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9-15 03:21:58

바실리스 스파눌리스

바실리스 스파눌리스의 수상 이력
----
파일:유로리그 로고 가로형.svg
유로리그 역대 MVP
{{{#!wiki style="margin:0 -10px -5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2004-05 2005-06 2006-07 2007-08
앤서니 파커 앤서니 파커 테오도로스 파팔루카스 라무나스 시스카우스카스
2008-09 2009-10 2010-11 2011-12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밀로스 테오도시치 디미트리스 디아만티디스 안드레이 키릴렌코
2012-13 2013-14 2014-15 2015-16
바실리스 스파눌리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네마냐 비엘리차 난도 드 콜로
2016-17 2017-18 2018-19 2019-20
세르히오 율 루카 돈치치 얀 베슬리 코로나로 인한 취소
2020-21 2021-22 2022-23 2023-24
바실리예 미치치 니콜라 미로티치 사샤 베젠코프 마이크 제임스
2024-25 2025-26 2026-27 2027-28
켄드릭 넌 - - -
}}}}}}}}}}}} ||
파일:유로리그 로고 가로형.svg
유로리그 역대 파이널 포 MVP
{{{#!wiki style="margin:0 -10px -5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987-88 1988-89 1989-90 1990-91
밥 맥아두 디노 라자 토니 쿠코치 토니 쿠코치
1991-92 1992-93 1993-94 1994-95
프레드라그 다닐로비치 토니 쿠코치 자르코 파스팔리 아비다스 사보니스
1995-96 1996-97 1997-98 1998-99
도미니크 윌킨스 데이비드 리버스 조란 사비치 타이어스 에드니
1999-00 2000-01 2001-02 2002-03
젤코 레브라차 마누 지노빌리 데얀 보디로가 데얀 보디로가
2003-04 2004-05 2005-06 2006-07
앤서니 파커 사루나스 야시케비셔스 테오도로스 파팔루카스 디미트리스 디아만티디스
2007-08 2008-09 2009-10 2010-11
트라잔 랭던 바실리스 스파눌리스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디미트리스 디아만티디스
2011-12 2012-13 2013-14 2014-15
바실리스 스파눌리스 바실리스 스파눌리스 타이리스 라이스 안드레아스 노시오니
2015-16 2016-17 2017-18 2018-19
난도 드 콜로 엑페 우도 루카 돈치치 윌 클라이번
2019-20 2020-21 2021-22 2022-23
코로나로 인한 취소 바실리예 미치치 바실리예 미치치 에디 타바레스
2023-24 2024-25 2025-26 2026-27
코스타스 슬루카스 나이젤 헤이스데이비스 - -
2027-28 2028-29 2029-30 2030-31
- - - -
}}}}}}}}}}}} ||
파일:감독스파눌리스.jpg
올림피아코스 BC No. 7
<colcolor=#ffffff><colbgcolor=#d12027> AS 모나코 바스켓 감독
바실리스 스파눌리스
Vassilis Spanoulis | Βασίλης Σπανούλης
출생 1982년 8월 7일 ([age(1982-08-07)]세)
그리스 라리사
국적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그리스|{{{#!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그리스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그리스}}}{{{#!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특별행정구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행정구}}}{{{#!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
신장 193cm (6' 4")
체중 96kg (212 lbs)
포지션 포인트 가드 / 슈팅 가드
소속 구단 짐나스티코스 S. 라리사스 (1999~2001)
마루시 아테네 (2001~2005)
파나티나이코스 BC (2005~2006)
휴스턴 로켓츠 (2006~2007)
파나티나이코스 BC (2007~2010)
올림피아코스 BC (2010~2021)
지도자 페리스테리 BC (2022~2024)
AS 모나코 바스켓 (2024~)
그리스 대표팀 (2024~)

1. 개요2. 선수 경력
2.1. 유년기2.2. 프로2.3. 국가대표
3. 플레이 스타일4. 인기 및 위상5. 수상 내역6. 여담
6.1. 바실리스 스파눌리스에 대한 언사

1. 개요

그리스의 前 농구 선수로,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이다. 유로 리그에서 많은 족적을 남겼으며 국제 무대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유로 리그, FIBA가 주관한 모든 유럽 클럽 대회를 통틀어 유럽 농구 대회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최다 어시스트 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선수.

별명은 킬 빌(Kill Bill), Greek Thunder.

2. 선수 경력

2.1. 유년기

스파눌리스는 1982년 8월 7일 그리스 라리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타나시스 스파눌리스는 약국을 운영했고, 어머니 조르지아 스파눌리는 은행원이었다. 스파눌리스는 형 디미트리스보다 3년 뒤에 태어난 둘째이자 막내였다.

