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田ミイラ化遺体事件[1]
1. 개요
1999년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 부진정부작위범에 관련된 가장 유명한 주요 판례 중 하나로 일본 형법학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이다. 사건의 공식 명칭은 '나리타시 미라 시신 사건'이나, 사건과 관련된 단체의 이름을 따서 본 항목의 명칭이기도 한 '라이프스페이스 사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2. 사건 경위
2.1. 라이프스페이스에 관하여
라이프스페이스는 1983년 세무사 출신의 타카하시 코지(高橋弘二)라는 남성에 의해 창설된 자기계발 세미나 단체이다.[2] 처음에는 단체의 설립 취지에 걸맞게 자기계발에 관련된 강연과 세미나 등을 주로 실시했고, 'CAMB'라는 명상법을 중심으로 한 'CAMB 세미나'라는 것을 개최했다. 이 CAMB 세미나로 인해 한때는 참가자가 1만 명에 달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으며, 이와 병행해서 각종 자기계발서를 출판하기도 했다.그러나 이렇게 잘 나가던 라이프스페이스는 1995년 세미나에 참가한 대학생이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부터 점점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 사고의 여파로 참가자가 급격히 감소했고, 타카하시는 사태의 책임을 지고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1996년경부터는[3] 자신이 인도의 성자 사이바바가 직접 지명한 후계자 '샤크티팟 구루'라고 자칭하기 시작했고, 상대방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가볍게 두드리는 것으로 '샤크티'라고 부르는 에너지를 주입한다는 이른바 '샤크티팟'이라는 요법으로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래 '샤크티팟'이란 힌두교 영성에서 '영력의 원형을 부여하다', '제자(학생)를 깨닫게 하다' 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타카하시는 이를 신앙치료의 수단으로 변질시켜 사용했던 것.[4]
그리고 1997년부터 '샤크티팟 구루'의 올바른 가르침을 전파한다는 명목 하에 '샤크티팟 구루 재단(약칭 SPGF)'을 설립하고 '샤크티 치료'를 실시하는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고액의 수강료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2.2. 사건 발생
1999년 6월 24일 효고현 카와니시시에 거주하는 코바야시 신이치(小林晨一, 당시 66세)라는 남성이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이타미시의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코바야시의 장남 켄지(健児, 당시 31세)는 라이프스페이스의 회원으로 타카하시가 주창한 '샤크티팟 요법'을 맹신하고 있었다. 켄지는 타카하시에게 아버지의 병세에 대해 상담을 했고, 이에 타카하시는 "(아버지가)병원의 장난감 신세가 될 것이다", "링거는 독이다"라는 주장을 내세워 아버지를 '샤크티 치료'로 낫게 할 수 있다면서 퇴원시킬 것을 종용했다. 결국 타카하시의 말을 믿은 켄지는 7월 2일에 병원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퇴원시켜 치바현 나리타시 소재의 한 호텔 12층 객실로 데려가 타카하시에게 '샤크티팟 치료'를 받았으나, 코바야시는 다음날인 3일 아침 가래가 목에 걸려 질식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타카하시와 라이프스페이스 회원들은 가족들에게 코바야시가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고, 켄지와 주변 사람들도 이 말을 그대로 믿었다.그리고 이들은 계속 코바야시의 시신과 함께 무려 4개월 동안이나 호텔에 계속 머무르면서 호텔 측의 청소 서비스도 거부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생활했다. 그러다 11월 11일 수상한 단체 투숙객들이 4개월이 넘게 장기투숙 상태로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호텔 측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 문제의 객실에서 미라화된 코바야시 신이치의 시신을 발견했다.
2.3. 관계자 체포와 재판
사건 발생 다음해인 2000년 타카하시 코지와 코바야시 신이치의 장남 켄지를 포함한 라이프스페이스 회원 11명은 보호책임자유기치사 혐의로 체포되어 타카하시는 살인죄, 켄지는 보호자책임유기치사죄로 각각 기소되고 나머지 9명은 기소유예 처분되었다.이후 타카하시는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으나 "경찰이 호텔에 압수수색을 실시한 시점에서 피해자는 살아있었다", "피해자의 사인은 부검이다(...)", "자신의 체내에는 혈액 대신 공기가 순환하고 있다"라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되풀이한 탓에, 사람이 사망하고 시신이 미라화되는 괴이한 사건인데다 나름대로 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각 언론 기자들이 모인 기자회견장에서는 여기저기서 헛웃음과 폭소(...)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5]
이후에 진행된 재판에서 라이프스페이스 측은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했으나, 코바야시 켄지는 2001년 9월 28일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되었다. 한편 타카하시 코지는 1심에서 징역 15년, 2심에서는 부작위범으로 인정되어 징역 7년이 선고되었다. 타카하시 측은 최고재판소에 상고했지만 2005년 7월 4일 상고가 기각되어 판결이 확정되었다.
3. 재판 이후의 근황
2011년 12월 라이프스페이스 측은 '치바 나리타 미라 사건 재심을 지원하는 모임'을 발족하고 사건의 재심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12년 1월 해당 모임에서는 사건이 조작되었다면서 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변호사를 상대로 징계요청을 했으나 각하되자, 2014년 7월 14일 이의신청을 하는 등 아직도 정신 못 차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이들에 대해 비판적인 피해자 단체와 변호사 등을 상대로 마구잡이 소송을 걸어 일명 '공갈 소송' 문제로도 악명이 높았다.타카하시 코지의 아내 노부코를 포함한 라이프스페이스의 일부 구성원들이 보수 성향의 윤리운동 단체인 '토요시마구 윤리법인회'에 소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이들 중 2명은 미라 시신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체포된 적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과거 라이프스페이스의 잔당들이 단체를 가로채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으며, 윤리법인회의 본부에 해당하는 일반 사단법인 윤리연구회의 담당자조차도 라이프스페이스 관련자들이 윤리법인회에 속해 있는 사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며 경악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타카하시 코지는 2009년에 만기 출소했으며, 그 이후에는 표면적으로 활동한 흔적이 없어 근황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