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翼
1044년 ~ 1128년 (향년 84세)
1. 개요
고려의 인물. 남평 문씨의 중시조다.(족보)2. 생애
헌종 원년(1095) 2월, 왕의 근신으로서 수레(軒)와 일산(盖)을 갖추고 송상과 함께 고려를 방문한 자은종 승려 혜진(惠珍)을 맞이한다.숙종 3년(1098) 2월 좌찬선대부, 12월 급사중에 임명된다. 숙종 4년(1099)에는 고주사 겸 밀진사로 요에 가서 원자(훗날의 예종)에게 책명을 내려줄 것을 요청한다. 『요사』등에는 그저 왕옹(王顒, 숙종의 이름)이 책봉을 요청했다는 언급만 있다. 숙종 7년(1102) 서북면병마사를 지내고 숙종 8년(1103) 우산기상시에 임명된다. 문익의 장남 문공인의 열전에 따르면 문익의 벼슬이 산기상시에 이르렀다고 하므로 이것이 그의 최종 관직이었을 것이다.
3. 가족관계
- 조부 문다성 (936 ~ 1034)
- 부 문착 (1000 ~ 1096)
- 본인: 문익
아들 문공유의 묘지명에서는 문익의 증조부까지의 행적이 가첩(家牒)에 적혀있음을 제시한다. 문공원묘지명에서 그들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름자는 알아볼 수 없다. 문익의 조부는 대단한 관직을 지내지는 않았으나 그 명성이 세상에 드러났다고 한다. 문익의 부친은 무반으로 신호위대장군 행(行)초맹중랑장을 지냈다.
처 유씨와 사이에서 아들을 넷 둔다. 장남 문공미(문공인으로 개명)는 최사추의 딸과 결혼한다. 차남 문공원은 중추원사 이의[1]의 딸과 결혼해 딸만 셋을 본다. 삼남은 출가해 조계종 대선사가 된다. 막내 문공유는 3남 3녀를 뒀는데, 그 장남은 무신정권기를 보낸 문극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