7세에 그는 유도, 축구, 수영,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며 훈련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마이클 조던니코스 갈리스를 우상으로 여겼다. 1994년, 12세가 된 그는 종합 스포츠 클럽인 짐나스티코스 S. 라리사스의 유소년 농구 프로그램에 입단했다. 하지만 1997년 11월 4일, 그가 15세였을 때 아버지 타나시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9년, 16세가 된 스파눌리스는 그리스 1998–99 시즌 전국 18세 이하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짐나스티코스 라리사스의 유소년 자매 클럽인 케라브노스 라리사를 이끌고 판헬레닉 청소년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당시 그는 대회의 최다 득점자이자 MVP로 선정되었다.

준결승전에서는 아리스 테살로니키 유소년 팀을 상대로 40점을 기록했고, 결승전에서는 올림피아코스 피레아스 유소년 팀을 상대로 64–61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종료 직전에 결승 3점슛을 성공시키며 팀의 우승을 결정지었다.

2000년, 17세의 스파눌리스는 DBB 알베르트 슈바이처 18세 이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 같은 해 FIBA 18세 이하 유로바스켓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2년, 19세가 된 그는 FIBA 20세 이하 유로바스켓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으며, 결승전에서 자유투를 성공시키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2.2. 프로

스파눌리스는 1994년, 고향 라리사에 위치한 스포츠 클럽 짐나스티코스와 그 산하 유소년 팀인 케라브노스의 유소년 시스템에 합류했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케라브노스에서 주니어 클럽 레벨에서 뛰었고, 이후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짐나스티코스 시니어 클럽에서 2시즌 동안 프로 클럽 농구를 소화했다.

1999년, 17세의 나이에 스파눌리스는 짐나스티코스 S. 라리사스 시니어 팀 소속으로 그리스 2부 리그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해당 시즌 13경기에 출전해 총 90점을 기록했으며, 경기당 평균 6.9득점을 올렸다. 2000–01 시즌에도 그는 짐나스티코스 소속으로 그리스 2부 리그에서 활약했다. 이 시즌 그는 26경기에 출전해 총 213점을 기록했으며, 경기당 평균 8.2득점을 기록했다.

스파눌리스는 그리스 2부 리그의 짐나스티코스 S. 라리사스에서 두 시즌을 뛴 후, 최상위 리그인 그리스 바스켓 리그와 유럽 3부 리그인 FIBA 코라치 컵, 그리고 이후 유럽 2부 리그인 유로컵에 참가하는 마루시 아테네와 4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마루시는 그의 선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짐나스티코스에 5천만 그리스 드라크마의 계약 바이아웃을 지불하였다. 스파눌리스가 마루시에 처음 합류했을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니코스 리나르도스는 19세였던 그를 유로리그 베테랑인 미카엘 코흐와 일대일 경기를 시켰다. 경기 후 코흐는 리나르도스에게 “코치님, 이 아이는 스타입니다. 훌륭한 농구 선수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2001–02 시즌, 스파눌리스는 마루시를 이끌고 클럽 역사상 최초로 그리스 컵 결승에 진출하였다. 또한 같은 시즌 유럽 3부 리그인 FIBA 코라치 컵에도 출전하였다. 2002–03 시즌, 그는 그리스 바스켓 리그 최우수 신인 선수로 선정되었다. 또한 유럽 3부 리그인 FIBA 유럽 챔피언스컵에도 마루시 소속으로 출전하였다.

이 시즌 스파눌리스는 마루시를 그리스 바스켓 리그 결승과 FIBA 유럽 리그 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유럽 리그에서 벤치 멤버로 뛰면서 경기당 평균 10.8점, 6.4어시스트, 3점슛 성공률 40%를 기록하였다.

같은 시즌, 그는 그리스 리그 MIP로 선정되었다.

스파눌리스는 짐나스티코스 S. 라리사스와 함께 프로 클럽 농구에 데뷔하며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의 시작을 알렸다.

탁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그는 아테네와 마루시로 이적했고, 2002–03 시즌에는 그리스 바스켓 리그의 ‘최우수 영 플레이어(Best Young Player)’ 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급성장 덕분에 그는 2004년 NBA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댈러스 매버릭스에 지명되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그리스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마루시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4–05 시즌, 그는 그리스 리그 35경기에서 평균 15.9득점, 3점슛 성공률 37.8%를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유럽 2부 리그인 유로컵에서도 12경기 평균 15.2득점, 3점슛 성공률 40.0%를 기록하였다. 이 시즌 총 47경기에서 평균 15.7득점, 3점슛 성공률 38.3%를 기록하였다.

2005년 그리스 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하였으며, 리그 베스트 5에도 선정되었다. 전 시즌에 평균 11.1점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으로, 그는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마루시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하였다. 스파눌리스는 그해 유럽 올해의 식스맨 상과 유로컵 올해의 신인상도 수상하였다.

그는 리그 최고의 득점자로 활약했으며, 마루시를 이끌고 2004–05 시즌 그리스 리그 결승과 2005년 유로컵 8강에 진출시키는 인상적인 성과를 올렸다. 이후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하면서 그는 유럽 농구를 대표하는 스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2004–05 시즌의 눈부신 활약 이후, 스파눌리스는 유로리그 강호 파나티나이코스 아테네와 순수익 160만 유로에 달하는 3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에이전트 미스코 라즈나토비치와 함께 계약 조건에 1년 후 NBA 진출을 위한 바이아웃 조항을 삽입했고, 바이아웃 금액은 40만 달러로 설정되었다. 이는 그가 유럽 최고 수준의 클럽에서 뛰는 첫 시즌이었다.

