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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11-04 09:34:29

돌부처

파일:/pds/200901/16/47/a0106447_49707d9e7c1c2.jpg
1. 개요2. 마애불3. 민간에서의 인식4. 별명
4.1. 이 별명을 가진 인물

1. 개요

돌부처는 돌로 조각한 부처다.

절 안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산에 있다. 예를 들면 대구, 경산의 명물인 갓바위. 다만 산자락 야외에 돌부처만 달랑 있는 것은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수백 년 전 과거에는 절이 있었는데 폐사가 되면서 건물이 사라지고 돌부처만 남아서 문화재가 된 것도 많다.

최근에는 절 안에 비치된 것도 꽤 있다. 산에 있는 거석을 그 자리에서 조각해서 만들거나 한 것들도 있으며, 절벽에 만들어 놓은 것들도 상당히 많다.

돌로 만들어졌다는 이유인지 꽤나 우직한 느낌을 준다.

2.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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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동일 시대 내 배열은 지정종목, 지정번호 순이다.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은 고구려와 신라의 양식이 모두 드러나는 사례로, 그 제작 주체를 두고 이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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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석불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마애(磨崖)라는 단어는 큰 바위나 절벽에 새긴 글씨나 불상을 가리킨다. 즉 '마애불'이란 바위나 절벽에 새긴 불상을 가리킨다. 목록은 분류:마애불 참조. 원래 부조가 다수지만 바미안 석불, 러산대불처럼 석굴사원을 만드려고 파들어가다 아예 환조가 되기도 한다. 아니면 불두(불상의 머리)는 절벽 위에 다른 돌을 가져와 온전히 만들고 불신(불상의 몸)은 절벽에 선으로 새긴 경우도 있다.

한반도의 마애불은 6세기 백제에서 처음으로 조성되었다.[1] 이후 7세기 무렵에는 신라로 퍼졌다. 고구려의 마애불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이 고구려와 신라 양식이 모두 드러나는 사례이나, 그 제작 주체를 두고 이견이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불교적 신성성 때문에 산에 많은 것과 달리, 고려시대에는 사람들과 더 밀접한 곳에 제작되기 시작했다. 고려 시절부터 크기가 매우 커지는데 왕실의 위세를 보이려 했다 추정된다. 조선 건국 후 숭유억불로 거의 끊기고, 조선 후기 부활해 회화 기반 명확한 도상을 구현했다. 19세기 후반~근대 대부분은 명문을 새겨 조성 배경·주체 등을 알 수 있다.※

3. 민간에서의 인식

참고로 코를 갈아서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 때문인지 코가 없는 부처님이 참 많다.

남근석을 병행하는 경우가 꽤 있다. 앞에서 보면 돌부처인데 뒤에서 보니 남근석이더라 하는 경우. 사실 위 이미지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좌불상의 실루엣은 남근상의 그것과 꽤 닮았다.[2]

동방화영총의 시키에이키 야마자나두가 이 돌부처(지장보살)였다.

4. 별명

1번 문단에서 따온, 평범한 사람이라면 표정이 변할 만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일정한 표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별명. 실상 포커페이스나 목석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멘탈갑하고 일맥상통하다.

이외에, 완고한 사람이나 지나칠 만큼 무던하고 착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공교롭게도 국내 스포츠 선수 중 이 별명을 지닌 선수인 이창호, 오승환, 김은정은 모두 세계대회 우승 또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경력이 있으며, 동시에 각 분야의 세계 최고 리그 or 대회에서 입상경력이 있다. 또한, 김은정은 오승환의 소속팀인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다.

4.1. 이 별명을 가진 인물


[1] 대표적인 작품으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이 있다. 백제의 마애불은 대부분 충남 해안에 쏠렸거니와 중국풍이 가미되었으므로, 중국과 교역을 하다가 문화도 들어온 듯하다.[2] 이는 힌두교 시바 신앙의 링감(남근을 상징하는 돌로 된 숭배물)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