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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6 19:13:07

롱소드 검술/리히테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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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롱소드 검술

독일의 요하네스 리히테나워(Johannes Liechtenauer)가 14세기에 창시하여 17세기까지 이어진 검술 체계.

1. 개요2. 기원
2.1. 전파2.2. 복원2.3. 기사의 무술인가?
3. 평복 검술(Blossfechten)
3.1. 평복 검술의 개요3.2. 검의 구조3.3. 검을 쥐는 방법3.4. 자세(Huten)
3.4.1. 4가지 자세(Vier Lager)3.4.2. 보조 자세
3.4.2.1. 칼이 꼬인 상태3.4.2.2. 내려베기와 올려베기 관련 자세3.4.2.3. 방어 효과가 있는 자세3.4.2.4. 수평베기 관련 자세
3.5. 공격법
3.5.1. 베기
3.5.1.1. 다섯 가지 베기3.5.1.2. 마이어 시대의 16가지 베기
3.5.2. 찌르기3.5.3. 썰기
3.6. 15세기의 검리
3.6.1. 4개의 페어셋젠
3.7. 16세기의 검리
4. 갑주 검술(Harnischfechten)5. 마상 무술(Rossfechten)

1. 개요

신원 불명의 독일인 요하네스 리히테나워(Johannes Liechtenauer / Hans Liechtenauer)가 15세기 초에 창시하여 17세기까지 이어졌던 무술 류파로 알려져 있다. 공식적인 명칭은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1]이다.

피오레의 검술과 마찬가지로 종합무술이지만 유파의 이치를 배우기 위한 핵심 도구로써 롱소드를 내세웠기 때문에 흔히 독일 장검술(German Longsword), 리히테나워 검술(Liechtenauer swordmanship), 국내 한정으로 리히테나워류 등의 간략한 명칭으로 불린다. 이탈리아의 피오레 디 리베리가 전수한 검술과 함께 체계를 확인 가능한 중세시대 유이한 검술 시스템이며 풍부한 사료와 학계의 연구 성과로 인해 역사적 유럽무술 복원의 중심 축을 이루고 있는 시스템이다.

리히테나워만의 개성적인 동작 및 검리를 빠르게 보고 싶다면 아래의 4자세, 5베기 키워드부터 찾아봐도 된다. 특징을 요약하자면 중, 근거리에서 칼을 감고 뒤집어 찌르거나 양날검의 ‘뒷날’로 공격하는 걸 특기로 삼는다.

2. 기원

확인 가능한 체계는 15세기의 인물인 요하네스 리히테나워가 만들었다.

예전에는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를 14세기 사람으로 보았고 검술 성립도 14세기에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과거에는 MS3227a라는 문서가 1389년 이전까지 거슬러올라간다고 추정했고, 따라서 리히테나워 검술 문서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MS3227a는 문서 소유자가 여러 책에서 자기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스크랩해서 모아놓는 하우스북(Hausbuch)이라 불리는 종류의 문서였다. 검술 내용과 더불어 마법, 연금술, 그림 등에 대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던 이 책에 가톨릭 전례력이 1390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당연히 1389년에 편집되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퍼멀을 쥐지 말고 손잡이만 쥐어야 한다는 내용이 후대의 리히테나워 검술서와 반대되는 내용이었고, 이것이 14세기까지 쓰인 워 소드의 사용법이었다는 추측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여러 문서를 모아다 편집한 하우스북의 특성상 단지 과거의 문서가 끼어들어갔을 수도 있고, "니콜라스 폴, 1494"이라는 낙서 때문에 최대 15세기 말의 문서라고 올려잡는 시각도 있었다. 연구자 크리스티안 토블러가 제기한 문제가 받아들여져 르네상스 검술 사료 위키 사이트인 위키테나워에서는 MS3227a를 15세기 문서로,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를 15세기 마스터로 재분류하였다.

리히테나워의 사망년도는 1448~1452년 사이로 좁혀지는데, 정황 증거가 있다. 한스 탈호퍼의 MS Chart.A.558문서는 1448년 만들어졌지만 이때는 리히테나워를 언급하면서 별다른 고인에 대한 수사가 없는데 비해, 가짜 피터 폰 단직이 작성한 Cod.44.A.8문서는 1452년 만들어졌는데 리히테나워를 언급하면서 고인에 대한 수사인 "하느님 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gewesen ist dem got genadig seÿ)" 라는 문장을 집어넣어 1452년이나 그 전에 리히테나워가 사망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는 빠르면 14세기 말, 늦으면 15세기 초에 태어나 활동한 사람임을 알 수 있으며, 대부분의 생애를 15세기에 보냈으므로 15세기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요하네스 리히테나워의 구체적인 행적이나 출생연도, 출신지[2]는 불명이다.

HEMA연구자인 제임스 어컷(James Acutt)은 리히테나워의 행적을 추적한 연구 결과를 출판[3]하였으며, 이전에는 연구자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H.베링거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여러 사실들을 발표했다.

H.베링거는 하인리히 베링거(Heinrich Beringer)라는 사람으로 특정되었고, 그는 리히테나워 계열 문서로 분류되던 Modus Dimicandi의 저자로써, 문서의 작성년도는 1418년으로 추정되었다.그런데 연구 결과 베링거가 로스톡 대학에 1419년 입학하고 정확히 반년 후에 같은 과정으로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라는 사람이 입학했음을 알 수 있었고, 베링거가 나중에 라체부르크-슈베린 교구의 사제였을 때, 해당 교구의 높은 직급의 인원으로 리히테나워라는 이름이 발견되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이것으로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라는 사람이 하인리히 베링거의 학교/인생 후배의 삷을 살았다는 것은 확인된다. 그러나 그 요하네스 리히테나워가 검술가 요하네스 리히테나워임을 입증하는 자료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 외에도 동명이인이 많아 100%확신할 수 없다는 것은 제임스 어컷도 인정했다.

문제는 Modus Dimicandi는 1418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리히테나워와 베링거의 검결 구성을 보면 내용은 거의 같으나 베링거의 것이 더 짧고 리히테나워의 이름이 들어있지 않아 베링거의 것이 원형에 더 가깝다고 저자인 제임스 어컷은 보고 있다. 하인리히 베링거의 문집인 Modus Dimicandi는 그 책의 종이 양식이 1430년 이후에는 쓰이지 않았고, 죽은 사람에게 바치는 축복받은 기억(pie memorie)라는 수사가 붙어 있어 최소 1428년 이전에는 사망했음을 알 수 있다.

힌편 15세기의 유명한 동화 작가이자 이발사이며 뉘른베르그 명가수협회 회원인 한스 폴츠(Hans Folz)는 전 유럽의 시와 이야기를 수집하였고 그것을 Die Meisterlieder des Hans Folz (MS Q.566)로 총정리해서 1479년 완성했다. 문제는 여기에 하인리히 베링거와 동일한 검결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몇가지 단어와 빠지고 추가된 일부 문장을 제외하면 같은 내용으로써 이것은 전승 과정에서 변형될 수밖에 없는 부분을 제외하면[4] 공통 조상에게서 유래된 같은 검결이 전승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요하네스 리히테나워 이전에 근본이 되는 검술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고, 하인리히 베링거는 그 뿌리가 되는 정체불명의 검술을 배웠고 그 검결을 자신의 문집에 남겼다는 것이다. 뿌리가 되는 검술에서 다른 루트로 전승된 검결은 한스 폴츠에게 수집된 것이다.

