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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苗道潤, ? ~ 1218금나라 말기의 한족 군벌로 당시의 하북(河北) 군벌들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을 보유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죽음이 초래한 혼란으로 인해 '하북구공(河北九公)' 체제가 생겨났다.
2. 생애
2.1. 하북의 제일가는 한인 군벌
묘도윤은 정우(貞祐) 초년에 하북의군대장(河北義軍隊長)이 되었다. 이 무렵에 선종(宣宗)이 금나라의 수도를 기존의 중도(中都)에서 변(汴)으로 옮기자 하북 지역의 토착민들은 서로 모여서 군대(자위대)를 결성하거나 도적의 무리가 되었다. 묘도윤은 용맹하면서도 지략이 뛰어나서 전투에 임할 때 용감하게 싸웠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도 능숙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다수의 하북 토착민들을 자신의 휘하로 결집시켜서 세력을 불릴 수 있었다.한편 묘도윤은 전투들에서 여러차례 공을 세우고 성읍(城邑)을 공격하여 평정한 바가 많았으므로 남경(南京)으로 사람을 보내서 자신에게 관직을 줄 것을 청하였다.
조정의 재상들이 묘도윤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자 선종은 하남전운사(河南轉運使) 왕확(王擴)을 소환하여 의견을 물었고, 왕확은 묘도윤의 공이 많은 것과 더불어서 요구를 거절할 때 묘도윤이 그의 무리를 이끌고 어떤 일을 벌일 지 모르니 관직을 내릴 것을 강력히 권하였다.
결국 왕확의 말에 결심을 굳힌 선종은 묘도윤에게 선무장군(宣武將軍), 동지순천군절도사사(同知順天軍節度使事)의 관직을 내려주었다.
정우 4년(1216), 조정에서 묘도윤의 전공을 논하여 그의 관직을 회원대장군(懷遠大將軍), 동지중산부사(同知中山府事)로 옮겼다. 그로부터 1달이 지났을 때, 묘도윤이 또 전투에서 공을 세우자 관직을 표기상장군(驃騎上將軍)으로 옮기고 중도로경략사(中都路經略使)와 지중산부사(知中山府事)의 관직을 겸하도록 하였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묘도윤에게 중도유수(中都留守)의 관직이 더해졌으며, 경략사의 자리는 기존처럼 겸하게 되니 묘도윤이 다스리는 성만 50여 곳에 달하게 되었다.
2.2. 군벌 간의 내분을 겪다
흥정(興定) 원년(1217), 선종은 조서를 내려서 묘도윤에게 중도를 수복할 것을 명령하면서 산동(山東)의 군대까지 이끌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이때 묘도윤은 다음과 같이 주청했다."작년 11월에 신(臣)은 총령(總領) 장자명(張子明)을 보내서 여주(蠡州)의 수장(守將) 독길칠근(獨吉七斤)의 항복을 받아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하북동로병마도총관(河北東路兵馬都總管) 이랄철가(移剌鐵哥)가 군대를 여주로 옮기더니 장자명의 군대를 습격해 깨뜨리고 수백 명을 죽였으며, 장자명 또한 창에 찔렸습니다.
신은 군대를 이끌고 그의 죄를 물으려 하는데, 철가가 스스로 지휘권을 버리고 신에게 귀부해온다면 그로써 (중도 수복의)채비가 갖춰질 것입니다. 신은 이제 도성을 수복하려 하니 청컨대 폐하께서는 철가에게 죄를 묻지 마시고, 그 대신에 그가 신의 명령을 받도록 해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일은 거뜬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묘도윤의 글을 읽은 선종이 재상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재상들은 묘도윤과 이랄철가의 불화를 이유로 들며 반대하였다. 결국 선종은 완안우(完顏宇)를 행원수부사(行元帥府事)로 삼았으며, 그에게 묘도윤이 중도를 공격하는 것을 감독하고 이랄철가의 군대를 거두어들이도록 지시했다.신은 군대를 이끌고 그의 죄를 물으려 하는데, 철가가 스스로 지휘권을 버리고 신에게 귀부해온다면 그로써 (중도 수복의)채비가 갖춰질 것입니다. 신은 이제 도성을 수복하려 하니 청컨대 폐하께서는 철가에게 죄를 묻지 마시고, 그 대신에 그가 신의 명령을 받도록 해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일은 거뜬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처음에 묘도윤은 순천군절도사 이심(李琛)과 서로 사이가 좋지 못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의 사병들이 서로를 공격하게 되었다. 이심이 군대를 보내서 만성(滿城)과 완주(完州)를 공격하자 묘도윤은 군대를 이끌고 이심의 군대를 막아 싸웠으며, 이심의 형인 이영(榮)과 동생 이명(明) 등을 모두 죽였다.
이로 인해 이심이 조정에 글을 올려 묘도윤이 다른 관리들의 중재를 듣지 않으면서 자신을 함부로 해쳤다고 헐뜯었으며, 묘도윤 또한 이심이 만성을 함락시키고 완주를 공격해온 일을 들면서 이심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조정에 알렸다.
