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11><colcolor=#fff> Mick Mars 믹 마스 | |
본명 | Robert Alan Deal 로버트 앨런 딜 |
출생 | 1951년 5월 4일 ([age(1951-05-04)]세) |
미국 인디애나 Terre Haute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장르 | 헤비 메탈, 하드 록, 글램 메탈, 블루스 록 등 |
직업 | 기타리스트 |
소속 | 머틀리 크루 |
링크 |
1. 개요
미국의 글램 메탈 밴드 머틀리 크루의 기타리스트.2. 음악적 특징
머틀리 크루의 메인 작곡가이자 베이시스트인 니키 식스와 합을 맞춰 머틀리 크루의 덩실덩실되는 특유의 리프들을 만들었다. 화려한 기교를 앞세우기 보다는 철저하게 리듬을 맞춰 멜로디를 살려내는 탄탄한 연주력이 인상적이다.
믹 마스는 이제 막 10대를 벗어난 머틀리 크루의 멤버들과는 달리 1970년 대에 청년기를 보냈고, 이 시기에 블루스 록과 메탈 등에 영향을 받으며 음악적 소양을 키워나갔다. 바닥부터 시작한 기타리스트였기에 30이 넘은 나이에도 그 어떤 젊은 기타리스트보다 강렬하고 탄탄하며 안정적인 기량을 보여주었다. 글램 메탈의 유행을 선도하던 기타리스트였으며[1] 애송이 밴드였던 머틀리 크루가 선셋 스트립을 점령하고 곧 바로 수 만명이 운집한 스타디움 공연을 매진시키는 메이저 밴드로 성장할 수 있는 판을 마련한 데에는 믹 마스의 공헌이 매우 컸다.
믹 마스는 이제 막 10대를 벗어난 머틀리 크루의 멤버들과는 달리 1970년 대에 청년기를 보냈고, 이 시기에 블루스 록과 메탈 등에 영향을 받으며 음악적 소양을 키워나갔다. 바닥부터 시작한 기타리스트였기에 30이 넘은 나이에도 그 어떤 젊은 기타리스트보다 강렬하고 탄탄하며 안정적인 기량을 보여주었다. 글램 메탈의 유행을 선도하던 기타리스트였으며[1] 애송이 밴드였던 머틀리 크루가 선셋 스트립을 점령하고 곧 바로 수 만명이 운집한 스타디움 공연을 매진시키는 메이저 밴드로 성장할 수 있는 판을 마련한 데에는 믹 마스의 공헌이 매우 컸다.
3. 여담
- 팀 내 최연장자이며 다른 멤버들이 한창 자식을 키울 때 그는 이미 손자가 있는 할아버지였다. 1970년대 초중반 부터 여러 밴드를 거친 베테랑 기타리스트.
- 온갖 범죄, 사고를 치고 다녔던 인간 말종급 나머지 멤버들과 어떻게 같이 수십년간 한 팀을 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정말로 조용하고 음악에만 매진했던 멤버로 알려져 있다. 근데 사실 믹 마스도, 한 똘기를 보여주기는 한다. 다만 나머지 멤버들이 막장의 끝을 달리는 가공할 수준의 언행을 일삼고 다닌지라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다. 머틀리 크루 활동 못지않게 리바이벌 글램 메탈 붐이 일 때 후배 글램 메탈 밴드들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피처링해주는 등 2000년대 메탈 씬에 많은 기여를 했다.
- Mötley Crüe 라는 밴드명을 제시한 인물인데, 전에 같이 활동했던 한 동료의 "이거 완전히 '잡다해 보이는 무리'(Motley-looking crew)같은데."라는 말에 아이디어를 얻어 언젠가 꼭 쓰고 싶었던 밴드명이라고 한다.
- 머틀리 크루에 합류 하기 전 들어가는 밴드마다 뒷끝이 안좋거나 밴드에 만족을 못느껴 금세 나오기를 반복했었고 수중에 돈이 다 떨어져 부랑자 생활도 전전하기도 했었다. 더 더트에서 밴드명을 공책에 써서 보여줄 때 "난 오랫동안 이 날(밴드가 결성되는 날)만을 기다려 왔지."라는 대사를 통해 실제 믹이 오랜 고난의 세월을 견뎌왔음을 암시했다.
