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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05:28:51

레아 디존

<colbgcolor=#d2b48c><colcolor=#fff> 레아 디존
リア・ディゾン | Leah Di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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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86년 9월 24일 ([age(1986-09-24)]세)
네바다 라스베가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68cm | O형
가족 배우자 BUN(2010 이혼)
딸 밀라 디존
링크 공식 블로그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
2.1. 데뷔 전2.2. 일본 활동2.3. 결혼 발표, 하락세2.4. 현재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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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그라비아 아이돌 출신 가수, 모델.

2000년대 중후반 일본 연예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짧고 굵게 일본을 접수한 인물. 이 당시 임팩트가 큰 탓인지 지금도 종종 예능에서 회자되고는 한다.

원래는 그라비아 화보집 위주로 활동하였으나, 인기가 너무 많아져 가수로서도 활동영역을 넓혀나갔다.

2. 활동

2.1. 데뷔 전

중국계 필리핀인 아버지와 프랑스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모델 활동 이전에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평범한 소녀로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는 많지 않았다고.

미국의 여타 아시아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때 부터 비디오 게임을 즐겨하고 만화 세일러 문, 드래곤볼 Z와 같은 작품들의 팬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LA로 이사. 폴댄서나 가게 점원, 레이싱 모델 같은 일을 전전하며 연예계 진출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2.2. 일본 활동

파일:1265569_650.jpg파일:img_5d44f1ed19330.png

그러던 와중 자신의 개인 홈피에 올린 세라복 컨셉의 사진이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었고, 이게 아시아권 웹사이트 상으로 유입. 접속횟수만 무려 200만건을 기록하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이 사진은 일본과 대만을 비롯해 심지어 한국에서도 소소하게 화제가 될 정도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는데, 머나먼 미국까지 손수 팬레터를 보내는 열성팬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후 일본의 연예기획사 '스카이 코퍼레이션' 에 직접 노래하는 영상을 담은 비디오를 보냈고,[1] 2006년 이후 정식으로 일본 활동을 개시한다. 당시 그녀의 캐치프레이즈그라비아계의 검은 함선으로 이 별명은 지금까지도 그녀를 설명할 때마다 꼭 쓰이는 단어로 통하고 있다.[2]

어쨌든 2006년 데뷔한 레아디존은 함선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남성 매거진 업계를 무서운 속도로 점령하고, 여성 패션지도 접수. 각종 화보와 잡지 표지를 싸그리 쓸어가기 시작한다. 기세를 몰아 낸 사진집도 10만장이 넘게 팔려나가고 TV 출연도 활발히 해나가며 무서운 속도로 인기를 모아간다. 2007년에는 가수로도 데뷔. 기세를 모아 그 해 NHK 홍백가합전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낸다.

2007년 당시 일본 연예계는 사와지리 에리카, 레아 디존 두 사람이 없으면 설명이 안 될 정도 였다.

2.3. 결혼 발표, 하락세

홍백가합전까지 뚫어내며 승승장구하던 레아 디존은 2008년에는 전국 투어 콘서트까지 하며 전년도의 기세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전국 투어 도중 그녀의 연예계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사건이 발생하는데....


전국 투어 마지막 날 7살 연상의 스타일리스트 BUN[3]과 결혼 4개월 차라는 사실과 혼전 임신으로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당연히 그 말을 들은 팬들은 아수라장(...). 다음날 스포츠 신문을 비롯한 모든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일제히 이 일을 톱뉴스로 다뤘다.

특히 이 때 폭탄발언 당시 언급한 ポイしないでください!(날 버리지 말아주세요!/포이시나이데구다사이!) 라는 말도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영상에는 없음) 누가봐도 레아 디존 본인이 팬들을 내다 버린(...) 상황인데 결혼하고 애 낳아도 날 버리지 말아달라는 상황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거기다 'ポイ(포이)' 라는 단어 자체가 영어를 외래어화한 일종의 저글리시스러운 표현인데 이걸 영어 네이티브인 레아 디존이 받아서 써먹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묘하게 병맛스러웠다. 이 때 발언한 포이시나이데구다사이는 은혼에서 패러디되는 등 지금까지도 레아 디존을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 명언(...)으로 언급되고 있다.

2.4. 현재


2019년 5월 1일 일본의 예능을 통해 그간의 근황이 전해졌다. 고향인 라스베가스에서 홀로 딸을 키우며 연예계 활동을 이어나가지 못했던 학업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고 한다. 네바다 주립 대학교에서 발달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성적은 탑순위라고. 졸업하면 그 쪽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영상 끝부분에는 위성으로 직접 레아 디존과 생방송 형식으로 인터뷰를 주고 받는 장면도 나오는데 시청자 여러분 포이시나이데구다사이 라며 자학성 드립을 치는 등(...) 과거 일화를 여유롭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모습도 나온다.


2019년 7월에는 간만에 미니앨범으로 일본 음악계에 복귀. 아이돌 팝 느낌이 강했던 전성기와 달리 트로피컬 하우스 느낌이 나는 잔잔한 일렉트로니카 곡이다. 다만 이미 인기가 없어진 뒤에 이뤄진 복귀인지라 딱히 큰 반응은 없었다.

3. 여담



[1] 아무로 나미에의 I WILL을 일본어로 직접 불렀다고.[2] 쿠로후네 사건에 빗댄 별명으로 서구권에서 엄청난 무언가가 일본에 도래했다는 의미로 종종 쓰인다. 연예계 외에도 해외 브랜드가 일본에 들어왔다 던지, 특정 스포츠팀 용병으로 고용되었다던가 하는 경우에도 종종 쓰임.[3] 보아의 스타일리스트 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