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과테말라-벨리즈 관계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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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 과테말라 | 벨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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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3국은 언어, 문화, 종교에서 차이점이 있으면서도 공통점이 존재한다.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에 위치한 유카탄 반도는 마야인들의 마야 문명이 존재했다. 마야인들은 피라미드를 세우고 여러 도시들을 세웠다.[1] 그리고 당시 마야어는 마야 문자라는 고유 문자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9세기에 들어서면서 마야 문명은 쇠퇴하게 되었다.16세기에 스페인이 멕시코 일대를 정복하고 유카탄 반도를 정복했다. 다만, 아즈텍 문명과 달리 유카탄 반도는 여러 부족들로 나뉘어져 있었고 저항도 매우 심했다. 이후에 유카탄 반도 전역은 누에바에스파냐라는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유카탄 반도에 위치한 벨리즈 일대는 벨리자라는 이름의 스페인 식민지였지만, 18세기에 영국이 마호가니와 관련된 사업에 진출하면서 벨리자를 두고 영국과 스페인은 갈등이 있었다. 벨리자는 영국과 스페인이 협정을 체결해서 영국령으로 인정되었다.
벨리자 일대는 스페인인, 메스티소들이 이주했다.
2.2. 19세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중남미의 스페인령 지역에서 독립열기가 높아졌다. 당시 누에바에스파냐에 속했던 유카탄 반도에선 독립열기가 높아졌고 이에 스페인군은 독립운동을 진압했다. 하지만 잇따른 독립열기로 인해 스페인은 독립을 인정했다. 1821년에 멕시코가 멕시코 제국으로 독립했지만, 이후에 중앙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을 1823년까지 지배했다. 유카탄 반도에 속했던 국가들중에 과테말라는 1823년에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의 일부로 멕시코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유카탄 반도의 대부분은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벨리즈 지역은 과테말라와 영국이 영토갈등을 일으키면서 19세기부터 영국령 온두라스라는 이름으로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2.3. 20세기
20세기 후반에 영국령 온두라스는 벨리즈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과테말라측은 벨리즈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벨리즈측은 영국의 지원을 요청했다.과테말라 내전 당시 반군과 마야인 난민들이 멕시코에 파난가기도 했다.
2.4. 21세기
3국 모두 미주기구에 가입되어 있다. 멕시코와 과테말라는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의 회원국이다. 그리고 벨리즈는 영연방, 카리브 공동체에 가입되어 있다.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과테말라와 벨리즈 전부 중미 통합 체제의 회원국에 속해 있다.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는 마야 문명을 둘러싸고 갈등이 존재하지만, 교류가 많은 편이다. 벨리즈는 멕시코와 과테말라와 인접해있고 교류가 많다보니 스페인어가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유카탄 반도는 마야어화자들이 많다보니 멕시코와 과테말라, 벨리즈는 마야어가 자주 쓰이고 있다. 멕시코쪽의 유카탄 반도에선 마야어가 주요 외국어로 가르치고 있다.
과테말라와 벨리즈는 영토갈등이 존재하다보니 벨리즈는 영국과 협력하고 있다. 다만, 멕시코와는 갈등이 적은 편이고 과테말라와 달리 교류가 자주 이뤄지고 있다.
3. 관련 문서
- 멕시코/외교
- 과테말라/외교
- 벨리즈/외교
- 유카탄 반도
- 미주기구
-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공동체
-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2]
- 중미 통합 체제[3]
- 영연방[4]
- 카리브 공동체[5]
- 중앙아메리카[6]
- 멕시코/역사
- 과테말라/역사
- 벨리즈/역사
- 멕시코인 / 과테말라인 / 벨리즈인 / 마야인 / 가리푸나인
- 스페인어 / 마야어 / 영어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북아메리카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중앙아메리카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