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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45:16

민홍식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여흥 민씨
출생 1881년 10월 25일
황해도 평산도호부 세곡방 삼리
(현 황해남도 봉천군 군동리)
사망 1951년 4월 17일
서울특별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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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민홍식은 1881년 10월 25일 황해도 평산도호부 세곡방 삼리(현 황해남도 봉천군 군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학자로, 1919년 4월 2일 세곡면 누천리 장날을 이용하여 최헌영, 이대성, 이원영, 신선균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했다. 시위대열이 헌병분견소 앞을 지날 때 일본 헌병이 출동해 강제로 해산시키려 들자, 그는 분노해 군중과 함께 분견소의 유리창을 부수고 분견소장의 얼굴을 구타했다. 그러나 경찰이 무차별 발포를 가하는 바람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결국 군중을 해산시킬 수 밖에 없었고, 이후 경찰에 체포되었다.

결국 1919년 10월 2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상고가 기각되고 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평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8.15 광복 후 북한이 급격한 공산화로 치닫자 서울로 남하했고 1951년 4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민홍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