- 기타리스트치고는 특이할 정도로 작곡이나 공연 때 솔로 욕심이나 화려한 리프 자랑이 이례적으로 적은, 이채로운 걸 넘어서 아예 이단아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이다. 물론 믹이 화려한 기교가 없거나 아예 안 한다는 건 아니다. 유튜브만 뒤져도 믹의 현란한 테크닉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하지만 글램 메탈 밴드들의 무대를 보면 알지만 뽀대로 먹고사는 팀이 대부분인 글램 메탈 씬에서 믹 정도의 실력은 거의 독보적임에도 라이브 무대에서 현란한 테크닉을 마음 껏 표현하기 보단 본 음악에 맞게 적재적소에 테크닉을 기깔나게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디테일한 운지가 많아서 은근히 따라하기 까다로운 연주자이다. 글램 메탈에 대한 폄하가 이뤄지던 시기에 저평가 받았지만 그런 경향에서 벗어난 요즘은 명성과 실력에 걸맞은 합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 커리어를 쌓을 만큼 쌓은 베테랑인데도 뒤에선 야한 복장의 여성 댄서들이 봉춤 같은 야한 춤을 주고,[2] 빈스 닐은 그 사이에서 미쳐 날뛰고 니키 식스는 전술한 대로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뛰어다니고 불 쇼하고(...) 토미 리는 청룡열차를 타면서 드럼을 두들기는 혼돈의 카오스와는 달리 포지션도 포지션이고 17세 때부터 투병했던 강직성 척추염의 영향으로 거동이 불편해 무대에서 다른 멤버들에 비해 조용히 베이시스트 마냥 묵묵히 자기 담당 연주만 하는 이질적인 기타리스트이다. 허나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전성기 시절엔 니키와 빈스처럼 이리저리 방방 뛰어다니고 구르고까지는 아니여도 나름 몸의 불편함을 극복하며 살짝살짝 뛰어다니기도 하고 돌아다니며 연주하긴 했다. #1 #2 밴드가 1인 기타 체제이기도 하고 니키의 근음 위주 베이스에 비해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야 하기에 퍼포먼스를 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기도 하다. 물론 연로해진 뒤로는 정적 그 자체다. 그래서인지 양아치 메탈이라고 메탈헤드들에게도 이미지가 안 좋은 글램 메탈 기타리스트면서도 여러 록, 메탈 매체들이 가장 저평가된 기타리스트로 항상 손에 꼽는 인물이다. 글램 메탈 전성기에 돈벌이용 급조 밴드 이미지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기타리스트들을 간단히 적어보면 머틀리 크루의 믹 마스, Ratt의 워렌 디마티니와 로빈 크로스비, 신데렐라의 꽃미남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도 훌륭했던 톰 키퍼 등이 있었다.
- 2010년도 이후 라이브의 연주들을 보면 그동안 더 실력이 늘어서 밴드 전성기 때보다 더 현란하고 자연스러운 연주를 보여준다. 곡 중간중간에 각종 즉흥 연주와 훨씬 더 자연스러워진 피킹 등 젊은 시절 녹음했던 스튜디오 버전이나 라이브 버전 곡과 비교해보면 이게 나이 든 할아버지의 연주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치명적인 지병을 앓고 있음에도 퇴보하지 않고 오히려 더 발전하는 그의 모습으로서 동기들이나 후배 밴드들에게 존경을 많이 받는다.
- 대중들의 인지도는 좀 낮은 편으로, 여기에 하필이면 헤어 메탈 콘셉트를 버리면서 멤버들이 복장을 바꿨을 때 믹은 흔히 장의사 패션으로 불리는 올 블랙 슈트 + 코트에 검은 페도라를 쓰고 나왔는데 이게 건즈 시절 슬래시랑 거의 비슷해서 묻혔다. 이 둘은 생일 축하 트윗도 주고받는 친한 사이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니키 식스가 마약 중독 쇼크로 죽을 뻔 했을 때 구급차 부르고 같이 있던 게 더프와 슬래시였으니. 믹 마스가 이 바닥에서는 소문난 인격자라 그런지 슬래시도 존경하는 선배로 꼽기도 하였다. 주 장비로는 Kramer의 텔레캐스터와, 검은색 도장으로 유명한 72년판 레스폴 커스텀에 마샬 JCM 800 2203 빈티지 시리즈, MX4 12B 앰프를 사용한다. 재결성 이후 J.M 롤프 픽업(HSH), FRB를 장착한 Fender Stratocaster를 사용한다. 1963, 1964, 1965년판 부품이 섞여 있으며, 낡고 낡아 도장이 벗겨지고 온갖 스크래치와 탄 자국이 남은 바디를 그냥 두고 있어서 이 기타로 연주하면 정말로 좀비(...)같은 느낌을 준다. # The End에서의 연주 장면
대놓고 가사 씹고 날먹하는 빈스 닐과 심히 비교된다.
