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중세 몽골의 부족들을 정리해 둔 문서이다. 해당 문서에 나온 부족들은 실제 몽골의 역사서인 몽골비사에 기록 되어있는 부족들이다.각 부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원조비사 항목의 가계도를 참조할 것
2. 목록
카마그 몽골 [1]키야트 보르지긴: 칭기스칸이 태어난 부족으로 알려져있다. 카불 칸의 후손들을 키야트 보르지긴 오복이라 하였으므로 원칙상 아래의 주르킨 씨족 또한 여기 아래에 들 수 있다.
잘라이르: 카마그 몽골족의 일파로 사준사구의 무칼리가 잘라이르 출신이다. 무칼리 사후 그의 가문과 잘라이르 부족은 명문가로 남게된다. 후대에 이 부족의 후예가 이라크와 이란 서부에 잘라이르 왕조를 세웠다.
타이치우트: 몽골족의 선대 칸 암바가이의 후손들이 세운 씨족이다. 예수게이 사후 잠시 카마그 몽골의 주도권을 쥐었다. 당시 자다란, 타타르등 강한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세력이였으나 결국 칭기스 칸의 몽골족에게 패배한다.
주르킨: 칭기스칸의 보르지긴 씨족과 혈족관계이며 족보상으론 보르지긴보다 높았다. 그 이유는 주르킨이 카불 칸의 후손인 오킨 바르칵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장인 세체베키가 칭기스칸을 도발하면서[2] 보르지긴에게 흡수된다.
코릴라르
얼지건
벨귀누드
뷔귀누드
텔렝구트
부다아트
아다르킨
케레이트[3]
지르킨
올론 동카이드
투멘 투베겐
우브치크
옹치지드
메르키트[4]
카아드 메르키트
우와스 메르키트[5]
오도이드 메르키트[6]
타타르[7]
차안 타타르
알치 타타르
도타오트 타타르
알루카이 타타르
타리아트 타타르
그외 아이리우트, 부이리우트, 주이인 씨족등이 있으며 이들은 타타르와 군신인 씨족 혹은 군사 조직으로 추정된다 또한 몽골비사에서 아이리우트등의 씨족들은 암바가이 칸의 죽음에서 언급된다.[8]
나이만
동나이만: 타이양 칸이 지도자로 있던 부족, 칭기즈 칸에게 멸망하고 그 왕자인 쿠출루크는 서요로 망명해 서요의 황제를 찬탈하지만 결국엔 망한다.[9] 원래 나이만은 거란족의 나라인 서요의 속국이였으나 타이양 칸의 부친 이난차 빌케 칸의 집권 시기에 독립하였다. 이난차 칸때 부흥했으나 무능한 아들 타이양 칸이 집귄후 몽골에게 멸망한다.
서나이만: 타이양 칸에 반발한 부이룩 칸이 세운 부족이다. 한때 케레이트와 몽골 연합군에게 패배후 도망친 부이룩 칸은 자다란의 수장 자무카에게 몸을 의탁한다. 이후 동나이만이 차키르마우트 전투에서 패배한뒤 멸망하고 동나이만의 왕자 쿠출루크가 숙부 부이룩과 연합하지만 패배한다.
구추구우
옹구트: 나이만 휘하에서 중계무역을 담당하던 부족이였으나 나이만과의 갈등으로 칭기스칸에게 투항한다. 이때 공로를 인정받아 칭기스 칸은 옹구트 칸 알라쿠시 티긴 코리의 아들 센구이와 자신의 딸 알라카 베키를 혼인시켜 옹구트와 결혼동맹을 맺는다. 이후 몽골이 금나라를 공격할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자다란: 칭기스칸의 숙적인 자무카의 부족으로 당시에는 흑골씨족, 검은뼈 씨족이라 불렸다. 알려진 지도자는 칭기스 칸의 의형제 자무카와 그의 부친 카라 카다안인데 자무카는 과거 부친 카라 카다안을 죽이고 자무카 본인마저 몰아내 내전을 일으킨 귀족들의 내전을 평정시키고 수장이 되었다. 쿠이텐 전투, 차키르마우트 전투, 13익 전투, 카라 칼지트 전투를 비롯해 수많은 전쟁에서 몽골과 겨루던 강대 부족이였다. 또한 자다란의 수장 자무카의 명성을 들은 약소 부족들인 코룰라스, 이키레스, 두르벤, 살지우트, 카타긴, 메르키트, 서나이만이 투항후 동맹을 맺었다. 심지어 칭기스 칸의 사돈 옹기라트 부족마저 자다란에 투항하였다.
