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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01 04:31:05

밀라노 콜렉션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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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밀라노콜렉션A.T.은퇴.jpg
Milano Collection A.T.
파일:milano-collection-at.png
NJPW 메인 해설자
STARDOM 스페셜 코치
<colcolor=#f8d010><colbgcolor=#000> 링네임 밀라노 콜렉션 A.T.[1]
(ミラノコレクションA.T.)
본명 [ruby(澤藤 章仁, ruby=さわふじ あきひと)][2]
사와후지 아키히토
생년월일 1976. 8. 27 ([age(1976-08-27)]세)
신장 183cm
체중 80kg
혈액형 O형
출생지
[[일본|]][[틀:국기|]][[틀:국기|]] 이와테현 모리오카시[3]
학력 이와테현모리오카제4고교 (졸업)
히로사키대학 (중퇴)[4]
유형 루차 리브레(쟈베) + 테크니션
시그니쳐 무브 메듈라 오블론가타 커터[5]
슈퍼킥, 저공 슈퍼킥[6]
스페이스 롤링 엘보[7]
다이아몬드 커터[8]
STF[9]
엠포리오 아르마니슈
_파라다이스 락_[10]
아르마니슈 익스체인지[11]
각종 서브미션 및 쟈베[12]
{{{#!folding [이탈리안 스트레치 시리즈]
이탈리안 스트레치 No.8[13]
이탈리안 스트레치 No.14
_이탈리안 스트레치 No.32_[14] }}} 매트리스 회피[15]
피니쉬 무브 _파라다이스 락_
A-dise 락[16]
A.T. 락[17]
IR
IR II[18]
엠포리오 아르마니슈[19]
비또리아 미라네제[20]
별명 이탈리아의 세련남
(イタリアの[ruby(伊達, ruby=だ て)][ruby(男, ruby=おとこ)])
1000개의 쟈베를 가진 남자
([ruby(1000, ruby=せん)]のジャベを[ruby(持, ruby=も)]つ[ruby(男, ruby=おとこ)])
테마곡 MILANO FEVER (2002 - 2010.2)[21]
데뷔 2000년 5월 3일 (23세)
멕시코 멕시코주 나우칼판 데 후아레스
아리나 나우칼판
T2P[22]
vs 칸다 야스시
은퇴 (마지막 경기) 2009년 9월 13일 (33세)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 홀
신일본 Circuit2009
NEW JAPAN GENERATION 2일차
vs 컴플리트 플레이어즈
(자도&게도 & 미노루)
(w/고토 히로오키 & 타이치)

(은퇴식) 2010년 2월 14일 (33세, 커리어 9년)
도쿄도 스미다구 료고쿠 국기관
신일본 Circuit2010
NEW JAPAN ISM 최종일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커리어
2.1. 초창기2.2. T2P ~ 드래곤 게이트2.3. 미국 생활과 프리랜서2.4. 신일본 프로레슬링2.5. 밀라노 극장, 종막을 맞이하다2.6. 이탈리아 혁명, 제 2장으로 나아가다
3. 여담4. 둘러보기

1. 개요

"イタリア[ruby(革命, ruby=かくめい)]についてこい!!"
(이탈리아 혁명에 따라와라!!)
드래곤 게이트. 신일본 프로레슬링 소속 주니어 헤비급 프로레슬러, 현 신일본 프로레슬링 메인 해설자 겸 월드 원더 링 스타덤 코치 겸 정체사.

시원시원하게 뻗은 팔다리와 모델같은 체형, 그리고 비주얼을 뒷받침해주는 실력으로 드래곤 게이트와 신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린 선수였으며, 은퇴 이후에는 시들지 않는 입담으로 일본 최대 단체인 신일본의 메인 해설자를 맡고 있는 해설자 겸 신일본과 모기업이 같은 월드 원더 링 스타덤의 신인 담당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다.

2. 커리어

2.1. 초창기

초등학생 4학년 시절 초슈 리키 vs 점보 츠루타전을 보고 프로레슬러를 목표로 하게 된 밀라노 콜렉션 A.T.는, 이와테현립 모리오카제4고교를 졸업한 후 부모님께 프로레슬러의 꿈을 반대당한데다 진학상담 때 담당 선생이 밀라노를 무시하자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공부하여 국립 대학인 히로사키대학으로 진학했다.

히로사키대학에서 삼보부에 잠시 들어갔지만 프로레슬러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못 한데다 4년을 의미없이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1년 후인 1996년에 대학을 자퇴하고[23] 도쿄로 상경하여 애니멀 하마구치 짐에 입성했다. 당연히 의절당한 집에서 생활비를 보내줄 리가 없었기 때문에 극도로 빈곤한 생활을 하면서도 1997년에 FMW에 입문하는데 성공했으나, 가혹한 상하관계를 못 견디고 3달 만에 FMW에서 나오고 말았다.

이 일로 프로레슬러의 꿈까지 접은 밀라노는 부모님께 도게자까지 해서 겨우 용서를 받고 고향 모리오카시로 돌아가 직장인이 되기로 했으나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다시 도쿄의 기업에 취직하며 상경을 선택했고, 화술혜주회와 타카다 노부히코의 타카다 도장을 다니면서 몸도 다시 단련했다.

하지만 역시나 밀라노의 마음 속에 프로레슬러에 대한 미련은 강렬했는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어느 단체의 영상을 봤을 때 링 위에서 춤추는 프로레슬러[24]의 모습을 보고 링타이츠를 사는 등 미련을 접지는 못했고, 그 단체에서 자신보다 체격이 작은 선수들이 활약하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결국 그 단체가 코베시에서 도장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밀라노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다짜고짜 코베로 떠나 토류몬(闘龍門)에 6기생으로 입단하는데 성공했고,[25] 이 일로 부모님께 또다시 의절을 당해서 지극히 빈곤해진 밀라노를 단체장 울티모 드래곤과 친분이 있던 라쿠고가 산유테이가 4개월 가량 거둬먹이는 등의 고초를 겪으면서도 반년 동안 수행을 거쳐 2000년 5월 13일, 드디어 멕시코 현지에서 토류몬의 멕시코 방면 단체인 토류몬(闘龍門) 2000 프로젝트(이하 T2P)의 일원으로서 칸다 야스시를 상대로 데뷔하는 데 성공했다.

2.2. T2P ~ 드래곤 게이트

데뷔 때부터 '밀라노 콜렉션 A.T.'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밀라노는 직후 요시노 마사토, STEVIE"brother"TSUJIMOTO(="brother"YASSHI)와 함께 악역 유닛을 결성했고, 밀라노는 이후 신인급의 리그전인 제 4회 영 드래곤 배에 출전하여 12월 9일 사이토 료에게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거두었다.

