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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25 18:41:15

펜싱 바요넷

목총에서 넘어옴
파일:펜싱 바요넷.jpg

1. 개요

Fencing bayonet

총검술 훈련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교보재.

근대 총검술시대인 20세기 초까지는 총검술을 매우 중요한 전투기술로 비중을 두고 교육하였으며, 계속된 연구를 통해 하나의 검술로 인정받을 정도였다. 병사들이 집단제식훈련이나 집단돌격, 개인동작과 형을 수련하거나 물체를 찌르는 훈련을 할 때에는 실총에 진짜 총검을 착검시켜 훈련했지만, 총검술 커리큘럼을 제대로 교육하려면 2인1조로 진행되는 형과 대련 훈련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이때 실총과 진짜 총검을 사용할 수는 없었으므로 안전하게 대련할 수 있는 별도의 도구가 필요했다. 이것을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훈련용 총검, 펜싱 바요넷이다.

총검술은 실총과 동일하거나 최소한 비슷한 도구를 사용해야 무술적 특성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1]에 펜싱 바요넷도 실총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였다. 여기에는 실전에서는 어차피 실총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병사들을 적응시키기 위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2. 상세

펜싱 바요넷은 크게 나누어 3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펜싱 바요넷은 비단 총검술 훈련뿐만이 아니라 당시 군대와 검술계에서도 총검술 연구나 또는 검vs총검과 같은 내용을 진지하게 상정하고 훈련했기 때문에 수요가 높았다. 남북 전쟁등을 통해 대열을 짓고 평지에서 총검돌격하는 것은 실패율이 높다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백병전에 목숨을 거는 식민지 저개발국가의 원주민들과의 전투나, 시가전, 산개 돌격과 같은 전투상황에서는 당시 소총의 낮은 연사력 때문에 총검이 백병전 무기로써 항상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또 중국이나 일본처럼 경제력이 부족한 국가는 투사할 수 있는 화력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총검이나 도검이 2차대전 때까지 활약하기도 했다.[6]

그러나 개인화력이 결정적으로 발달한 2차대전 이후 총검술의 중요성이 추락하면서 총검술 훈련은 물체 찌르기나 개인형 훈련에 치중했고, 19세기처럼 복잡하고 정밀한 무술로써의 총검술을 훈련하지는 않게 되었다. 따라서 펜싱 바요넷의 필요성도 크게 줄어들어 이제는 따로 준비해서 사용하지는 않지만 미 해병대나 동구권 군대처럼 백병전에 비중을 두고 있는 군대는 최근까지 사용하였고, 특히 미 해병대는 m16에 착검한 길이를 상정한 목총을 이용한 총검술 대련까지 시켰다.[7] 그러나 현대 군대의 CQB시스템은 더 이상 총검술을 적극적으로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근시일 내에 소멸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3. 현재

의외로 민간계에서 사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은 구 일본군의 총검술을 계승한 무도인 총검도를 제정해서 166cm의 38식 아리사카 목총을 가지고 호구를 착용하고 훈련한다. 서양에서도 19세기의 높은 수준의 총검술 교범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펜싱 바요넷을 사용하여 당시의 총검술을 재현하고 있기도 하다.

4. 관련 항목



[1] 총검술에서는 상대의 총검이나 검을 옆으로 쳐내고 찔러 들어가라는 내용이 많은데, 가벼운 목총이나 봉을 사용할 경우 상대의 무기가 그렇게 쉽게 조종되지도 않고 쳐내고 금방 제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실총이나 그에 준하는 무게의 장비를 사용하면 상대의 무기를 조금만 쳐도 크게 벗어나게 되고 검 정도라면 매우 쉽게 조종해버릴 수 있게 된다.[2] 규모의 경제 논리상 목총이라고 해도 겨우 수백~수천 개 찍어내는 단위에서는, 수십만 정씩 찍어내는 실제 총기보다 가격이 싸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정말로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그냥 개인에게 지급되는 총기를 쓰는 것이 낫다. 아니면 교련 시절처럼 목총을 수만 정씩 찍어내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거나.[3] 현대 총검은 100% 단검의 역할을 겸하는 나이프형 총검이다.[4] 자세히 보면 장전손잡이나 노리쇠를 비롯한 부품이 없고, 윗총몸과 아랫총몸 사이가 용접된 자국이 보인다.[5] 일본군의 166cm 목총 기준, 4~5kg에 달하는 실총에 비해 1.4kg 정도로 약 3배 가볍다.[6] 여기에는 프랑스에게 영향을 받은 일본의 돌격지향적인 성격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군이 백병전을 강요하려는 성향 때문에 근접전투가 많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7] 미국 해병대 격투 프로그램 항목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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