2005–06 시즌 파나티나이코스와 함께 그리스 리그 챔피언십과 그리스 컵을 모두 우승하였다. 파나티나이코스는 정규 시즌 24승 2패, 플레이오프 8승 무패, 컵대회 5승 무패를 기록하여 국내 대회에서 총 37승 2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2006년 그리스 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하였으며, 베스트 5에 선정되었다.

2005–06 유로리그 시즌에서 그는 눈부신 데뷔를 펼치며 유로리그 신인 최초로 올-유로리그 팀에 선정되었다. 23경기에서 평균 28.8분을 뛰며 14.6득점, 3.1어시스트, 2.0리바운드, 1.4스틸을 기록하였다. 2점슛 성공률은 61.8%, 3점슛은 36.8%, 전체 필드골 성공률은 53.4%였다.

종종 교체 선수로 출전했지만 팀 내 최다 득점자였으며, 시즌 동안 두 차례 유로리그 라운드 MVP를 수상하였다. 파나티나이코스는 유로리그에서 16승 7패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스파눌리스는 2006년 FIBA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NBA 선수를 포함한 전 세계 농구선수 중 7위에 올랐다.

2006년 7월 19일, 스파눌리스는 파나티나이코스 아테네와의 계약 마지막 2년을 포기하고, NBA 휴스턴 로켓츠와 3년 계약(2년 보장)을 체결했다. 로켓츠는 계약금 총 583만 2천 달러와 함께, 파나티나이코스 측에 40만 달러의 바이아웃 금액을 지불했다. 계약은 시즌당 평균 194만 4천 달러 규모였다.

로켓츠는 2004년 6월 24일 NBA 드래프트 당일, 50순위로 댈러스 매버릭스가 지명한 스파눌리스의 NBA 권리를 확보했다. 당시 휴스턴은 55순위 지명권으로 루이스 플로레스를 뽑은 뒤, 30만 달러 현금과 함께 이 권리를 트레이드했다.

당시 로켓츠 단장 캐럴 도슨은 “그는 매우 다재다능한 볼 핸들러이며, 마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강인한 선수다. 우리는 그가 매우 훌륭한 선수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발전 가능성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고 말했다. 로켓츠의 선수 인사 책임자였던 데니스 린지도 “그는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인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한 후에도 팀의 최다 득점자였다. 유럽에서 9승 1패의 성적으로 이미 16강에 진출했다. 그의 스타일은 마치 농구계의 풀백 같다”고 평가했다. 린지는 “우리는 그가 로켓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스파눌리스는 2006–07 시즌 NBA 데뷔 시즌 동안 로켓츠에서 벤치 선수로 31경기에 출전했으며, 평균 8.8분 동안 2.7득점과 0.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야투 성공률은 31.9%, 3점슛 성공률은 17.2%에 그쳤다.

그는 출전 시간 문제로 제프 밴 건디 감독과 갈등을 겪었다. 스파눌리스는 파나티나이코스가 제안한 연봉 160만 유로(3년간)의 제안을 거절하고, 더 낮은 금액의 로켓츠 계약을 선택했다. NBA에서 뛴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희생을 감수했지만, 로테이션에서 밀려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밴 건디 감독은 스파눌리스가 턴오버가 많고 외곽슛 감각이 떨어지며, 자신의 시스템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밴 건디는 “그는 유럽에서는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였다’고 말한다. 스파눌리스는 스스로가 가장 큰 적이 되었다. 그는 실망을 낙담으로 이어가며 발전을 저해했고,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7년 7월 12일, 스파눌리스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는 휴스턴이 루이스 스콜라의 권리와 함께 스파눌리스를 트레이드하고, 센터 재키 버틀러를 포함한 대가를 받은 형태였다. 이후 2007년 8월 19일, 스퍼스는 스파눌리스를 방출했고, 그는 원하던 대로 그리스 파나티나이코스로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해당 소식은 2007년 8월 23일 공식 발표되었다.

스파눌리스는 NBA를 떠난 이유를 “가족적인 사정”이라고 밝혔으며, 그의 에이전트는 로켓츠가 계약을 쉽게 해지하지 않으려 한 태도를 “노예 제도와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다시 그리스 리그와 유로리그에서 뛰기로 결정했다.

스파눌리스는 당시 밴 건디 감독이 로켓츠 부임 첫날 자신에게 “시즌 내내 벤치에 앉게 될 것”이라 말했고, 이후 자신을 기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후 부임한 릭 아델만 감독이 자신을 붙잡고 싶어 했으며,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토니 파커와 그렉 포포비치 감독도 영입에 관심이 있었다고 밝혔다.