파일:T2P일본상륙.jpg
2001년 11월 13일 T2P가 일본에 역상륙했을 때 다시 사이토 료와 함께 메인 이벤트를 장식한 밀라노는 사이토를 상대로 3판 2선승제 매치를 치뤄 2승을 파라다이스 락과 A.T.락으로 먼저 챙기며 승리하며 차세대의 에이스로 기대받게 되는 한편, 이후에 토류몬 JAPAN의 힐 유닛인 CRAZY-MAX의 멤버 빅 후지의 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CRAZY-MAX[26]와 항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2002년 2월 17일에는 아레나 나우칼판에서 치러진 토류몬 MEXICO 흥행에서 '실력 조사(査定) 리그전'에 참가하여 첫 경기에서 세컨드 도이에게 승리했고, 27일에는 미시마 라이무와의 경기에서 51초만에 파라다이스 락으로 번개같은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3월 3일, 디퍼 아리아케 흥행에서 개최된 T2P 흥행에서 열린 준결승전에서 콘도 슈지를, 같은 날 열린 결승에서 YOSSINO에게 5분 35초만에 A.T. 락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이 리그전의 우승 상품으로 걸려 있었던 신설된 인터내셔널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한편 CRAZY-MAX와의 대항전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고, 이에 맞서기 위해 밀라노는 이날 경기 종료 이후 기존 동료들에 이어 자신과 맞붙었던 토류몬 JAPAN 본대의 콘도 슈지와 야기 타카유키까지 끌어들여 유닛 '이탈리안 커넥션(イタリアン・コネクション)'을 결성하여 밀라노가 리더를 맡는 한편, 소속 멤버들도 모두 이탈리아인이라는 컨셉으로 링네임과 출신지를 전부 바꿨다.[27] 이 때부터 잘 빠진 몸과 밀라노 특유의 투명견 미켈레와 댄서들과 함께 입장하는 화려한 입장 신을 선보이며 밀라노 콜렉션 A.T.의 캐릭터가 완성됐다. 이후엔 벨리넷타 복서가 이탈리안 커넥션의 동료로 합류하여 세를 더욱 늘렸다.

6월 6일에 T2P의 코라쿠엔 홀 대회에서 빅 후지를 상대로 첫 방어전을 치러 3전 2선승에서 1경기를 1분 45초만에 파라다이스 락으로 승리, 2경기를 11분 35초만에 A.T.락으로 승리하며 방어에 성공했다. 9월 8일 아리아케 콜로세움 대회에서는 YASSHINI[28], YOSSINO와 함께 CRAZY-MAX(CIMA & SUWA & 빅 후지)의 UWA 세계 6인 태그팀 타이틀에 도전하여 15분 8초만에 A.T.락으로 CIMA의 항복을 받아내고 쾌승을 거두며 첫 태그 타이틀도 획득했다.

하지만 11월 27일, 다시 UWA 세계 6인 태그팀 벨트의 도전자로 나온 CRAZY-MAX[29]를 상대했다가 14분만에 YASSHINI가 SUWA의 FFF에 핀을 내주며 첫 방어전에 실패하고 만 데다 2002년 12월 26일에는 밀라노 본인이 CRAZY-MAX의 대장 CIMA와 인터내셔널 라이트 헤비급 벨트 2번째 방어전을 치렀다가 11분 48초만에 CIMA의 슈바인을 얻어맞고 패배하며 내줬으며,[30] 토류몬 JAPAN과의 대항전 최종전에서 CIMA에게 또다시 패배한 밀라노는 결국 2003년 1월 23일 토류몬 JAPAN 흥행에서
"저희, 사실...전원 일본인입니다. 그런고로 저희는 일본인이지만, 어디까지나 이탈리아인으로서 활동해 나가겠습니다. 여러분의 넓은 마음으로, 이탈리아인으로 봐주십시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스스로 일본인임을 고백하는 일명 '1.23 일본인 선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4일 후인 1월 27일, T2P가 공식 해산을 맞이하자 정식으로 토류몬 JAPAN에 합류한다.[31]

3월 21일에 시작한 토류몬 JAPAN의 리그전인 'EL NUMERO UNO'[32]에 처음 참가하여 A조에 배속되었으며, 세컨드 도이, 돈 후지이, 아라이 켄이치로에게 A.T. 락으로, 호리구치 겐키에게 파라다이스 락으로 승리를 거뒀으나 매그넘TOKYO와 무승부를 기록하며 매그넘TOKYO와 공동 1등이 되었다. 그대로 8강전에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모치즈키 마사아키에게 8분 29초만에 링아웃 패로 승리를 내주며 광탈했다.
파일:2차이탈리아커넥션.jpg
왼쪽부터 밀라노, YOSSINO, 앤서니・W・모리
이때쯤 이탈리아 커넥션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이탈리아 커넥션이 점점 선역화되자 돗티 슈지(=콘돗티 슈지)와 YASSHINI가 이에 반발해 밀라노를 배반하고 오오와시 토오루의 떨거지 집단(はぐれ軍団)[33]으로 들어갔으며, 이윽고 망설이던 벨리넷타 복서가 떨거지 군단으로 들어가고 페스카토레 야기[34]까지 탈퇴하면서 YOSSINO와 자신만 남게 된 것이다. 이 둘은 앤서니・W・모리를 멤버로 받아들여 다시 활동을 개시했다.

10월 5일부터 시작된 토류몬 JAPAN의 태그 리그전인 Ray de parejas에는 매그넘TOKYO와 함께 참가했으며, 4승 2패 1무로 마무리했다. 12월 16일에는 매그넘TOKYO의 ULTIMO DRAGON GYM(UDG) 챔피언 벨트에 도전했으나 25분 50초의 장기전 끝에 매그넘의 AV스타 프레스를 맞고 패배했다.

2004년 3월에 EL NUMERO UNO에 B조로 다시 참전한 밀라노였으나, 이번에는 1승 1패 3무 조 5위로 예선에서 광탈했다. 6월 27일에는 CIMA가 가지고 있던 UDG 챔피언 벨트 도전자 결정 토너먼트전에 출전했으나 같은 이탈리아 커넥션의 YOSSINO에게 7분만에 리버스 피겨 포 레그락에 당하며 패배했다.