"리히테나워는 이 검술을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진정한 기예를 익히고 배우고자 했다"[5]라는 MS3227a에서의 묘사와는 달리, 리히테나워는 하인리히 베링거, 한스 폴츠에게서 나타나는 그 검결을 쓰는 검술을 배우고는 조금씩 살을 붙이고 검결에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음으로써 자기가 배웠던 그 검술을 가지고 자신이 창시한 검술인 것처럼 사람들을 가르쳤다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2.1. 전파

요하네스 리히테나워 본인이 어떻게 검술을 전수했는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검술 마스터의 활동은 몇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지는데 스스로 떠돌아다니면서 개인 혹은 단체와 일정기간 계약을 맺고 검술을 가르치거나[6], 특정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고 제자를 받는다.[7] 최신 연구를 따를 경우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는 베링거를 따라 정착 생활을 하며 검술 마스터를 부업으로 했으며, 제자들은 그에게 찾아와서 배우는 전수 형태를 띠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5세기까지는 검술을 배우면서 검술의 모든 것을 함축한 Zettel이라는 검결을 함께 배웠다. Zettel이란 작은 종이에 적은 요약문, 찌라시(...)등을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로, 이렇게 축약된 요약문을 읽기만 하면 기억술을 통한 연상 작용으로 검술의 모든 요소가 차례로 기억나게 되어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8] 리히테나워뿐만 아니라 뉘른베르그 하우스북의 "다른 마스터"의 검결이나 하인리히 베링거의 검결 등 다른 롱소드 검술의 검결도 일부 현존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리히테나워 계통 문서의 내용은 바로 검결(Zettel, Zedel)의 나열과 그 해설이며, 리히테나워 원조 시점의 기술 체계를 알 수 있다. 관련 문서인 통칭 코덱스 단직(Cod.44.A.8)를 쓴 가짜 피터 폰 단직(Pseudo-Peter von Danzig)[9] 에 의하면, 검술을 하찮게 여기는 일부 마스터들이 함부로 기예를 공개하거나 퍼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러한 형태(검결)를 취했다고 한다.[10] 하지만 리히테나워 제자가 아닌 일반인이 문서를 편집했을 가능성이 높은 뉘른베르그 하우스북에서 이미 리히테나워 계열과 또다른 계열의 검술 문서가 민간인의 손에 들어가 편집되었다는 점으로 볼때 리히테나워의 검결은 그가 살아 있었다고 추정되는 시점부터 이미 대중적으로 유출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리히테나워의 체계는 1479년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15세기의 유명한 동화 작가이자 이발사이며 뉘른베르그 명가수협회 회원인 한스 폴츠(Hans Folz)는 전 유럽의 시와 이야기를 수집하였고 그것을 Die Meisterlieder des Hans Folz (MS Q.566)로 총정리해서 1479년 완성했다. 당연히 검술 관련 시도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리히테나워 검결이 유출되고 있다는데 나온지 30년은 지났을 법한 시점인데도 리히테나워 관련 시는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책의 147v~148v에 베링거의 것과 유사한 검결이 실려있다.[11] 이런 점을 보면 리히테나워 검술 체계는 상당기간 마이너한 처지를 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리히테나워 검객이자 군인인 파울루스 칼(Paulus Kal)은 자신의 책[12]에서 리히테나워부터 시작되는 여러 마스터들을 언급하는 리히테나워 협회(Geselschaft Liechtenauers, 게젤샤프트 리히테나워)를 언급하기도 했다. [13] 하지만 이것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단체였는지 하다못해 친목회 정도라도 되는 실체가 있는 조직이라도 되었는지 아무런 증거가 없다.

1474년부터 활동이 확인되는 검술 길드인 마르크스 형제단(Marxbruder, 맑스브뤼더)이 공식적인 첫 리히테나워 단체이다. 1487년 프리드리히 3세로부터 롱소드 마스터 (Meister des langen Schwerts)의 지위를 인증받았고,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14] 이때부터 리히테나워 무술 체계가 급격히 성장을 시작한다. 도시의 중산층,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기사의 무술"임을 내세워 깊게 파고들어간 리히테나워 무술은 도시 문화의 일부로 정착한다.

중세시대에는 도시에서 무술을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거나, 매춘굴, 목욕탕과 같이 그려질 때도 있었고 혈기 넘치는 대학생들이 서로 싸우다가 죽게나 만드는 짓 취급이나 받았으며[15] 무술교사를 초빙해서 성 밖이나 다리 밑에서 배우는 개인 교습 형태였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가 되어 고소득 전문직의 교양있는 식자층이 무술을 배우고, 이들이 기사라는 이상적인 존재와 자신들을 동일시하고 길드의 강한 규율로 통제되면서 점차 무술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었다. 도시의 광장이나 체육 시설, 건물을 빌려서 연습하게 되었고, 축제 기간에는 검술 길드원들이 나서서 볼거리를 제공했다.

1570년에는 인종과 종교의 차별 없이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SJW 마르크스 형제단에 대항하여 유대인과 이교도를 철저하게 배척하는 대안우파 깃털검객단(Federfechter, 피더페히터)이 결성되고, 1575년에는 마르크스 형제단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증을 받았고 다시 1607년 3월 7일 루돌프 2세로부터 인가장을 받음으로써 공식적인 양대 길드로 인정받았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경쟁 심리로 철저한 실력 검증을 통해 기준에 미달하면 도장을 세우거나 가르칠 수 없게 제한하였다. 이들은 16~17세기의 리히테나워 검술 전수의 핵심을 담당한 양대 길드였으나, 스트라스부르의 요아힘 마이어와 같이 기존 길드에 속하지 않고 다른 루트로 리히테나워 검술을 전수받는 마스터도 여전히 있었다. 이들을 자유 검객(Freifechter, 프라이펙터)이라 부른다. 아우크스부르크와 뉘른베르크에서도 리히테나워 검술에 속하기는 하나 독특한 풍격의 검술 풍조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 도시도 16세기의 독일 검술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세 번째 길드로 성 루카 형제단(Lukasbruder, 루카스브뤼더)이 있었지만, 이 길드는 체계적인 길드도 아니었고 어떤 도시나 제후, 황제의 인증을 받은 적 없는 곳으로 제대로 된 곳이라기보다는 부랑자, 깡패들의 자칭 길드에 가까웠다.

