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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로스 왕국 스파르토코스 왕조 4대 군주 Λευκὼν | 레우콘 1세 | ||
제호 | 한국어 | 레우콘 1세 |
그리스어 | Λευκὼν | |
영어 | Leucon I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349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389년 ~ 기원전 34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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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스포로스 왕국 스파르토코스 왕조 4대 군주.2. 생애
보스포로스 왕국 제2대 군주 사티로스 1세의 아들로, 기원전 389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형제 고르기포스와 함께 왕위에 올랐다. 당시 익소마타이 족의 지도자 티르가타오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티로스 1세에게 원한을 품고 왕국을 침략하고 있었다. 그는 고르디포스와 함께 막대한 선물을 제공하고 평화를 요청했고, 티르가타오는 이를 받아들여 물러났다. 이후 신디족의 지도자 헤카테오스가 티르가타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옥타마사드에게 추방당하자, 그가 개입하여 옥타마사드를 몰아내고 헤카테오스를 왕위에 복위시켰다. 몇년 후 헤카테오스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은 그는 자신을 "신디인의 왕"이라 칭했고, 신디인들의 중심도시인 신드스카야를 형제의 이름을 딴 고르기피아로 개명했다.이후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테오도시아 시 공략을 이어갔다. 첫번째 공성전은 헤라클레아 폰티카가 도시를 구하기 위해 파견한 장군 틴니코스에게 격퇴되었지만, 기원전 360년에 이뤄진 두 번째 공격은 성공했다. 그 결과 보스포로스 왕국은 테오도시아의 비옥한 땅과 물고기가 많은 바다를 점유할 수 있었고, 자연히 아테네로의 곡물 수출이 크게 늘어났다. 데모스테네스는 한 연설에서 매년 1,000 부셀의 곡물이 아테네로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레우콘은 아테네 인들의 칭송을 받았고, 그와 아들들에게 명예 시민권이 수여되었고 동상도 세워졌다. 레우콘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아테네 선박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특혜를 줬다.
폴리아에노스의 기록에 따르면, 헤라클레아 폰티카는 테오도시아 시를 되찾기 위해 당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샤한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에 대항하는 반란에 가담했다가 자신을 고용한 사트라프가 패하자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로도스의 멤논을 고용했다. 멤논은 탈영병으로 위장한 부하를 보스포로스 왕국군에게 보내 자신의 병사들이 대거 탈영하고 있다고 거짓말하게 한 뒤, 언덕 위에 절반의 병력만 보내고 나머지는 숨겨뒀다. 이에 보스포로스군이 방심하고 언덕으로 이동하자, 숨어있던 장병들이 뛰쳐나와 그들을 공격해 크게 격파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다시 페르시아군에 귀순한 뒤 이집트 정벌에 참여했고, 헤라클레아 폰티카는 테오도시아 탈환에 실패했다.
레우콘 1세는 기원전 349년 형제 고르기포스와 함께 사망했으며, 사후 그의 아들 파이리사데스 1세와 스파르토코스 2세가 공동 통치자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