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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17:49:02

마닐라 필름 센터 붕괴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마닐라 필름 센터.jpg
사고가 일어났던 마닐라 필름 센터
1. 개요2. 이멜다 마르코스의 야욕3. 사고의 전개4. 사고 이후

1. 개요

Gumuhong Bubong ng Manila Film Center
Manila Film Center Collapse

1981년 11월 21일 필리핀 마닐라의 마닐라 필름 센터 공사 중에 일어난 붕괴 사고.

2. 이멜다 마르코스의 야욕

사치로 유명했던 이멜다 마르코스칸 영화제 같은 세계적인 대규모 영화제가 마닐라에서도 열려야 마닐라가 영화 산업의 중심지가 된다는 생각에 대규모 영화제를 열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당시 필리핀에는 영화 필름 보관소가 없었으며 마닐라에선 대규모 영화제를 펼칠 건물이 딱히 없었다는 점이다. 이에 이멜다는 자기 맘대로 예산을 배정해 대충 빨리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1981년 10월 이멜다는 2500만 달러에 달하는 정부 예산을 배정하고 내년 1월 18일에 열릴 영화제에 맞춰 완공하는 걸 목표로 극장 건립을 추진했다. 설계는 플로일란(Froilan Hong)이 맡았으며 건물은 그리스 아테네파르테논 신전을 모티브로 해 웅장하고 거대하게 지을 예정이었다.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내에 재빨리 건물을 완공하기 위해 4천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투입됐는데 대다수는 지방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올라온 노동자들이었다. 24시간 동안 3교대로 돌아가며 공사를 했는데 짧은 기간 내에 엄청난 크기의 건물을 지어야 하다 보니 공사는 사실상 날림으로 진행됐다. 1달 하고도 보름이 걸릴 로비 공사를 억지로 빠르게 72시간만에 끝내는 등 공사는 너무 빠르게, 그리고 너무 위험하게 진행됐다.

3. 사고의 전개

1981년 11월 17일 새벽 3시경 사고가 일어났다. 인부들이 비계를 비롯한 가설물 위에서 시멘트를 발라 가면서 공사하는 가운데 가설물과 지붕이 무너졌다. 인부들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시멘트 더미와 가설물 더미에 깔려 버렸다.

하지만 이멜다에게 이러한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멜다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도 9시간이 지난 끝에야 구조대원이 들어가는 걸 허용했다. 구조대원들은 뒤늦게 부상자를 치료하고 시신을 수습했지만 때는 엄청 늦은 상황이었다. 시신들 위로 뿌려진 시멘트는 이미 굳었고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마르코스 정권은 사고를 최대한 축소해서 보도했으며 당시 인부 몇 명이 공사현장에서 일했는지조차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다. 일각에서는 시신을 숨기려고 콘크리트 속에 시신을 파묻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소 169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4. 사고 이후

사고 이후 세사르 비라타 총리는 영화제에 쓰일 예정이었던 돈 중 500만 달러를 승인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멜다 마르코스는 따로 펀드를 만들어 돈을 더 모아야 했다.

대형 참사가 터지자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이멜다 마르코스를 크게 비판했다. 그럼에도 굳은 시멘트 속에서 시신들을 치운 뒤 공사를 계속 진행했다. 언론에서 현장을 조사하지 못하도록 경찰이 현장을 24시간 감시했고 그런 날림공사 끝에 영화제가 열리기 15분 전에 마닐라 필름 센터는 억지로 공사를 끝냈다. 필름 센터엔 영화관 6곳, 시사회장 6곳, 그리고 필름 보관소 등이 들어섰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인도에서 주문 제작한 공작 깃털로 장식된 드레스와 온갖 금은보화를 걸친 채 극장 준공 파티를 열었으며 제1회 마닐라 국제 영화제도 1982년 1월 18일에 예정대로 열렸다. 영화제는 12일간 열리면서 어느정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이멜다가 직접 영화제에 참여해 참석자들에게 고급 와인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하지만 필름센터는 공사가 끝난 거지, 시멘트랑 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천등을 통해 아직 다 굳지 않은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가린 채 영화제를 진행했다.

그러나 마닐라 국제 영화제의 위상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이후 마닐라 필름센터는 재정문제가 잇따랐다. 이를 해결하려고 안에서 소프트 포르노 영화제까지 열었으나 소용없었다. 마르코스가 대통령직을 사퇴한 뒤엔 재정문제가 더 심각해졌고 1991년에 일어난 지진과 노후화 등으로 건물이 부서졌음에도 고쳐지지 않았다.

1996년 마르코스는 마닐라 필름센터 공사 당시 사고가 있었음을 인정했지만 사망자는 고작 7명밖에 없었다고 말도 안 되게 축소해서 말했다.

극장은 2001년 12월이 되어서야 어메이징 쇼 제작진에게 팔렸지만 이마저도 2009년에 임대가 만료됐다. 2012년 11월에 다시 같은 제작진이 임대하긴 했으나 여전히 건물에 대한 이미지는 굉장히 나쁘다.

현재 마닐라 필름센터는 필리핀 문화센터(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 줄여서 CCP) 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필리핀에선 해당 건물에서 사고 당시 죽은 사람들의 귀신이 보인다는 도시전설이 돌고 있다. 때문인지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들 사이서도 심령스팟 소리를 듣고 있다.

영국의 건축가이자 작가인 데얀 수디치(Deyan Sudijic)는 이 사고를 두고 '마르코스 독재정치가 10년 뒤 끝나리란 걸 알린 예고' 라고 말했다.

이 사고는 이멜다 마르코스의 사치와 무지, 그리고 무자비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멜다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나 영화에는 사고 당시 영상이 나오기도 한다.

2015년엔 해당 사고와 도시전설을 다룬 공포영화 "비극의 극장(Tragic Theater)"이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