2004년 7월 5일, 오쿠무라 타카시 사장과 울티모 드래곤이 출석한 기자회견에서 토류몬 JAPAN이 울티모 드래곤의 토류몬에서 독립하고 단체명을 드래곤 게이트'로 변경하는 것이 발표되었으며, 밀라노도 여기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타코네 vs 악관일색 (경기시작 7:32부터)
파일:초대오픈더트라이앵글.jpg
10월 3일에는 최초의 오픈 더 트라이앵글 게이트 챔피언 결정 매치에 이탈리아 커넥션의 동료 YOSSINO와 안소니・W・모리와 함께 출전했고, 승승장구를 이어온 끝에 결승에 진출했다. 11월 7일 삿포로시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이탈리아 커넥션을 배반한 악관일색의 콘도 슈지와 YASSHI, 그리고 스가와라 타쿠야와 맞붙어 17분 26초만에 안소니가 엘레강트 매직을 스가와라에게 작렬하며 승리, 최초의 오픈 더 트라이앵글 게이트 챔피언이 되었다. 12월 16일 국립 요요기 경기장 제 2체육관에서의 THE GATE OF LEGEND 흥행에서 다시 악관일색과 1차 방어전을 치러, 이번엔 밀라노가 15분만에 이탈리안 레볼루션(IR)을 스가와라에게 선보이며 방어에 성공했다.[35]

2005년 1월 9일 나고야 국제 회의장에서 열린 2005 PRIMAL GATE에서 요코스카 스스무 & K-ness. & 도이 나루키를 상대로 2차 방어전을 치러 YOSSINO가 도이를 어나더 스페이스로 핀을 따내며 2차 방어에 성공했고, 기세를 이어 모치즈키 마사아키의 오픈 더 드림 게이트 챔피언십 벨트 차기 도전자 결정전에 출전하여 사이토 료와 경기를 치렀으나 20분만에 사이토의 드래곤 수플렉스에 핀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엔 슈페르 시사와도 행동을 같이 했으나 2월 18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부상을 당해 오픈 더 트라이앵글 게이트 챔피언을 반납할 수 밖에 없었고, 밀라노도 스승 울티모 드래곤과 방향성의 차이가 생기고 말아서 결국 4월을 마지막으로 프리 선언을 한 후 드래곤 게이트를 퇴단했다.[36]

2.3. 미국 생활과 프리랜서

파일:후나키밀라노.jpg
밀라노는 퇴단 후, 일면식도 없지만 애니멀 하마구치 짐의 대선배이자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자리를 잡은 후나키를 방문하게 되었고, 교류가 있던 칼럼니스트 스즈키 켄.txt[37]에게 밀라노가 괜찮은 인재라는 것을 전해들은 후나키는 밀라노를 받아들여줬다. 그리고 밀라노는 후나키와 친분이 있는 숀 마이클스의 레슬링 스쿨을 찾아가 연습생들과 함께 레슬링을 다시 수련했고, 2006년 4월까지 1년 3개월 동안 미국 내 인디 단체들을 돌며 지냈다.[38]

파일:콜트카바나&밀라노.jpg
2005년 9월부터는 ROH에서 사모아 조, 클라우디오 카스타뇰리와 대전했고, 12월 3일에는 콜트 카바나와 함께 토니 마말룩 & 살 리나우로가 가지고 있던 ROH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에 도전했으나 둘의 합동 DDT에 밀라노가 핀을 내주고 말았다. 아직 미국에 있었던 2006년 2월 7일, 코라쿠엔 홀에서 열린 Dragondoor의 RETURN OF THE HEXAGON~T2P 원 나잇 스탠드~ 흥행에도 참여해서 메인 이벤트에서 하루만 벨리넷타 복서로 돌아간 타카기 슈고, IBUSHINO와 함께 드래곤 게이트에서 짤린 후 Dragondoor에 가있던 악관일색의 멤버들(콘도 & YASSHI & 스가와라)과 대결해서 IR II로 YASSHI를 잡고 승리를 하며 흥행을 마무리했다.

파일:밀라노&무토.jpg
밀라노는 4월에 미국에서 귀국했고, 4월 20일에는 국립 요요기 경기장 제 2체육관에서 열린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2006 챔피언 카니발 최종전에 참가하여 무토 케이지와 함께 Dragondoo의 후신 단체인 ElDorado 소속이 되어있던 TARU와 YASSHI를 상대했다. 6월에는 DDT 프로레슬링에 참전했는데 게이 컨셉 레슬러인 남색 디노와 태그를 짰다가 습격당해 밀라노 콜렉션 GAY. T.가 됐던 적이 있다.

7월 23일에는 처음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 주최 개그성 흥행인 레슬랜드에 참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8월 12일 료고쿠 국기관에서 열린 G1 클라이맥스 2006 준결승전 흥행에 등장해서 이날 복귀한 쵸노 마사히로와 함께 태그팀을 맺고 초슈 리키타나하시 히로시를 상대하기도 했으며, 10월 9일 4대 타이거 마스크와 대립이 생겨 11월 6일에는 타이거가 가지고 있던 NWA 월드 주니어 챔피언십 벨트에 도전했으나 19분만에 타이거 수플렉스를 맞고 패배했다.

11월 22일부터는 ElDorado의 태그 리그전인 TREASURE HUNTERS 태그 토너먼트에 이부시 코타와 함께 참가해서 결승까지 진출, 12월 27일 신주쿠 FACE 대회에서 콘도 슈지 & 딕 토고와 대결했으나 11분 53초만에 이부시가 콘도의 킹콩 래리어트를 견디지 못하고 핀을 내줘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4. 신일본 프로레슬링

2007년부터는 신일본에서의 참전을 본격화한 밀라노는 신일본의 링에 본격적으로 오르자마자 유지로, 엘 사무라이, 이노우에 와타루, 우와노 타카시, 나이토 테츠야 등 신일본 주니어의 여러 선수들을 잡아내며 새로운 강자의 등장을 예고했다.

6월 1일 처음으로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BOSJ) 14에 A조로 출전한 밀라노는 초전에서 이노우에에게 패배하고 이후 유지로에게 패배했지만 프린스 데빗, 수신 선더 라이거, 타이거 마스크 4세, 이시카리 타이치를 잡고 4승 2패 승점 8점으로 10점의 이노우에에 이어 조 2위로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BOSJ 14 준결승전 vs 타구치 류스케
준결승에서 B조 1위 타구치 류스케를 만나 타구 댄스를 주고받는 등 서로 도발을 주고받다 12분 47초만에 아르마니슈 익스체인지에 이은 비또리아 미라네제로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진출한 밀라노는, B조 2위 미노루를 잡고 결승에 올라온 같은 조 1위 이노우에 와타루를 상대했다.