- 다른 멤버들보다 거의 9-10살 연상이다보니 2021년 기준으로 칠순 할아버지고 거기다가 올 블랙에 다소 창백한 외모, 무대 위에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탓에 유튜브의 라이브 영상 댓글에서는 "죽은 것 처럼 보이지만 신처럼 연주한다."는 말을 듣는다. 항상 건강 문제에 시달렸던 탓인지 열심히 관리해서 기량을 지켜나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기타를 던지는 퍼포먼스도 할 정도로 정정하긴 하다. 힘들어해서 그렇지.#
- 2022년 10월 말, 결국 건강 악화에 따른 은퇴를 선언하였다. 공식 멤버로는 남아있기로 결정하였으며 앞으로의 투어는 크루와 친분이 있는 존 5가 맡기로 하였다.
- 여러가지 에피소드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니키식스와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상당히 잘 맞았던 듯 하며 니키식스는 그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본인의 허벅지에 아예 믹 마스의 초상화를 타투로 새겼다. 그러나 2023년 4월의 고소가 터지며 의미가 크게 퇴색되었다.
- 2023년 4월 믹 마스가 머틀리 크루를 고소 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로 인해 그 동안 우애가 좋은줄 알았던 멤버들의 불화 및 머틀리 크루를 위해 40년간 헌신한 믹 마스와 소송전이 수면으로 드러나 많은 팬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팬들은 음주 사망사고를 내고 와이프를 패고 약물 과다 복용 후 죽음 직전 까지 가 밴드를 파멸로 몰고 갈 뻔한 멤버들이 그동안 묵묵히 밴드를 지켰던 믹 마스에게 보답하는게 이런거냐며 여론은 안 좋은 상태.
- 2022년 투어 동안 멤버들에게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을[3] 당하며 자신은 건강문제로 투어를 그만 한다고 말을 하였지만 멤버들은 자신의 동의없이 은퇴를 발표했으며 이로 인해 그는 강제 은퇴를 하게되었다고 한다.
- 투어를 하기전 믹 마스는 밴드에게 이번 투어가 자신의 마지막 투어가 될 것이라 말을 하였고 예정 되어있던 12번의 공연은 소화 가능하다고 말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예정과 달리 공연이 36회로 늘어나게 되며[4] 건강이 좋지 않던 믹 마스는 더욱 더 힘들어 했다.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해 해외를 가게되면 24시간은 잠을 자야 회복이 된다고 한다.
- 멤버들이 밴드 긴급 주주총회를 열어 믹 마스를 내쫒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믹 마스에게 밴드지분 25%를 포기하고 2023년 본인을 제외한 투어 수익금 5%를 받는 조건으로 퇴직 계약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 2022년 라이브 당시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파트들은 MR을 연주했다며 폭로하였다. 니키 식스는 100% 사전 녹음된 MR을 틀고 핸드싱크를 하였고 토미 리와 빈스 닐은 부분 MR로 연주 및 노래를 하였다는게 믹 마스측의 입장.
- 머틀리 크루 측은 바로 대응 성명을 냈는데, 믹 마스를 일방적으로 해고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했으나, 머틀리 크루와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 다는 것에 대해선 인정하였다. 이로 인해 밴드 초창기 부터 함께한 믹 마스의 머틀리 크루 탈퇴가 확정되었다.
- 2024년 2월 23일 첫 솔로 앨범 The Other Side of Mars를 발매한다.
[1] 믹 마스는 30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위해 머틀리 크루와 함께 새로운 음악에 발을 들였다. 뽀샤시나던 20대 초반의 멤버들과는 달리 화장과 아이라인을 그리고 하이힐을 신는 게 고역이었다며 회상하기도 했다. 빈스 닐이 화장을 하니까 여자들이 환호를 했지만 자기는 노망난 할머니처럼 보여서 부끄러워했다고 한다...[2] 이렇게 머틀리 크루 공연에 백댄서, 코러스로 활동했던 여성 댄서들 중 1명인 Emi Canyn과 1990년 결혼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이혼했다. Canyn은 2017년에 사망한다.[3] 공연 도중 믹 마스가 실수를 하면 리더인 니키 식스는 믹 마스에게 기타실력이 떨어졌다. 인지기능 장애가 있다 라는 등의 모욕적인 발언을 하였다고 한다.[4] 참고로 영화 The Dirt를 보면 니키 식스가 빈스 닐에게도 이 짓거리를 똑같이 해서 빈스가 니키에게 정나미가 떨어져서 밴드를 탈퇴했다는 전개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