이 소식을 들은 이심 또한 묘도윤이 반역의 마음을 품었다고 조정에 글을 올리니 조정에서는 산동행성추밀원(山東行省樞密院)으로 하여금 관리를 파견해서 이심을 타이르게 하였으며, 묘도윤에게는 이랄철가와 군대를 합치고 두 사람이 함께 하북 지역을 돌면서 민심을 안정시키라고 하였다. 이에 더하여 조정에서는 나라의 각 도(道)를 지키는 군대들에 서로 응원할 것을 명령했지만 군벌 간의 다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3. 최후
묘도윤은 영정군절도사(永定軍節度使) 가동(賈仝), 중도경략부사(經略副使) 가우(賈瑀)와도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못했으므로 세 사람은 일찍부터 서로 군대를 일으켜서 다투어왔었다. 이에 선종이 조서를 내려서 묘도윤과 가동, 왕복(王福), 무선(武仙), 가우 다섯 사람에게 하북의 로(路)들을 분할하여 다스릴 것을 명령했으며, 각자가 담당하는 로에 원수부(元帥府)를 설치하고 서로의 영역을 공격하지 말도록 하였다.가우는 선종의 명령이 내려지자 묘도윤에게 거짓으로 화해를 약속하니 묘도윤이 그에 대한 적개심을 거두고 신뢰하였다. 그러나 묘도윤의 마음을 얻은 가우는 곧 본색을 드러내었고, 마침내 복병을 일으켜 묘도윤을 척살하였다.
조정에서는 묘도윤의 죽음을 듣고도 가우에게 죄를 묻지 못하였으며, 묘도윤의 군대는 무너져서 병사들이 의지할 주장을 잃고 방황하였다. 제공(提控) 정안민(靖安民)은 자신이 다스리는 노주행원수부(潞州行元帥府)에 묘도윤의 병사들을 소속시켜달라고 청하니 조정에서 이를 들어주고 묘도윤의 옛 장병들에게 정안민의 통제를 따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가 흥정 2년(1218)이었다.
묘도윤의 죽음에 대한 전말은 학경(郝經)의《능천집(陵川集)》에 자세히 기술되어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애초부터 묘도윤은 그의 부관인 가우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묘도윤이 기병 몇 명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오자 매복해있던 가우의 복병이 활을 쏘았고, 묘도윤이 화살에 맞아 낙마하여 길의 왼쪽으로 넘어지니 그를 따르던 자들이 놀라서 대부분 흩어져 달아나버렸다.
오직 하후(何侯)만이 홀로 남아서 묘도윤을 부축하였지만 묘도윤은 이미 죽어서 말에 올라탈 수 없었다. 가우의 복병이 일제히 일어나서 앞길을 가로막자 하후가 크게 고함을 지르고 창을 휘둘러서 복병 여럿을 쳐죽이니 복병들이 달아나 숨어버렸다. 마침내 하후는 묘도윤의 금호부(金虎符)를 챙기고 길을 빠져나왔으며, 발이 빠른 병사들로 하여금 사잇길을 통해 조정으로 달려가서 소식을 알리도록 하였다.
곧 조정에서 역수공(易水公) 정안민에게 묘도윤을 대신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이 일 때문이었다.
오직 하후(何侯)만이 홀로 남아서 묘도윤을 부축하였지만 묘도윤은 이미 죽어서 말에 올라탈 수 없었다. 가우의 복병이 일제히 일어나서 앞길을 가로막자 하후가 크게 고함을 지르고 창을 휘둘러서 복병 여럿을 쳐죽이니 복병들이 달아나 숨어버렸다. 마침내 하후는 묘도윤의 금호부(金虎符)를 챙기고 길을 빠져나왔으며, 발이 빠른 병사들로 하여금 사잇길을 통해 조정으로 달려가서 소식을 알리도록 하였다.
곧 조정에서 역수공(易水公) 정안민에게 묘도윤을 대신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이 일 때문이었다.
3. 사후의 혼란과 하북구공 체제의 탄생
우승(右丞) 후지(侯摯)는 묘도윤이 생전에 다스렸던 보주(保州), 완주(完州)와 여주의 세 고을을 진정로(眞定路)에 소속시켜줄 것을 조정에 요청하였지만 여주(蠡州)는 원래 이랄중가노(移剌眾家奴)가 다스렸으므로 만일 여주를 진정로에 속하도록 고치면 이로 인해 군벌들 간에 교전이 벌어질 것이었기에 조정에서 두려워하였다.그러나 정안민 등은 세 고을이 노주에 소속되기를 원하였으므로 조정에서는 논의 끝에 하북행성(河北行省)에서 이 일을 면밀히 살피고 처리하게 하였다.
이 무렵에 경략부사 장유(張柔)가 조정에 글을 올려서 말하기를
"가우가 역주채(易州寨)를 공격해와서 자사(刺史) 마신(馬信)과 그를 보좌하던 장교를 살해하였으며, 마신이 패용하고 다니던 금부(金符)까지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라고 하였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유가 가우를 공격하여 살해하였다. 묘도윤 또한 이미 죽었으므로 마침내 조정에서 정안민에게 잔존해있는 묘도윤의 무리를 정식으로 거느리도록 하니 이때부터 황제가 제후들에게 봉토를 하사하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뒤에 정안민을 포함한 아홉 명의 군벌들이 공작 작위를 받으면서 '하북구공' 체제가 성립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