그외의 부족들
아를라트: 사준사구의 보오르추와 그의 사촌동생 우굴레이 체르비가 아를라트 씨족이다.[10] 몽골 통일후 무칼리의 잘라이르 부족과 함께 몽골 제국의 명문으로 추대 되었다.
술두스: 사준사구 티라운과 그의 형 침바이 장군의 씨족이다. 당시 타이치우트 씨족의 휘하에 있었다.
베수드: 사준사구 제베의 씨족이다. 타이치우트 휘하로 추정된다.
오이라트: 숲 일대에 거주한 민족으로 이 당시에는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북원 멸망 후 크게 성장하여 토목보의 변을 일으키는 주역이 된다. 또 멀리 따져보면 최후의 유목제국으로 불리는 준가르의 조상이기도 하다. 몽골 나이만 전쟁때는 나이만과 연합하기도 하였다. 또한 몽골에 저항하던 삼림민 부족중 하나였다.
카타긴: 몽골비사에서 언급되는 씨족이며 자다란과 연합하였다.
투메드[11]
옹기라트: 칭기스칸의 장인 다이세첸과 아내 부르테의 부족이다. 기록에 따르면 미녀가 많았기에 이를 통해 결혼동맹을 맺으면서 부족을 유지 하였다고 한다. 대대로 카마그 몽골과 결혼동맹을 맺었고 이 인연으로 몽골 제국 성립 후 제국의 황후는 배출하는 부족으로 떡상한다. 과거 자다란이 성장했을때 힘이 약하여 자다란에 잠시 투항한 전적이 있었으나 자다란이 멸망후 몽골에 다시 투항한다. 여담으로 백조 토템을 숭배하였고 본인들의 선조를 백조라고 여겼다.
후신: 사준사구 보로클의 씨족이다.
바를라스: 사준사구의 장군이자 케레이트의 전령 출신인 쿠빌라이 장군이 바를라스 씨족이며 그의 후손인 카라차크 노얀과 타라가이 노얀 그리고 타라가이의 아들 티무르도 바를라스 씨족이다.
칭기스 칸의 보르지긴 씨족과는 먼 사촌 관계라고 한다.
우량카이: 삼림 부족으로 알려져있다. 출신 인물로는 수부타이와 젤메 형제가 있다. 현재 러시아 일부 지역에는 우량카이족의 후손들이 남아있다. 기록에 따르면 부족민 대부분이 대장장이나 주술사를 직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키레스: 원나라 무종의 황후 였던 인헌장성황후가 이키레스 씨족이다. 자다란이 패권을 잡았을때 투항한 부족중 하나이다.
코룰라스
두르벤: 몽골비사에 언급되는 부족으로 일시적으로 자다란에게 투항 하였다.
두글라트
살지우트
캅투르카스
캅카우나스
치노스: 몽골어로 늑대라는 뜻을 가진 부족이다. 기록에 따르면 싸움을 잘하는 고귀한 부족이라고 한다. 그러나 13익 전투에서 자다란에게 멸망당한다. 이 때 자무카가 치노스족을 너무 잔인하게 대하는 바람에[12] 자무카는 신망을 크게 잃고 만다. 이후 살아남은 치노스족 생존자들은 몽골족에게 투항하고 이후 칭기스 칸은 이들을 받아주었다.
우르우수트
투바[13]
부랴트
바야우트
노요콘
바지기드
바아린: 몽골의 삼림 부족이다. 청나라때 누르하치에게 정복된 바린부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케스디인
올코누트: 칭기스칸의 모친 호엘룬의 부족이다. 옹기라트 휘하에 있다.
오르오드: 원래 자무카의 자다란족 휘하에서 싸우던 부족이였으나 13익 전투이후 칭기즈칸에게 투항한다. 망구트족과 더불어 초원에서 강력한 백병전과 마상전을 특기로 싸우던 부족이다. 출신 인물로는 사준사구에 묻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주르체데이 장군이 있다.
망구트: 뛰어난 창술로 초원에서 주름잡던 부족이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표범무늬 얼룩이 그려진 군기를 내걸고 다녔다고 한다.
출신 인물은 사준사구의 유명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쿠일타르 장군이 있다.