파일:밀라노bosj우승.jpg
서로 팔을 공략하는 밀라노와 이노우에, 하지만 결국 막판에는 서로의 주요 기술들을 주고받으면서 경기가 전개되었고, 서로 필살기인 스피어와 비또리아 미라네제를 한번씩 씹어내는 혈전 끝에 이노우에의 스피어를 피한 후 샤이닝 켄카 킥, 아르마니슈 익스체인지에 이어 다시 한 번 비또리아 미라네제를 성공시키며 기어코 19분 37초만에 이노우에에게 3카운트를 따내고 첫 BOSJ 출장만에 우승을 차지해냈다. 밀라노는 시합 후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혁명은 아직 계속되니까. 모두, 이탈리아 혁명에 따라와라!"라고 팬들에게 어필했다.
파일:RISE결성.jpg
RISE 초창기 멤버.[39]
좌측부터 밀라노, 고토 히로오키,
나카무라 신스케, 미노루
8월에는 나카무라 신스케가 이끄는 신군단 RISE에 들어갔고, 기세를 이어 G1 클라이맥스 17 B조에 출전했다. 개막전에서 야노 토루와 장외전을 벌이다 20카운트 직전에 자신만 쏙 들어오고 야노가 못 들어오면서 20카운트 장외승을 거두며 1승, 코시나카 시로에게 핀폴로 3카운트를 따내며 2승으로 G1을 시작했으나 RISE의 리더 나카무라 신스케, 타나하시 히로시, 나카니시 마나부에게 패하며 승점 4점 공동 4등으로 예선 탈락했다.

10월 18일부터 시작된 G1 태그 리그에서 8월 말에 개선 귀국한 같은 RISE의 고토 히로오키와 함께 출전한 밀라노는 아케보노 & 쵸노 마사히로, RISE를 배반하고 G.B.H에 들어간 자이언트 버나드 & 트래비스 톰코, 이이즈카 타카시 & 야마모토 나오후미에게 패했지만 청의군(나가타 유지 & 나카니시 마나부), G.B.H(마카베 토우기 & 야노 토루), 자도&게도, 타나하시 히로시 & 카네모토 코지에게 승리하며, 출전팀 중 4팀은 8점, 4팀은 6점이라는 대혼전 속에서 준결승전에 진출했으나 타나하시 & 카네모토와의 경기에서 타나하시에게 하이 플라이 플로우를 맞으며 아쉽게 패배했다.

2008년 1월부터 밀라노는 공식 1월 25일, 왼무릎 반월판 일부 제거 수술을 받고 결장에 들어간 밀라노는 3월 9일에 복귀했고, 바로 3월 15일에 뉴 재팬 컵에 참가했으나 1차전에서 야노의 오니고로시에 패했다. 4월에는 RISE의 리더였던 나카무라 신스케가 CHAOS를 만들어 이탈하면서 무소속이 되었다.

그리고 5월, 전해 우승자로서 당연히 BOSJ 출전이 예상되었으나 5월 중순에 TNA의 PPV인 빅토리 로드에서 열리는 월드 X 컵에 파견이 결정되면서 전년도 우승자임에도 시기상 BOSJ 출전을 못 하게 되었다. 같이 파견된 이시카리 타이치와 TNA에 출전하게 된 밀라노는, 월드 X 컵에서 TEAM JAPAN의 리더로 선정되어 오랫만에 요시노 마사토, 그리고 도이 나루키와 어째서인지 푸마와 함께 출전했으나 1승 4패 총 승점 6점으로 4팀 중 3위에 그쳤다. 이후에도 7월 3일 방송에서 카레맨과 대전하는 등 TNA 원정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했다.

이윽고 한발 일찍 귀국한 타이치가 밀라노를 까면서 더욱 사이가 안 좋아지며 타이치와 대립에 들어간 밀라노는 한술 더 떠 타이치가 밀라노의 애견인 투명견 '미켈레'를 흉내낸 '미케코'를 끌고 다니기 시작하자, 결국 9월 21일 코베 월드 기념 홀 대회에서 '투명견 봉인 매치'를 치르기에까지 이르렀다. 이 경기에서 밀라노가 핀폴로 3카운트를 얻어내며 타이치가 밀라노에게 '미케코'의 목줄을 내 주었고 그렇게 대립이 종료되었다.

파일:유니오네.jpg
하지만 경기 종료 직후 싸우다가 정이 든 건지 밀라노가 "(팀을) 맺어도 좋다고."라고 말을 하며 무언가 여지를 남겼고, 거기에 의외로 타이치도 응하면서 타이치와 태그팀 '유니오네'를 맺고 10월 18일에 G1 태그 리그에 함께 출장했다. 결과는 같은 공동 꼴지팀이 된 이이즈카 타카시 & 이시이 토모히로 조에게 승리한 것을 빼고는 전패로, 승점 2점으로 공동 꼴지에 그쳤다.

이후에는 헤비급으로 전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2009년 1월 30일에 "사실 나, 어제 체중계에 올라가보니 90kg더라고."라고 말하며 다시 주니어 헤비급으로 복귀하는 것을 발표했다. 모터 시티 머신건즈(알렉스 셸리 & 크리스 세이빈)에게 유출된 IWGP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벨트를 목표로 NO LIMIT(나이토 테츠야 & 유지로), Apollo 55(타구치 류스케 & 프린스 데빗), 쟈도&게도와 도전권을 두고 항쟁을 전개했으나 2월 15일 료고쿠 국기관에서의 도전자 결정 4WAY 매치에서 타이치가 나이토에게 핀을 내주며 도전권 획득에 실패했다.[40]
BOSJ 16 개막전 vs 프린스 데빗
그 뒤로는 Apollo 55와 항쟁을 전개하다 5월 말에 BOSJ 16에 A조로 참가하며 2년만에 BOSJ에 복귀했다. 개막전에서 프린스 데빗과 신일본 주니어 역사에 남을 명경기를 펼치며 비또리아 미라네제로 승리를 장식한 이후 5대 블랙 타이거와 자도에게 승리했으나 AKIRA, 타이거 마스크 4세, 아오키 아츠시에게 패배하며 승점 6점 공동 3위[41]로 예선 탈락했다.

한편 B조에서는 태그 파트너 타이치가 역시 예선 탈락했지만 타구치 류스케에게 승리를 거뒀고, 결국 유니오네의 두 명이 Apollo 55에게 승리한 셈이 되었다. 그러자 밀라노는 이 사실을 바탕으로 6월 14일 BOSJ 결승일에 타구치에게 Apollo 55 vs 유니오네의 IWGP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챔피언 도전권 매치를 요청했고, 오사카부립 체육회관에서 열린 신일본 도미니언 6.20에서 경기를 치렀으나 타이치가 타구치에게 핀을 내주며 패배하며 도전권 획득에 실패했다.

