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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인의 곡. 럭키 스트라이크에서 곡명을 따 왔으며 곡명 그대로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특별시에 대한 헌정곡이다. 곡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럭키서울 / 1948 / 유호 작사 / 박시춘 작곡 1948년 봄. 신문기자였던 작사가 유호는 작곡가 박시춘과 친분때문에 박씨가 세운 럭키레코드사의 문에부장도 겸해야 해다. 현인의 "신라의 달밤"이 크게 히트하는 바람에 레코드사까지 창립한 박시춘은 이때 신보를 내기 위해 서둘렀다. "이왕에 회사를 차렸으니 신보를 한꺼번에 2장을 내기로 합시다. '비내리는 고모령'. '서울야곡', '고향만리', '낭랑 18세', '선죽교' 등은 됐지만, 딱 한 곡이 부족하니 어서 가사를 써주시오" SP시절이라 레코드 한 면에 2곡이 들어갔다. 그러니 2장의 레코드를 내려면 8곡이 필요한데 한 곡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호는 당시 필동에 살던 박시춘 집에서 작사에 골몰했지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술만 퍼마셔 댔다. 그러던 어느날, 모두 퇴근해버린 신문사 편집국에 홀로 앉아 담배를 피우며 작사를 구상하던 유호의 눈길이 무심코 창밖 조선호텔의 외국인들에게로 갔다. "우리 서울에도 이젠 외국인들이 찾아 오는구나. 그렇다면?" 유호는 순식간에 "서울"을 떠올렸다. 해방 이후 환희와 활기에 찬 서울의 노래를 만들자는 생각이 솟구쳣던 것이다. 때마침 그가 피우던 담배 이름이 "럭키 스트라이크"에서 "럭키"라는 어휘도 빌려 "럭키 서울"로 노랫말을 정리했다. 이 때 그의 귓전에는 영자타이핑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 정두수 (1992년 1월 25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 |
상기한 기사에서 보듯 럭키서울은 서울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노래였는데 40년 뒤에 1988 서울 올림픽의 개막식 당시 선수단 입장곡으로 쓰여 진짜로 세계 속에 서울이 있음을 알렸다.
단조 음계를 기본으로 하던 이전의 트로트와 달리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장조 음계로 만들어진 곡이기도 하다.
2. 가사
상기한 동영상과는 가사의 배치가 다른 부분이 있는데 사실 원곡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서울의 거리는 태양의 거리 태양의 거리에는 희망이 솟네 타이프 소리로 해가 저무는 빌딩가에서도 웃음이 솟네 너도 나도 부르자 희망의 노래 다 같이 부르자 서울의 노래 에스이오유엘 에스이오유엘 럭키 서울 서울의 거리는 청춘의 거리 청춘의 거리에는 건설이 있네 역마차 소리도 흥겨로워라 시민의 합창곡이 우렁차구나 너도 나도 부르자 건설의 노래 다 같이 부르자 서울의 노래 에스이오유엘 에스이오유엘 럭키 서울 서울의 거리는 명랑한 거리 명랑한 거리에는 행운이 오네 비둘기 날으는 지붕 위에는 오색빛 무지개가 아름답구나 너도 나도 부르자 행운의 노래 다 같이 부르자 서울의 노래 에스이오유엘 에스이오유엘 럭키 서울 |
이 노래가 만들어진 지 2년 만에 6.25 전쟁이 터져 노래의 가사처럼 활기차야 할 서울의 거리가 황폐화되었다.
3. 여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서울특별시장 후보의 선거송으로 사용되었다. *LG 트윈스의 응원가로도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