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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30 23:10:16

레슬리 모스헤드

<colbgcolor=#000038><colcolor=#fff> 레슬리 모스헤드
Leslie Morshead
KCB, KBE, CMG, DSO, ED
파일:1000083555.jpg
본명 레슬리 제임스 모스헤드 경
Sir Leslie James Morshead
출생 1889년 9월 18일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호주 식민지 빅토리아주 밸러랫
사망 1959년 9월 26일 (향년 70세)
호주 자치령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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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마운트플레전트 고등학교
멜버른 대학교
멜버른 문법학교
복무 호주 자치령 육군 (1913~1946)
최종 계급 중장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1. 개요2. 생애

1. 개요

호주의 군인.

2. 생애

빅토리아주 밸러랫 출신으로 멜버른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일했다. 멜버른 문법학교를 다니다가 호주 자치령 육군 장교과정을 수료하고 1913년 자치령군 소위로 임관했다. 교사생활도 병행했으나 1914년 1차 대전이 발발하고 시드니 출신 병사들로 이뤄진 제2보병대대에 속했다. 그 해 9월 이집트에 도착했고 1915년 대위로 진급했다.

1915년 4월 25일 갈리폴리 전투에서 9시 30분에 상륙했으나 튀르크군의 대응으로 인해 3일간의 전투끝에 상륙에는 성공했다. 6월 소령으로 진급했고 당시 그가 지휘하던 C중대는 큰 피해를 받진 않았다. 하지만 파라디푸스로 인해 렘로스로 후송되었고 영국에서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 제3호주보병사단 33보병대대가 있는 서부전선에 배치받았으며 중령으로 진급해 대대장이 되었다. 아르망티에르에서 활약해 당시 사단장 존 모나시 소장에게 찬사를 들었다. 1917년 파스샹달 전투에도 투입되었으며 1918년 독일군 춘계 공세당시에도 활약했다. 아미앵 전투에도 공을 세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귀국 후 정규군으로 속하지 않고 농사, 선박회사 지사장을 지내며 파트타임 군인으로 종사했다. 1933년 대령으로 진급했고 1938년 준장으로 진급했다.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신설된 제2호주군 제6사단 제18보병여단장으로 프랑스 전역에 참가했으나 당시 호주군 사령관 헨리 윈터가 이야기했듯이 장비부족으로 인해 고전했다. 이후 영국으로 탈출했다.

1941년 새로 편성된 제9호주사단장이 되었고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되었다. 당시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아프리카 군단에게 밀리고 있던 형국이였고 존 라바벡 중장은 모스헤드에게 토브룩을 방어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제9사단, 제18여단, 그 외 포병대, 전차부대가 모여 영연방 혼성부대가 편성되었다. 모스헤드는 토브룩을 지켜 승리로 이끄는데 무리가 있음을 깨닫고 지연전을 계획했다. 지속적인 정찰, 방어호 구축에 힘썼고 반면 게릴라전을 통해 롬멜군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며 성공적인 지연전을 펼쳤다.

하지만 영국의 지원군이 오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번번히 막히며 고립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물자도 서서히 바닥이 나고 사기도 저하되었다. 이후 영국군 제6사단과 임무교대하며 탈출할 수 있었다. 이집트에서 휴식, 재편성을 한 후 엘 알라메인 전투에 투입되었다. 지뢰밭 제거에 실패했으나 주력군으로 전환한 후 큰 희생을 치름에도 불구하고[1] 5일 만에 아프리카 군단을 흔드는데 성공했다. 이 공으로 바스 훈장을 수여받았다.

1943년 태평양 전선으로 이동해 뉴기니 전역 제2군 소속이 되어 전차대대를 앞세워 일본군을 제압했다. 이후 2군사령관 대행이 되었으나 조지 앨런 베이시가 이끄는 제7사단을 직속에 놔뒀다가 베이시와 갈등을 빚었다. 보르네오 전역 당시 후방에서 종사했고 종전을 맞이했다.

1946년 군에서 완전히 퇴역했으며 1959년 암으로 사망했다.


[1] 전사자 1177명, 부상자 3629명 포로 795명 실종 19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