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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00:07:36

마라트 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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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P 투어 세계 랭킹 1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피트 샘프러스
2000.09.11. ~ 2000.11.19. (10주)
마라트 사핀
2000.11.20. ~ 2000.12.03. (2주)
구스타부 쿠에르텡
2000.12.04. ~ 2001.01.28. (8주)
구스타부 쿠에르텡
2000.12.04. ~ 2001.01.28. (8주)
마라트 사핀
2001.01.29. ~ 2001.02.25. (4주)
구스타부 쿠에르텡
2001.02.26. ~ 2001.04.01. (5주)
구스타부 쿠에르텡
2001.02.26. ~ 2001.04.01. (5주)
마라트 사핀
2001.04.02. ~ 2001.04.22. (3주)
구스타부 쿠에르텡
2001.04.23. ~ 2001.11.18. (30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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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US 오픈 로고.svg
역대 US 오픈 남자 단식 우승자
1999년
파일:미국 국기.svg 안드레 애거시
2000년
파일:러시아 국기.svg 마라트 사핀
2001년
파일:호주 국기.svg 레이튼 휴이트

파일:호주 오픈 로고.svg
역대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우승자
2004년
파일:스위스 국기.svg 로저 페더러
2005년
파일:러시아 국기.svg 마라트 사핀
2006년
파일:스위스 국기.svg 로저 페더러

}}} ||
파일:사핀.jpg
마라트 사핀
(Marat Mikhailovich Safin/Мара́т Миха́йлович)
생년월일 1980년 1월 27일 ([age(1980-01-27)]세)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국적
[[러시아|]][[틀:국기|]][[틀:국기|]]
프로데뷔 1997년
신장 193cm (6 ft 4 in)[1]
사용 손 오른손 (두손 백핸드)
ATP 싱글 랭킹 최고 1위
ATP 더블 랭킹 최고 71위
개인전 통산 성적 422승 267패(61.3%)
개인전 타이틀 획득 15회
통산 상금 획득 14,373,291

1. 개요2. 커리어3. 선수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여담6. 참고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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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타타르 계 출신 테니스 선수로서 여동생인 디나라 사피나와 함께 테니스 역사상 최초로 남매가 모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를 해본 놀라운 기록을 가진 선수이다. 어머니가 테니스 코치로서 남매를 어릴 때부터 테니스 영재 교육을 시켜서 남매 모두 시니어 프로 테니스 선수로서 성공시킨 케이스이다. 사핀은 1997년에 프로에 데뷔하였는데 비슷한 나이대의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 레이튼 휴이트, 로저 페더러, 앤디 로딕 등과 함께 세계 랭킹 1위를 놓고 2000년대 초반에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2. 커리어


그랜드슬램 대회 : 우승 2회 / 준우승 2회
연도 호주 프랑스 윔블던 US
1998 불참 4라운드 1라운드 4라운드
1999 3라운드 4라운드 불참 2라운드
2000 1라운드 8강 2라운드 우승
2001 4라운드 3라운드 8강 4강
2002 준우승 4강 2라운드 2라운드
2003 3라운드 불참 불참 불참
2004 준우승 4라운드 1라운드 1라운드
2005 우승 4라운드 3라운드 불참
2006 불참 1라운드 2라운드 4라운드
2007 3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2라운드
2008 2라운드 2라운드 4강 2라운드
2009 3라운드 2라운드 1라운드 1라운드



기타 대회

3. 선수 경력

사핀은 2000년 US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우승 후보로 세계 랭킹 4위에 올라있던 테니스 황제 피트 샘프라스를 상대로 3-0(6-4, 6-3, 6-3)의 완승을 거두고 우승하면서 20대 초반의 라이벌 중에 가장 먼저 첫번째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였고 2000년에만 US 오픈 남자 단식 우승,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8강 진출,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 우승 2회, 준우승 1회,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 우승 4회, 준우승 1회를 기록하면서 2000년 11월에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라갔다. 사핀의 세계 랭킹 1위 달성은 예브게니 카펠니코프[4]에 이어 러시아 테니스 선수로는 두번째였다.

