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20 16:33:40

라케스


1. 개요2. 등장인물3. 줄거리
3.1. 전반부 : 등장인물 소개와 논쟁의 배경3.2. 후반부 : 용기란 무엇인가
4. 여담

1. 개요

라케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이다. 부제는 '용기에 관하여'. 변명, 크리톤과 같은 초기 대화편으로 분류된다.

2. 등장인물

소크라테스
뤼시마코스
멜레시아스
라케스[1]
니키아스[2]
아리스테이디스
투퀴디데스
스테실라오스

3. 줄거리

3.1. 전반부 : 등장인물 소개와 논쟁의 배경

뤼시마코스와 멜레시아스는 자식교육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아들들에게 중보병 전투술을 가르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테네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들인 라케스와 니키아스[3]에게 가서 중보병 전투술을 가르칠지 말지에 관해 물어본다. 그러자 라케스와 니키아스는 젊은이 교육에는 소크라테스의 의견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라케스는 소크라테스가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 명성도 높고 그 사람 자신도 항상 젊은이들 가운데서 놀고 있는데 또 셋이 같은 동네 출신 아니냐고 운을 띄운다. 또 소크라테스 선생의 가르침을 듣거나 토론을 구경해 본 적은 없지만 같이 참전한 전투에서[4] 용감히 싸우며 퇴각했던 모습을 말하며 딴 사람들이 다 소크라테스 선생 같았으면 우리가 이겼을 거라고 칭찬한다. 그러자 니키아스 역시 내가 소크라테스 선생에게 자식 교육 좀 도와달라고 하니 음악선생으로 다몬을 추천해줬는데 다몬 선생 참 음악적으로 훌륭하더만 하고 칭찬한다.[5]

그래서 이들이 소크라테스와 만나게 된다. 뤼시마코스와 멜레시아스가 소크라테스와 만나게 되니 알고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소크라테스 아버지인 소프로니스코스와 자기들이 한동네 출신으로 매우 친했기 때문에 이들은 소크라테스도 알고 있었다. 최근 소크라테스란 사람이 젊은이들 사이에 명성이 높은 걸 알고는 있었는데 소프로니스코스의 아들 소크라테스인지는 몰랐던 그들은 친구 아들을 만나서 기쁘고 용맹하다니 기쁘고 명성이 높다니 또 기뻐서 소크라테스에게 자식 교육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우선 라케스와 니키아스가 중무장 전투술에 대한 자기 의견을 말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린다. 니키아스는 중무장 전투술의 필요성과 실용성 등을 이유로 들며 중무장 전투술을 익히면 그 다음 단계인 전략전술 등을 자연스레 배우게 될 것[6]이라고 찬성하나 라케스는 중무장 전투술 선생이 실제 전쟁에서 보였던 추태[7]와 왜 중무장 전투술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스파르타에 가려 하지는 않는지[8] 의심을 보이며 반대 의견을 낸다. 둘의 의견이 갈리자 뤼시마코스와 멜레시아스는 소크라테스에게 누구의 편을 드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 문제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이들의 다수결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지식이 있는 이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맞지 않냐고 되물으며[9] 여기 있는 이들 중에 본인이 덕(능력)을 갖추고 있던가 아니면 좋은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자가 없으면 우리끼리 토론해봤자 쓸모 없는것 아니냐고 한다. 또 중무장 전투술을 가르쳐야 하는 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전투술 그 자체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이유[10]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냐 하면서 덕, 시간이 없으니 덕의 일부인 용기가 무엇인지에 관해 우리 중에 아는 자가 있는지 검토해보자고 제안한다.[11] 소크라테스의 화법을 잘 알고있던 니키아스는 소크라테스와 논쟁을 하다보면 어느순간 중무장 전투술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의 양심이 주제로 바뀔 것이라고 말하지만 본인은 그런 담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제안을 받아들인다. 라케스 또한 자신은 성품과 행동이 올바른 사람의 말만을 좋아하는데 소크라테스가 그러한 덕을 지니고 있으니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3.2. 후반부 : 용기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라케스와 니키아스에게 용기를 정의해보라고 요구하고 우선 라케스가 용기란 전투에서 대오를 지키고 도망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하나 소크라테스는 전투 외에 다른 분야에도 용기 있는 자들이 있고 전투에서도 대오를 지키지 않고 용기있게 후퇴하거나 치고 빠지는 사례도 있다며 이 정의를 기각한다.[12] 라케스는 다시 어떠한 인내의 일종이라는 말로 용기를 정의내리나 현명하지 않고 어리석은 인내는 덕의 일종이라고 볼수 없지 않냐는 반론에 영혼의 현명한 인내로 정의를 축소시킨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소비를 참고 저축하는 자나 환자의 치료를 위해 그들의 애원을 애써 거부하는 의사가 용기있는건 아니지 않느냐면서 영혼의 현명한 인내라는 정의를 부정한다. 거기에 더해 불리한 상황에서 현명하게 싸움을 피하는 비겁한 신중함 보다는 비록 목숨이 위험할 지라도 전투에 임하는 어리석은 인내가 더 용기있지 않냐고 되묻고 라케스는 이에 정의를 영혼의 어리석은 인내로 수정한다. 현명한 인내보다 어리석은 인내가 더 용기있다는 결론[13]이 났기 때문이었지만 어리석음이라는 악덕이 훌륭한 덕의 일종이라는 용기의 본질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모순에 빠져 용기의 정의를 실패하게 된다.[14]

