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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1:47

모토시마 히토시 암살 미수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발단3. 전개
3.1. 사건 이후

1. 개요

1990년 1월 18일 당시 나가사키시장이었던 모토시마 히토시를 암살하려고 한 사건.

2. 발단

이 사건의 발단은 1988년 12월 7일 나가사키시의회 질의였다. 공산당 소속 시의원 시바다 보쿠가 당시 시장이었던 모토시마 히토시에게 쇼와 덴노전쟁 책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천황에게도 전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하였다. 문제는 당시 쇼와 덴노가 오늘내일 하면서 사경을 헤매이고 있었던 터라 일본 사회 전체가 소위 "자숙" 모드였다는 점이다.[1]

현의회에서는 모토시마 시장에게 해당 발언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짓을 할 수 없다며 발언 철회를 거부해서 소속당이었던 자민당에서 제명당했고 극우 단체의 확성기 차량 80여대가 몰려들어 연일 그를 비난해 댔다. 극우 깡패들이 여기저기서 그를 노리면서 나가사키시는 모토시마 시장에 대한 경호 수위를 높이고 공관에서 지내게 했다. 평소 그는 아침 일찍 출근 전 산책을 즐겼는데 이조차도 시장 공관에서 런닝머신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3. 전개

그러던 중 1990년 1월 18일 오후 3시경 그는 나가사키시청 현관 앞에서 관용차에 오르려다 등 뒤에서 다가온 우익단체 쇼기주쿠(正氣塾) 간부 와카시마 카즈미에게 등 뒤 1m라는 근거리에서 총격을 당했다.[2] 탄환은 왼쪽 흉부에 명중했으나 갈비뼈에 맞아 탄도가 변해 심장과 대동맥 등을 벗어나서 관통한 덕분에 전치 1개월의 중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다.[3] 회복한 후에 모토시마 시장은 자신을 저격한 와카시마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모토시마 시장을 저격한 와카시마는 시장이었던 그가 시의원이던 시절에는 국기제정운동과[4] 일본 교사 노조 타도를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되자 전향한 것 때문에 그에게 대화를 제의했지만 거절당해서 저격했다고 했다.

와카시마는 이 사건으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으며 2002년에 형기 만료로 출소한 후 2003년 4월 20일에 열린 통일지방선거에 나가사키 시장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에 대한 내용은 일본어 위키백과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3.1. 사건 이후

그 다음 해의 1991년 선거에서 그는 4선에 성공했지만 다음 선거인 1995년 선거에서 이토 잇초에게 낙선한 후 정계를 은퇴하고 지내다가 2014년 10월 31일 92세의 일기로 폐렴으로 별세했다.

2005년 한국 방송사인 문화방송이 광복 60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5부작 다큐멘터리 <천황의 나라, 일본>의 1부 방송인 '덴노, 살아있는 신화'에서 이 사건을 다뤘는데 여기에 직접 인터뷰어로 직접 출연했다. 그에게 질의를 했던 시바다 보쿠 전 시의원도 인터뷰에 응했다.

해당 사건으로부터 17년 후인 2007년에는 그를 선거에서 이긴 이토 잇초암살당해 사망하자 모토시마 시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대에 걸쳐 시장이 총격당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고 말했다.


[1] 예시를 몇 가지 들면 이 시기 히카루GENJI는 콘서트를 취소했고 그 해 호시노 센이치는 50승 15패 3무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주니치 드래곤즈를 6년만에 NPB 센트럴 리그 정상에 올려놓는 대성과를 거두었으나 이를 축하하는 자리가 모두 축소 혹은 취소되었다. 1988 서울 올림픽도 바로 이웃나라에서 개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쇼와 덴노가 쓰러진 시기와 겹치면서 일본에서는 흥하지 못했다.[2] 당시는 문제의 발언으로부터 만으로 1년이나 지난 시기라서 극우단체들도 이제는 다 철수를 했기 때문에 경호 수위가 낮아졌다고 한다.[3] 여기에 덧붙여서 피의자는 총격 직후 쓰러진 모토시마 시장에게 「괜찮냐?」라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4] 일장기가 일본의 공식 국기로 제정된 것은 1999년으로 당시의 일장기는 일본의 국기라고 관습적으로 쓰이는 것일 뿐 법적으로 정한 국기라는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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