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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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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17대 천황
리추 천황
履中天皇
파일:리추 덴노.jpg
<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출생 336년
사망 405년 4월 29일 (향년 68-69세)
능묘 모즈노미미하라노미나미능 (百舌鳥耳原南陵)
재위기간 제17대 천황
400년 3월 12일 ~ 405년 4월 29일[1]
427년~432년[2]
421년 이전~438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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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贊)?
한풍 시호 리추 천황(履中 天皇, 이중 천황)
화풍 시호 오오에노이자호와케노미코토
(大兄去来穂別尊)
(大江之伊邪本和気命)
(大兄伊射報本和気命)
부모 부친 닌토쿠 천황(仁徳天皇)
모친 이와노히메노미코토(磐之媛命)
배우자 쿠로히메(黒媛)
쿠사카노하타비(草香幡梭皇女)
자녀 이와사카오리치노헤노오시하노미코(磐坂市辺押磐皇子)
미마노미코(御馬皇子)
아오미노히메미코(青海皇女)
나카시노히메미코(中磯皇女)
황거 이와레노와카자쿠라노미야(磐余稚桜宮) }}}}}}}}}

1. 개요2. 일생3. 기타4. 가족관계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제17대 천황. 화풍 시호는 오오에노이자호와케노미코토(大兄去来穂別尊)이다. 본명은 이자호.[4] 중국 기록에 나오는 왜5왕 중 한 명으로 추정되며, 특히 왜왕 찬(贊)과의 연관성이 강하게 지적된다.

2. 일생

성군으로 추앙받았던 제16대 닌토쿠 천황의 장자로, 어머니는 카츠라기노 소츠히코(葛城襲津彦)의 딸인 이와노히메노미코토(磐之媛)였다.

닌토쿠 천황 재위 87년(399년) 1월, 부친 닌토쿠 천황이 붕어한 후, 닌토쿠 천황의 2남 스미노에나카 황자(住吉仲皇子)가 천황이 될 예정인 오호사자키노미코토 황자를 죽이려고 했다. 그는 형의 약혼자인 쿠로히메를 형의 이름을 빌려 강간했고, 일이 발각되는 게 두렵다는 이유로 궁궐을 포위한 뒤 형을 불태워 죽이려고 했다. 이에 오호사자키노미코토 황자는 닌토쿠 천황의 3남 미즈하와케 황자(瑞歯別皇子, 훗날의 한제이 천황)에게 명령하여 정변을 일으키려 했던 스미노에나카 황자를 주살하게 하고, 이듬해인 400년 2월에 즉위했다.

재위 2년(401년), 소가노 마치(蘇我満智), 모노노베노 이코후츠(物部伊莒弗), 헤구리노 츠쿠(平群木菟), 츠부라노 오키미(円大使主) 등을 국정에 참여시켰다.

재위 4년(403년) 8월, 여러 국에 구니노후미히토(国史, 국사)라 불리는 서기관을 설치하여, 국내의 정세를 보고하도록 했다.

재위 6년(405년) 정월에 구라노쓰카사(蔵職, 장직)와 구라베(蔵部, 장부)를 일으켰고, 같은 해 3월 병으로 인해 와카자쿠라 궁(稚桜宮)에서 붕어했다. 사망 당시 나이는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70세, 《고사기》에는 64세,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에는 67세로 적혀 있다.

사후 모즈노미미하라노미나미능(百舌鳥耳原南陵)에 묻혔다.

3. 기타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따르면 리추 덴노와 한제이 덴노의 재위기간은 매우 짧은 편이었고, 이후 와케계의 시호는 사라진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리추 천황의 재위기간은 400년 3월 12일~405년 4월 29일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길게 과장되어 나오는 이전 천황들과 달리 100년 동안 정상적이다 못해 짧은 치세의 시기를 보이게 된다. 학계에서는 제26대 게이타이 덴노의 재위 후기부터 기년이 정상화된 것으로 보며, 5세기 대왕들도 기년 인상과 조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사기》(古事記)에는 그가 '임오년 정월 3일'에 64세의 나이로 붕어했다는 기사가 있어 이 기사 내용이 맞다면 그의 재위기간은 427년 ~ 432년이 되고, 추산하면 태어난 해가 369년이 된다.[5]