이어서 니키아스가 용기의 정의를 시도한다. 이론과 지식을 중시하는 니키아스는 이에 걸맞게 용기를 두려워 할 것과 대담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앎이라고 정의하며 용기를 앎의 일종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앞선 논증에서 용기의 정의를 실패한 라케스가 빈정이 상했는지 니키아스의 말에 딴지를 걸기 시작한다. 라케스는 우선 용기가 지식의 일종이라면 전투를 아는 군인처럼 의학을 아는 의사, 제작을 아는 장인들 역시 각자의 앎이 있으니 용기있는 자들이냐고 반론한다. 하지만 니키아스는 그런 전문 기술을 아는 것과는 달리 영혼의 삶과 죽음의 본질을 아는 것은 용기있는 자밖에 없다고 대꾸하고 이에 라케스는 니키아스가 예언자를 용기있는 자라 여긴다고 비꼰다. 하지만 니키아스는 예언자는 곧 지나갈 일에 대해서만 알지 그것의 본질을 알지는 못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장군이 예언자를 따르는게 아닌 예언자가 장군을 따르는 것이라고 재반론하며 자신의 주장을 굳힌다.[15] 라케스는 이에 납득하지 못한 태도를 보인다.

이때 소크라테스가 라케스 편에서 지원사격을 한다. 그는 니키아스에게 그렇다면 사자와 같은 맹수가 지식을 갖춘 거냐고 묻고 이에 니키아스는 경솔함과 용기는 다르다고 말하며 맹수는 그저 겁없고 무식할 뿐 진정 용기 있는 건 아니라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다시 온전한 지식이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당신은 다가올 미래에 관해서만 말했다고 지적하며[16] 니키아스가 용기의 1/3만을 말했다고 전체를 말하자면 두려워 할 것과 대담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것 뿐만이 아닌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선악을 알고 있는 것으로 정의하는게 맞지 않냐 한다. 니키아스가 이에 동의하자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이는 덕의 일부인 용기가 아닌 덕 그 자체에 대한 정의라 말하며 니키아스 또한 용기의 정의를 실패했다고 선언한다.[17]

이렇게 아테네의 유명한 두 지휘관 둘 다 용기가 뭔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게 되고 만다. 물론 소크라테스도 용기가 뭔지 제대로 답을 내리지 않으면서 앞으로 생각하면서 답을 찾아보자(고 독자를 설득하)는 아포리아 형식으로 논의는 끝을 맺고 이야기는 뤼시마코스가 소크라테스야 어쨌거나 우리 집에 자주 와라 와서 우리 아들이랑 대화도 많이 나누고 그래 줘라 밥 먹으러 올 거지? 이런 식으로 끝난다.

4. 여담

용기가 뭔지 잘 정리해주는 일은 아포리아로 끝나는 초기 대화편답게 일어나지 않지만 니키아스랑 라케스라는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비중이 있는 지휘관들이 특유의 캐릭터성과 그럴 듯한 주장을 통해 용기가 뭔지 말하면서 격렬히 대립하는 모습이 일품인 대화편이다. 또 플라톤이 이들을 은근히 까는 듯한 부분도 있고 키배에 흔히 따라오는 추한 모습도 보이기 때문에 철학 외적인 부분으로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는 글이다. 이런 점들에 더해 분량이 상대적으로 짧은 것도 있어 플라톤 저작 입문용 대화편으로 추천된다.
[1] 밑 니키아스와 함께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아테네 지휘관 중 하나이다. 행동파로서 훗날 전투에 솔선수범하다가 전사한다.[2]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알키비아데스에 대항해 온건파를 이끌고 니키아스 평화 협정을 체결한 사람이다. 지성파로서 전투 양상 예측은 잘 했으나, 예언을 너무 믿는 경향이 있어 훗날 이를 준수하여 철군을 미루다가 적에게 붙잡혀 처형된다. 시칠리아 원정 패전으로 아테네 패배의 원흉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하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등장하는 비중있는 역사인물.[3] 둘 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활약한 실존 인물이다.[4] 델리온 전투.[5] 두 장군의 소크라테스 칭찬에서 라케스의 경험 지향적 성격과 니키아스의 이론 지향적 성격이 드러난다.[6] 앎에 대한 욕구가 생길 것[7] 실제 전투에서 중무상 전투술의 덕을 본 사례가 없음[8] 그리스 세계에서 그런 기술에 가장 관심을 가질 나라가 스파르타니 스파르타에 가서 인정을 받는 것이 선생들에게 가장 좋은 길일텐데 스파르타엔 가려 하지 않고 아테네에 남아있으려 한다면 실제론 전투 실력이 스파르타에서 인정 못받을 정도로 형편없는 것 아니냐는 논리.[9]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린 플라톤)의 민주주의 비판이 어느정도 드러나는 부분[10] 자식들을 위해 무엇(=덕)이 필요한가[11] 다른 대화편 프로타고라스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덕의 일부가 즉 덕의 전체라고 주장하나 여기선 덕의 일부를 당연하다는 듯이 따로 여기고 있다.[12] 용기의 정의가 라케스에게 익숙한 보병 전투 분야에 너무 국한되지 않았냐는 비판.[13] 대처 지식을 모르고도 상황에 임하는 쪽이 지식을 알고 대처하는 자보다 더 용기있다는 논리.[14] 라케스는 전반부에 서술된 성격에 걸맞게 용기를 경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면모를 보인다.[15] 하지만 실역사의 니키아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예언자의 말을 믿고 전략적 실책을 범하는 이와 정반대의 행각을 보였다. 이론에 능하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자를 묘사하기 위한 플라톤의 의도로 추정되는 부분.[16] 과거의 일과 이미 닥친 현재의 일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으니 두려움은 미래에만 국한되지 않냐는 논리.[17] 재미있는 부분은 프로타고라스의 소크라테스는 덕의 일부가 곧 덕 그 자체라고 주장하며 니키아스의 주장과 유사한 지덕합일을 옹호하는 반면 라케스의 소크라테스는 이에 반론하는 입장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