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매덜린 머레이 오헤어 Madalyn Murry O'Hair | |
본명 | 매덜린 메이스 Madalyn Mays |
출생 | 1919년 4월 13일 |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 |
사망 | 1995년 9월 29일 (향년 76세) |
미국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 |
직업 | 사회운동가 |
학력 | 애실랜드 대학교 (1949년 졸업 / 학사) |
배우자 | 존 로스 (1941년 ~ 1946년, 이혼) 리차드 오헤어 (1965년 ~ 1978년, 사별) |
자녀 | 윌리엄 J. 머레이 (1946년생)[1] 존 가스 머레이 (1954~1995)[2] |
종교 | 무종교(무신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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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출신의 미국의 무신론 운동가이다. 그러나 생전 과격한 활동과 돈을 밝혔던 행동 때문에 같은 무신론자들 사이에서도 매우 비판받는 인물이다. 별명은 미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여인(The Most Hated Woman in America).2. 생애
매덜린은 1919년 4월 13일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아버지에 의해 개신교 장로회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졌을 당시 미군 여군에 지원하여 복무하기도 하였다. 1949년에는 대학을 졸업하여 애실랜드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매덜린은 1960년대에 정부에 소송을 내어 공립학교에서의 방과 후 예배모임을 폐지시키고 법적으로 공립학교내의 모든 종교적 표현을 금지시키며 미국 무신론의 주역으로 부상했다.[3] 이 과정에서 유명세를 얻은 매덜린은 1962년에 <Free Humanist Magazine>을 인수하여 <American Atheists>로 개명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기부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 그녀는 공개적으로 많은 종교 지도자와 논쟁을 벌였으며 또한 종교와 유신론을 비판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의 화폐에서 'In God We Trust'라는 글귀를 삭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하지만 단체 운영에 있어 독단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같은 무신론자 그룹의 멤버를 추방하는가 하면, 동성애 활동가 존 로리스텐을 공격하며 노골적인 호모포비아 성격을 드러냈다. 그녀의 행동 때문에 <American Atheists>는 <United Atheists>(무신론자 연합)이나 <Freedom from Religion Foundation>(종교로부터의 자유재단) 등의 비슷한 무신론자 그룹과도 갈등을 빚곤 했다. 심지어 매덜린의 아들인 윌리엄 머레이는 무신론을 포기하고 기독교로 전향한 뒤 "내 어머니는 순수한 악이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매덜린은 아들 머레이가 기독교로 개종하자 머레이와 완전히 의절하였다. 머레이는 이후 침례회 목사가 되었다.
2.1. 최후
1995년 매덜린은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밝힌 것을 마지막으로 통장에서 60만 달러를 인출한 뒤에 아들 존, 입양한 손녀딸과 함께 대중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이후 얼마 가지 않아 매덜린과 그 가족들은 연락이 끊겨 행방불명 상태가 되었다.매덜린의 소재가 불명확해지자 곧 음모론이 고개를 들었고, 일각에서는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매덜린을 혐오한 나머지 납치하여 몸값을 요구하고 있다는 등 황당한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소재파악에 진전이 없자 결국 매덜린에게 의절당한 아들 윌리엄이 텍사스 주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여 수사가 시작되었는데 경찰 수사조차 미궁으로 빠져들자, 수사는 연방수준으로 확대되었고 마침내 진실이 밝혀졌다.
매덜린 일가를 납치한 자들은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아닌 <American Atheists>의 직원인 데이비드 워터스 일당이었다. 매덜린이 인출한 돈을 노린 워터스 일당은 매덜린 가족을 협박한 뒤 토막살해하여 텍사스의 농장에 묻었다. 당연히 이 사건은 미국을 발칵 뒤집어놨고, 매덜린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인해 미움을 받고 있던 <American Atheists>는 데이비드 워터스의 잔혹한 범죄로 인해 미국인들에게 더 큰 미움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