Apollo 55는 이 도전권으로 7월 5일, 결국 모터 시티 머신건즈에게 IWGP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벨트를 되찾아왔고, 그러자 유니오네는 다시 7월 20일에 Apollo 55의 첫 방어전 상대로 등장했다.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았으나 밀라노가 타구치의 회심의 스몰 패키지 홀드에 핀폴을 내주면서 다시 도전에 실패했다.

이렇게 주니어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워오던 밀라노였으나...

2.5. 밀라노 극장, 종막을 맞이하다

2009년 9월 13일, 코라쿠엔 홀에서 신일본 Circuit2009 NEW JAPAN GENERATION 2일차에서 고토 히로오키 & 타이치와 함께 컴플리트 플레이어즈(쟈도 & 게도 & 미노루)와 대결했다가 게도에게 기브업으로 패배한 이후 밀라노가 오른 눈 부상으로 장기 결장에 들어가는 것이 발표되었다.[42]

밀라노는 오른눈 하직근 및 하사근[43] 마비를 진단받고 10월에 눈 수술을 진행한 후 재활에 들어갔고, 팬들은 밀라노가 곧 복귀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팬들과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밀라노의 상태는 심각했다.

파일:밀라노은퇴기자회견.jpg
2010년 1월 18일, 신일본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연 밀라노 콜렉션 A.T.는 양 눈 하직근 및 하사근 마비로 인한 은퇴를 선언했다. 신일본 입성 이후 화려한 스타일과 탄탄한 실력, 그리고 특유의 레슬러로서의 카리스마를 한층 더 뿜어내며 존재감을 한껏 높여놨던 데다가, 당시 밀라노는 레슬러로서는 전성기에 막 진입할 나이인 불과 33세, 커리어 9년차에 벌어진 밀라노의 전격 은퇴에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외안근 마비는 2005년 미국 생활 중에 발병한 마비 증세에서 시작되어 꾸준히 밀라노를 괴롭혔던 증상으로, 밀라노가 발병 당시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 후방 낙법을 한 다음 갑자기 머릿속이 뒤집히는 감각이 있었고, 눈을 뜨니까 하늘과 땅이 반대로 보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했다.

2~3일 정도 안정을 취하고 증상이 호전되어 선수 생활을 계속해왔으나 2009년 초 증세가 재발하고 말았고, 눈의 촛점이 맞지 않는 증세로 인해 8월 쯤에는 로프가 8개 정도로 보여 로프 워크가 제대로 안 될 정도로 증세가 악화되어 경기는 고사하고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넘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등 일상 생활에까지 지장이 갈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결국 현역 마지막 경기가 되어버린 9월 13일의 컴플리트 파이터즈와 경기 후에는 "이젠 안 되겠네"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어 은퇴를 생각하게 되었고,[44] 다행히도 수술로 증상을 개선하는 것은 가능하여 10월에 수술을 진행했으나 수술을 하고 눈이 나아도 낙법을 하거나 머리에 타격을 입으면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의사에게 들은 후 은퇴를 결심하고 말았다.

밀라노는 기자회견에서 현역 시절 가장 즐거웠던 때는 1년 3개월 간의 미국 생활을 꼽고, 가장 인상에 남았던 시합으로 2007년 BOSJ 결승전의 vs 이노우에 와타루 전과 2007년 G1 클라이맥스 첫 경기인 야노 토루 전(20카운트 링아웃 승)을 꼽았다.

1월 30일에 2차 수술이 예정되어 있어서 밀라노의 눈 상태 상 엑시비젼 매치조차 없이 은퇴식만 열리게 되었으며, 은퇴식은 2월 14일 료고쿠 국기관에서 열리는 Circuit2010 NEW JAPAN ISM 최종일로 정해졌다.[45]

파일:밀라노은퇴식1.jpg
그리고 은퇴식 당일인 2월 14일, 제 5시합이 종료된 후 밀라노의 활약을 담은 VTR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윽고 밀라노의 입장고과 함께 밀라노 걸스, 미켈레, 눈부시게 하얀 턱시도와 함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멋진 모습으로 밀라노가 등장했다. 밀라노는 팬들 앞에서
"몇 년 전, 눈에 초점이 맞지 않는 부상을 당해 총 두 차례 수술을 하고 겨우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다시 낙법을 취하거나 타격을 받으면 눈의 증상이 돌아와 버리기 때문에 확실하게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약 10년 동안, 여러 레슬러들과 관계자, 스태프 등등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지극히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제2의 인생도, 제1의 인생을 훨씬 웃도는 굉장히 충실한 인생이 되도록 노력할 테니까, 앞으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라고 말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밀라노의 고향인 토류몬 시대의 동료인 츠토무 오오스기, 오오와시 토오루, 헤라클레스 센가, 그리고 하야부사와 산유테이 엔라쿠가 등장하여 꽃다발을 밀라노에게 전달했고, 당일 참여를 못 한 콘도 슈지와 울티모 드래곤이 화면에 등장하여 마지막 인사를 마쳤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서 울티모 드래곤의 입장곡, Separados가 울려퍼지고, 울티모 드래곤 본인이 등장했다. 등장한 울티모가 밀라노에게 꽃다발을 건네주자 결국 밀라노의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기념촬영 후 은퇴의 10카운트 공이 울리자 사방에서 이탈리아 국기 색의 무수한 테이프가 날아들어 링을 채웠다. 이걸 본 밀라노는 눈물을 글썽이며,
파일:밀라노마지막인사.jpg
"울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무리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몸을 치료받기만 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사람의 몸을 고쳐가는, 그런 방향으로 가려고 생각합니다. 오늘 와주신 하야부사 씨. 제가 프로레슬링계에 처음 들어갔을 때, 하야부사씨의 심부름꾼을 맡은 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제 2의 인생도 아무래도 하야부사씨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링 위에서의 사고로) 8년간 휠체어 생활을 했던 하야부사씨를 반드시! 낫게 해드리겠습니다! 제2의 인생의 첫 번째 "이탈리아 혁명"은, 하야부사씨를 휠체어 생활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대사만, 말하게 해주십시오. 모두들! 이탈리아 혁명에 따라와라!!"
라고 팬들에게 마지막 마이크웤을 마친 후 커리어 내내 함께해 왔던 투명견 미켈레를 링 중앙에 남겨두고 링에도 마지막 인사를 한 후, 캐논포를 꺼내들어 자신의 티셔츠를 사방에 발사하며 팬서비스까지 마쳤다. 그리고 하야부사의 휠체어를 끌고 입장로에서 퇴장하며 10년간의 짧은 커리어에 작별을 고했다.

