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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03:40:39

로스의혹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사건 전개3. 일본에서의 체포와 판결4. 이어진 미국에서의 체포5. 제인 도 #88 사건6. 여담

1. 개요

한자: 로스疑惑事件
일본어:ロス疑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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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미국 LA에서 일본의 수입 잡화상 미우라 카즈요시와 아내 카즈미 카즈요시에게 발생한 총격 상해사건이다. 아내는 사망했고 경상을 입은 남편 미우라 카즈요시가 범인으로 의심받아 오랜 기간 재판이 이루어졌지만 증거불충분으로 정확한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종결되었다. 사건 발생 후 불운한 피해자로 이슈가 되었던 남편이 범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언론의 과열 보도와 함께 일본에서 매우 큰 사회이슈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LA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한 의혹'이라는 의미를 담아 로스앤젤레스를 말하는 로스(ロス)를 붙여 '로스 의혹사건'이라고 부른다. 1979년에 일어난 제인 도 88(Jane Doe No.88)[1] 사건도 여기에 포함된다.

2. 사건 전개

미우라 카즈요시는 야마나시현에서 1947년 7월 27일에 태어났으며,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방화로 체포되어 소년원에 몇년간 수감되었다. 이후 의류 수입상으로 일하면서 미국을 자주 드나들었다. 34세이던 1981년 8월 31일 아내 카즈미 카즈요시와 미국 LA에서 뉴 오타니 호텔에 묵었을 때 아시아계 여자가 침입해 호텔에 혼자 남아있던 아내 카즈미의 머리를 둔기로 구타해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있었다. (상해 사건)

이후 1981년 11월 18일 오전 11시 5분 미우라와 카즈미 부부는 LA 시내 주차장에서 2인조 괴한들에게 총격을 받아 미우라는 다리에 경상을 입었고 아내는 머리에 중상을 입어 혼수상태에 빠졌다. 미우라는 사건 발생 직후 경찰에게 자신들에게 총격을 가한 범인은 2인조 히스패닉 남성들로 한 명은 긴 머리를 묶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총격 사건)

아내는 LA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미 공군 의료수송기 편으로 일본 가나가와현 도카이대 부속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의식이 없는 상태로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하다 사건 발생 약 1년 뒤인 1982년 11월 30일에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남편 미우라는 비극의 남편으로 일본의 매스미디어에 자주 등장했다. FOCUS라는 잡지에 "로스앤젤레스의 강도 사건으로 아내가 식물인간이 된 남편의 싸움"[2] 이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하고, 여성지에는 "끝없는 사랑속에 살아가는 잠든 아내여!"[3]라는 본인의 수기를 싣기도 했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일본인 여행자의 안전 대책을 요구하는 성명문도 보냈다. 이후 미 공군 의료수송기로 일본으로 이송되는 과정 등이 크게 보도되며 일본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보험사 3곳으로부터 보험금 총 1억 5500만 엔을 지급받았다.

3. 일본에서의 체포와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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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2년 2개월 뒤인 1984년 1월, 주간문춘은 '의혹의 총탄'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 사건이 '보험금을 노린 미우라의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아내에게 거액의 보험이 들어있던 점이나 현장에 있던 하얀 차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미우라의 진술 등을 이유로 미우라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벌인 일이 아니냐는 연재 기사였다. 이 기사가 나오자 언론들은 앞다투어 마녀사냥식 보도를 시작했다. 그의 집 앞은 TV, 주간지, 신문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일부는 미우라의 집에 무단침입을 하기도 했다. 이런 난리 속에 미우라 자신은 주간지와 인터뷰를 하거나 카페를 오픈해 명소가 되는 등 눈에 띄는 행동을 보였다.

그러던 중 1985년 미우라의 옛 애인이라는 전 포르노배우 여성 A가 자신이 1981년 8월에 있었던 상해 사건의 진범이라고 고백하는 글이 산케이 신문에 익명으로 게재되었고 이후 실명이 보도되었다.