Matthaus Merian d.a.의 그림 Zwei Gruppen zu Fuß, Les Pere Minimes de la ville Nancy, 1611AD.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롱소드는 17세기 초반까지 실전에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검술계에서는 레이피어브로드 소드에 밀려 유행을 잃어가고 있었으며, 독일계 검술 도장에서는 18세기까지 소수에 불과하지만 수련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파일:external/hroarr.com/die-fechtschul-02-1726-1750.jpg
"Die Fechtschul", from ca 1726-1750.
하지만 이 때에는 완전히 스포츠화되어 찌르기는 물론 날 부분으로 쳐서도 안되었고 오직 면으로만 타격해야 했으며, 그림에서도 그 모습을 잘 보여준다. 피더페히터는 1688년 다시 제국 인가장을 갱신하는 등 17세기 말까지 활동이 꾸준히 이어졌으나, 18세기부터는 길드의 활동 여부를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이후 롱소드는 물론 두삭을 비롯한 리히테나워 검술 체계 자체가 검술 사료에서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그후 리히테나워 무술에 대한 어떤 언급이나 계승자에 대한 기록이나 증언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완전히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

2.2. 복원

19세기 후반에는 근대 검객들 사이에서 중세 검술 복원 움직임이 크게 유행했으나, 다르디 학파를 비롯한 이탈리아 계통 사료가 주요 연구 대상이 되었고 독일계 사료 연구가 미진한 점 때문에 리히테나워 검술 체계는 복원 대상이 되지 못했다.

20세기 들어서는 나치히틀러 유겐트에서 리히테나워 마스터인 한스 탈호퍼의 검술 매뉴얼을 원전으로 삼아 독일 민족의 전통 검술[16]을 복원하여 유겐트 교육 과정으로 삼으려고 했었으나,[17]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1960년대에는 주로 학계에서 독일 검술 문헌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으나 실제 무술의 복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현대 HEMA(Historical European Martial Arts) 운동의 핵심 컨텐츠가 바로 리히테나워 검술, 그 중에서도 롱소드 검술이다. 1980년대부터 복원 움직임이 있었으나, 체계를 갖춘 복원의 시작은 미국 중세 무기 부문의 전문가였던 행크 레인하트[18]가 설립한 느슨한 형태의 중세 무술 협회 The HACA(Historical Armed Combat Association)에서 시작된다. 이 단체는 이미 당시에도 명성이 드높았던 행크 레인하트의 명성을 토대로 미국 내의 중세 스타일 파이팅 단체들을 끌어모으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나, 존 클레멘츠(John Clements)라는 검객이 1993년 합류하고 1994년부터 스터디그룹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단체로써 시작되었다.[19] 2000년에 시드니 앵글로 박사(Dr. Sydney Anglo)가 르네상스 유럽의 무술[20] 이라는 책을 발매하면서 전문 학자에 의해 중세-르네상스 무술 문화에 대한 내용이 밝혀지게 됨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켰고 크리스티안 토블러, 가이 윈저, 케이스 파렐 등의 아마추어 번역가들이 중세 검술서의 번역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확실한 사료에 근거한 검술 복원, HEMA라 불리는 운동 경향이 시작된다. 가장 사료가 많이 남아있어 교차 검증이 가능했던 리히테나워 검술이 가장 빠르게 연구가 완료되었으며, 현재에도 핵심 컨텐츠이다.

2.3. 기사의 무술인가?

리히테나워 무술은 직계에 해당되는 가짜 피터 폰 단직과 지그문드 링겍의 책에서부터 기사들의 쓸 법한 갑주 격투술과 갑주 마상창술, 마상유술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또한 검결의 첫 소절부터가 "젋은 기사여 배우라 / 천주를 흠숭하고 여성을 존중하는 법을 / 그로써 너의 명예가 자라나리라 / 기사도를 실행하고 배우라"[21]고 하며, 후기인 1570년 요아힘 마이어의 책의 속지에서도 "자유로운 기사의 고귀한 전투의 예술에 관한 상세한 해설"이라는 부제를 달아 기사의 무술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하지만 창시자 자신부터가 기사였고 기사가 확실한 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피오레 디 리베리와는 달리, 리히테나워 무술은 창시자의 이름에 귀족을 나타내는 폰(von)이 들어가 있지 않아 기사가 아니었던 것이 확실하며, 최신 연구의 행적을 살펴보면 학자 겸 성직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파울루스 칼이 남긴 리히테나워 협회의 마스터 목록에 귀족으로 보이는 이름들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이 무술이 기사 계급만이 향유하는 기사 무술이었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많은 마스터들의 직업을 보면 파울루스 칼은 단순히 직업 군인이고, 한스 탈호퍼는 용병 겸 무술 지도자였다. 한스 레크흐너와 한코 되브링어는 가톨릭 사제다. 리히테나워 협회의 목록에 나오는 von자 들어간 마스터들은 구체적인 행적의 확인이 안되고 있다.

16세기로 넘어가면 파울루스 헥터 마이어(회계공무원), 요아힘 마이어(나이프 제작자), 조르그 빌헬름 훗터(모자 제작자) 등 여러 마스터들이 기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배운 사람들도 대부분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중산층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리히테나워 무술이 만들어질 때 기사들, 최소한 맨앳암즈가 사용했던 기술들이 포함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기사 계급의 전문 무술인 것은 아니었으며, 계급에 상관없이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수련했고, 심지어 유대인 마스터(Ott Jud, Jud Lew)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리히테나워 무술이 기사의 무술임을 자처하고 수련자를 기사로 지칭하며 기사도를 수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일종의 홍보 겸 모티베이션 증진이었다고 결론내릴 수 있으며, 후대의 요아힘 마이어도 자신의 무술을 "자유로운 기사의 고귀한 전투의 예술"이라고 자처한 것처럼 오랜 기간 동안 리히테나워 수련자의 정신을 지배해 온 긍지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3. 평복 검술(Blossfechten)

리히테나워 무술 시스템에서 가장 비중이 높고 분량도 많은, 무술의 핵심을 가르치기 위한 분야. 리히테나워 검술에는 갑주 마상창술과 마상유술, 갑주 격투술이 포함되어 있지만, 파울루스 칼과 같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마스터를 제외하면 이 평복 검술이 가장 먼저 나오고, 사료에서 분량도 가장 많이 차지한다.

파울루스 칼은 바이에른 공작 루드비히 9세의 휘하 병력의 훈련을 전담했다. 그의 책인 Cgm.1507는 바이에른 공작에게 바치기 위한 선물로 만들어졌고, 그래서인지 전쟁 기술인 마상창술과 갑주술이 가장 앞에 나온다. 마상, 갑주전투술 삽화는 멋들어졌는데, 투구를 벗은 등장인물들의 맨얼굴은 왠지 얼굴 개그치는 것처럼 생긴 게 바로 파울루스 칼 문서이다.

3.1. 평복 검술의 개요

리히테나워 무술은 그 기원을 레슬링에 두고 있다는 것[22]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검술과는 다르게 근거리에서의 근접전을 특기로 하고 있는 검술이다.