2002년 호주 오픈에서는 미하일 유즈니, 피트 샘프라스, 토미 하스를 꺾으며 결승에 올랐으나 결승전에서 토마스 요한슨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곧 휴이트와 페레로, 페더러와 로딕도 경쟁에 가세하여 투어 타이틀 우승과 세계 랭킹 1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며 이 경쟁은 테니스 황제 자리에 오르는 페더러의 전성기가 2004년에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된다.[5] 페더러가 테니스 황제의 전성기에 접어들자 로딕과 휴이트, 사핀과 페레로 모두 라이벌에서 페더러의 호구로 전락

사핀은 그랜드슬램 대회의 경우 2000년 US 오픈 남자 단식과 2005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였고 2002년과 2004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특히 이미 전성기에 접어들어 거의 무적의 포스를 내뿜던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를 2005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서 무려 4시간 30분에 걸친 혈투 끝에 3-2(5-7, 6-4, 5-7, 7-6<8-6>, 9-7)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하여 결승전에서 레이튼 휴이트마저 3-1(1-6, 6-3, 6-4, 6-4)로 격파하고 우승을 따냈을 때가 마라트 사핀 테니스 인생의 정점이었다.

2005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서 사핀이 페더러를 꺾은 것이 사핀에게 더욱 의미가 깊었는데 전년도인 2004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사핀이 페더러에게 세트 스코어 0-3(6-7<3-7>, 4-6, 2-6)으로 완패하며 놓쳤던 우승을 경기력 최상인 페더러를 꺾으면서 되찾았기 때문이다. 이 경기는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꼽히는데, 역대 최강자인 페더러가 최전성기에 최상의 컨디션에서 하드 코트 및 잔디 코트에서 패배한 유일한 경기이기 때문이다. 페더러는 최전성기인 2004년~2007년, 이 경기를 제외하고 하드 코트 및 잔디코트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사핀은 컨디션 최상일 때의 경기력은 전성기의 페더러마저 넘어선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멘탈 문제로 기복이 심하다는 약점을 커리어 종료시까지 해결하지 못하였고 도리어 2005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우승을 정점으로 2009년 마스터스 1000 파리 오픈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4년이 넘는 기간동안 2008년 윔블던 남자 단식 4강 진출과 겨우 3번의 ATP 투어 남자 단식 결승전 진출 및 준우승에 그칠 정도로 빠른 하향세를 보여주며 겨우 만 29세의 나이로 은퇴하게 된다.

사실상 커리어 마지막 4년간은 20대 후반의 세계 랭킹 1위를 달성하였던 선수답지 않게 부진하였다. 사핀의 전성기는 1999년 말부터 2005년 초반까지인데 멘탈 문제로 기복이 심한 문제는 심지어 이 전성기 기간조차 심각한 편이어서 전성기 기간 중에도 성적의 오르내림이 엄청나게 심했다.

1999년 말부터 전성기가 시작되어 2000년 말까지 성적이 굉장히 좋다가 2001년 초반부터 중반까진 부진에 빠졌고 2001년 후반부터 2002년 말까지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가 2003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손목 부상을 당하면서 1년간 극도의 부진에 다시 빠졌다. 2004년 호주 오픈 결승전에 진출하는 등 2004년 초반 다시 성적이 좋아졌다가 중반에 다시 부진, 2004년 후반부터 2005년 초반까지 다시 전성기 실력을 회복한 것이다. 그 후 그대로 하향세를 맞으면서 4년 후 은퇴하게 된다.

