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로빈 페틸로우 Robin Pettilow | |
생몰년도 | 미상 ~ 1462년 | |
출생지 | 스코틀랜드 왕국 던디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가스코뉴 | |
직위 | 스코틀랜드 용병대장, 클레르몽수비랑과 쏘브떼흐의 영주, 랑드의 세네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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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용병대장.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군에 복무해 잉글랜드군을 상대로 활약했다.2. 생애
스코틀랜드 왕국 던디 출신으로, 1440년대 즈음에 샤를 7세의 스코틀랜드 용병대 지휘관이 되었다. 그는 아두르 강둑에서 잉글랜드군과 프랑스군 간의 크고 작은 교전이 벌어졌을 때 참여했으며, 1444년 장 뷔로의 지휘하에 생세베르를 공략했다. 이후 게보당에서 40명의 맨앳암즈와 80명의 궁수를 지휘했으며, 1450년 하반기 클레르몽 백작 장 2세와 장 드 뒤누아가 지휘하는 가스코뉴 원정대의 선봉대 3,000명을 이끌고 출진해 1450년 11월 1일 블랑크포르 전투에서 보르도 시장 가디페르 쇼트호세가 이끄는 가스코뉴 민병대 및 잉글랜드 맨앳암즈, 가스코뉴 기사단 7,000 ~ 10,000명을 대파했다. 뒤이어 카스텔노드메독, 레스파르메독 등지를 황폐화시켰다.1451년 프랑스 국왕 샤를 7세로부터 프랑스 국적을 수여받았고, 클레르몽수비랑과 쏘브떼흐의 영주가 되었다. 1454년 푸아티에에서 가스코뉴를 잉글랜드의 지배에서 해방하기 위해 소규모 원정대를 이끌고 메독 해안에 상륙한 뒤 레스파레 성을 공략하려다가 실패하여 체포된 피에르 드 몽페랑을 심판하는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사형을 집행하게 했다. 이후 가스코뉴에 주둔한 스코틀랜드 수비대의 지휘를 맡았으며, 1460년 랑드의 세네샬을 역임했다. 그는 생전에 그라몽의 가스코뉴 귀족 가문 출신의 여인과 결혼했으나 자녀를 두지 못했으며, 1462년 사망한 뒤 그의 재산은 전우인 로버트 코니건트에게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