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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5 23:11:31

동제사


1. 배경 및 정의2. 조직3. 사상4. 활동

1. 배경 및 정의

신규식을 비롯해 일찍이 상하이로 진출하여 근거지를 확보하던 몇몇 민족운동가들이 중국 신해혁명 운동에 적극 협조하는 동안, 민족독립에 뜻을 둔 지사들도 중국혁명의 진척에 자극이 되어 점차 상하이로 모이게 되었다.

1912년 5월 20일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조소앙, 문일평, 홍명희 등은 동제사를 결성하였다.

동제사는 비밀결사였기 때문에 조직형태나 규모, 정강을 파악할만한 자료는 없다. 신규식 이외에 박은식, 김규식, 신채호, 홍명희, 조소앙, 문일평, 신건식, 조성환 등이 결성 이후 적극 활동하였다. 결성 목적은 동제사의 "동제 同濟(동주공제, 同舟共濟)란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배를 타고 피안에 도달하자."는 의미가 말해주듯 한 인간의 친목융화, 간난상구를 목적으로 한다고 표방하였지만, 실제로는 국권회복이었다.

2. 조직

본부는 상하이, 지사는 베이징, 톈진, 만주, 러시아, 미국, 일본 등지에 설치되었다. 본부에는 이사장과 총재를 두며, 지사에는 사장과 간사를 두었다.[1] 이후 점차 확대되어 최전성기엔 300여 명의 회원을 가질 정도로 조국광복의 중심기구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회원은 비밀을 맹약하고 이를 엄수하며 간부 상호간에는 암호를 사용, 왕래했다.
이사장 신규식
총재 박은식
회원 신채호, 홍명희, 조소앙, 문일평, 박찬익, 조성환, 신건식, 농죽, 김용호, 신철, 신무, 민제호, 김갑, 정환범, 김용준, 민충식, 윤보선, 이찬영, 김영무, 이광, 신우창, 한진산, 김정, 김덕, 변영만, 민필호, 김규식, 신석우, 여운형, 선우혁, 서병호, 조동우, 장건상, 정원택

3. 사상

동제사의 핵심인물인 박은식, 신채호, 조소앙등은 시민적 민족주의 사상, 아나키즘, 대동사상을 정치 사상으로 하며, 국혼을 중시하는 민족주의적 역사관과 대종교의 국가적 신앙을 공통으로 가졌던 점으로 보아 동제사의 기본이념과 독립운동방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4. 활동

동제사가 실제로 어떻게 활동하였는가는 자료부족으로 파악이 불가능하다. 1913년 4월 21일에 신입회원을 욱한 환영회를 개최했으며, 7월 28일에서 8월 13일까지 난징에서 동제사 총회를 개최하였던 기록을 통해 단편적인 활동이 있다.[2]

북미, 일본 지사가 설치되고 300여명의 회원은 각 지사 중심으로 상호 연락, 정보교환하여 상하이본부는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핵심적 단체였다. 주요인사인 신규식, 박은식, 조성환 등은 미국과 하와이에서 보내주는 『신한민보』,『국민보』등을 받아서 안동현으로 보내면, 박광, 박세빈 등이 다시 국내로 배포했던 것이다.

동제사 결성 이후 1915년 신한혁명당 결성, 1917년에 선포된 대동단결선언, 1918년 신한청년당 결성,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등에 동제사 회원들의 역할이 컸다.

신규식이 순국한 1922년 9월 이후 박찬익이 동제사 이사장직을 맡았다고 한 것을 보아 그때까지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1] 김정명, 『조선독립운동』III ; 김희곤, 『한국독립운동단체연구』, 지식산업사, 1995[2] 정원택, 『지산외유일지』, 3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