리추 천황이 송서의 왜왕 찬과 동일인물이 맞을 경우 513/521년 이전~438년 재위가 된다. 학계에서는 5세기에도 기년 인상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왜5왕이 리추 천황~유랴쿠 천황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에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5년 재위보다는 송서의 재위기간이 더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보며, 유랴쿠 덴노 사후 제2왕조가 몰락하며 한동안 공위기가 있었고, 최종적으로 526년 오미(近江)의 호족이었던 게이타이 덴노가 야마토(大倭)에 도읍하여 제3왕조 초대 대왕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세이네이~부레쓰는 가공인물이거나,[6] 실재했더라도 신라 석씨 왕조처럼 유랴쿠 재위 후기에 대왕이 아니라 왕의 일원으로서 병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송서의 재위기간에 따르면 리추 덴노는 17년 이상, 많이 잡으면 25년 이상 재위했다. 따라서 일본서기 기록대로 64세에 즉위했을 가능성은 매우 떨어진다. 송서에 따르면 한제이 덴노는 리추 덴노의 형제이며, 형이 오래 재위해서인지 5년밖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망 당시 리추 덴노가 제법 고령이었고, 이 때문에 한제이 덴노가 고령에 즉위하여 오래 재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처자식에 대한 기록이 상당히 부실한 편이다. 황비 쿠로히메와의 사이에서 아들 2명, 황후 쿠사카노 하타비 황녀와의 사이에서 딸 1명이 있고 후토히메노 이라츠메와 타카츠루노 이라츠메 자매를 빈으로 두었다. 송서에 따르면 재위기간도 상당히 길고 제법 오래 산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많은 처자식이 있었는데 7~8세기에 기록할 당시 대부분이 실전된 것이 아닌가 싶다.

쿠로히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이와사카오리치노헤노 오시하 황자와 미마노 황자는 유랴쿠 덴노가 즉위할 당시 모두 살해당했다.[7] 이와사카(磐坂)는 현 주고쿠 시마네현 마츠에시(松江市)에 속한 지역으로, 이치노헤노 오시하 황자가 주고쿠 일대의 칭호를 가진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와사카 일대와 모종의 인연이 있던 모양이다. 이치노헤노 오시하 황자의 아들인 닌켄 덴노센카 덴노는 유랴쿠 덴노의 대숙청에서 살아남아 하리마(播磨) 일대에 지내다 유랴쿠 사후 긴키에 돌아와 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8]

리추 덴노의 왕후 쿠사카노 하타비 황녀가 오진 덴노의 왕녀인 하타비노 와카이라츠메와 동일인물이 맞는지 의문이 있다. 일본서기 오진 덴노 272년 3월 3일조 히무카노 이즈미노 나가히메의 자식은 아들 2명만 서술되어 있으며, 오진 덴노와 리추 덴노의 나이를 비롯해 여러모로 의문점이 많다. 쿠사카노 하타비 황녀는 유랴쿠 덴노의 왕후인 쿠사카노 하타비 왕녀(草香幡梭王女)와 동명이인이며, 나카시 황녀는 사서에서 리추 덴노의 딸이라 하는가 하면 인교 덴노의 딸(長田大娘皇女)이라고도 하고, 인교 덴노에게는 長田大娘皇女라는 자식이 기록에 없는 데다 오시사카노 오오나카츠히메(忍坂大中姫)의 자식들만 기록에 남아있기 때문에 출신이 불확실하다. 쿠사카노 하타비 황녀가 리추 덴노의 왕후이고 나카시 황녀가 리추 덴노의 딸이라는 건 오기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유랴쿠 덴노가 즉위할 당시 쿠로히메의 아들들을 죽인 걸 고려하면 리추 덴노의 실제 왕후는 쿠로히메였던 걸로 보인다. 쿠사카(草香)는 카와치(河內)에 속한 지명을 뜻하기 때문에 쿠사카노 하타비 왕녀는 쿠사카 일대 호족과 관련된 인물로 보인다.[9]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안코 덴노는 동생 유랴쿠 덴노닌토쿠 덴노와 히무카노 카미나가히메(日向髪長媛)의 딸인[10] 쿠사카노 하타비 왕녀(草香幡梭王女)와 혼인시키고자 하였다.[11]

이를 위해 오빠인 오호쿠사카 황자(大草香王子)에게 중매를 요청하였고, 오호쿠사카 황자는 흔쾌히 받아들였으나 중개자였던 네네노 오미(根臣)가 오호쿠사카 황자의 보물을 탐내 거절했다 거짓말했다. 그러자 안코 덴노는 오호쿠사카 황자를 죽이고 그 아내인 나카시노 히메노 미코토(中蒂姫命)를 아내로 취했고, 이에 둘의 아들인 마요와 왕(眉輪王)에게 살해당했다.[12]

