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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마이클 벨(Michael Bell) |
생년월일 | 1971년 3월 18일 |
사망 | 2008년 12월 14일 |
신장 | |
체중 | 108kg |
출생지 | 미국 뉴욕주, 포킵시 |
별명 | |
피니쉬 무브 | |
커리어 | UPW 헤비급 챔피언 1회 |
1. 개요
WWF ECW에서 마이크 "매드독" 벨 역으로 활동한 미국의 프로레슬러다. 마크 벨과 크리스 벨의 동생으로 2008년 다큐멘터리 '더 크고, 더 강해지고, 더 빨리'와 2015년 후속 다큐멘터리 '처방 깡패'의 감독을 맡았으며, 마이크 벨의 처방약에 의한 삶과 죽음을 탐구한다.2. 커리어
마이클 벨은 1971년 3월 18일 뉴욕주 포킵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체중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그는 스쿨버스에 탈 때마다 '퍼즐리'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역도와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벨은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힌 괴롭힘꾼들을 구타하여 '매드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결국 벨은 고등학교 축구팀의 주장이 되어 신시내티 대학교에 축구 장학금으로 등록했다. 벨은 무릎 부상으로 인해 야망이 끝날 때까지 디비전 1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대학 시절, 벨은 자신이 더 이상 축구팀에서 가장 크고 강한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하자 성장하면서 레슬링으로 전향했다. 그와 그의 형제들은 종종 텔레비전에서 본 동작을 모방하곤 했다. 그는 데이비드 슐츠와 폴 로마에게 훈련을 받았다.
벨은 1990년대 초 WWE(당시 세계레슬링연맹, WWF)에서 자버로 일했으며, 주력 TV 프로그램인 WWF RAW에도 출연했다. 당시의 많은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벨도 WWF의 경기별 하부 구조에서 일했지만, 승격과 지속적인 계약을 맺은 적은 없었다. 그는 때때로 동료 잡역부 토니 드비토와 팀을 구성하기도 했고, 벨이 데뷔할 때 자연재해에 패한 팀을 구성하기도 했다.
벨은 언더테이커, 레이저 라몬, 1-2-3 키드, 오웬 하트 등 다양한 레슬러들과 맞붙어 모두 패배를 당했다.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그는 스테로이드를 추가로 사용하여 다른 레슬링 선수들과 눈에 띄었지만, 이로 인해 약물 사용과 우울증이 더욱 증가했다. 이 영상은 다큐멘터리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빠르게'에 소개되었다. 이는 그의 동생이 미국의 처방약 남용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처방 깡패에서도 볼 수 있다. 회사가 전화를 끊었고 벨은 정규직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자 "액상 납 한 병, 나이퀼 한 병, 수면제 네 상자를 가지고 있었다. 강가로 내려가 철길 옆에 차를 세우고 모든 것을 가져갔다. 지금 당장 살아있어야 할 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살할 것임을 암시했다.
90년대 달리기 외에도 벨은 2001년 5월 17일 자크드/메탈의 WWF 경기 녹화 중 페리 새턴과의 사건으로 레슬링계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벨과 새턴은 모두 스냅마어 암드래그를 실패하여 새턴이 매트 헤드에 먼저 착륙했다. 새턴은 이러한 전문성 부족과 링 내 윤리에 대한 보복으로 벨을 합법적으로 공격했고, 한때 벨을 링 밖으로 던져 안전 매트에 직접 머리로 착지시켰다. 두 선수 모두 심각한 부상을 입지 않았고, 대부분의 관중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한 채 각자의 역할을 재개하고 계획대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새턴은 카약 뇌진탕을 앓고 모피라는 이름의 걸레와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해 경영진의 처벌을 받게 된다. 벨과 회사와의 마지막 경기는 2003년 10월 13일, 마크와 함께 팀을 이뤄 개리슨 케이드와 마크 진드락을 상대로 패전을 펼쳤다.
벨은 나중에 오리지널 ECW에서 일했다. 그는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미드 허드슨 시민 센터에서 공연했다. 2000년에는 스틸리 윌리, 맷 벤틀리, 볼스 마호니, 2001년에는 빌리 와일스 등과 맞붙었지만 모두 패배를 맛보았다.
이스턴 레슬링 얼라이언스에서 벨과 토니 드비토가 재회하여 파사굴라 조선소를 설립했다. 데이브 파워와 딘 파워로 구성된 태그 팀인 파워 컴퍼니에 끊임없이 패했다. 벨은 헤비급 챔피언십인 얼티밋 프로 레슬링에서 아론 베이커를 꺾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지옥의 종 역을 맡은 마크 형과 팀을 이뤄 '통증의 정의'와 '빅 타임'에 패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레슬링에서 킹 콩 번디에게 마이키 휘프렉 은퇴 쇼 도중 패배했다. 그는 ICW 노 홀드 바운드에서 사이코 샘과 톰 마르케즈에게 패배했다.
벨은 북미 레슬링 얼라이언스에서 피닉스에게 패배했다. WWA에서 데인저와 빅 달리셔스를 물리쳤고, 디아블로 산티아고와 팀을 이뤄 텍사스 아웃로 & 달리셔스를 물리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로니 가빈을 물리쳤다. 어썰트 챔피언십 레슬링에서 샤미르 후세인과 루이스 오티즈를 꺾었다. OVW에서 빅 배드 존과 태그 팀 아드레날린에게 패했다. 헬스 벨스는 조니 지터 앤 세븐에게 패했고, 벨스는 2,500달러 배틀 로얄에서 패했다. 디파이언트 프로 레슬링에서 그는 전 파트너였던 토니 드비토에게 패배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2007년 1월 27일 키드 비셔스에게 패배한 4코너 경기인 얼티밋 프로 레슬링에서였다.
2008년 12월 14일, 벨은 캘리포니아 코스타 메사의 재활 시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컴퓨터 키보드와 같은 물체를 청소하는 데 사용되는 압축 가스 제품인 더스트 오프에서 디플루오로에탄을 흡입하여 발생한 흡입 유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벨은 37세였다.
사망 후 그의 동생 크리스는 "그는 항상 레슬링을 하고 있었고, 개인 트레이너였으며, 항상 몸을 최대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레슬링을 탓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라이프스타일입니다." "다음 경기에 출전하려면 진통제가 몇 개 있고, 밤마다 술을 몇 잔 마셔야 하는데 감당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WWE는 성명을 발표하며 "벨 씨는WWE 계약을 맺은 적이 없지만, WWE는 벨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