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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09 04:27:15

만프레트 칼츠

만프레트 칼츠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베스트팀
파일:Kicker 로고.svg
1976-77 · 1978-79 · 1979-80 · 1980-81 · 1981-82 · 1985-86

파일:Guerinsportivologo.png
Player of the Year 1980
수상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2위
만프레트 칼츠
3위
디에고 마라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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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프레트 칼츠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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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함부르크 SV 로고.svg
함부르크 SV 125주년의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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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이름 국적 소속 기간 비고
GK 울리 슈타인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80–1987
1994–1995
DF 디트마어 야콥스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79–1989
DF 만프레트 칼츠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70–1989
DF 페터 노글리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69–1980
DF 요제프 포지팔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49–1958
DF 빌리 슐츠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65–1973
MF 토마스 돌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90–1991
1998–2001
MF 토마스 폰 헤젠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80–1994
MF 메흐디 마다비키아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1999–2007
MF 펠릭스 마가트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76–1986
MF 라파엘 판데르파르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2005–2008
2012–2015
FW 카르스텐 바론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92–2000
FW 게르트 되어펠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58–1971
FW 호르스트 흐루베슈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78–1983
FW 케빈 키건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1977–1980
FW 우베 젤러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946–1972
감독 에른스트 하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1981–1987
#출처
}}}}}} ||

파일:함부르크 SV 로고.svg
함부르크 SV 올타임 베스트 XI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호르스트 흐루베쉬
파일:독일 국기.svg
우베 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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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키건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wiki style="margin: -16px -11px" 세르게이 바르바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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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판데르파르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펠릭스 마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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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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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ki style="margin: -16px -11px" 만프레트 칼츠
파일:독일 국기.svg
디트마어 야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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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보아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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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외르크 부트
파일:독일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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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SV 올타임 베스트 XI 감독
에른스트 하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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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前 축구 선수
파일:Manfred_Kaltz_–_Tag_der_Legenden_2016_02.jpg
<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만프레트 칼츠
Manfred Kaltz
본명 만프레트 칼츠
Manfred Kaltz
출생 1953년 1월 6일 ([age(1953-01-06)]세)
서독 루트비히스하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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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86cm|체중 미상
직업 축구 선수 (수비수[1] / 은퇴)
소속 <colbgcolor=#eee> 선수 VfL 노이호펜 (1960~1968 / 유스)
TuS 알트립 (1968~1970 / 유스)
함부르크 SV (1970~1971 / 유스)
함부르크 SV (1971~1989)
FC 지롱댕 드 보르도 (1989)
FC 뮐루즈 (1989~1990)
함부르크 SV (1990~1991)
국가대표 69경기 8골 (서독 / 1975~1983)
1. 개요2. 클럽3. 국가대표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

1. 개요

독일의 前 축구 선수. 별명은 Bananenflanken.[2]

1979년대 말-1980년대 초 만샤프트함부르크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수비수로 펠릭스 마가트, 호르스트 흐루베슈 등과 함께 함부르크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주로 오른쪽 사이드백으로 적극적인 공격 가담 능력과 날카롭게 휘어지는 오른발 크로스로 유명하다.

2. 클럽

2.1. 함부르크 SV

여러 유소년 팀에서 뛰다가 1970년 함부르크 SV 유소년 팀에 입단했으며 이듬해 성인 팀에 데뷔한다. 함부르크에서만 20시즌을 뛰었으며 리그에서만 581경기 76골을 넣어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출전 2위라는 위업을 달성 했다. 위에서 서술했듯이 80년대 HSV 전성기의 주축 선수인데, 팀의 유일한 유러피언컵 우승과 마지막 리그 우승을 함께했다. 장신 공격수인 호르스트 흐루베슈와 호흡이 상당이 좋은 편이었는데, 흐루베슈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매니(칼츠의 애칭)가 바나나(크로스)를 하면 내가 헤더를 했고, 골이 들어갔지." 역대 최고급의 크로서와 헤더가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의 좋은 예시. [3]

3. 국가대표

1975년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유로 1976, 78년 월드컵에도 참가했었는데, 베르티 포크츠의 아성에 밀려 백업 선수였다.

포크츠가 은퇴한 후 주전 라이트백으로 올라섰고 유로 1980 우승, 82년 월드컵 준우승에 기여했다. 82 월드컵 준우승 이후 유프 데어발 감독은 대표팀 세대교체를 단행했고, 1983년 포르투갈 0:1 패배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4]

4. 플레이 스타일


대부분 독일 최고의 풀백을 떠올리면 필립 람, 칼 하인츠 슈넬링어, 브레메 등등을 떠올리곤 한다. 사실 독일 역사에서는 공수 양면을 모두 챙긴 뛰어난 공격형 풀백들이 많았고 그중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만프레드 칼츠라고 할 수 있다.

