 공익근무요원에서 소집해제 되면서 달았던 등번호다.[2] 실제로 쓴 건 강을준 감독이었고 작전타임때 현주엽 다음으로 많이 혼났던 블루워커였다.[3] 후임 주장은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팀 금메달의 주역이었던 조상현이었다. 이후 강을준 감독은 3년 연속 6강과 함께 퇴임을 하게 되었고 KBL 대표명장인 김진 감독이 부임한 이후 김현중과 임시주장이었던 전형수를 거쳐 김영환이 4년 반을 넘게 주장을 맡으면서 2013-2014 시즌 정규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선배의 업적을 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