안코 덴노가 죽자 유랴쿠 덴노는 마요와 왕을 비롯해 친형(!)인 야츠리노 시로히코 황자(八釣白彦皇子)와 사카이노 쿠로히코 황자(坂合黒彦皇子),이치노헤노 오시하 황자, 미와노 황자를 죽이고 대왕이 되었으며, 즉위한 뒤 쿠사카노 하타비히메를 왕후로 삼았다.[13]

유랴쿠 덴노로 비정되는 왜왕 무(武)는 578년 송(宋)에게 보낸 국서에서 577년 아버지와 형을 갑작스레 잃었다고 언급한다. 따라서 인교 덴노는 안코 덴노에게 생전 양위한 것으로 보이며, 모종의 이유로 둘이 갑작스레 죽어 동생인 유랴쿠 덴노가 즉위한 것으로 보인다. 인교 덴노와 안코 덴노가 비정상적으로 사망한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이기에, 나카시히메 사건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어도 안코 덴노가 살해당하고 유랴쿠 덴노가 형제들과 리추 덴노의 아들들을 숙청하고 즉위했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4.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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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서기[2] 고사기. 고사기에서는 리추가 432년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세이네이 덴노~부레쓰 덴노까지의 27년이 삭제된다. 이들은 가공인물이거나, 실재했더라도 대왕 가능성이 낮다고 여겨지는 인물들이다.[3] 송서 왜왕 찬(贊)과 동일인물이 맞을 경우. 413년 조공한 정체불명의 왜왕도 찬일 경우 413년 이전~438년이 된다.[4] 일본서기에서는 이자호를 리추 천황이라 기록했지만, 일본에서 천황 호칭은 덴무 천황기부터 사용했고 그 이전까지는 오오키미(大王)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사서에서 천황이라 기록된 것은 천황 호칭을 사용한 이후인 7세기에 선대 대왕들을 전부 천황으로 추존했고, 추존한 명칭을 712년 편찬된 고사기와 720년 편찬된 일본서기에 그대로 사용해서 일어난 현상이다. 따라서 '리추 천황'은 후세에 추존된 명칭으로, 조선 왕조에서 이성계의 4대조까지 추존하며 묘호와 대왕호를 지어준 것에 가깝다. 생전에는 '이자호 대왕'에 가까웠을 듯하다.[5] 이 경우 실제 대왕이 맞는지 논란이 있는 세이네이~부레쓰 덴노까지 27년의 재위기간이 삭제된다.[6] 특히 세이네이와 부레쓰가 가공인물 논란이 있다.[7] 유랴쿠 덴노가 대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많은 즉위 당시부터 재위기간 내내 많은 호족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런 호족 대숙청에 말려들어 같이 죽은 것으로 보인다.[8] 닌켄과 센카가 대왕이 맞는지는 논란이 있으나 타시라카 황녀가 유랴쿠의 외손녀이자 닌켄의 딸임을 고려하면 닌켄이 적어도 긴키 일대 왕들의 일원으로서 실재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9] 고대 야마토에서는 일정 이상의 세력을 가진 호족도 왕이라 불렸으며 사서에서도 그 때문에 황자-황녀와 왕자-왕녀의 호칭이 뒤섞여서 나타나는 걸 고려하면 호족의 딸이라도 충분히 왕녀로 불릴 수 있다.[10] 닌토쿠의 딸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정말 닌토쿠의 딸이 맞는지 불확실하다. 히무카(日向)는 규슈 남동부 미야자키현의 고어이기 때문에 규슈 히무카와 관련된 인물로 보인다. 센고쿠 시대 히무카 씨(日向氏)는 야마나시현을 근거지로 둔 무사 집안으로 고대 히무카 호족과 별개의 가문이다.[11] 어머니와 딸의 본관(本貫)이 다른데, 고대 야마토 일대의 호족은 우지(氏)와 소재지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 본관과 집성촌이 다른 사례를 생각하면 된다.) 규슈 히무카 씨족의 일파가 카와치(河內)에 소재해 쿠사카와 연관되어 있었을 수도 있고, 초기 왜 대왕가의 사서에 자주 등장하는 가계 왜곡을 고려하면 둘이 남남인데 묶여서 기록된 것일 수도 있다.[12] 안코 덴노는 사서에서 처자식에 대한 기록이 계보도 오락가락하는 나카시 황녀 하나밖에 없다. 송서에 따르면 15년 재위했기 때문에 처자식에 대한 기록이 대거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13] 그러나 쿠사카노 하타비 왕녀는 사서에 따르면 자식이 없었다. 자식이 정말 없었을 수도 있고, 후세 사서를 편찬할 당시 계보가 실전되었을 수도 있다. 유랴쿠 덴노도 몇몇 자식들이 친자식이 맞는지 의문시되는 등 가족관계 기록이 은근히 부실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