스퍼스 단장 R.C. 버포드는 “스퍼스는 스파눌리스를 팀에 남기고 활용하기 위해 트레이드했다”고 밝혔으며, 그가 그리스로 복귀한 것은 선수 본인의 선택이었다고 확인했다.

2007년 8월 19일, 스파눌리스는 2007-08 시즌 동안 그리스에서 뛰기를 원한다는 결정을 내린 뒤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방출되었다. 이는 당시 그의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았고, 스파눌리스가 어머니 곁에 있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스파눌리스는 당시 유로리그 챔피언이었던 파나티나이코스와 3년 계약을 맺었다. 그는 그리스 국가대표팀 동료이자 스타인 디미트리스 디아만티디스와 함께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 포지션을 소화할 선수로 영입되었다. 이후 전 NBA 선수이자 리투아니아 국가대표팀의 스타인 샤루나스 야시케비치우스도 파나티나이코스와 계약했다. 스파눌리스, 디아만티디스, 야시케비치우스는 당시 감독이었던 젤코 오브라도비치 아래에서 전설적인 ‘3 플레이메이커 시스템’을 구축했다.

스파눌리스가 체결한 계약은 순수익 550만 유로 규모의 3년 계약으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NBA 계약에서 1,166,400달러의 바이아웃이 포함되었다. 이 바이아웃 금액은 파나티나이코스가 부담했기 때문에 스퍼스의 샐러리캡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의 에이전트는 스파눌리스가 1년 후 계약을 옵트아웃할 수 있도록 조항을 넣었다. 실제로 스파눌리스는 계약 첫 해가 끝나면 다시 NBA로 돌아가 샌안토니오에서 뛰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2007-08 시즌 동안 스파눌리스는 그리스 바스켓 리그 36경기와 유로리그 20경기에 출전해 파나티나이코스 소속으로 득점(661점)과 어시스트(215개) 부문 모두에서 팀 내 1위를 기록했다. 시즌 총 56경기에 출전해 경기당 평균 11.8득점, 3.8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그리스 바스켓 리그에서는 어시스트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또한 그는 그리스 리그 올스타전과 베스트 5에 선정되었다.

스파눌리스는 파나티나이코스가 2008년 그리스 리그 챔피언십과 그리스 컵 우승을 동시에 차지하는 ‘더블’ 달성에 기여했다. 특히 그리스 컵 결승전에서는 라이벌 올림피아코스를 상대로 20득점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8-09 시즌, 스파눌리스는 파나티나이코스를 유럽 삼관왕으로 이끌었다. 같은 시즌에 유로리그 챔피언십, 그리스 리그 챔피언십, 2009 그리스 컵 타이틀을 모두 차지했다. 이 시즌의 파나티나이코스 팀은 유럽 농구 미디어와 전문가들에 의해 역대 최고의 유로리그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스파눌리스는 이 시즌 올 유로리그 팀에 선정되었고, 유로리그 파이널 포 MVP로도 선정되었다. 또한 그는 그리스 바스켓 리그 베스트 5와 2009 그리스 리그 MVP로도 이름을 올렸다.

2008-09 시즌이 끝난 후, 스파눌리스는 그리스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09년 유로바스켓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대회 올 토너먼트 팀에도 선정되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그는 권위 있는 BTA 발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이 상을 수상한 유일한 농구 선수이기도 하다.

2009-10 시즌에는 파나티나이코스 소속으로 다시 한 번 그리스 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2010년 7월, 자유계약 신분이 된 스파눌리스는 많은 추측 끝에 그리스 바스켓 리그의 클럽인 올림피아코스 피레아스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조건은 총수입 1,320만 유로 또는 순수입 720만 유로(시즌당 240만 유로)에 팀 성과에 따른 보너스를 포함한 것이었다. 올림피아코스에서의 첫 시즌에 그는 그리스 컵 우승을 차지했고, 유로리그 올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으며, 그리스 리그 어시스트 부문 1위에 올랐다.

2010년 여름, 그는 파나티나이코스를 떠나 라이벌 팀인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하면서 선수 경력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이적은 그리스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이적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되며, 디미트리스 디아만티디스와의 라이벌리는 유로 리그 역사상 가장 치열한 대결로 이어졌다.

이 당시 바실리스 스파눌리스 vs 디미트리스 디아만티디스 시절의 영원한 적들의 더비는, 들의 대결이라 불리며 유럽 내에서 엄청난 화제가 됐었다.

