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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9 00:55:22

라코니아 사건

1. 개요2. 발단3. 사건 발생4. 라코니아 명령5. 그 후6. 대중매체

1. 개요

Laconia Incident. 제2차 세계 대전대서양 전투 도중 있었던 사건.

2. 발단

1942년 9월 12일, 베르너 하르텐슈타인(Werner Hartenstein) 대위가 이끄는 독일 크릭스마리네 소속 9c형 잠수함 U-156이 영국 선박 RMS 라코니아(RMS Laconia)를 격침시킨다. RMS 라코니아는 본래 큐나드여객선이었지만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며 영국 해군에 징발, 무장상선 겸 수송선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침몰하는 라코니아의 침몰신호를 수신하던 독일 잠수함 U-156은 신호에서 이탈리아어가 들리던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구조 준비를 시작하였다. RMS 라코니아가 격침되며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다 위를 표류하게 된다. 이 표류자들은 라코니아에 탑승해 있던 영국 선원, 영국 군인, 폴란드 근위대 외에도, 천명이 넘는 이탈리아 포로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구조되지 못한 인원중 상당 수가 배에 갇힌 채 익사하였는데 익사자 대부분이 이탈리아군 포로들이었다. 이는 혼란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군 포로 구역을 걸어잠근 영국 장교들의 행동에서 나온 결과였다.

방금 공격한 무장 상선이 사실 포로 수송선인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U-156은 구조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표류중인 수천명의 생존자를 조막만한 유보트로는 도저히 구조할 수 없기에 즉시 상황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 보고는 잠수함대사령관 카를 되니츠 제독에게 전달 되었으며, 구조해야 하는 인원이 너무 많고, 게다가 이탈리아인 전쟁 포로들도 있다는 소식을 들은 되니츠 제독은 7척의 유보트를 파견하여 구조를 돕도록 명령한다. 또한, 크릭스마리네는 영어 평문으로 구조 작업에 대해 발신하여, 연합군 측에 해당 지역에 대한 공격 중단과 구조 동참 권고를 하였다.

독일 해군은 U-506, U-507, 이탈리아 해군 잠수함 코만단테 카펠리니를 보내 구조 활동을 돕게 했다. 이들은 바다에서 건진 생존자들을 탑재하고 비시 프랑스가 다스리던 모로코로 향한다.
조난당한 라코니아호의 탑승자들을 구출하는 배가 있다면 본 함정은 그 배를 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본 함정이 함정이나 군용기로부터 공격받지 않는 동안만 지속될 것입니다. 또한 본 함정은 현재 193명의 생존자를 구조하고 있습니다. 현재 라코니아호와 본 함정의 위치는 남위 4도 53분, 서경 11도 26분입니다.

- 하르텐슈타인 대위가 보낸 무전. (출처)

하지만 이 통신을 수신한 프리타운 주둔 영국 해군 측은 이를 기만 작전으로 판단하여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와 별개로 주변을 항행 중이던 영국 상선 엠파이어 헤이븐은 구조에 동참하였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문제는 이 소식이 미국 측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누락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3. 사건 발생

파일:external/www.subart.net/laconia.jpg
U-156를 공격하는 B-24
이미지 출처

9월 16일, 생존자를 가득 싣고 이동하던 잠수함 네 척은 미합중국 육군B-24 폭격기와 조우한다. 이는 육군 항공대 소속 제임스 하든(James D. Harden) 중위가 조종하는 B-24 대잠초계기였다. 잠수함들이 적십자기를 휘날리며 구조 작업 중이라는걸 어필하자 B-24의 승무원들은 이를 확인[1]하고, 해당 지역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30분 후에 선임 장교 로버트 리차드슨 3세(Robert C. Richardson III) 대위가 공격 명령을 내린다. B-24는 폭탄 5개를 연달아 떨어뜨려 잠수함을 공격했다. 이에 잠수함들은 갑판 위 생존자와 견인 중이던 구명보트를 버리고 잠항해버린다.

리차드슨 대위는 주변에 연합국 선박이 2척이 있고, 독일 잠수함을 신뢰할 수 없고, 이들이 이탈리아 포로들만 구조 중이었을 것으로 판단하여[2] 공격했다고 주장하였으나, 적십자기와 발광신호를 무시하고 폭격을 감행한 것은 이후 엄청난 문제거리가 되어 되니츠가 전범 재판에서 사형을 면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어버린다.

B-24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은 것은 U-156 뿐이었고, 나머지 잠수함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기에 되니츠 제독은 구조 재개를 명령하였다. 다음날 비시 프랑스 해군순양함이 해역에 도착했고 생존자들을 인수한 후 돌아가게 된다.

4. 라코니아 명령

이 사건에 격분한 되니츠는 네가지 조항으로 이루어진 명령문을 발표한다.