1985년 9월 11일 일본 경시청은 아내 카즈미 상해 사건의 살인미수 혐의로 미우라를 체포하였고 12일에는 A도 같은 혐의로 체포했다. 이후 총격 사건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며 미우라는 1998년 석방될 때까지 13년을 구치소에서 보냈다.[4] 미우라와 A는 체포 13년 후 판결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미우라는 징역 6년, A는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되었다. 판결 4개월 전 13년만에 석방됐던 미우라는 다시 미야기 감옥에 수감되어 2년 2개월을 더 복역했다.[5] 상해사건이 공판 중이던 1988년 10월 20일에는 미우라 부부 총격 사건에 대한 살인 공모 혐의로 LA 주차장 주인 B가 체포되어 살인 혐의로 구속되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B에 대하여 범행 당일 전날 목격된 차량과 유사한 백색 차량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며 미우라와 공모할 기회가 없었다는 유리한 증거들 때문에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했다.[6] 미우라에 대해서는 '물증은 없지만 여러 가지 상황 증거상 성명 미상인 자와 아내를 살해하기로 공모했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미우라는 도쿄 고등법원에 항소했는데 항소심에서는 실행범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살인공모 혐의를 증명할 수가 없다는 논리로 증거 불충분으로 살인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이에 반발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고 대법원에서도 고등법원의 논리가 합리적이라고 인정되었다. 이렇게 총 21년에 걸친 지리한 법정 공방 끝에 2003년 3월 5일 무죄가 확정되었다.

이후 보험회사 3곳이 보험금 반환 소송을 제기하였다. 미우라는 이 재판에서 패소해 2곳에는 총 8천만 엔을 반환했고 1곳과는 합의로 종결했다.[7]

4. 이어진 미국에서의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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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건은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그런데 미우라가 5년 뒤인 2008년 2월 22일 미국령 사이판으로 여행을 갔다가 미국 LA 경찰들에게 살인 혐의로 체포당하며 다시 주목을 받았다. 미국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하고 미우라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 그가 범인이라는 정황이 발견됐으므로, 미국에서는 미우라가 해외로 도피하여 사건이 현재 진행 중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었다.[8] 사건 발생 후 27년이 지났지만 미국에는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없다.

미우라는 사이판과 LA에 변호사를 선임하고, 미국 LA 법원에 일본의 무죄 판결을 근거로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내세우며 석방을 요구하고 LA 이송을 거부했다. 결국 2008년 9월 26일 미국 법원은 살인 혐의에 대해선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무효, 일본에서 재판되지 않은 살인공모(conspiracy) 혐의에 대해서만 미국 법정에서 재판하기로 결정하고 그의 석방 요구를 기각했다. 미국의 살인공모죄는 살인죄에 비해 형량이 낮기 때문에 미우라도 LA로 이송되는 것에 동의했다.[9]

미우라는 2008년 10월 10일 아침에 LA에 도착해 구치소에 수감되었는데 LA 경찰의 발표에 의하면 바로 그날 저녁 자신의 독방에서 옷으로 목을 매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숨졌다. 미우라의 변호인 마크 게라고스(Mark Geragos)가 의뢰한 병리학자는 미우라가 살해되었다고 주장했지만 LA 경찰의 검시관은 자살이라고 마무리지었다.

5. 제인 도 #88 사건

Jane Doe No. 88 사건은 1979년 5월 4일 미국 LA 근교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아시아계 여성의 시체가 미라화되어 발견된 사건이다. 1984년 3월 29일 치열을 이용한 신원 확인으로 34세 일본인 여성 C라고 밝혀졌다.[10] C는 남편이 있으면서도 1977년부터 몰래 미우라와 바람을 피우다가 1978년 미우라의 회사에 이사로 취직했고 6월부터는 동거했다. 마침내 C는 1979년 3월 남편과 이혼하고 홋카이도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행방이 묘연해졌다.