리히테나워 계통 검결에서도 강조하는 핵심개념은 Vor: 먼저, Indes(Yndes): 동시에, Nach: 나중에, Stark: 강함, Schwach: 약함 다섯 가지이다. 먼저-나중에, 강함-약함은 서로를 잡아먹을 수 있는 관계이고, 동시에 칼이 부딪혀 묶이면(Winden, 뷘덴/bind, '바인드') 나와 상대의 선후강약이 느껴지기 때문에 기세를 잡고 싸움을 끝장내는 공방이 가능하다는 원리이다. 쉽게 말해 먼저(Vor) 쳐서 싸움을 끝내거나, 나중에(Nach) 들어가되 맞지 않고 기세를 빼앗아 역공하거나(Nachreisen), 애매한 상대 공격을 강력한 상체공격으로 압살하거나(Uberlaufen), 동시에(Indes) 부딪혀서 칼이 꼬인(Sprechfenster, Kron 등) 상태로 뒷날베기, 썰기, 레슬링(내 칼의 강한 부분으로 상대 칼의 약한 부분을 꺾으며, 내 칼의 약한 부분으로 상대에게 3상해 중 하나를 입힘) 등으로 막타를 넣는다. 유럽 학계의 전통 때문인지 먼저, 나중에, 강함, 약함을 아리스토텔레스의 4범주(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하는 범주Kategorie의 원형이 된 그거 맞다.)로 해설하는 골때리는 문서도 있다. 그러한 문서에서도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칼을 바인드하고 나와 상대의 강약선후를 읽으며 싸워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리히테나워 계통에서 이탈리아 및 독일의 타 유파(Gemeinfechten, 대략 일반검술)를 비판한 요지가 바로 바인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리히테나워 측 논리는 타 유파처럼 바인딩을 경시하며 멀리서 짤짤이만 치거나 무작정 레슬링만 걸려다가는, 상대 칼을 '느끼지' 못하기에 재수없게 상격 나거나 반격당하기가 너무 쉽다는 것이다.[23] 반대로 타 유파 측에서는 원거리부터 상대를 압살하면 그만인데, 다가가지도 못할 거면서 애매한 중거리전을 펼치려 든다고 리히테나워를 비판할 여지도 있었다. 아무튼 15세기에도 란츠크네히트 도펠죌트너 양성에 리히테나워 계통이 쓰였고, 16세기 이후에도 스포츠로서 명맥은 이었다는 점에서 독일어권에서는 리히테나워 계통 검술의 인기가 있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약간 앞선 시대에 등장한 피오레 검술을 비롯하여 세계의 대다수 검술들은 양날검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앞날로 베고 찌르는 식의 싸움을 한다.[24][25] 리히테나워 검술은 오히려 거리를 두고 베고 찌르며 뛰어들어 치는 방식의 싸움을 나쁘게 본다. 15세기 문헌인 뉘른베르그 하우스북에서도 그런 검술을 하는 마스터들이 리히테나워류를 비난하고 역으로 저자가 반박을 하는 내용이 들어있다.[26]

상대방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선제공격을 가해서 선제권(Vor)를 쟁취할 것을 강조하고, 상대가 공격해와도 막기(Parrien)를 쓰지 말고 베기는 베기, 찌르기는 찌르기로 서로 동시에(Indes) 공격해서 충돌시켜 막아내는 버셋젠(Versetzen)을 써서 상대방을 겁주며 싸움의 주도권을 다시 뺏어온다. 이때 상대 칼과 부딪쳐 붙은(Binden,빈든/바인딩) 근접한 상태가 만들어진다. 이때는 칼끝은 이미 뒤로 지나갔고, 칼날은 상대 칼에 걸려서 찌르기나 앞날 베기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평범한 검술들은 이때 물러나거나 옆으로 빠지면서 다시 베기를 시도하거나 레슬링을 걸러서 제압하는데, 이 간격에서 리히테나워 검술은 검을 뒤집어 찌르거나 뒷날로 베는 기술을 사용한다. 상대의 칼을 타고 넘어서 베거나 찌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상대는 나를 못치는데 나는 상대를 칠 수 있게 되며, 이 기법으로 승리를 거둔다. 물론 달려들며 체중을 싣는 큰 베기나 찌르기보다는 약하기 때문에 이것을 보완하고 상대방의 투지를 절망에 빠뜨리기 위해 "다섯번, 여섯번, 일곱번이라도" 맞든 맞지 않든 계속해서 연타를 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27] 이것을 위해 15세기에는 가장 길고 강한 머리베기, 대각선내려베기를 먼 거리에서 쓰고, 근접전에서 쓰는 쉴하우(뒷날내려베기), 즈베히하우(뒷날 눈높이 수평베기), 크럼프하우(꺾어베기) 총 5가지의 베기만 가르쳤다. 멀리서 수직베기나 대각선베기로 치고 들어가서 붙으면 뒷날베기로 치고, 상대가 맞든 빗나가든 다섯번 여섯번 일곱번에 걸쳐 연타를 치며 계속해서 쫓아가 승리하는 것이 리히테나워 검술의 기본 전법이었다.

방어하는 듯한 모션을 가진 기술들도 존재하나 그것조차도 공격의 중간 지점일 뿐이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이 모든 것은 주도권 개념의 쟁탈이라는 이론에 의거하는데 싸움의 주도권을 빼앗아야만 상대가 내 움직임에 끌려다니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패배하게 된다. 그러므로 강하고 긴 공격으로 시작하며 선제공격을 가하고, 상대가 선제공격을 취했어도 굴하지 말고 머리베기는 머리베기로, 대각선베기는 대각선베기로 함께 베어 충돌시켜 저지하거나 상대의 베기를 쳐내서 이기고, 안될 경우 와인딩 공격과 레슬링을 함께 사용하여 적을 제압하려고 해야만 주도권, 선제권을 뺏어올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때 무작정 빨리 움직이려고만 하면 반드시 서로 동시에 때리는 상타가 나기 때문에, 칼을 너무 빨리 떼지 말고 붙인 상태에서 상대방이 칼로 밀어붙이는지, 떼는지 옆으로 누르는지 힘의 방향과 세기를 느낌(푈른)으로 포착해서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도 중요했다.

종합하면 자세에서 머무르지 말고 빠르게 강한 공격을 하고, 상대가 막으면 피해서 다른 곳을 치고, 상대가 공격해오면 그대로 베어서 바인딩하고, 근접 상태에서 푈른으로 상대방의 다음 공세를 느낀 다음 거기에 맞춰서 뒷날을 이용한 와인딩 공격으로 연타를 날리거나 하프 소딩, 소드레슬링, 맨몸레슬링 등의 근접기술을 걸어서 승리하는 것이 리히테나워 평복 검술의 핵심이자 기본이었다.[28]

선제공격, 연타, 푈른, 빈덴, 근접전의 키워드가 리히테나워 무술의 가장 큰 특징이며 롱소드는 이 무술을 배우기 위한 핵심 도구로 쓰인 것일 뿐 이 기술을 메서, 단검, 곤봉으로 확장시켜나가 모든 싸움에 통하는, 말 그대로 『전투의 예술』을 배우는 것이 리히테나워 롱소드 평복 검술의 목적이었다. 레슬링을 근간으로 삼는다고 자부하는 것처럼, 공격 기세를 주도하고 상대의 공격을 묶으며 격살하는 걸 지향하는 일련의 무술 체계이다.

어째 지금은 다 퇴화해버린 중국권법의 지향점을 보는 것 같다.결국 도검으로 결투하는 방법을 연구한 전근대 무술이 도달하는 지점은 같은데, 리히테나워 전투술은 문헌 연구 및 HEMA 수련 단체들의 복원 및 스파링, 펜싱 마스크 및 피더슈비어트 등의 안전한 훈련도구 도입이 활발해서 복원이 비교적 순조로운 상황이다. 중국 병서의 도법, 검법, 창/봉법 복원이 괜히 인프라 탄탄한 중국 내 HEMA 동호인들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다. 농담이 아니라 중거리에서 뒷날베기를 바로 박는다는 특성은 추수 거리에서 공격을 박아넣는 고전 중국무술과 방법론 면에사 유사하다는 게 중론이다. 단지 리히테나워가 복원 및 대련이 활발할 뿐이다.