독어 원문
1 Jegliche Rettungsversuche von Angehörigen versenkter Schiffe, also auch das Auffischen Schwimmender und Anbordgabe auf Rettungs- boote, Aufrichten gekenterter Rettungsboote, Abgabe von Nahrungsmitteln und Wasser haben zu unterbleiben. Rettung widerspricht den primitivsten Forderungen der Kriegsführung nach Vernichtung feindlicher Schiffe und deren Besatzungen.
2 Die Befehle über das Mitbringen von Kapitänen und Chefingenieuren bleiben bestehen.
3 Schiffbrüchige nur dann retten, wenn ihre Aussagen für das Boot von Wichtigkeit sind.
4Bleibt hart. Denkt daran, das der Gegner bei seinen Bombenangriffen auf deutsche Städte keine Rücksicht auf Frauen und Kinder nimmt!

영어 번역[3]
1 Efforts to save survivors of sunken ships, such as the fishing swimming men out of the water and putting them on board lifeboats, the righting of overturned lifeboats, or the handing over of food and water, must stop. Rescue contradicts the most basic demands of the war: the destruction of hostile ships and their crews
2 The orders concerning the bringing-in of skippers and chief engineers stay in effect.
3 Survivors are to be saved only if their statements are important for the boat.
4 Stay firm. Remember that the enemy has no regard for women and children when bombing German cities!

영어를 통한 중역
1. 헤엄치는 사람을 건져 구명보트에 태우거나 식료품을 건내주는 등, 격침한 선박의 생존자를 구조하려는 시도는 중지되어야 한다. 구조 활동은 전쟁의 기본적인 요구사항 - 적 함선과 선원의 파괴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2 선장기관장을 구조하는데 주력하라는 명령은 유효하다.
3 귀함한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생존자만이 구조될 수 있다.
4 마음을 독하게 먹어라. 독일 도시를 폭격하는 적들은 여성과 어린이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상기하라!

간단히 말해, 격침한 선박의 승무원을 돕는 모든 행동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단, 잡아와서 심문할 가치가 있는 선장과 기관장을 빼고, 나머지는 구조에 힘쓰지 말고 걍 죽든말든 냅두고 가라는 것이지, 일본 해군처럼 표류중인 선원들을 대놓고 죽이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본래 해상 전통에 따라 방금 전 까지도 포격과 뇌격을 주고 받던 적도, 전투가 끝나고나면 무조건 구조하는 것이 해군의 기본 규칙이었기에, 무제한 잠수함 작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유보트의 생존자 구조는 매우 흔한 일이었으나, 평문으로 구조 작업 사실을 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RMS 라코니아 생존자 구조중에 공습을 가한 것에 반발하여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강화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

다만, 이 명령이 내려진 이후에도 명령을 무시하고(...) 생존자를 구조하는 일은 꽤 자주 일어났다. 어차피 유보트들은 구조하더라도 함내가 워낙 좁아 생존자를 직접 태우는 일은 별로 없어서, 보통 구명정을 임검한 뒤 자신들이 건진 생존자들도 동승시키고 약간의 물자 제공 및 가까운 육지 위치 전달 등을 하고 보내주는 식이 대부분이었기에, 모항까지 데려갈 필요가 없어 승조원들끼리 작당하고 보고를 안 하면 그만이었다. 또한, 생존자 중 선장과 기관장, 이들이 없으면 대체할 만한 인원을 전과 확인 및 정보 수집차 포로로 잡아 귀항하는 것은 개전 초부터 당연시됐기에, 이들 뿐 아니라 그보다 낮은 선원이어도 "선장이나 기관장인 줄 알고 건졌다."고 해도 상관 없었다. 되니츠 제독 본인도 부하들의 해당 지시 무시에 대해 딱히 질책하진 않았다.

5. 그 후

U-156은 1942년 9월 19일 영국 선적의 수송선 "퀘벡 시티"를 침몰시킨다. 라코니아 명령이 발효된 후였기 때문에 구조하지는 못했지만 하르텐슈타인 함장은 이들에게 물과 음식을 나눠주며 아프리카 해안의 방향을 알려주었다.

한편, 미군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조사도 처벌도 하지 않고 방치하였으며, 라코니아 사건은 빠르게 연합군 측에서 잊혀젔다.
"좋은 여행 되시고 안전하게 육지에 도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언젠가 보다 나은 세상에서 보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가십시오"

- 퀘벡시티 생존자들에게 전한 하르텐슈타인의 말. (출처)

U-156은 1943년 카리브해에서 통상파괴 임무를 수행하다 미해군 PBY 카탈리나의 공격을 받고 격침, 하르텐슈타인 대위를 비롯한 승조원 전원이 사망한다.

