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e1412><colcolor=#e7cb87> 출생 | 316년 혹은 336년 | |||||
로마 제국 일리리쿰 관구 판노니아 사바리아 | ||||||
사망 | 397년 11월 8일 (향년 60세 혹은 81세) | |||||
로마 제국 갈리아 관구 캉드 | ||||||
종교 | 기독교 | |||||
직업 | 군인, 성직자(주교) | |||||
재임 기간 | 제3대 투르대교구장 주교 | |||||
371년~397년 11월 8일 | ||||||
성인명 | 마르티노[한국가톨릭] 마틴[대한성공회] | |||||
축일 | 11월 11일[3] 10월 12일[4] | |||||
수호 | 거지, 군인, 기사, 재봉사, 포도주 양조업자, 숙박업자 | |||||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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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리우스 (338년~370년) | 마르티누스 (371년~397년) | 브리시우스 (397년~44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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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의 군인, 주교. 흔히 지명을 이름에 덧붙여서 투르의 마르티누스로 불린다.갈리아 지방의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자신이 믿고 있는 기독교 신앙과 맞지 않는다고 여겨 361년에 제대를 한 후 교회에 몸담았다. 371년에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어 갈리아 지방에 잔존해 있던 로마 다신교를 몰아내는 데에 큰 공헌을 했고, 프리실리아누스파[5]를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것에 반대했다. 현재 그의 묘가 안장되어 있는 투르의 생마르탱 성당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떠나기 전에 들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순례지로 손꼽힌다.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그리고 루터교회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2. 성 마르티누스의 망토
자신의 망토를 자르는 성 마르티누스 (De Heilige Martinus van Tours snijdt zijn mantel in tweeën) 안토니 반 다이크 作, 벨기에 신트마르티누스 성당 |
이 일화를 기점으로 마르티누스의 망토는 귀중한 성유물이 되어 그의 사후 마르무티에 수도원에 위치한 프랑크 왕국의 메로베우스 왕조 군주 기도실에 고이 보관되었고, 국왕이 전투에 임할 때나 서약을 맹세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이후 망토는 행방이 묘연하다가 679년 왕실 보물고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시간이 흘러 798년경 카롤루스 대제가 생드니 대성당의 수도자들에게 망토를 양도해 발두아즈에 있는 마을인 뤼자르슈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