같은 리히테나워 계통 내에서도 초기에는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의 무술, 초기의 일본 고류처럼 강력한 존하우 및 그걸 깨는 뒷날베기 플레이가 많으나, 시대가 지나고 경쟁이 활발해질수록 작고 정교한 앞날베기나 원거리 타이밍 싸움, 타지역에서도 볼법한 레슬링, 단검술, 하프소딩 등도 섞여드는 것을 볼 수 있다.

3.2. 검의 구조

3.3. 검을 쥐는 방법

삽화에서는 굉장히 다양하고 손이 이상하게 꺾인 듯한 형태의 파지법들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와인딩 동작에서 퍼멀을 잡고 자유롭게 칼을 돌리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파지법 변화일 뿐, 각자의 파지법들이 세세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ARMA 수장 존 클레멘츠의 다양한 파지법 시범 영상 검을 쥐는 방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기본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3.4. 자세(Huten)

리히테나워 검술에서 자세는 검도나 펜싱에서 보는 것처럼 상대방을 견제하고 기다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격을 위해 잠시 거쳐가는 지점일 뿐이다. 따라서 "눈 깜빡할 순간만 자세에 머물러라"라는 말대로 공격 준비 자세를 취하자마자 즉시 상대방을 공격하며 몰아붙일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이는 리히테나워 검리에서 선제권(Vor)쟁탈과도 다시 연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시대의 검술, 무술의 ‘가드’와 유사할 정도로 흔한데다 자주 거쳐가게 되는 4가지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복잡한 여타 자세들은 이 4자세를 거치는 동작 사이사이에 이름을 붙인 것 정도이다. 이 4가지 자세 및 다양한 보조자세 사이를 오가는 게 곧 공격이 되고, 공격 사이사이에 이 자세가 허술해지면 반격당하기가 쉽기 때문에 기본 자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래서 시간이 없거나 간단히 알고 싶다면 아래의 4자세(옥스, 폼탁, 플루크, 알버) 정도만 보아도 리히테나워의 상징적인 동작을 볼 수 있다.

16세기의 마스터 요아힘 마이어는 이 자세 개념에 대해 더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자세란 공격의 시작,중간,끝이며, 공격이 끝거나 막혀서 어느 자세에서 멈추었더라도 다시 그 자세에서 새로운 공격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가령 대각선 내려베기를 할 때에는 칼을 어깨 뒤로 넘긴 존훗 자세를 취했다가, 칼을 뻗은 랑오트 자세를 지나 칼을 옆으로 보낸 벡셀 자세에서 끝난다. 하지만 벡셀 자세에서 다시 자세를 반대로 되돌아가 존훗에서 끝난다면, 뒷쪽 칼날로 상대를 올려쳐버리는 베기를 한 셈이 된다. 즉 자세의 변화는 공격이고, 공격이 곧 자세의 변화가 된다.

중간에서 막혀 서로 칼을 뻗은 랑오트 자세에서 끝났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달려들어 찌르거나 상대의 칼을 누르면서 다른 자세를 만들고 다시 거기에서 공격을 할 수 있다. 상대가 공격해와도 이 자세의 변환=공격으로 쳐내고 튕겨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어 즉 버셋젠(Versetzen)이 된다. 하지만 자세로 막아내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이것은 어쩔 수 없을 때만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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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4가지 자세(Vier Lager)

여러 자세 중에서도 거의 가드 급으로 근간이 되는 자세들이다. 후술할 다섯 베기와 같은 기본기도 이 4자세 사이를 오가며 이루어진다.

리히테나워 체계를 우겨넣은 메서 검술에서도 이름만 다른 4자세를 볼 수 있다. 롱소드 검술/피오레를 포함한 유럽 내 타 롱소드 유파는 물론이고 일본 고류나 필리핀 무술에서도 유사한 자세를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공격을 가하는 철학엔 리히테나워만의 개성이 있다.

예컨대 타 지역, 타 시대에는 아래의 보조자세 중 행엔(행잉 가드)이나 철문(중단세나 포르타 디 페로 등)을 기본자세 삼는 무술도 분명 있으나, 적어도 리히테나워 검리상으로는 그걸로만 들이대는 걸 그리 좋지 않게 본다.

낯설지만 비교적 단순한 어휘들이라 당시 근중세영어와도 유사하다. 영어권 사람이라면 Ox, From Thatch, Plough, Olber라고 대충 받아들일 법하다.

3.4.2. 보조 자세

대부분은 4자세처럼 처음부터 취하기보다는 각종 동작 사이사이에 거쳐가는 자세나 상태에 이름을 붙인 것에 가깝다.
3.4.2.1. 칼이 꼬인 상태
근거리 뒷날베기 및 레슬링 싸움은 대부분 슈프레히펜스터-크론-브레히펜스터를 거쳐간다고 볼 수 있다.
3.4.2.2. 내려베기와 올려베기 관련 자세
존훗으로 시작해 크게 후려치면 벡셀이 되고, 벡셀에서 칼을 뒤집어(네벤훗) 올려베면 아인혼이 된다.
3.4.2.3. 방어 효과가 있는 자세
칼이 슈프레히펜스터 상태로 부딪혔을 때 그걸 깨는 과정, 크럼프하우로 칼을 쳐내는 과정 등에서 거쳐가는 방어 효과가 있는 자세들이다. 칼이 대각선 아래로 뻗어 몸을 지켜준다. 아이젠포트는 검도의 중단과 겉보기엔 유사하나 다르긴 한데, 리히테나워보다는 타류파 및 이탈리아에서 조금 더 상세하게 볼 수 있다.
3.4.2.4. 수평베기 관련 자세

3.5. 공격법

리히테나워 검술에서는 3가지 상해(Drei Wünder)가 있다고 하며, 각각 베기(Hauen), 찌르기(Stechen), 썰기(Schnitt)가 있다.

공격 동선이 대략 8방향(가로세로 대각선왕복)이므로, 8방향의 바인딩에 거리에 따른 3가지 상해가 곱해져 24종류의 공격이 가능하다.

3.5.1. 베기

Hau/Haw/Hauw -en
'하우' : 옛스런 영단어 Hew와 비슷하다 보면 된다.

