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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1:00:12

로저 모티머(제2대 마치 백작)

<colbgcolor=#FFC9C7><colcolor=#000000> 2대 마치 백작
로저 모티머
Roger Mortimer, 2nd Earl of March
파일:로저 모티머(제2대 마치 백작).jpg
이름 로저 모티머 (Roger Mortimer)
출생 1328년 11월 11일
잉글랜드 왕국 슈롭셔 러들로 성
사망 1360년 2월 26일
프랑스 왕국 아발롱 인근 루브르 (향년 31세)
배우자 필리파 몬타구[1]
자녀 로저, 에드먼드, 마조리, 자넷
아버지 에드먼드 모티머[2]
어머니 엘리자베스 드 베들즈미어
직위 제4대 위그모어 남작, 제2대 마치 백작, 가터 기사단 기사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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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 에드워드 3세의 프랑스 원정에 참여해 여러 공적을 세웠다.

2. 생애

1328년 11월 11일 잉글랜드 왕국 슈롭셔주 러들로 성에서 출생했다. 조부 로저 모티머는 잉글랜드 왕비 프랑스의 이자벨의 연인으로, 1327년 이자벨의 남편인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를 타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에드워드 3세를 대신해 섭정을 맡아 3년간 최강의 권신으로 군림했지만, 1330년 11월 29일 에드워드 3세의 친위 쿠데타로 체포된 후 처형되었고, 모든 작위와 영지를 몰수당했다. 그의 아버지 에드먼드 모티머는 이때 감옥에 갇혔다가 1331년경 풀려난 뒤 1331년 11월 20일 모티머 남작에 선임되었지만 그해 12월 16일에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드 베들즈미어는 초대 베들즈미어 남작 바르톨로뮤 베들즈미어의 딸로, 외동아들인 로저를 홀로 양육하다가 1335년 에드워드 3세의 최측근인 윌리엄 드 보훈과 재혼했다. 윌리엄 드 보훈은 1337년 노샘프턴 백작 칭호를 받았고, 로저는 1342년에 계부 덕분에 라드너 및 위그모어 성을 포함해 거트위리온, 프레스테인, 북턴, 노턴 등 웨일즈에 있던 할아버지의 영지 일부를 반환받았다. 1344년 9월 12일 헤러퍼드에서 열린 기사 토너먼트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이때부터 에드워드 3세의 총애를 얻기 시작했다.

1346년 에드워드 3세의 원정에 참여했고, 8월 27일 크레시 전투에서 에드워드 3세의 곁에 서서 잉글랜드군의 대승에 일조했다. 에드워드 3세는 그의 공적을 인정해 1346년 9월 6일 모티머 가문의 모든 영지를 그에게 돌려줬다. 로저는 1348년 11월 20일 위그모어 남작 자격으로 의회에 소환되었고, 가터 기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1350년 1월 1일 칼레 전투에 참여해 칼레 탈환을 시도했던 조프루아 드 샤르니의 프랑스군을 격파하는 데 일조했으며, 1352년에도 프랑스에서 벌어진 군사 작전에 참여했다.

한편, 그는 모티머 가문의 대다수 영지를 회복했지만, 처크 남작령 만은 아룬델 가문의 소유로 넘어갔다. 그는 이를 되찾기 위해 제10대 아룬델 백작 리처드 피츠앨런의 딸인 앨리스와 자기 아들인 에드먼드 모티머를 결혼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결혼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로저는 1354년에 할아버지 로저 모티머가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부여받지 못하고 형이 집행된 점은 부당하니 할아버지의 처벌을 무효화해달라고 의회에 청원했다. 그 결과 의회는 조부 로저 모티머의 판결을 무효화했고, 로저는 그 덕분에 제2대 마치 백작이 되었고, 왕실의 통제 하에 있던 조부의 남은 재산도 반환받았다. 1355년 9월 20일, 로저는 마치 백작으로서 처음으로 의회에 소환되었다.

1355년 도버 보안관과 잉글랜드 남동부 5개 항구 관리인을 역임했으며, 1356년 10월 19일 조부 로저 모티머의 아내였던 조앤 드 제네빌이 사망한 뒤 모티머 가문의 주요 요새이며 훗날 웨일즈의 행정 중심지가 될 러들로 성을 물려받았으며, 조인빌 남작이라는 칭호 역시 물려받았다. 또한 로저는 왕실 추밀원의 일원으로 발탁되었다. 1359 ~ 1360년 에드워드 3세의 랭스 원정에 참여했고, 오세르 인근의 생플로랑탱 공방전을 수행해 그곳을 공략한 뒤 부르고뉴를 침공하는 왕실군에 합류했다. 그러나 1360년 2월 26일 아발롱 인근 루브르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하던 중 예기치 않게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잉글랜드로 옮겨진 뒤 모티머 가문의 공동묘지인 위그모어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사후 아들 에드먼드가 작위와 영지를 물려받았다.

3. 가족



[1] 초대 솔즈베리 백작 윌리엄 몬타구의 딸.[2] 초대 마치 백작 로저 모티머의 장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