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박광현 |
출생 | 1965년 6월 8일 ([age(1965-06-08)]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데뷔 | 1988년 <추억을 잊으면>[1] |
가족 | 아들 박건우 |
학력 | 서울대학교 국악과 학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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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작곡가 겸 가수.2. 활동
서울대학교 국악과 출신으로 응답하라 1988에서 노을이 리메이크한 김건모와의 듀엣곡 "함께"와 이승철의 대표 히트곡 "안녕이라고 말하지마","그대가 나에게", "잠도 오지 않는 밤에", "풍경화 속의 거리",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신승훈의 "우연히", 정인호의 "해요"[3]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가수들의 대표 히트곡을 작곡하고 이혜영이 데뷔한 혼성 트리오 그룹 1730등 유명 아티스트들을 제작한 싱어송라이터.초등학교 때 누나의 기타로 음악을 접하게 됐고, 중고등학교 시절 동네 친구들과 밴드 활동을 하였는데 이때 부터 끼가 보였는지 신대철과 함께 "블랙 다이아몬드" 라는 시나위의 전신이 된 밴드의 보컬로 활동하였다. 대학 입학 직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기울자 아르바이트로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계속 뮤지션의 꿈을 키우다가 강변가요제에 입상한다. 그 이후 데모 테이프를 여러 기획사에 보내던 게 당시 이승철이 소속되었던 회사 신촌뮤직의 눈에 띄어 계약을 맺고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데뷔하자마자 발표한 곡마다 메가히트를 치고 그 후로도 이승철, 신승훈, 김건모 등의 곡을 써주고 피아니스트 이영경 등과 퓨전 재즈 밴드 Daisy를 결성하는 등 승승장구하며 다녔으나 하필이면 그렇게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맛본 것이 화근이 되어 삐뚤어졌다. 몇번의 대마초 사건을 벌이며 데이지를 결성하자마자 터트리는 등 가수 생활 내내 방탕한 삶을 살다 결국 가정이 파탄 직전이 된 걸 보고 나서야 후회하고 잠적한 뒤 기독교에 귀의해 교회 찬양팀에서 사역 활동에 집중하며 대중들에게 점점 멀어져 갔다.
이후 잠잠해진 2000년대에도 간경화로 인한 건강악화로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2010년도에 아들 건우와 함께 악마를 보았다의 OST에 참여한 걸 시작으로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현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아가고 있다. 가끔씩 자신의 가게인 "봉주르"에서 모습을 드러내거나 피아니스트 민경인과 함께 소규모 클럽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2021년 들어서 1집의 리마스터 앨범을 내기도 했다.
3. 논란 및 사건 사고
3.1. 2건의 대마초 혐의
1990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된 후, 1995년에도 같은 혐의로 한차례 더 구속되었었다. 기사4. 디스코그래피
- 한송이 저 들국화처럼 (1989)[4]
- Park Kwang Hyun Vol 2 (1990)
- 재회 / 슬픔을 위한 준비 (Vol.3) (1992)
- 3rd Part II (1993)[5]
- Park Kwang Hyun Four (1995)
- 再會 II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