베기는 15세기에는 크게 나누어 위버하우(Überhau:내려베기) 운터하우(Unterhau)로 나뉘었고, 이것은 모든 종류의 내려치기와 올려치기를 뭉뚱그려서 언급하는 포괄적인 명칭이었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이른바 5가지의 베기(초언하우, 크럼프", 즈베히", 쉴", 샤이텔")만 가르쳤다. 하지만 16세기 후반 요아힘 마이어의 체계에서는 앞쪽 칼날을 이용하는 8방향 큰 베기 4가지와 훨씬 분화된 13가지 베기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요아힘 마이어가 직접 이 분화된 베기들은 다섯가지 베기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할 정도로 리히테나워 검술에서 다섯가지 베기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선후강약과 바인딩에서 3가지 상해가 나온다고 하듯이, 이 베기를 충분히 멀리서 박으면 곧 찌르기고, 가까이서 박으면 썰기가 되는 등 여타 공격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3.5.1.1. 다섯 가지 베기
15세기부터 이어진 다섯 가지 베기는 다음과 같다. 초기부터 이어진 리히테나워 검술의 기본기이다. 메서 검술 문서에 가도 이름만 다른 5베기, 4자세가 있다.
3.5.1.2. 마이어 시대의 16가지 베기
다음 베기 분류는 요아힘 마이어의 체계를 따른다.

리히테나워 계통이 이탈리아, 비-리히테나워 독일 타류파의 영향을 받고. 검객들의 공격이 빠르고 정교해지다보니 일어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16가지도 결국 8방향x2(앞날, 뒷날)인데, 기본 베기가 단순 8뱡향이 아니다보니 온갖 타이밍 카운터나, 적절한 타이밍에 기본베기를 되감은 것(벡셀하우 등)에 이름이 길게 붙었다. 당장 쿠르츠하우, 슈투어츠하우, 벡셀하우 같은 것은 기본 베기의 역버전 같은 형태이지만, 아예 글뤼츠하우나 크니헬하우 같은 것은 따지고 보면 즈베히하우를 쓰는 상황에다 이름을 따로 붙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 통해 16세기 롱소드 검술이 스포츠화되며 복잡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이어 체계의 샤이텔하우 고급화, 각종 앞날베기, 각종 타이밍 카운터 검리들을 보면 타 지역 양손검술과 유사하게 수렴한다고 느껴질수도 있다.

스포츠화 및 체계화가 필요한 현대 HEMA 단체들도 요아힘 마이어 검술서를 많이 참고하지만, 여기에 있는 베기들 전부를 살리기보다는 기본 베기 및 검리에 조금 더 집중한다. 대체로 쿠르츠하우 아래의 베기들은 기본기를 활용한 복잡한 파생기 느낌이기 때문이다.

3.5.2. 찌르기

Stechen
영어로 바느질, 꿰멘 자국 등을 뜻하는 Stitch와 유사하다.

위의 다섯 베기를 약간만 변형해도 유효한 찌르기가 나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 3가지 상해 중 가장 원거리에서 이루어진다. 같은 바인딩-공격을 할 때 칼끝부터 상대한테 박히면 찌르기이다. 샤이텔에서 가장 긴 지점인 랑오트, 존하우에서 가장 긴 지점인 존오트, 옥스 및 플루크를 취하며 쑤시듯이 작게 내지르는 쉴하우 등등은 모두 칼끝을 상대에게 박아넣는 식으로 운용할 수 있다.

16세기 이후 도장검술에서는 안전을 위하여 찌르기가 금지되고 퇴보하기도 했다. 찌르기까지 복원해서 수련하는 현대 HEMA 단체에서도 피더슈비어트는 안전을 위해 끝을 뭉툭하게 만들며, 아예 숟가락처럼 만들거나 가열해서 굽혀놓은 제품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반대로 현대 HEMA 복원 수련자들은 펜싱 마스크와 장갑 정도는 끼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닥하면 사고 나기 딱 좋기 때문에 피더슈비어트 끄트머리는 더 뭉툭해졌고, 두꺼운 자켓을 입고 수련하기도 하고, 막 지르지 않기로 합의하고 수련하는 경우가 많다. 마구 찌르는 사람은 여러모로 검술 클럽에 두면 안 된다.(...)

옛 사람들이 도장검술과 실전검술의 괴리 문제를 감수하고 이렇게 훈련한 이유는, 베기를 충분히 수준높게 할 줄 안다면 찌르기는 따라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존하우, 샤이텔하우 등은 랑오트(뻗은 자세)를 반드시 거치므로, 랑오트에서 멈춰주고 걸어가거나 칼끝만 재차 조절해도 강력한 찌르기가 된다. 따라서 찌르기를 수련할 거면 그냥 존하우 포함 베기를 잘 연습하면 된다는 수련체계가 나온다. 플루크나 옥스 등의 자세는 아예 유지하면서 걷거나 전환만 해도 찌르기와 뒷날베기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

장비와 의료기술이 있는 현대에도 조심할 정도이며, 중근세 당시에는 일종의 소프트 드릴 형태로 훈련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같은 베기를 멀리서 제대로 박으면 찌르기가 되니까 기존 수련체계를 살려서 수련한 셈이다. 혹여나 생각없이 휘두르고 찔러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멍석말이+파문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현대에도 유도주짓수 도장에서 스파링 중 회원 발목을 진짜 꺾어버리면 쇠고랑 차는 건 마찬가지다.

현대 수련장비 도입으로 아예 두꺼운 마스크와 자켓만 믿고 검리를 해치는 수련자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지만, 그런 수련자들을 제지하고 올바르게 수련해야 할 따름이다. 적어도 중세 사람들보다 찌르기 하나만큼은 훨씬 안전하게 수련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켓 착용했을 때조차 찌르기에 힘을 과하디 싣는 건 비매너이며, 마스크/장갑 수준으로 스파링 중이라면 몸에는 가볍게만 접촉하고 차라리 마스크 위치인 머리를 찌르는 게 더 안전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연습해야 한다. 노마스크 시에는 느리게 기술 연습만 하거나 실제 찌르지 않고 페인트만 넣는 수준이 아니면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3.5.3. 썰기

Schnitt, Schneiden : 후자 '슈나이덴'은 서양인들 성씨로도 자주 쓰이는 '슈나이더(Schneider, 자르는 사람=재단사)'에서도 볼 수 있는 동사다.

칼날을 상대한테 대고 긋는 종류의 공격이다. Hau가 자세로부터 출발해 강한 날로 상대를 치듯이 베는 것이라면, Schnitt는 과일 썰듯이 누르고 고기 썰듯이 긋듯이 베는 것이다. 같은 존하우, 쉴하우, 즈베히하우 등도 타점과 거리에 따라 얼마든지 썰기가 될 수 있다.

3가지 상해 중 일반적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이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칼끝(약한 부분)으로 공격하자면 찌르기 또는 베기가 되기 때문이다. 아예 상대를 눌러서 제압해두고 항복을 받거나 테이크다운하며 승부를 낼 수도 있는, 레슬링스러운 공격법이다.

대표적으로, 바인딩 이후 2연격을 노리는 상대의 팔목을 그어버리거나 레슬링과 함께 상대의 목을 눌러버리는 종류의 동작이 있다. 기본은 네 자세와 다섯 베기이되 상대의 몸에 닿는 타이밍과 거리가 조금 다르다.

3.6. 15세기의 검리

1. Zornhau
2. Krumphau
3. Zwerchhau
4. Schielhau
5. Scheitelhau
7. Vier Versetzen
8. Nachreissen - After Travel, 상대 선공 뒤 빈틈 노리기
9. Uberlauffen - Over Running, 어설픈 중하단 상단으로 압살
10. Absetzen
11. Durchwechseln - Thru Change, 찌르기가 막힐 때 칼끝 아래로 돌려서 찌르기
12. Zucken - 당기기. 맞물린 칼을 일순간 빼서 상대의 굳은 방어를 흘리고, 동시에 타점을 베어버릴 수 있다. 현대 검도의 공방과 유사하다는 감상이 많다.
13. Durchlaufen - Thru Running
14. Abschneiden - 썰기
15. Hende Drucken
16. Hengen
17. Winden - 휘감기. 바인딩이 유지되도록 상대의 칼을 타고넘어가기.

