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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가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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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inatogawa_Skeleton.jpg
파일:Restoration_Model.jpg
미나토가와인 남성의 뼈[1] 어로(漁撈)을 통해 얻은 사냥감을 든 미나토가와인 남성 복원 모형

1. 개요2.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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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港川人 / Minatogawa Man

미나토가와인(港川人)은 일본 오키나와의 미나토가와 채석장에서 발견된 4구의 현생 인류 화석을 일컫는다.

1968년, 1970년, 1974년에 대대적인 발굴이 이루어졌고 이후 연구 성과를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 1982년에 발표되었다. 대략 22,000년 전에서 24,000년 전의 인골로 밝혀지면서, 현재까지도 현생 인류 화석 중에서는 일본 열도에서 발견된 것들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는다.

2. 성과

미나토가와인은 발표 당시에는 일본 열도에서 가장 오래된 현생 인류 화석일 뿐 아니라, 1990년대 초까지 한자문화권 내에서 발견된 현생 인류 화석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미 미나토가와인 화석이 발굴되기 3년 전인 1965년에 중국에서 무려 170만 년 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원모인(元謨人) 화석이 발굴되었고 좀 더 대중적으로 유명한 예로는 북경 원인(北京原人)도 50만 년 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원모인과 북경 원인의 경우에는 현생 인류가 아닌 호모 에렉투스였기 때문에 현생 인류 한정으로는 미나토가와인이 한자 문화권 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졌다.

특이할 점으로 화석이 1구가 아닌 4구까지 발견되었으며, 남자 2명과 여자 2명으로 이루어져 있어 성비까지 절묘했다. 같은 현장에서 화석이 남녀를 모두 포함해 4人까지 발견이 되었다는 점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당시의 현생 인류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화석 문서를 참고하면 알 수 있지만 척추동물의 경우 화석이 이렇게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것에 더해 여러 구가 한 번에 발견이 되었다는 것 등이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2] 지금도 미나토가와인의 발굴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발표가 이루어졌을 때는 4구의 화석을 모두 복원할 수 있었으나, 이를 완성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던 원인으로 대부분의 뼈가 흩어져 있었던 것에 더해 다른 동물들의 뼈에 뒤섞여 있었던 것이 지목되었다.

처음에는 류큐인처럼 조몬인들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3]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인종에 속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나 파푸아인과 비슷하다는 게 밝혀졌다. 즉, 조몬인도 류큐에는 비교적 후대에 정착했다는 뜻이다.

허나 이후 연구에서 모계 유전자 연구 결과 미나토가와인은 오스트레일리아 인종 자체는 아니었으며 조몬인, 동아시아인, 오스트레일리아 인종 등과 공통 조상을 공유한다는 점이 밝혀지게 되었으며, 이후 정착하는 조몬인, 야요이인들과 유전적 연속성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절멸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화석의 발굴 상태가 극히 양호했다는 점과 동북아시아에서 제일 오래된 현생 인류 화석이 일본 열도 내에서 발견됐다는 점으로 인해 일본인류학자들 사이에서는 열광의 대상이 되었는데, 한동안 일본 인류학계가 이른바 원인 붐(原人ブーム)에 빠지게 된 이유들 중 하나로도 지목될 정도였다.

이후 도쿄대학에서 발표한 후속 연구에 따르면[4] 화석으로 발견된 미나토가와인 4명이 현재의 발굴 현장 부근에서 사망한 원인은 식인의 희생양이었던 것으로 발표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그 시기에 남은 유해들 중 식인의 흔적이 발견되는 경우가 아주 드문 건 아니다.


[1]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에 전시됨.[2] 물론 인류의 경우는 사회생활로 인해 다른 동물보다는 훨씬 자주 있는 일이기는 하다.[3] 형질학[4] 발굴 과정부터 이미 도쿄대학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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