1970~1980년대 시대를 대표하는 라이트백이었던 만프레드 칼츠는 당대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로 풀백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공격력을 지닌 선수였다.[5] 당시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거대한 신장이었던 186cm의 키는 만프레드 칼츠의 가장큰 장점중 하나였고 뛰어난 제공권을 기반으로한 수비능력, 섬세한 클리어링 실력까지 가졌으며. 오버래핑과 언더래핑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매우 현대적인 풀백이었다. 이렇듯 수비능력도 훌륭한 선수였으만 뛰어난 킥 능력을 기반으로 중장거리 로빙패스를 자유자재로 뿌린 선수였으며 일명 "바나나 크로스" 라고 불리는 아주 날카로운 궤적을 지닌 크로스 도 구사하였다. 당시 칼츠의 로빙 패스 능력은 팀공격의 핵심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1979년에는 이 능력을 기반으로 공격의 활로를 열며 유로피언컵 결승에 달성 발롱도르 4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다.[6][7] 약점이랄게 따로 존재하지도 않는 풀백이었으며 당시 함부르크의 후방 빌드업과 공격의 기점은 칼츠의 발끝에서 나왔다. 이후 1980년 유로에 참가하여 팀을 우승시킨다.[8] 클럽팀 내부에서는 흐루베슈 뿐 아니라 케빈 키건과의 합도 좋았으며 케빈 키건이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한 이후에도 흐루베슈와 함께 합을 맞추며 가공할 만한 공격력과 수비력을 동시에 챙겼다. 이들의 뛰어난 활약을 기반으로 1982년에는 유로피언컵 우승을 달성한다.함부르크에서 뛴 경기는 679경기로 분데스리가 통산 2위를 기록하였다.[9] 거의 원클럽맨에 가까울 정도로 오랜기간 뛰었으며 차범근 감독의 고점이었던 1979년 스포츠 빌트지에서 분데스리가 베스트 11 에 뽑히기도 하였다.[10]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자책골이라는 기묘한 기록을 보유 중이다. 어느 동양 출신의 유망주가 깨기 전 까지는 구단 내 최연소 득점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함부르크 SV에서는 우베 젤러, 요제프 포지팔, 펠릭스 마가트 등과 함께 구단 최고의 레전드로 꼽힌다.

은퇴 이후엔 함부르크에서 축구 교실을 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캡틴 츠바사의 독일 주니어 유스 캐락터에는 헤르만 칼츠(함부르크 SV 소속)와 만프레트 마거스가 있는데 작중 연재시기를 고려하면 이 선수에서 이름을 따 온 것으로 보인다.
[1] 풀백[2] 직역하자면 바나나 크로스[3] 데이비드 베컴 - 뤼트 판니스텔로이와 같은 관계라고 보면 편하다.[4] 데어발 감독과 불화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5] 한마디로 수비잘하고 덜 공격적인 호베루트 카를루스 혹은 수비력을 갖춘 알렉산더 아놀드와 유사한 선수라 할 수 있다.[6] 이때의 활약을 기반으로 흐루베슈는 발롱도르 6위를 기록한다.[7] 당시 레알마드리드와의 세미 파이널 경기만 보더라도 모든 경기의 기점이 칼츠의 발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8] 당시 서독 국가대표팀 명단이 매우 좋았는데 토니 슈마허,한스 피터 브리겔, 파울 브라이트너,칼 하인츠 푀르스터,베른트 푀르스터,리트바르스키, 클라우스 피셔, 흐루베슈, 한지 뮐러, 칼 하인츠 루메니게, 베른트 슈스터,만프레드 칼츠, 펠릭스 마가트, 알로프스, 슈틸리케,마테우스 임멜 등등 라인업이 굉장했다. 당시 서독대표팀은 국대에서 세번의 월드컵 결승에 진출 및 유로 우승을 달성한 강팀이었으며, 당시 시대를 장악했었던 대표적인 국가라 할 수 있다.[9] 분데스리가 통산 출장 1위는 칼 하인츠 쾨르벨(Karl Heinz Körbel)이며 프랑크 푸르트 월클럽맨 이기도 하다.[10] 당시 차범근은 루메니게,케빈 키건,칼츠,한스 피터 브링거, 파울브라이트너와 함께 뽑히며 그의 위상을 느끼게 해주었다.[11] B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