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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05:39:22

류보슬라프 페네프

불가리아의 축구 감독
파일:Lyuboslav Penev1966.jpg
이름 류보슬라프 페네프
Lyuboslav Penev | Любослав Пенев
본명 류보슬라프 믈라데노프 페네프
Lyuboslav Mladenov Penev
Любослав Младенов Пенев
출생 1966년 8월 31일 ([age(1966-08-31)]세)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톨부힌
(現 불가리아 도브리치)
국적
[[불가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1]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PFC CSKA 소피아 (1984~1989)
발렌시아 CF (1989~199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5~1996)
SD 콤포스텔라 (1996~1998)
RC 셀타 데 비고 (1998~1999)
PFC CSKA 소피아 (2001~2002)
PFC 로코모티프 플로브디프 (2002)
감독 PFC CSKA 소피아 (2009~2010)
PFC 리텍스 로베치 (2010~2011)
불가리아 대표팀 (2011~2014)
보테프 플로브디프 (2014)
PFC CSKA 소피아 (2015)
PFC 리텍스 로베치 (2016)
PFC 리텍스 로베치 II (2016)
발렌시아 CF 메스타야 (2017)
PFC CSKA 소피아 (2019)
FC 트사르스코 셀로 소피아 (2020~2021)
PFC CSKA 소피아 (2021)
FC 트사르스코 셀로 소피아 (2021)
FC CSKA 1948 소피아 (2022)
FC 헤바르 파자르지크 (2023~2024)
PFC 로코모티프 플로브디프 (2024)
국가대표 파일: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62경기 14골 (불가리아 / 1987~1998)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감독 경력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4.1.2. 개인 수상
4.2. 감독
4.2.1. 대회 기록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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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가리아축구선수 출신 감독.

1980~90년대 불가리아와 라리가를 대표하는 공격수 중 한 명으로 라리가에서 일곱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달성했으며 라리가 역대 불가리안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이다.[2]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84년 18세의 나이에 자국수도를 연고로 하는 PFC CSKA 소피아에서 데뷔했다. 그곳에서 다섯 시즌 동안 라체자르 파네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트리폰 이바노프, 에밀 코스타디노프 등과 함께 리그 정상급 활약을 펼치며 클럽의 불가리아 파르바리가 우승 2회, 불가리아컵 우승 4회 등을 이룩했다. 특히 1988년에는 1987-88 시즌과 1988-89 시즌 두 시즌 연속으로 리그 득점 순위 2위에 이름을 올리는 맹활약에 힘입어 불가리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2.1.1. 발렌시아 CF

그렇게 자국 리그를 평정한 페네프는 1989-90 시즌 스페인 라리가발렌시아 CF에 합류한다. 이적료는 £1M.

별다른 적응기 없이 첫 시즌부터 리그 두 자릿수 득점(13골)을 기록하며 팀이 레알 마드리드 CF와 우승 경쟁 끝에 리그 2위를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즌에는 팀의 주포임에 불구하고 미드필더인 페르난도 고메스(10골)보다도 적은 득점(7골)을 기록하는 부진을 겪었다.[3]

1991-92 시즌에는 리그에서 13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리그 득점 순위 Top 10에 이름을 올렸고 코파 델 레이에서도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3골을 뽑아내는 등의 활약을 펼치며 부활을 알렸다.

1992-93 시즌에는 절정의 기량으로 리그에서만 20골을 기록하며 베베투(29골), 이반 사모라노(26골)에 이어 리그 득점 순위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994년 1월에 발병한 고환암으로 인해 1993-94 시즌 후반기부터 1994-95 시즌 전반기까지 약 8개월 가량 결장했다.

장기 부상에서 복귀한 뒤 리그 25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넣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코파 델 레이에서는 무려 7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을 견인했다.

발렌시아에서의 통산 스탯은 197경기 84골.

2.1.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5-96 시즌을 앞두고 발렌시아와 재계약 없이 FA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합류했다.

데뷔전인 리그 1R 레알 소시에다드전부터 멀티골을 터뜨렸고 이후 4R 스포르팅 히혼전까지 4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하며 이적하자마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에도 디에고 시메오네, 키코, 밀린코 판티치, 호세 루이스 카미네로 등과 함께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주포로서 구단 사상 첫 리그와 코파 델 레이 더블에 크게 공헌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통산 스탯은 42경기 20골.

