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 한센뢰베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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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 미아 한센뢰베[1] Mia Hansen-Løve | |
출생 | 1981년 2월 5일 |
프랑스 파리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영화감독, 각본가, 배우, 영화 평론가 |
활동 | 1998년 - 현재 |
파트너 | 올리비에 아사야스(2002~2017) 로랑 페로(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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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영화 감독, 각본가, 배우, 영화 평론가.2. 생애 및 작품 활동
1981년 2월 5일 프랑스 파리에서 철학 교수인 부모님 로렌스 한센뢰베와 올레 한센뢰베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후 10대 시절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영화 《8월 말, 9월 초》와 《애정의 운명》에 배우로 출연하며 처음으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다.대학에서는 독일어를 전공하고 철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고 2001년 프랑스 국립고등 연극학교에 입학했으나 2003년 학교를 중퇴한 후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글을 기고하며 2005년까지 영화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본인이 회고하길 이 시절에 평론을 쓰며 영화적 훈련을 쌓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영화 감독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고 한다.[2] 이 즈음부터 루이 가렐이 출연한 《Contre-coup》 등 여러 편의 단편 영화를 감독했다.
2007년 가정을 망친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 딸의 이야기를 다룬 《모두 용서했습니다》를 통해 장편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3], 제60회 칸 영화제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받고 그해 세자르상 장편 데뷔작상 후보에 올랐다. 제작 당시 원래 제작을 맡아주려고 했던 한센뢰베의 멘토 움베르 발상[4]이 자살하는 바람에 급하게 다른 제작자를 찾아가 겨우 완성했다고 한다.
2009년작 《내 아이들의 아버지》는 자신의 멘토였던 움베르 발상을 모티브로 해 그에게 헌정한 영화로, 한 영화 제작자의 삶을 다루며 제62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아 특별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2011년작 《안녕, 첫사랑》은 한센뢰베 자신의 반자전적인 경험을 녹여 10대 소녀의 첫사랑을 다룬 영화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2014년 《에덴: 로스트 인 뮤직》은 90년대 초 프랑스 EDM 및 하우스씬과 청춘의 불안을 담아낸 작품으로 영국의 더 가디언지에서는 자신들이 선정한 21세기 100대 영화 중 한편으로 꼽으며 극찬하기도 했다.
2016년 《다가오는 것들》을 통해 제66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은곰상 : 감독상을 수상했다.
2021년 잉마르 베리만이 말년을 보냈던 포뢰섬을 배경으로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자신의 관계를 반영한 첫 영어 작품 《베르히만 아일랜드》를 통해 제74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 받았다.
2022년작 《어느 멋진 아침》은 감독 자신이 투병생활을 하던 아버지를 모시던 경험이 투영된 자전적인 작품으로, 제75회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받아 '유럽 작품 유로파 시네마 라벨 상을 수상했다.
2023년에는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3. 연출 스타일
이야기에서 충격적이나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자제하고 일상적인 모습 속에서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는 성향을 띄고 있으며, 이러한 스타일 때문에 에릭 로메르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 감독 중 한명으로 여겨진다.자신과 삶과 경험을 반영한 영화를 자주 만드는 감독이기도 한데[5], 철학교수인 어머니를 둔 경험을 녹인 《다가오는 것들》이나 아버지의 간병 생활 동안 각본을 집필한 《어느 멋진 아침》, 90년대 프랑스 EDM 씬에서 당시 DJ로 활동했던 오빠 스벤을 공동 각본으로 기용한 《에덴: 로스트 인 뮤직》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자잘하게 모든 작품 속에 자신의 자전적 요소가 들어가있다.
2-3년 단위로 신작을 내는 다작 영화감독이다.
4. 필모그래피
연도 | 제목 | 연출 | 각본 | 제작 | 비고 |
2007 | 모두 용서했습니다 Tout est pardonné | ○ | ○ | 장편 데뷔작 | |
2009 | 내 아이들의 아버지 Le Père de mes enfants | ○ | ○ | ||
2011 | 안녕, 첫사랑 Un amour de jeunesse | ○ | ○ | ||
2014 | 에덴: 로스트 인 뮤직 Eden | ○ | ○ | ||
2016 | 다가오는 것들 L'avenir | ○ | ○ | 제66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 : 감독상 수상 | |
2018 | 마야 Maya | ○ | ○ | ||
2021 | 베르히만 아일랜드 Bergman Island | ○ | ○ | 제74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
2022 | 어느 멋진 아침 Un beau matin | ○ | ○ |
5. 기타
- 자신을 배우로 데뷔하게 만든 영화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파트너 관계를 맺으며 2009년 둘 사이에서 딸까지 두었으나 2017년부로 결별했고[6], 이후 영화 제작자 로랑 페로와 교제하며 2020년 아들을 출산했다.
- 자신이 연출한 모든 장편의 각본을 본인이 직접 집필했다.
- 영화 촬영 시 필름으로 찍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2014년작 《에덴: 로스트 인 뮤직》은 음악이 들어간 롱테이크 장면이 많아 부득이하게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했으나, 그 외에 나머지 전작은 전부 필름으로 촬영했다. #
- 국내 수입은 2014년작 《에덴: 로스트 인 뮤직》 때 부터 찬란 수입사가 전담하고 있다. 다만 수입사 인터뷰에 따르면 감독에게 가지는 애정과는 별개로 흥행은 잘 안 된 편이라 회사에 입힌 타격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
[1] 국내에는 주로 'Løve'를 영어식으로 독음한 '미아 한센 러브'로 알려져있다. Hansen-Løve라는 이 성은 부모 성 함께 쓰기로 만들어진 덴마크계 성씨로 친조부가 덴마크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덴마크계 프랑스인이었다고 한다.[2] 그러나 이 시기의 경험이 자신의 삶에 유용한 자산이 된 것과는 별개로, 직장에서 일하면서 여성혐오를 경험해 별로 그립지는 않다고 한다.[3] 상당히 젊은 나이에 데뷔했다. 데뷔 당시 26살.[4] (1954~2005). 유럽 영화 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프랑스 상류층 집안 출신의 출신의 배우이자 영화 프로듀서.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영화 호수의 란슬로트에 가웨인 역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브레송의 아마도 악마가 제작 조수로 참여하는 걸로 프로듀서 경력을 시작해 클레르 드니, 라스 폰 트리에, 올리비에 아사야스, 유세프 샤힌, 아랍권 영화들을 주로 제작하는 등 예술 영화 프로듀서로 유명해진다. 그러나 도전적인 영화들에 대해 자금을 조달하고 및 배급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빚이 쌓였고, 결정적으로 벨라 타르 감독의 영화 《런던에서 온 사나이》를 제작하는 도중 빚 문제와 우울증으로 인해 자신의 제작사 사무실에서 목을 매 삶을 마감했다.[5] 본인은 이에 대해 '실제를 그대로 담는 것은 아니며, 자전적인 요소를 재창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고 있다.[6] 한때는 결혼한 사이로 알려져 있었으나 결별 후 인터뷰에서 밝히길 결혼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