구조 작업에 참가했던 이탈리아 잠수함 코만단테 카펠리니는 무역을 위해 일본 점령지에 들렀다 마침 이탈리아가 항복하는 바람에 일본 해군에게 억류당한다. 일본 해군은 카펠리니를 독일 해군에게 넘겼지만 2년 후 독일도 항복해버리자 그냥 일본이 접수해버린다. 이 때문에 코만단테 카펠리니는 추축국 주요 삼국 모두에 소속되었던 유이한[4] 잠수함이 된다. 카펠리니의 승조원 1명은 이탈리아 해군에서 독일 해군으로 이직하고, 이후 일본에 아예 귀화해 정착했다.

라코니아 명령은 되니츠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서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미 해군원수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연합군 잠수함 모두에게도 공통된 사항이라며 변호했고, 그 과정에서 라코니아 사건이 재발굴 되었다. 결국, 라코니아 명령을 문제 삼아 되니츠를 기소한 것이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되었고[5], 생존자 구조 포기를 전제로 한 무제한 잠수함 작전 시행 자체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하되, 연합군 측의 동일 작전 시행과 구조 의무 불이행을 참작하여, 라코니아 명령을 통한 구조 불이행에 대해 과도한 책임을 물을 수 없음이 선고되었고, 영국을 제외한 모두가 이에 찬성하였다. 결론적으로 되니츠는 구조 불이행과 무제한 잠수함 작전 시행에 대한 부분적 책임과 다른 전범 행위에 대한 책임에 따라 징역 10년 형만을 선고받게 된다.

여담으로 라코니아가 침몰할 때 사망한 루돌프 샤프(Rudolph Sharp) 선장은 이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라코니아 이전에 루돌프 샤프는 수송선인 랭카스트리아(RMS Lancastria)를 담당했다. 이 배는 프랑스 침공 당시 영국군을 영국 본토로 구출하는 아리엘 작전(Operation Aerial)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1940년 6월 17일 생 나제르 인근 해역에서 독일 공군의 공습을 받고 침몰했다. 이 침몰로 인해 최소 3000명, 많게는 58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영국 선박 사고 중에선 역사상 가장 큰 피해였다. 당시 영국에선 덩케르크 철수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윈스턴 처칠 총리는 사고의 언론 보도를 금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6. 대중매체


2010년에 이 사건을 다룬 영화로 《라코니아호의 침몰》(The Sinking of the Laconia)이 개봉되었다. 유튜브에 풀영상이 존재한다. 리버레이터가 다가오자 영국 생존자들(!)과 독일해군 장병들이 쏘라고 악을 쓰자 함장은 끝까지 쏘지 마라고 지시하나, 기대를 저버리듯 유보트와 구명정에 포탄이 떨어진다. 독일 잠수함을 맞췄다고 희희낙낙하는 미 육군 장병들과 대조적으로 절망한 표정의 독일 해군 장병들 표정이 압권이다.

유보트 비밀일기에서도 등장한다.

상선 투스칸 스타를 격침시킨후, 적도 근해에서 연료 부족으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가운데 U-156(함장 하텐슈타인)에서 송신가능한 모든 주파수(독일, 미국, 공용)로 구조 전문을 송신하는것을 받고는, 함장과 사관들이 걱정을 하거나, 안 좋은 상황을 예견했었는데, 5회나 폭격을 당하고도 버텨낸 156외에 조난자들을 구조하던 U-506(함장 부르더만)도 2회 폭격을 당했다고 보고를 했다.

잠수함 시뮬레이션 게임 UBOAT에도 본 사건이 언급된다. 일자까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1942년 9월 내외에 무전을 통한 본부 주요 지시사항으로 언급되는 정도. 해당 명령이 발효된 이후에 격침된 배의 생존자들을 구조를 하면 현재 라코니아 명령이 시행 중이라고 하는 소소한 변경점이 생기지만 구조 보상과 같은 시스템 상의 별다른 변경점은 없다.


[1] 라코니아 사건 당시 B-24의 기장 하든은 발광신호와 적십자, 갑판에 늘어선 생존자 모두를 인식하고 있었다.[2] 이 변호는 공교롭게도 영국 장교들이 이탈리아 전쟁 포로 구획을 폐쇄해버린 것 때문에 별로 의미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RMS 라코니아 격침 생존자 인원 중 구조되지 못한 인원은 전부 이탈리아 전쟁 포로였다,[3] 해당 자료에서 인용함.[4]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의 마르코니급 잠수함인 루이지 토렐리.[5] 영국 해군 장교들이 이탈리아 포로 구획을 걸어잠가놓고 탈출한 것 또한 역풍을 더욱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물론 이것을 제외하고 봐도, 설령 당시 유보트들이 이탈리아 포로들만 구조하고 있었다 처도, 그걸 이유로 구조작업 중인 유보트를 공습한 것 자체가 해상 전통상 절대로 받아들여 질 수 없는 만행으로 여겨지는 일이었다. 하물며 구조되지 못한 인원이 죄다 이탈리아 포로인 사건에서 구조 중 공습은 참작될 만한 짓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