2012년, 스파눌리스는 유로리그와 그리스 리그 챔피언십에서 모두 우승했다. 그는 올 유로리그 퍼스트 팀에 선정되었으며, 커리어 두 번째로 유로리그 파이널 포 MVP를 수상했다. 이로써 그는 해당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네 번째 선수가 되었다. 유로리그 결승전에서 그는 게오르기오스 프린테지스의 결승 득점을 어시스트했으며, 이 장면은 유로리그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다시 한 번 그리스 리그 어시스트 1위를 차지했으며, 그리스 리그 MVP와 파이널 MVP에도 선정되었다. 같은 해, 유로바스켓 뉴스에서 선정한 유럽 올해의 선수로도 뽑혔다. 당시 스파눌리스와 프린테지스는 각각 ‘그리스 천둥’과 ‘그리스 번개’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유로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듀오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2013년, 스파눌리스는 유로리그 정규 시즌 MVP로 선정되었고, 결승전 최다 득점자이자 파이널 포 MVP로 선정되며 올림피아코스를 유로리그 2연패(2012, 2013)로 이끌었다. 그는 디미트리스 디아만티디스에 이어 유로리그 정규 시즌 MVP와 파이널 포 MVP를 한 시즌에 동시에 수상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으며, 토니 쿠코치와 함께 유로리그 파이널 포 MVP를 세 번 수상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다.

이 외에도 그는 2013년 인터내셔널 스포츠 프라이즈 세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두 번째로 유로바스켓 뉴스 선정 유럽 올해의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2013년 7월, 스파눌리스는 올림피아코스와 시즌당 순수입 200만 유로, 총 600만 유로 규모의 3년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같은 해 그는 올림피아코스 소속으로 FIBA 인터콘티넨탈 컵에서 우승했고, 이 대회의 MVP로 선정되었다. 2014년 5월에는 커리어 여섯 번째로 올 유로리그 팀에 이름을 올렸다.

2015년 5월, 그는 올 유로리그 퍼스트 팀에 선정되며 일곱 번째 올 유로리그 팀 영예를 안았다. 스파눌리스는 올림피아코스를 이끌고 유로리그 결승에 진출했으며, 그리스 리그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결승전 MVP로도 선정되었다.

이 시즌에도 스파눌리스는 올림피아코스 소속으로 그리스 리그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스 리그 결승 2차전에서는 파나티나이코스를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3점 버저비터를 성공시켰다. 3차전에서는 4쿼터 종료 3분 1초 전부터 11점을 몰아넣으며 승리를 이끌었고, 4차전에서는 경기 종료 1.9초를 남기고 또다시 결정적인 3점슛을 성공시켜 팀을 2차 연장전 끝 승리로 이끌었다. 이 슛은 이후 '더 샷(The Shot)'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유럽 농구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결승 슛 중 하나로 널리 알려졌다.

2016년 그리스 리그 MVP와 파이널 MVP로도 선정되었다.

2016년 6월, 올림피아코스와 2년 연장 계약을 맺었으며, 이 계약은 2017–18 시즌까지 지속되었다. 계약 금액은 총 300만 유로로, 시즌당 150만 유로였다. 그 시즌 유로리그 대회에서 EuroLeague.net은 스파눌리스를 “유로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클러치 플레이를 기록한 선수”로 선정했다. 그는 올림피아코스를 2017년 유로리그 결승전까지 이끌었다.

스파눌리스는 ‘컴백 키즈’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젊고 재건 중이던 올림피아코스를 이끌고, 2012년에는 믿기 힘든 유로리그 우승을, 2013년에는 역사적인 2연패를 달성했다. 이 과정에서 유로리그 파이널 포 MVP를 두 차례 더 수상하여 토니 쿠코치와 함께 유럽 농구 역사상 이 상을 세 번 수상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그의 리더십 하에 올림피아코스는 2015년과 2017년에도 유로리그 결승에 진출했었다.

이 시즌 동안 유로 리그 역대 어시스트 1위와 그리스 프로 농구 리그 통산 득점 1위에 올랐다. 또한, 2018년 그리스 컵 결승에서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2018년 5월, 그는 올-유로리그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으며, 이는 그의 커리어 통산 8번째 올-유로리그 팀 선정으로, 역대 최다 기록이었다.

시즌 시작 전인 2018년 7월 2일, 올림피아코스와 1년 계약 연장을 체결했고, 연봉은 순수입 기준 120만 유로였다. 그는 2018–19 유로리그 시즌 14라운드에서 MVP로 선정되었다.

해당 시즌 동안 그는 그리스 리그 통산 어시스트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2019년 1월, AEK 아테네와의 경기에서 이전 기록 보유자인 디미트리스 디아만티디스를 앞질렀다. 그러나 2019년 3월 14일, 유로리그 올림피아 밀라노전에서 오른쪽 발목의 비골건 파열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2019년 4월 1일, 부상으로 인해 오른쪽 발목 수술을 받은 스파눌리스는 7월 5일 개인 훈련에 복귀했다. 이후 그는 올림피아코스와 1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고, 연봉은 순수입 기준 60만 유로였다.

2020년 1월 2일, 페네르바체와의 경기에서 유로 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하지만 2020년 2월 4일, 스파눌리스는 잘기리스 카우나스와의 경기에서 다시 한번 같은 부위인 오른쪽 발목 비골건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고, 2월 7일 수술을 받았다.

2020년 7월 11일, 스파눌리스는 2020–21 시즌까지 올림피아코스와 1년 재계약을 체결했으며, 연봉은 순수익 기준 60만 유로였다.