3.6.1. 4개의 페어셋젠

위의 검리 중 7번. 4가지 주요자세인 폼 탁, 옥스, 플루크, 알버의 약점을 몰아붙일 수 있는 동작 및 반격 원리이다.

이 4가지 페어셋젠 말고도, 궁극적으로 공격으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고 기세를 주도하는 개념 자체가 넓은 의미의 페어셋젠이라 할 수 있다. 영어로 치면 포어-세팅이다.

3.7. 16세기의 검리

요아힘 마이어의 시대쯤 되면 검술체계가 정교해지며 다양한 기술들이 실리게 된다. 원거리 페인트나 칼이 꼬였을 때 대처하는 기묘한 방법들에다 이름을 붙인 게 이 검리들이다.

예컨대 도플리에렌-주켄-뮤티에렌 강약싸움은 상대 강약을 느끼고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리히테나워스럽고, 상대가 강할 때-대등할 때-약할 때 각기 승부법이 달라진다는 점에서는 세계 각지의 무술들과 유사하다.

4. 갑주 검술(Harnischfechten)

큰 틀은 평복 캄프링엔의 그것과 유사하며, 롱소드 파지시 하프소딩+플루크를 취하며 창처럼 찌르고 들어가는 기법이 많다. 롱소드 vs 할버드 등 장병기 사용과, 맨몸 레슬링, 포스트 확보 후 단검 찌르기 등이 복합적으로 실려있다.

5. 마상 무술(Rossfechten)

