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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00:27:44

루트비히 3세(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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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츠 선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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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3D3D3><colcolor=#000> 팔츠의 선제후
루트비히 3세
Ludwig III., Kurfürst von der Pfalz
파일:Ludwig_III._von_der_Pfalz.jpg
출생 1378년 1월 23일
사망 1436년 12월 30일 (향년 58세)
팔츠 선제후국 하이델베르크
재위 팔츠 선제후국의 선제후
1410년 5월 18일 ~ 1436년 12월 30일
배우자 잉글랜드의 블랜치[1] (1402년 결혼 / 1409년 사망)
사보이아의 마틸데[2] (1417년 결혼)
자녀 마틸데, 루트비히 4세, 프리드리히 1세, 루프레히트[3], 마르가레테
아버지 루프레히트
어머니 뉘른베르크의 엘리자베트
형제 마르가레테, 요한[4], 슈테판[5], 오토 1세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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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츠 선제후이자 독일왕 루프레히트호엔촐레른의 엘리자베트(Elisabeth von Hohenzollern-Nürnberg 1358~1411)[6]의 맏아들로 부친이 사후 팔츠 선제후국을 형제들에게 분할해서 물려줄 때 팔츠 선제후 작위와 대부분의 영토를 물려받았다.

2. 상세

독일왕 지기스문트의 섭정 자격[7]으로 협조하여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얀 후스를 처형하는데 일조했으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를 후원했다. 말년에는 맹인이 되었고 사후 차남이 루트비히 4세로 팔츠 선제후가 되었다.

[1] 헨리 4세의 장녀.[2] 피에몬테를 통치하던 사보이아아카이아 분가의 아메데오의 딸. 사보이아아카이아의 아메데오는 사보이아 백작 아메데오 7세와 같은 항렬이다.[3] 쾰른 선제후[4] 칼마르 연합의 국왕 바이에른의 크리스토페르의 아버지.[5] 프리드리히 3세부터 시작되는 지메른 분가와 나중에 바이에른 왕국 국왕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로부터 시작되는 츠바이브뤼켄 분가의 시조.[6] 호엔촐레른 가문의 초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의 누나.[7] 지기스문트는 헝가리 왕국,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이어서 신성 로마 제국에만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에 금인칙서에 따라 작센 선제후와 팔츠 선제후를 섭정으로 임명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