밀라노는 은퇴식 이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며 회견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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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 (보도진에게 인사하고) "여러분, 정말로 약 10년간 신세를 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자 : ' 지금 기분은?'
밀라노 : "겨우 끝났구나, 하는 마음과 앞으로도 미래를 향해서, 살아가자...그런 기분이군요.

기자: '신일본 팬들이 엄청난 성원을 보내줬지요?'
밀라노 : "저건 반칙이죠(웃음). 울지 않겠다고 생각해도, 역시 저거(팬들의 성원)에는 울어 버립니다. 하지만,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대한 세레머니 속에서 은퇴할 수 있어서."

기자 : '울티모 드래곤 선수가 등장하자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밀라노 : "정말, 옛날부터 저렇게 비겁한 사람이에요(웃음). 맛있는 곳을 안다고 해야 할까, 사람의 기분을 알고 있다고 해야할까, 울티모 교장의 마술에 당했죠. 그래도 정말 고마웠어요!"

기자 : '많은 게스트들이 달려왔는데?'
밀라노 : "오늘 예정이 꽉 찬 사람들도 있었고, 아침이 되자마자 전일본에서 열심히 뛰고 있던 미노루씨, YASSHI로부터 꽃다발을 받거나...많은 전별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참 행복했어요.

기자 : '제2경기에서는 Apollo 55가 IWGP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챔피언 벨트를 획득했는데?'
밀라노 : "무슨 짓을 해주는거냐, 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이젠 그냥 저를 울리려고 하는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과의 시합은 즐거웠고, 숙적이라고 할까 라이벌이었지만, 마지막에 그런 짓을 해주면 말문이 막힌다고 할까...Apollo와 항쟁하고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자 : '제2의 인생은 하야부사 선수와 시작한다?'
밀라노 : "동양의학을 배우고 공부하는 중인데, 대단한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도쿄에서 수제자로 지내고 있어요. 처음 우리 선생님 만났을 때, 이거 대박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은 뇌경색으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사람을 골프를 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시켰고요. 거기에 하야부사 씨를 데리고 간 거예요.

그래서 세 번 시술을 받았는데 세 번째에서 지금까지 할 수 없었는데, 엎드린 자세에서 고개를 숙일 수 있게 되었고요, 여섯 번째 시술에서 원래 엎드린 자세로 전혀 움직일 수 없었는데 네 발로 기는 것이 조금 될 정도까지 고쳐졌습니다. 선생님에게 저도 협력하여 지금은 2명이 함께 시술하고 있습니다. 하야부사 씨는 '불사조'라고 불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8년간의 휠체어 생활과 작별하고, 저도 그랬습니다만, 혼자서도 일상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

뭐, 이런 모습(하얀 턱시도)으로 말해도 설득력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런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수술 전에는 일상생활도 어려워졌고, 걷다가도 넘어질 것 같고, 자동차 운전도 할 수 없고, TV를 보고 있어도 멀미가 나고... 그럴 때 '건강하다는 건 행복한 거구나'라고 생각했죠. 지금 많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번에는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 마음으로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기자 : '가장 큰 추억은?'
밀라노 : 역시 지금 BOSJ 첫 우승때가 생각나네요. 그리고 미국 생활도 그렇고, 전부 재밌었어요. 다시 생각해보면. (여기서 타이치가 미켈레를 들고 등장함)...뭐하는거여!?"

타이치 : "아니, 잊어버리고 온 줄 알고..."

밀라노 : "뭐 하는 거야(웃음). 두고 온 거라고, 링 위에! 왜 갖고 오는거야! (나) 은퇴하는 거라고!

타이치 "...그럼 맡아둘게(웃음)"

밀라노 : "끝까지 호흡이 안 맞네요(웃음). 저녀석은 과연 혼자서, 앞으로도 괜찮은 걸까요?"

기자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메시지'
밀라노 : "그동안 응원해 주셔서 덕분에 약 10년간 열심히 해 왔습니다. 제 2의 인생으로 넘어가지만, 만약 저처럼 일상 생활을 할 수 없어서 곤란한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동양의학의 길로 나아가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다면, 어딘가에서 반드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2의 인생, 최초의 이탈리아 혁명 첫발을 꼭 성공시키고 싶으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2.6. 이탈리아 혁명, 제 2장으로 나아가다

은퇴 후에는 동양 의학과 인도의 고전 의학 아유르베다를 배운 뒤 신주쿠교엔마에역 인근에 '足fumi堂'라는 예약제 족압 정체샵을 오픈하는 한편,[46] 현역 때도 토류몬 출신다운 입담이 주무기였는데, 이를 살려 사무라이 TV의 게스트 해설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족압 정체샵을 운영하면서도 점점 사무라이 TV에서 해설로 등장하는 횟수가 늘더니,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어딘가에서 반드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은퇴사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해설석에 안 보이면 섭섭한 신일본 담당 메인 해설자로 정착하여, 팬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다시 볼 수 있는 입장이 되어서 2020년대 중반에도 해설석에서 팬들과 함께하고 있다.

2019년 12월부터는 신일본과 모기업이 같은 월드 원더 링 스타덤의 스페셜 코치로 취임해서, 이후 스타덤의 신인 선수들을 맡아 육성하는 역할도 맡으며 쓰리잡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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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요시노 마사토, "brother"YASSHI, 밀라노,
콘도 슈지, 츠토무 오오스기[47]
2020년 1월 31일에는 토류몬 시절의 많은 선수들이 집결한 흥행인 '토류몬, 재회' 흥행에서 R.E.D에게 토류몬군이 당하고 있을 때 난입하여, 파라다이스 락과 합체 커터를 선보이며 토류몬군의 승리를 도왔다. 이탈리안 커넥션 시절 동료들과도 오랫만에 재회하였고, 흥행이 끝난 후 링 위에서 울티모 드래곤을 비롯한 토류몬시절 동료들과 회포를 풀었다.