투카스
바르쿤
테늘레그
타스
바르가
오로나르
콩코탄
사룽기르
강가퉁
[1] 사실상 몽골족의 전신이자 상징인 부족이다. 참고로 하단에 키야트 보르지긴, 잘라이르등은 카마그 몽골 주축의 부족들이다.[2] 자무카가 치노스족 남성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사건으로 주르킨 등 많은 부족들이 자무카와 손절하고 칭기즈 칸에게 붙었는데 이에 칭기즈 칸이 기쁜 마음으로 연회를 열었다. 그런데 이 때 주르킨 씨족은 항렬상 자신들이 위이니 자기네 어른들에게 먼저 술을 대접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패를 부렸고 이 와중에 말리던 벨구테이가 부상을 당하는 불상사까지 벌어졌다. 이에 격노한 칭기즈 칸에 주르킨 씨족과 관계를 끊으려 했다가 벨구테이의 만류로 그만두었지만 칭기즈 칸은 이 때 일을 잊지 않고 있다가 주르킨 씨족을 공격할 건수가 생기자 냉큼 공격해서 멸망시키고 벨구테이에게 부상을 입힌 주르킨 씨족의 싸움꾼 부리 부쿠는 벨구테이가 죽일 수 있도록 하였다.[3] 타타르를 몰아내고 초원의 강자로 부상한 키르기스계 유목민족으로 알려져있다. 쿠르차쿠스 부이룩 칸 집권 시기에 타타르를 몰아내고 초원의 강자로 군림하였다. 마지막 칸은 토그릴 옹 칸이며 토그릴은 자신의 40명의 형제들을 몰아내고 칸의 자리에 오른다. 옹 칸 사후 케레이트는 몽골에 흡수되었다. 여담으로 아래 써진 부족들은 케레이트와 군신관계인 소부족이다. 그중에서 지르킨과 동카이드, 투베겐 씨족은 초원의 패권 전쟁인 카라 칼지트 전투에서 케레이트의 우군으로 참전하여 칭기스 칸의 동맹인 오르오드, 망구트족과 맞서 싸웠다.[4] 현 바이칼 호에서 거주하였던 몽골화 된 튀르크계 민족이다. 3개의 부족으로 나뉘어져서 몽골비사에는 3성 메르키트라고 표기 되기도 하였다. 오도이드 메르키트, 카아드 메르키트, 우와스 메르키트로 나누어져있다. 몽골의 침략때 일시적으로 자다란과 연합하기도 했으며 쿠이텐 전투에도 참전하였다. 이후 칭기스 칸이 케레이트와 나이만을 정벌한뒤 삼림민족과 메르키트를 토벌하였다. 칭기스 칸과 그의 장남 주치에게 메르키트의 자손이란 꼬리표를 따라다니게 만든 부족이다. 몽골에게 복속된 후로는 몽골의 원수같은 씨족이라면서 천대받았다. 여담으로 이들중 일부 메르키트족은 나이만, 케레이트와 같이 기독교 종파인 네스토리우스교를 믿었다.[5] 칭기스 칸의 애첩인 쿨란 카툰이 우와스 씨족 출신이다. 당시 우와스의 족장 다이르 오손이 딸 쿨란을 바치면서 투항하였다.[6] 칭기스 칸의 아내인 보르테를 납치한 부족이 오도이드 메르키트이며 메르키트 세력중 가장 강한 부족이였다. 마지막 수장인 토크토아 베키와 그의 아들 쿠두가 죽으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7] 여기서 칭하는 타타르란 엄연히 중세 몽골(정확히는 칭기즈 칸 이전 몽골)에 존재했던 부족에 대한 것으로 그 이외의 타타르와는 관계없다. 타타르는 금나라의 압잡이 노릇을 하며 몽골족을 포함한 유목민들을 학살하였다. 그 이후에 칭기스 칸의 몽골족과 달란 네뮤게르 전투에서 패배한뒤 멸망하였다. 일부 잔당들은 도주하였으며 이때 수많은 타타르 포로들중 수레바퀴보다 큰 남자 포로들은 처형되었다.[8] 당시에 타타르는 귀족들의 권력 다툼과 갈등으로 인해 수많은 씨족들로 나눠져 있었다.[9] 서요의 황위를 찬탈한 쿠출루크의 폭정으로 불만을 품은 서요의 백성들이 몽골의 종교를 보장해 준다는 제안을 듣고 자발적으로 항복하였다.[10] 당시 기준으로는 부유한 부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칭기스 칸이 칸이 아닌 시절 보오르추의 도움으로 먹고살았다.[11] 몽골의 삼림 부족중 하나로 명나라가 원나라를 몰아내고 북원이 생겨난 후에 몽골초원의 실권을 잡는 부족중 하나로 성장한다. 출신 인물로는 투메드부의 수장 알탄 칸이 있다.[12] 치노스족의 모든 남성을 학살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그 시신을 이리저리 끌고다니며 모욕까지 주었다.[13] 현재 러시아에 있는 투바 공화국의 전신인 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