조사 결과 1979년 3월 29일에 LA 입국 기록이 있었고 홀리데이 인 할리우드 호텔에서 숙박했다는 게 밝혀졌는데, 같은 시기 미우라는 1979년 3월 27일 LA에 왔다가 4월 6일 일본으로 귀국한 기록이 있었다. 게다가 미우라가 C의 계좌에서 1979년 5월 18일부터 6월 12일까지 총 42회에 걸쳐 돈을 인출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미우라는 C에게 돈을 빌려줬으며 C에게 받은 현금 카드로 빌려준 돈을 인출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주차장 총격사건 이후 그가 아내를 살해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 사건도 언론에 포착되어 그의 또다른 혐의로 보도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입건되지 않았다.

사실 미국 LA 수사당국은 2008년에 그를 사이판에서 체포할 때 이미 그를 이 사건의 살인 혐의로도 기소할 방침이었다. 다만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것이 아니고 입국기록, 출금기록 등 당시의 정황상 근거로 기소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법정에서 그의 살인혐의가 인정될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미우라가 LA의 구치소에 도착한 2008년 10월 10일 곧바로 사망하면서 그는 이 사건에 대한 살인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았다. 그가 죽은 지 3개월 뒤인 2009년 1월 14일 LA 경찰은 Jane Doe No.88 사건의 범인이 미우라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6. 여담

참고로 경찰에서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을 옷으로 가리고 언론에선 수갑을 차고 있는 경우 모자이크나 흐리게 처리해 주는데, 미우라가 처음 체포되었을 때 언론에서는 그의 얼굴을 마구 찍어 그대로 보도했다. 이후 미우라는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피의자의 얼굴을 함부로 찍어 공개한 것은 명예훼손이라며 재판을 걸어 승소했다.[11]

그런데 미우라의 얼굴을 찍어 고소된 카메라맨은 나중에 1992년 이치카와 4인가족 살해사건에 휘말려 살해당했다.[12]

사실 미국에서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1989년에 이 사건과 흡사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인데 1989년 보스턴에서 일어난 찰스 스튜어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2004년 10월 11일 방영된 MBC실화극장 죄와 벌 83회에서도 다룬 적이 있으며 현재까지 대중매체에서 다뤄진 건 이게 유일하다.


[1] 미국에서는 신원미상의 남자를 '존 도(John Doe)', 여자를 '제인 도(Jane Doe)'라 부르는 관습이 있다.[2] 「ロスの強盗に妻を植物人間にされた夫の闘い」[3] 「限りなき愛に生きる 眠り続ける妻よ!」[4] 우리나라의 구속기간은 재판당 2개월 제한에 2회 연장이 가능하여 최장 6개월이지만, 일본의 경우 사실상 무제한으로 구속시킬 수 있어서 이렇게 13년간을 구속상태로 보낼 수 있다. 카를로스 곤 구속 사건 참조[5] 우리나라에서는 구속기간을 징역형 기간에 포함하지만, 일본은 구류와 징역을 별도로 취급하고 판사나 교정당국이 구류기간을 참작해 줄지 말지 정한다. 징역형 기간보다 오래 구속되어 있었어도 판결이 나오면 다시 복역해야 한다.[6] 다만 B는 총기법률 위반에 대해서 유죄가 인정되어 1년 6개월 형이 확정되었다.[7] 합의금은 공개되지 않았다.[8] 그의 구속영장에는 총격사건 당시 그가 누군가에게 카즈미의 머리에 총을 쏘라는 제스쳐를 했다는 목격자 진술이 언급되어 있었다.[9] 변호인이 법원의 결정을 알려주자 "이제 캘리포니아에 갈 때가 됐군" 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10] 실화극장 죄와 벌에서도 이 사건을 다뤘는데 C가 '의혹의 총탄' 기사를 쓴 주간문춘 기자의 언니고 기자가 해당 기사를 쓴 이유도 미우라가 자신의 언니를 죽였다고 여기고 복수심에 썼다고 설정했다.[11] 미우라는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재판 476건을 걸어 80% 승소했다고 한다.[12] 피살된 4인 가족 중 아버지가 카메라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