3. 여담

4. 둘러보기

신일본 암흑사천왕
혼마 토모아키 밀라노 콜렉션 A.T. 이시이 토모히로 타이치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역대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우승자
2006 2007 2008
미노루 밀라노 콜렉션 A.T. 이노우에 와타루
파일:Dg2019logo2.png 역대 레이 데 파레하스 우승자팀
2003 2004 2007,2008
떨거지 집단(はぐれ軍団)
돗티 슈지 & "brother" YASSHI
이탈리안 커넥션
밀라노 콜렉션 A.T. & 앤서니・W・모리 & 요시노 마사토
머슬 아웃로즈/WORLD-1
도이 나루키 & 요시노 마사토


[1] 데뷔 직후 이탈리안 커넥션을 결성했을 때 부터 사용하던 링네임으로 밀라노 본인이 직접 고안한 링네임이다. 뒷부분 A.T.는 본명의 영문 표기인 'Akihito Terui'에서 앞자만 따온 것. 이후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의 성을 따르며 영문 이니셜은 A.S.로 바뀌었지만 링네임을 변경하지는 않았다.[2] 구 본명은 테루이 아키히토([ruby(照井 章仁, ruby=てる い あきひと)])이었으나, 신일본으로 이적한 이후 부모님이 이혼하며 어머니의 원래 성을 따르게 되면서 성이 바뀌었다. 이탈리안 커넥션 시절에는 기믹상 이탈리아 혼혈인 아키히토 테루이노(アキヒト・テルイーノ)가 본명이라 주장했다.[3] 이탈리안 커넥션 시절에는 I(이탈리아)현 M(밀라노)시라고 주장했다.[4] 은퇴 후의 인터뷰에서 1년 다닌 후 그만두고 애니멀 하마구치 짐으로 갔다고 했으며, 2019년 트위터에서 중퇴라고 확실히 언급한 바 있다.[5] 엔즈이기리. '메듈라 오블론가타'는 연수의 학명이다. 즉 '엔즈이기리(연수베기)'를 영문화하여 고상하게 풀어쓴 것. 왼발 오른발을 가리지 않고 사용이 가능했다.[6] 저공식은 상대를 놉혀놓고 찼는데 특유의 양손을 붕붕 돌리는 모션을 취한 후 찼다. 타이치와 태그팀 시절엔 '슈퍼 스크랩 킥'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용했다.[7] 핸드스프링 백 엘보. 무토 케이지의 기술로 유명한 기술로 밀라노는 핸드스프링 시 한 손으로 핸드스프링을 해서 오리지널리티를 더했다.[8] 커터. 밀라노의 경우 주로 탑 로프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9] 스텝 오버 토 홀드 + 풀 넬슨. STF식으로 다리를 엮은 후 풀 넬슨으로 상대의 어깨와 뒷목을 압박하는 STF의 응용기이다. 원래 STF는 'Step over Toe hold with Facelock'의 약자이지만 밀라노의 경우 페이스락을 안 걸기 때문에 마지막이 'Facelock'이 아닌 Fashion, 또는 Ferragamo의 약자라고 주장했다. 일반 STF도 간혹 사용했다.[10] 누워있는 상대의 팔과 다리를 얽은 다음 뒤집은 후 상대 위에 올라타서 삐져나온 한 다리 발끝을 잡아당겨 발목에도 타격을 주는 밀라노 콜렉션의 오리지널 쟈베. 초창기에는 피니셔로도 썼다. 상대를 로프에 묶어버리는 로프식으로도 자주 썼는데, 이 경우에는 레그 드랍이나 저공 드랍킥 등으로 상대를 공략했다. 이후 신일본으로 온 SANADA가 이 기술을 사용하는데 일반식 파라다이스 록에서도 상대를 잡고 서브미션으로 연결하지 않고 호응을 유도한 후 로우 드롭킥으로 푸는 로프 파라다이스 추가타 방식으로 쓰고 있다. 역시나 요시노 마사토의 해설본이 있다.[11] 스프링보드 코크스크류 센턴. 엠포리오 아르마니슈같이 부유감 있게 날아오다가 상대에게 닿기 직전에 몸을 비틀어서 센톤으로 끝마치는 게 특징이었다.[12] 암바, 일반 치킨윙 암락, 피겨 포 레그락, 보우 앤 애로우 등 매우 다양한 서브미션들을 통해 경기를 풀어나갔다.[13] 만자굳히기 + 치킨 윙 암락. 상대의 정면으로 달려간 후 상대의 오른팔을 잡고 빙글 돌아 상대의 왼다리에 자신의 왼다리를 걸고, 목 뒤에 오른다리를 걸며 상대의 몸을 계단 타고 올라가듯 재빨리 올라가서 자신의 왼손까지 더해 상대 오른팔을 꺾는다. 요시노 마사토가 자신의 유튜브에서 시범을 보인 바가 있다.[14] 상대의 두 팔을 쭉 뻗은 상태에서 자신의 양 다리를 교차해서 엮은 후 자신은 뒤로 누워 자신의 체중으로 상대의 양 팔꿈치 관절을 뽑아당기는 밀라노의 오리지널 쟈베. 보통 양 발로 상대의 목 양쪽 경동맥까지 압박하는 버라이어티를 넣어서 사용했다. 신일본에 참전 중인 DOUKI가 이 기술을 물려받아 사용 중이다.[15] 상대의 래리어트나 킥 등 상단 타격기를 매트리스식으로 회피한다. 밀라노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최고의 어필 중 하나였다.[16] 상대의 뒤에서 상대를 양반다리로 만들고 상대 다리 사이에 상대의 양 팔을 집어넣어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한 후, 상대를 뒤에서 끌어안고 리어 네이키드 초크를 걸면서 뒤로 넘어간다. 오른 다리로는 양반다리로 만든 상대의 다리를 봉쇄한다.[17] 변형 치킨 윙 암락. 상대를 OTL 자세로 만든 후 상대의 뒷목에 자신의 왼다리를 건 후 상대의 왼팔에 치킨 윙 암락을 걸으면서 앞으로 체중을 실어 상대를 엎어 목과 팔을 동시에 압박한다. 요시노 마사토의 해설 버전이 있다.[18] 더블 해머락 인버티드 백 투 밸리 매트 슬램. 상대의 머리를 고간에 끼운 뒤 상대의 양 팔을 뒤로 고정해 파일드라이버 형태로 들었다가 바닥에 떨어뜨리는 변형 페이스버스터. 이름은 Italian Revolution II의 축약형으로, 엘 판타즈모가 C(캐내디언)R II라는 이름으로 동형의 기술을 피니셔로 사용하고 있다.[19] 스프링보드 문설트. 빠르게 상대를 덮치는 다른 사용자들과 달리, 공중에 오래 떠있는 듯한 부유감이 특징이었다.[20] 브리징 레그 훅 백드롭 홀드. 백드롭 자세에서 자신의 왼팔을 상대의 오른 다리 뒷부분에 끼고 자신의 오른팔을 상대 오른다리 뒤쪽의 왼팔과 맞잡아 클러치 형태를 만든 상태에서 뒤로 넘기는 백드롭 홀드. 원래는 백드롭 클러치 홀드 라는 이름으로 쓰고 있었으나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14 준결승 전 이후 이 기술을 꺼내면 반드시 이긴다고 이탈리아어로 '밀라노인의 승리'라는 뜻인 이 기술명을 붙였다.[21] 멕시코 출신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블루스 밴드 산타나의 기타 명곡 Europa (Earth's Cry Heaven's Smile)를 댄스곡으로 리믹스한 곡.