그래서 사핀이 2009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주요 성적은 2005년 초반까지 쌓은 성적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전성기 중간중간에 성적이 심하게 부진한 기간이 있어서 사핀의 명성에 비해 누적된 통산 커리어 성적은 부족한 편이다. 그럼에도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 2회, 준우승 2회, 4강 진출 3회, 8강 진출 2회,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ATP 마스터스[6]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 5회, 준우승 3회, 4강 진출 1회, 여기에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 8회 준우승 7회를 기록하였던 세계적인 선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같은 시기 등장했던 앤디 로딕, 여자 선수지만 같은 국적에 플레이스타일이 닮은 마리아 샤라포바처럼 마라트 사핀도 큰 체격에 힘을 앞세운 시원시원한 슬러거 스타일이다.

굉장히 강력한 서브를 갖추었고 포핸드 또한 강력하다. 네트 플레이도 잘 하는 편.

같은 시대에 비견되던 앤디 로딕보다도 백핸드 스킬이 좋아서 웬만한 탑랭커들 상대로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파워풀한 스트로크가 강점. 다만, 로딕보다 나을 뿐이지 이 선수도 멘탈이 약점에 성질이 엄청 불같다.

5. 여담


경기중 엄청나게 라켓을 작살내는 라켓 스매셔로 유명하다. 1999년에는 1년동안 무려 48개의 라켓을 부숴먹었다.

사핀의 라켓 스매싱 하이라이트는 2001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인데, 사핀이 세계 랭킹 1위를 하던 그때 32강전(3회전)에서 만난 파브리스 산토로(프랑스) 상대로 시작부터 0:2로 뒤지다가 죽자고 경기해서 4세트에 베이글까지 먹여서 세트스코어 2:2를 만들었으나 5세트에 사핀이 1:6으로 산토로에게 탈탈 털리면서 32강전(3회전) 광탈을 당했었다. 이날 사핀은 경기중에 라켓을 몇개나 집어던지고 빡쳐서 경기후 프레스 컨퍼런스도 안하고 나가버렸을 정도.

2016년에 러시아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사핀이 내놓은 대답을 보면 왜 사핀이 재능에 비해 꾸준하지 못하고 그렇게 빠르게 기량이 하락했는지 알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가지고 태어난 재능에 비해 프로의식이 부족했던 선수.
"제가 처음 선수 생활 했던 그 세대들이 그립네요. 그 친구들은 아마도 테니스 선수하면서 함께 어울리고 논 마지막 세대일 것입니다. 테니스는 우리에게는 록앤롤과 같은 대상이었어요. 래프터쿠에르텡, 라펜티와 필리포시스까지...우리는 경기 전이나 끝난 뒤 함께 밤을 지새며 놀았어요. 마치 가족처럼. 지금 선수들은 너무 프로 의식이 강해요. 아이들이 너무 진지하단 말이죠!!" #
2016년 테니스 명예의 전당 헌액식 인터뷰에서

6. 참고 링크



[1] 지금까지 세계 1위를 경험했던 선수들 중 가장 장신이었는데 같은 나라의 다닐 메드베데프가 2022년 2월 28일자 세계랭킹에서 1위에 오르게 되면서 그 타이틀은 내려놓게 되었다..[2] 2009년에 ATP 월드 투어 파이널로 명칭 변경.[3] 2009년에 마스터스 1000 시리즈로 명칭 변경.[4] 1999년에 세계 랭킹 1위까지 기록해본 선수로 1995년부터 2001년까지가 전성기였는데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우승 2회, 준우승 1회, 4강 진출 3회, 8강 진출 7회를 달성하였으며 1997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준우승,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도 준우승 5회, 4강 진출 13회를 기록하였고, 2000 시드니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금메달,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 23회, 준우승 13회를 달성한 세계적인 선수였다.[5] 재미있는 것은 늙은 안드레 애거시도 이 젊은 20대 초반의 선수들의 경쟁에 참여하여 만 32세에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기록하고 역대 최고령 세계 랭킹 1위 기록을 찍을 정도였다. 참고적으로 76년생으로 애거시와 80년대 초반 태생의 선수들 사이의 낀 세대인 구스타보 쿠에르텐도 이 경쟁의 참여자였다.[6] 현재의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대회의 2004~2008년 사이의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