마상에서 랜스, 한손 도검을 써서 상대의 빈틈을 찌르는 기법, 말과 말끼리 붙었을 때 도검, 단검을 동원해 레슬링하는 기법이 실려있다.
[1] 또는 전투의 기예. Kunst는 영어의 Art와 동의어로 예술, 기예라는 의미이다.[2] 그의 성인 리히테나워라는 이름을 통해 리히테나우라는 지역 출신임을 추측할 수 있으며, 연구자인 한스 마스만은 1844년의 저작[35]에서 뮐크라이(Muhlkreis), 프랑코니아(Franconia), 바덴(Baden), 헤세(Hesse), 베스트팔리아(Westphalia)의 다섯 곳에 있는 리히테나우(Lietenau) 마을을 후보지로 지정하였다. 이 중에서 한스 마스만은 뉘른베르그 주의 프랑코니아 리히테나우 마을을 가장 유력한 곳으로 추정했으며, 그 이유는 독일 검술계에서 검술이 융성한 뉘른베르그의 사례가 있으며 리히테나워 계통의 마스터인 파울루스 칼(Paulus Karl)의 저작에 나오는 리히테나워 협회(Geselschaft Liechtenauers)의 명단에 하르트만 폰 뉘른베르그(hartman von nurnberg)가 있음을 들었다. 그러나 리히테나워의 출신지를 특정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3] James Acutt, Edited Keith Farrell, - Science, Swords, and Society: German Martial Arts in the Middle Ages, 2019[4] 초기에 구전 전통에 의지했던 불경도 상좌부와 대승, 티베트 등 종파에 따라 전체 내용은 같아도 추가 혹은 삭제되는 내용이나 문단 배치의 차이가 생겼다. 문서 기록이 일반화된 이후에도 기억의 불완전함, 여러 이유로 인한 소실, 혹은 전승자의 개인 판단에 따라 첨삭하거나 내용을 바꾸는 경우는 자주 볼 수 있다.[5] als vor ist geschreben / Sonder / her hat manche lant / durchfaren vnd gesucht / durch der selbn rechtvertigen vnd warhaftige~ kunst wille / MS3227a 13v[6] 파울루스 칼, 한스 탈호퍼 등이나 수많은 무명의 마스터 등[7] 이탈리아 볼로냐의 필리포 바르톨로메오 다르디 등,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도 이 경우로 추정한다[8] 동양에서도 유사한 기억술 연상 체계를 이용한 기록물들이 있는데, 일본 무술에서 비전기술이나 이치를 배운 사람만 알아보게 기록한 목록(目錄) 두루마리가 있다. 중국 명나라에서는 병사들이 대부분 문맹이었으므로 노래(歌)라는 시 형태로 외우도록 한다. 조총의 장전-사격절차를 부르게 하는 총결가, 명나라 초기의 두가지 방패술인 섬마패가, 칠성패가 등 몇가지 노래를 기효신서, 무비지 등에서 찾을 수 있다.[9] 전체적인 내용이 지그문드 링겍과 유사하나 저자명은 피터 폰 단직을 사칭하였다. 당시에는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사칭하여 글을 쓰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내용은 링겍의 리히테나워 검결 해설 문서와 거의 유사하나 그렇다고 아주 똑같지는 않으며 일부 내용에 차이가 있다. 내용을 감정해보면 롱소드, 마상무술, 숏소드 3가지 중에서 숏소드 파트가 진짜 피터 폰 단직이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10] Cod.44.A.8 9v[11] 정확히는 베링거의 Modus Dimicandi의 내용이 그대로 실린 것이 아니라 좀 다르다. 젋은 기사여 배우라로 시작되는 앞 부분이 아예 없고, 뒷부분은 모두스 디미칸디에만 실려 있거나 반대로 한스 폴츠의 책에만 실려 있는 것이 제각각 조금씩 있다. 단어의 맞춤법도 모두 다르다. 한스 폴츠가 수집한 것은 베링거의 것과 공통 조상을 가졌을 뿐 별개의 전승 과정을 거치면서 따로 변형된 별개의 출처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12] Cgm 1507 02r[13] 언급되는 마스터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한스(요하네스) 리히테나워, 페터 빌디간스 폰 글라츠, 페터 폰 단치히, 한스 스핀돌러 폰 크자임, 람프레히트 폰 프라하, 한스 자이덴파덴 폰 에어퓌르트, 안드레 리그니처, 야콥 리그니처, 지그문트 암링, 하르트만 폰 뉘른베르그, 마르틴 훈트펠트, 한스 페그니처, 필립 베르거, 비르길 폰 크라코프, 디트리히-브라운슈바이크에서 온 단검 마스터, 오트 쥬드-유대인으로써 오스트리아 영주들의 씨름꾼, 파울루스 칼의 스승 한스 스테트너 폰 뫼른샤임[14] 같은 마르크스의 사자 문장을 사용한 것 때문에 리히테나워 검객 한스 탈호퍼(Hans Talhoffer)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한스 탈호퍼는 1433년 잘츠부르크 대주교 요한 2세 폰 라이스베르그를 대표해 나섰을 때부터 활동이 확인되며, 14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독립된 마스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기술명이나 고유명사를 보면 리히테나워 계열에서 배운 것은 확실하지만, 독자적인 검결을 창작했고, 모자던지기나 칼을 한손으로 잡고 던지듯이 후려치거나 길게 찔러버리는 것 등 실전적이지만 리히테나워 기본기의 틀에서 벗어나는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게젤샤프트 리히테나워에 이름이 언급되지 않아 방계 취급을 받는다.[15] 현대에도 한때 무술 배운다고 하면 깡패짓 하려고 하느냐는 시각이 있었다.[16] 하지만 리히테나워 검술은 독일에서 시작되기는 했으나 체코, 폴란드 등 중부 유럽권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수련되었고, 양대 길드로 인정받는 깃털검객단(Federfechter)은 체코 프라하에서 결성되었다. 리히테나워 협회의 마스터인 오토 쥬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유대인도 검술을 배울 수 있었고, 아우스부르크 계열의 검객인 파울루스 헥터 마이어(Paulus Hector Mair)의 책에는 숫제 흑인 검객(MSS_Dresd.C.94 Folio 141r)까지 나타나고 있다.[17] Ritterliche Waffenspiele, Schwert- und Stockfechten, Bogenschießen, Armbrustschießen, Bau von Ubungswaffen etc.; Wilhelm Fabricius (auth); Holzinger; Stuttgart; 1935 (2nd edit) 다운로드 링크[18] Julius Henry "Hank" Reinhardt, 1934~2007[19] 훗날 ARMA로 단체명을 바꾸고 한때 세계 최대의 규모, 최고의 연구 성과를 갖춘 그룹이 된다.[20] The Martial Arts of Renaissance Europe, Yale University Press, 2000 / ISBN 0300083521, 9780300083521[21] JVng Ritter lere / got lip haben / frawen io ere / ;MS3227a 18r[22] 누구든 레슬링을 배우고자 한다면 먼저 알아두어야 한다. 선제(Vor), 후속(Nach), 속도(Rischeit), 용기(kunheit), 속임수와 재치(list vnd klugheit) 등은 레슬링에서도 통하는 원칙이다. 또 알아둬야 하는 것은 모든 우아함과 기술은 레슬링에서 오고 모든 검술은 근본적으로 레슬링에서 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랑엔메서의 검술이고, 거기에서 롱소드 검술과 다른 것들이 온다. DEr / do wil lernen Ringen / der sal czu dem ersten / merken vnd wissen das dy pñcipia / vor • noch • Rischeit kunheit list vnd klugheit / etc dy gehören och czu deme Ringen / Vnd wisse das alle höbischeit kompt von deme ringe~ vnd alle fechte~ kome~ ursachlich vnd gru~tlich vom ringe~ / Czum erste~ das fechte~ mit dem lange~ messer / aus dem ku~pt das fechten mt dem sw°te / etc - MS3227a 86r[23] 이는 영국의 조지 실버가 버클러를 옹호하며 이탈리아 검술을 비난한 것과 유사한 논리이다. 검술이 공방일체가 되어야 하는데, 이탈리아 식으로 칼의 길이만 믿고 치고 빠지면 제압과 방어가 하나도 안 되기에 검술로서는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논지이다. 실버가 레이피어만을 싫어했다는 오해가 있지만, 실버는 이탈리아 검객 자체를 비판하고, 반대로 스페인 데스트레자 레이피어술은 공방 개념을 살리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고평가했다.[24] 피오레의 검술은 물론 중국에서 확인 가능한 가장 오래된 쌍수장검술 문헌인 무비지조선세법에서도 동일하다.[25] 때문에 동서양의 검술 역시 각각 처음 볼 땐 굉장히 다른 듯 싶다가도 막상 파고들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리히테나워류를 예로 들어도 바인딩과 뒷날 베기를 정도를 빼면 거의 모든 기술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게다가 몇몇 양날 기술의 경우 방어용으로 다뤄지고 바인딩/퓔른 공방 역시 중국식 검술이나 창봉술 등에는 존재한다.[26] 주해. 여기서 와인딩(검을 휘감아 치는 리히테나워 특유의 기법)이 검술의 올바른 기법이자 확고한 기초임을 알라. 그것에서부터 모든 응용과 기술이 나온다. 비록 많은 가짜 마스터들이 단정적으로 와인딩은 매우 약하고 자신들은 그것을 "짧은 칼에서" 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무식한 생각이며 그들이 자신들은 "긴 칼"로 싸운다고 하는데 팔과 검을 쭉 뻗고 온몸의 힘을 다 써서 겨우 휘두른다. 이것은 보기에도 끔찍하다. 만일 누군가가 그들처럼 토끼처럼 뻗어 달려나간다면 와인딩과 리히테나워 예술에 대항해 어떤 힘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예술이 이것과 다를지어도 너는 항상 강함을 추구해야한다. / Glosa / :• Hie merke / das dy winden / sint dy rechte kunst / vnd gru~tfeste alles fechten / des sw°tes / aus den alle ander gefechte vnd stöcke kome~ / vnd is mag mülich eyn guter fechter /syn / ane dy winden / Wy wol etzliche leychmeistere • dy vornichte~ / vnd spreche~ is sy gar swach was aus den winden ku~pt / vnd neñen is / aus dem korcze~ sw°te / dorvm~e das sy slecht vnd ey~veldik dar gen / vnd meyne~ das sy / aus dem lange~ sw°te gefochte~ / was dar get / mt gestracke~ arme~ / vnd mt gestrakte~ swerte / vnd was gar veyntlich vnd stark von alle~ krefte~ des leybes dar get / nur durch wol stehens wille / vnd das is grawsam an czu sehñ ist / we~ sich eyn° alzo strekt / recht zam her eyne~ hazen wolle irlawfen / vnd daz ist alles nicht / weder dy winden vnd weder lichtnaw°s kunst / wen do ist keyne sterke weder / deñe worvm~e wer anders ku~st / solde allemal dy sterke vörczihen / MS3227a 40r[27] 사료에는 뒷날 베기가 약하기 때문에 이것을 보완한다 같은 말은 없다. 현대의 연구자들이 실제 대련과 연구에서 드러난 사실을 사료에서 연타를 강조하는 내용과 연결한 서술.[28] 레슬링이나 옛 권법에서 팔을 잡거나 상대의 주먹지르기를 잡아채고 바로 유술기 공방으로 넘어가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리히테나워의 뒷날 공방은 근거리에서 팔꿈치나 무릎을 이용한 타격기로 이해하면 편하다.[29] 영어권 화자들은 간단하게 이를 번역한 롱엣지, 숏엣지로 부른다.[30] 독일어로는 이 부분을 Parierstange(파리어슈탕에)라고 부른다.[31] 천주교 고해성사를 볼 때 사제와 대화하는 나무창살[32] 날끼리 박으면 이 나가기도 쉽고, 힘센 놈이 유리해지는 싸움이 되기 십상이다.[33] 현대 HEMA인들은 마치 헬리콥터같다며 영어 발음으로 즈버크콥터(...)라는 드립을 치기도 한다.[34] 독일어 Schiel을 독영번역하면 흔히 동양인 눈 째졌다 인종비하할 때에나 쓰는, Slant(째진), Squint(찌푸린) 등이 자주 나온다. 현대에는 그냥 쓰면 욕 먹거나 싸움나기 좋은 어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