2020년 12월 10일,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와의 유로리그 경기에서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를 제치고 유럽 농구 대회 역사상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이 기록은 1958년 FIBA 유럽 챔피언스컵부터 시작하여 FIBA와 유로리그가 주관한 모든 유럽 클럽 대회를 통틀은 것이다.

38세였던 스파눌리스는 2021년 6월 26일, 프로 농구 선수 생활을 마감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2021년 9월 27일, 39세의 나이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당시 그는 총 1,234경기에 출전해 13,533점을 기록하며 남자 선수로서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 후, 스파눌리스는 2022년 4월 22일, 유로리그로부터 “유로리그 레전드(EuroLeague Legend)”로 선정되었고, 유로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23년 9월 17일, “레전드의 밤”이라는 행사에서 올림피아코스는 스파눌리스의 등번호 7번을 영구 결번 처리했다.

스파눌리스는 선수 시절 올림피아코스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었으며, 클럽 창단 100년 역사상 모든 종목과 부문을 통틀어 올림피아코스 종합 스포츠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GOAT)로 평가받고 있다.

2.3. 국가대표

그리스 대표팀은 전설적인 니코스 갈리스, 파나기오티스 파술라스, 파니스 크리스토둘루, 파나기오티스 지아나키스가 이끌었던 1987년 FIBA 유로바스켓 우승 이후 처음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스파눌리스는 2006년 FIBA 월드컵에서 그리스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했으며, 팀은 은메달을 차지했다. 준결승전에서는 미국 대표팀을 101–95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고, 이 경기에서 스파눌리스는 22점을 넣으며 그리스의 최다 득점자이자 양 팀 통틀어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카멜로 앤서니가 27점을 넣었다.) 그는 테오 파팔루카스, 소포클리스 쇼르차니티스와 함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당시 미국 대표팀 감독이었던 코치 K, 마이크 슈셉스키는 이후 “그리스가 국제 경기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2006년부터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스파눌리스는 이 대회에서 경기당 평균 11.7점을 기록하며 그리스 대표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고, 자유투 성공률에서도 87.8%로 팀 내 최고를 기록했다.

2007년 FIBA 유로바스켓에서도 스파눌리스는 그리스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그리스는 안토니스 포시스와 소포클리스 쇼르차니티스가 결장하면서 전력에 공백이 있었고, 결국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그리스는 4위를 차지했으며, 준결승전에서는 마크 가솔,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호세 칼데론,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호르헤 가르바호사, 루디 페르난데스, 파우 가솔 등 스타 선수들이 포진한 스페인에게 77–82로 패했다. 이 경기에서 스파눌리스는 양 팀 통틀어 최다인 24점을 올렸고, 5개의 어시스트도 기록했다.

대회에서 경기당 평균 11.7점을 기록하며 그리스의 최다 득점자로 활약했다. 또한,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3점 버저비터를 성공시켜 81–78 승리를 이끌었으며, 이 장면은 유로바스켓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부 결정 슛 중 하나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2009년 FIBA 유로바스켓에서 경기당 평균 14.1점을 기록하며 그리스의 동메달 획득을 이끌었고, 대회 올스타 파이브에 선정되었다.

2010년 FIBA 월드컵에서 그리스 대표로 뛰었으며 , 경기당 평균 13.7점을 기록하여 이 대회에서 그리스의 최다 득점자가 됐다.

2013년 FIBA 유로바스켓에서는 심각한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해 경기당 평균 16.7점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 3위에 올랐다. 당시 세계 랭킹 2위였던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20점을 넣으며 79–75 승리를 이끌었다.

2015년 FIBA 유로바스켓에서는 스파눌리스가 득점과 어시스트 양 부문에서 팀을 이끌었으며, 당시 그리스 대표팀에는 NBA에서 활동하던 야니스 아데토쿤보, 코스타 쿠포스, 닉 칼라테스, 코스타스 파파니콜라우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스는 8강전에서 스페인에게 71–73으로 석패하며 최종 5위를 기록했다.

이 대회를 끝으로 스파눌리스는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2006년부터 참가한 모든 주요 FIBA 대회에서 그리스 팀 내 최다 득점자였다. 2020년에는 ‘FIBA 유로바스켓 2000–2020 드림팀’에 선정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최고 장점은 단연 클러치 능력, 엄청난 강심장의 소유자였다. 유로 리그 최고 수준의 3점 슛 능력과, 훌륭한 돌파력을 갖췄던 선수로 뛰어난 점퍼와 드라이빙 능력, 페인트 존에서의 득점력, 그리고 우수한 볼 핸들링으로 경기 조율과 득점 기회를 창출하며, 클러치에서는 강한 집중력과 파울 유도로 팀의 에이스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선수였다.