2.1.3. SD 콤포스텔라

1995-96 시즌 종료 후 £1.8M에 SD 콤포스텔라로 이적하였고 그곳에서 팀의 주포이자 에이스로 활약하며 두 시즌 연속 리그에서 16골을 터뜨리는 활약을 펼쳤지만 끝내 1997-98시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4] 참고로 콤포스텔라는 이 시즌 강등된 후로 2023년 현재까지 라리가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콤포스텔라에서의 통산 스탯은 71경기 34골.

2.1.4. RC 셀타 데 비고

1997-98 시즌 종료 후 강등된 팀을 떠나 £1.8M에 러시아의 짜르 알렉산드르 모스토보이가 이끄는 셀타 비고에 합류했다. 팀의 주포로서 리그 32경기에 나서 14골을 기록하며 셀타 비고가 UEFA컵 티켓을 따내는 데 일조했다.

셀타 비고에서의 통산 스탯은 39경기 18골.

이후 한 시즌 만에 팀을 떠나 잠정 은퇴를 했으나 휴식기를 가진 뒤 친정팀인 CSKA 소피아로 복귀했으며 PFC 로코모티프 플로프디프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1987년 5월 20일에 치러진 룩셈부르크와의 UEFA 유로 1988 예선 경기에 선발 출전하면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1988년부터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기 시작했고 3월 23일에 치러진 체코와의 친선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추가골을 터뜨리며 A매치 6경기 만에 데뷔골을 기록했다.

거의 매시즌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는 클럽에서의 활약과 달리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과 UEFA 유로 1992 예선에서는 이렇다 할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1994 미국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에서는 3골 1도움으로 그래도 어느정도 1인분은 하면서 불가리아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보탬이 되었다.

하지만 1994 미국 월드컵을 5개월여 앞두고 고환암 진단을 받으면서 월드컵 본선 무대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인 파라과이전에 선발 출전하면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데 성공했다. 조별리그 3경기 중 2경기에서 주전으로 뛰었으나 별다른 활약 없이 대회를 마쳤고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화려한 클럽 커리어와 대비되는 초라한 퇴장이었다.

3. 감독 경력

2009년 3월, PFC CSKA 소피아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UEFA 유로파 리그 예선에서 FC 디나모 모스크바를 합산 스코어 2:1로 꺾고 유로파 리그 본선 진출을 이끌었으나 조별리그에서 AS 로마, 풀럼 FC, FC 바젤에 밀려 조 4위로 조별리그 탈락했다. 이후 팀의 리그 1위를 이끄는 좋은 지도력을 선보였으나 2011년 1월 13일, 구단주와의 갈등 끝에 시즌 도중 경질되었다. 결국 페네프가 떠난 뒤 소피아는 리텍스 로베치에게 선두 자리를 내주면서 리그 2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0년 9월, PFC 리텍스 로베치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2010-11 시즌 불가리아 파르바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소피아와 로베치에서 보여준 지도력을 인정받아 2011년 10월 23일,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결과적으로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은 따내지 못했지만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전력상 한, 두 수 위로 평가받는 이탈리아, 덴마크, 체코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쳐 깊은 인상을 남겼고 96위였던 FIFA 랭킹도 40위까지 상승시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11월, 2년 계약 연장을 했고 UEFA 유로 2016 예선 경기들도 지휘했지만 2014년 노르웨이, 크로아티아에게 2연패를 당한 데 이어 약체 몰타에게마저 무승부를 거두는 부진을 겪자 경질되었다.

이후 다시 소피아와 로베치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불가리아컵 우승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23년 3월 21일, FC 헤바르 파자르지크의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2024년 6월 4일, 헤바르 파자르지크를 떠났다.

2024년 6월 14일, PFC 로코모티프 플로브디프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2024년 10월 11일, 성적 부진으로 인해 경질되었다.

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4.1.2. 개인 수상

4.2. 감독

4.2.1. 대회 기록

5. 여담



[1] 세컨드 스트라이커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뛰었다.[2] 129골[3] 페르난도 고메스가 득점력이 뛰어난 미들라이커 유형의 선수이긴 하다.[4] 우승 경쟁보다 강등권 경쟁이 치열했던 시즌으로 콤포스텔라의 경우 단 승점 1점 차이로 강등을 당했는데 승점 1점 차이로 가까스로 강등을 면한 팀이 무려 세 팀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