[22] 토류몬 2000 프로젝트. 토류몬 JAPAN과 별개로, 멕시코를 거점으로 일본인 루차도르를 양성하던 일종의 단체 내의 단체. 2000년에 탄생하여 2003년 1월에 해산되었다.[23] 이 때 대학을 멋대로 자퇴한 일 때문에 부모님에게 의절까지 당했다고 한다.[24] 토류몬의 1대 에이스 매그넘 TOKYO로 추정된다.[25] 동기로는 후쿠마사 쥰야, 무라카미 타쿠야, 오오야나기 킨야(= 오오야나기 이등병),TARU 시트가 있으며 밀라노가 가장 성공했다.[26] 당시 멤버는 CIMA, SUWA, 빅 후지, TARU.[27] 멤버 및 주장한 출신지는 각각 밀라노 출신 밀라노 콜렉션 A.T., 피렌체 출신 YOSSINO, 제노바 출신 "brother"YASSINI(=STEVIE"brother"TSUJIMOTO, 현 "brother"YASSHI), 로마 출신 콘돗티 슈지, 나폴리 출신 페스카토레 야기(=야기 타카유키)였다.[28] "brother"YASSHINI가 링네임을 줄였다.[29] 멤버는 동일했으나 빅 후지가 링네임을 '돈 후지이'로 변경했다.[30] 이 벨트는 T2P의 해산으로 인해 1월 27일에 봉인되었다.[31] 밀라노와 의절 중이라 이 선언을 나중에 소문으로 전해 들은 밀라노의 부모님은 나름의 유명 선수가 된 밀라노 콜렉션 A.T.라는 프로레슬러의 정체가 아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엄청 놀랐다고 한다. 결국 부모님은 프로레슬링을 이해하고 프로레슬러가 된 아들을 받아들였다.[32] 2004년까지 진행되었으며, A, B, C조로 나뉘어 각 조 1등과 2등, 그리고 '드래곤 스크램블'이라 불리우는 럼블 매치에서 2명을 뽑아 총 8명이 8강전에 진출하여 토너먼트를 치르는 방식이었다.[33] 나중에 악관일색(悪冠一色,アーガンイーソー)의 모태가 되었다. 멤버는 'brother'YASSHI, 콘도 슈지, 스가와라 타쿠야, 오오와시 토오루, 타카기 쇼고.[34] 야기는 얼마 후 레퍼리로 전향해서 2020년대까지 드래곤 게이트의 레퍼리로 활동하고 있다.[35] 이후 12월 31일, 악관일색 멤버들은 행실 불량을 이유로 12월 31일자로 드래곤 게이트에서 싹 다 잘리고 말았다.[36]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커넥션도 멤버가 각각 찢어지며 해산을 맞이했다. 이 때 울티모 드래곤과 사이가 틀어졌으나, 밀라노의 은인이자 울티모와 친분이 있는 라쿠고가 산유테이 라쿠타로의 중재로 나중에 봉합되었다.[37] 일본의 유명 프로레슬링 칼럼니스트. 실제 취재를 바탕으로 수많은 선수 관련 칼럼을 써냈다.[38] 밀라노가 꼽은 프로레슬러 인생 중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한편, 밀라노를 은퇴시킨 외안근 마비 증세가 이 때부터 시작됐다.[39] 프린스 데빗, 트래비스 톰코 제외.[40] 이후 이시카리 타이치는 4월 11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을 담아 링네임을 카타카나 표기로 '타이치(タイチ)'로 변경했다.[41] 1위는 8점 중 승자승에서 이긴 프린스 데빗, 2위는 8점에다 승자승에서 밀린 아오키 아츠시로 둘 다 밀라노가 승리했기 때문에 단 한 명만 더 잡을 수 있었다면 밀라노가 조 1위였다.[42] 이 경기에서 게도가 밀라노의 안면을 지독하게 노렸기 때문에 한 때 게도가 밀라노를 은퇴로 몰아넣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지만, 은퇴 기자회견 때 밀라노가 이미 눈의 상태가 안 좋았다며 직접 부정했고 실제로도 이미 타격의 충격 등과는 상관없는 증상이 도져 있었던 상황이었다.[43] 눈 근처의 안면 근육인 외안근의 일부이다.[44] 마지막 기자 회견에서 말하길, 밀라노의 왼쪽에 앉아 있었던 스가바야시 나오키 사장이 두 명으로 나뉘어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45] 처음 밀라노에게 신일본은 프런트로서 현장에 남아주기를 요청했지만, 밀라노는 제 2의 인생으로 동양의학을 익혀서 FMW에서 지냈던 잠깐 동안 많은 도움을 주었던 하야부사(밀라노가 하야부사의 심부름꾼이기도 했다.)를 휠체어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여 프런트행은 거절했다.[46] 다만 소원이었던 하야부사를 고쳐주는 일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애초에 하야부사의 상태가 심각했던 데다가 조금 상태가 나아진 후 싱어송 레슬러로서 활동을 재개한 하야부사의 사정과, 스승이 개인 사정으로 떠난 이후 족압사로 독립해서 샵을 꾸려나가야 했던 밀라노의 사정이 합쳐진 와중에도 주 2회 하야부사를 직접 방문하여 정체 치료를 진행하고, 장기적으로 주 3회를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자금을 모으던 도중 2016년에 하야부사가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47] 밀라노의 패러디 기믹인 밀라니트 콜렉션 a.t로 활약한 적이 있다.[48] 오히려 멕시코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49] 산유테이 본인부터가 '미스터 프로레스' 텐류 겐이치로의 동창이었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창설자이자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세계의 거인' 자이언트 바바, 그리고 밀라노의 스승이자 드래곤 게이트의 창설자인 울티모 드래곤과도 친분이 있었다.[50] 밀라노는 토류몬 입문 때 부모님에게 의절을 당해 집에서 일절 지원을 못 받았기 때문에 연습생 시절 지독하게 가난했다.[51] 학생 프로레슬링에서 사용하는 링네임은 전통적으로 개그성이거나 음담패설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천하의 타나하시 히로시도 학생 프로레슬링 시절 링네임은 '타나 더 인서트'였다.[52] 그 와중에 이름이 어째서인지 이탈리아어같아 보이는 것은 밀라노의 체형이 이탈리아의 모델 같다는 생각을 한 울티모가 이탈리아어와 비슷한 어감으로 링네임을 지어주려고 한 것이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