4. 인기 및 위상

라이벌인 디미트리스 디아만티디스와 함께 유로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럽 선수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진 스파눌리스는 2023년 10월 BasketNews.com에서 실시한 유로리그 선수 투표와 팬과 분석가들의 여론에 따라 유로 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GOAT)로 선정되었다. 총 투표의 40%를 획득,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유로리그 경기에서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를 제치고 유로리그 역대 최고의 PIR(성과 지수 등급)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2020년 1월 2일, 페네르바체와의 경기에서 스파눌리스는 나바로를 넘어서며 유로 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득점 기록 달성 이후, 여러 NBA 및 유로리그 스타들로부터 축하 영상을 받았다. NBA에서는 야니스 아데토쿤보, 루카 돈치치, 토니 파커, 파우 가솔 등이 그를 축하했고, 유로리그에서는 게오르기오스 프린테지스,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파쿤도 캄파소, 페르난도 산 에메테리오, 오셀로 헌터, 사루나스 야시케비치우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알렉세이 쉬베드, 코스타스 슬루카스, 스트라토스 페르페로글루, 안테 토미치, 토코 셍겔리아, 바실리예 미치치, 블라디미르 루치치, 구스타보 아욘, 닉 칼라테스, 조던 테일러, 카일 하인즈, 코스타스 파파니콜라우 등이 축하 인사를 전했다. 또한 전설적인 유럽 농구 코치 아이토(아이토 가르시아 렌에세스)도 그의 기록을 축하했다.

2020년 5월 12일, 유로리그 2010–2020 올-디케이드 팀에 선정되었다. 유로리그 감독, 선수, 팬, 스포츠 기자의 투표에서 압도적인 전체 1위에 올랐고, 2위를 차지한 보그단 보그다노비치보다 두 배 이상의 표를 얻었다.

NBA 슈퍼스타 루카 돈치치가 가장 좋아하는 농구 선수이자 우상이다. 스파눌리스를 존경해서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도 7번을 달았고 NBA에서도 달고 싶었지만 팀 동료 드와이트 파웰의 등번호가 7번이라 77번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한 올림피아코스 피레아스 CFP 100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뽑혔다. 올림피아코스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종합 스포츠 클럽으로, 300개 이상의 트로피를 수상했다.

농구에서 스파눌리스의 시그니처 무브는 림 아래에서 시작해 선수가 다른 선수의 핸드오프를 받기 위해 코트 위쪽으로 올라가는 컷으로, 일반적으로 ‘스파눌리스 액션’, ‘스파눌리스 시스템’, 또는 간단히 ‘스파눌리스’로 알려져 있다. 이 전술은 지금까지도 유로 리그의 핵심 전술로 쓰이고 있으며, 이 시스템 자체를 유로 리그의 메타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발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2012년과 2013년 유로바스켓 올해의 선수, 2013년 International Sports Prize 올해의 선수, 같은 해 유로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스파눌리스는 유로리그 올팀에 총 8회 선정되는 기록을 세웠으며, 유로리그 2010–2020 10년의 선수로 뽑혔다. 유로리그 역사상 최고 득점과 최다 어시스트 기록을 세운 뒤 은퇴했다.

프로 클럽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국제 무대에서 스파눌리스는 FIBA 월드 클럽 챔피언십 우승자, 유럽 트리플 크라운 우승자, 유로리그 3회 챔피언이자 5회 결승 진출자, 그리고 FIBA 유럽 리그 결승 진출자였다. 국내 무대에서는 그리스 바스켓 리그 7회 우승, 13회 결승 진출, 그리스 컵 4회 우승, 9회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대부분의 선수 생활을 유로 리그와 그리스 리그에서 보냈으며, 파나티나이코스 아테네 소속으로 4번, 올림피아코스 피레아스 소속으로 3번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스파눌리스는 이 두 팀에서 총 3번의 유로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파나티나이코스에서 1회(2009년), 올림피아코스에서 2회 연속(2012년, 2013년) 우승을 거두었다. 파나티나이코스에서 4시즌 동안 클럽 챔피언십 타이틀을 8개, 올림피아코스에서 11시즌 동안 7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는 2005년 FIBA 유로바스켓에서 금메달을 이끌며 그리스 남자 국가대표팀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2006년 FIBA 월드컵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그리스 대표팀의 에이스였다. 특히, 준결승전에서 미국 대표팀을 101-95로 꺾는 경기에서 22득점을 올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2009년 FIBA 유로바스켓에서는 부상을 안고 뛰는 와중에도 그리스가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있어 중요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이에 따라 유로바스켓 올스타 5인에 선정되었다. 2020년에는 NBA 선수가 참가한 1992년 이후의 FIBA 하계 올림픽 역사에서 최고의 선수 25인으로 구성된 ‘FIBA 하계 올림픽 1992-2020 드림팀’에 선정되었다.

또한 ‘FIBA 유로바스켓 2000-2020 드림팀’의 일원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경기 종료 순간에 강한 클러치 능력으로 인해 "킬 빌"이라는 별명을 얻은 스파눌리스는 유럽 최고의 농구 선수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2017년에는 유럽 농구 전문가 블라디미르 스탄코비치와 유로리그 전문 패널이 스파눌리스를 “유로리그 역사상 가장 클러치한 선수”로 선정했다.

2018년 그는 ‘유럽 농구 101대 거장’에 포함되었으며, 당시 현역 선수 중 유일하게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와 함께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2020년에는 Eurohoops.net 독자 투표에서 “2010년대 최고의 유로리그 선수”로 선정되었다.

2021년에는 HoopsHype.com이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국제 선수 75인’ 중 한 명으로 뽑혔다.

2022년에는 유로리그의 명예의 전당인 ‘유로리그 레전드’로 지명되었고, 같은 해 ‘그리스 바스켓 리그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등번호 7번 유니폼은 2023년 9월 17일, 올림피아코스 BC에서 영구 결번되었다.

5. 수상 내역

수상 내역
유로리그 챔피언 3회 ( 2009 , 2012 , 2013 )
유로리그 MVP ( 2013 )
유로리그 파이널 포 MVP 3회 수상 (2009, 2012, 2013)
3회 올 유로리그 퍼스트 팀 ( 2012 , 2013 , 2015 )
5회 올 유로리그 세컨드 팀 ( 2006 , 2009 , 2011 , 2014 , 2018 )
유로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클러치를 기록한 선수(2017)
유로리그 최고의 주장 (2018)
유로리그 2010-2020 10년의 선수 (2020)
유로리그 2010-2020 올 디케이드 팀 (2020)
유로리그 명예의 전당 (2022)
유로컵 올해의 신인상( 2005 )
유로컵 올해의 6인( 2005 )
국제 스포츠상 올해의 세계 선수상 (2013)
유럽 트리플 크라운 우승자(2009)
유럽 농구의 101대 거장 (2018)
발칸 올해의 운동선수 (2009)
그리스 리그 우승 7회 ( 2006 , 2008 ~ 2010 , 2012 , 2015 , 2016 )
그리스 컵 우승 4회 (2006, 2008, 2009, 2011)
그리스 리그 MVP 4회 수상 (2005, 2009 , 2012, 2016)
그리스 리그 파이널 MVP 4회 수상 (2006, 2008, 2015, 2016)
10회 올그릭 리그 팀 (2005, 2006, 2008, 2009, 2011~ 2013, 2015 ~2017 , 2018 , 2019 )
그리스 리그에서 4회 어시스트 기록 보유자 ( 2008 , 2012 , 2013 , 2015 )
10회 그리스 올스타 (2005, 2006, 2008–2011, 2013, 2014 , 2018 , 2019 )
그리스 리그 최우수 신인 선수 ( 2003 )
그리스 리그 최다 발전 선수 ( 2004 )
그리스 리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2회 수상 (2015, 2017)
그리스 리그 명예의 전당 (2022)
올림피아코스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7번 (2023년)
올림피아코스 피레아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2025)
FIBA 인터콘티넨탈 컵 챔피언( 2013 )
FIBA 인터콘티넨탈 컵 MVP (2013)
FIBA 유로스타 (2007)
FIBA 유로바스켓 2000-2020 드림팀 (2020)
FIBA 하계 올림픽 1992-2020 드림팀 (2020)
아크로폴리스 토너먼트 8회 우승 ( 2005 – 2010 , 2013 , 2015 )
아크로폴리스 토너먼트 MVP 2회 수상 ( 2007 , 2009 )
팬헬레닉 청소년 챔피언십 챔피언(1999)
팬헬레닉 청소년 챔피언십 MVP (1999)
프로 그리스 리그 통산 통계 순위 1위
그리스 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
그리스 리그 역대 어시스트 1위

6. 여담

6.1. 바실리스 스파눌리스에 대한 언사

유럽에서 바실리스 스파눌리스가 누군지 아세요? 그는 유럽의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 같은 선수예요..
야니스 아데토쿤보
12살에서 13살 때, 저는 스파눌리스에게 매료되었습니다. 유럽에서 뛰면서 스파눌리스가 제 우상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항상 그를 존경했죠. 그래서 제가 7번을 달고 다니는 거죠... 7번은 제가 가질 수 없었어요. 이미 다른 사람이 가져갔거든요... 그래서 제 번호가 77번인 거예요... 그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그가 농구계에 가져다준 모든 것에 대해서요. 저뿐만 아니라요. 많은 선수들에게 그는 농구를 하는 법, 코트 위에서 행동하는 법,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보여줬어요. 그게 전부예요..
루카 돈치치
바실리스 스파눌리스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를 믿었기에 더욱 감동했습니다. 그에게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열정과 개성이 있었습니다. 그의 선수 생활 후반부에는 그의 위대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유럽과 그리스 농구계 에 있어 그의 커리어는 눈부셨고 , 그는 1987년부터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유럽 농구계 전체에 자신의 족적을 남겼습니다. 저는 그의 독특한 개성에 개인적으로 존경심을 느낍니다..
파나기오티스 지아나키스
저는 항상 말했죠. 바실리스 스파눌리스는 유럽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해요. 그는 유럽에서 뛰었던 선수 중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생각해요.
조 아를라우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