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즉 독일국방군 소속 각 부대에 대한 문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군은 황제 체제 아래의 독일제국군으로 그 구성에서 차이가 나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연방군은 나치 체제와 단절하였기 때문에 역시 부대 전통이 이어지지 않는다. 이에 본 문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부대들만을 대상으로 한다.무장친위대 소속 부대는 무장친위대/부대일람을 참고할 것.
2. 육군
2.1. 전구사령부[1]
- OB West - D집단군으로도 불리며 1940년부터 종전시까지 프랑스, 베네룩스를 담당했다.
- OB Niederlande - 25군으로도 불리며 종전 직전에 네덜란드 전구사령부로 개편됐다.
- OB Süd - 1941년 12월부터 1943년 11월까지 아프리카와 지중해 전부를 담당했다.[2]
- OB Südost - F집단군으로도 불리며 1943년 1월부터 종전시까지 발칸반도를 담당했다.
- OB Südwest - C집단군으로도 불리며 1943년 11월부터 종전시까지 이탈리아를 담당했다.
- OB Oberrhein - 오버라인집단군으로도 불리며 육군 소속임에도 지휘부가 SS 소속이라 서부전구사령부가 아니라 히틀러 직속으로 배속되었다. 1944년 11월부터 1945년 2월까지 존재했으며 담당 지역은 독일 남서부였다.
- OB Ost - 1939년부터 바르바로사 작전 준비기까지 존재했으며 폴란드를 담당했다.
- OB Nord - 종전 직전에 창설되어 노르웨이를 담당했다.
- OB Nordwest - 1945년 3월에 창설되어 독일 북서부를 담당했다. 4월부터는 H집단군이 북서집단군으로 개칭되면서 북서전구사령부를 구성했다.
2.2. 집단군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전역• 북부 집단군
• 남부 집단군
1940년 5월 10일~1940년 6월 22일 프랑스 전역• 남부 집단군
• A집단군
• B집단군
• C집단군
1941년 6월 22일~1945년 5월 9일 독-소전쟁• B집단군
• C집단군
• 1941년
1944년 6월 8일 ~ 1945년 5월 8일 프랑스~독일 서부전역1943년 2월 ~ 1943년 5월 튀니지 전역• 북부집단군
• 중부집단군
• 남부집단군
• 1942년• 1943년• 1944년• 1945년• 중부집단군
• 남부집단군
• 아프리카 집단군
1943년 7월 ~ 1945년 이탈리아 전역• B집단군[15]
• C집단군
1943년 8월 ~ 1944년 9월 발칸 전역• C집단군
• F집단군
• E집단군[16]
• E집단군[16]
2.3. 군
- 제1군 - 전쟁기간 내내 서부전선을 담당하던 몇 안되는 부대로 폴란드 전역과 프랑스 전역에서는 7군과 함께 C집단군에 배속되어 마지노선 방어를 담당했고 이후로도 D집단군/서부전구사령부 소속으로 계속 프랑스에 머무르다 1944년부터 19군과 함께 G집단군 소속으로 프랑스 남서부에서 해안을 방어하다가 종전때까지 독일 남서부를 방어했다.
- 제2군 - 창설 당시엔 육군최고사령부 예비였으며 프랑스 전역에서 돌파에 성공한 A집단군에 배속되어 전투에 참여했다. 이후 다시 예비로 있다가 12군, 1기갑집단과 함께 유고슬라비아 전역에 참전한 뒤 바르바로사 작전 도중 중부집단군에 증원됐다. 그 후로 쭉 중부집단군과 남부집단군의 연결을 담당했으며 종전 직전에는 단치히에 갇혀서 방어전을 수행하다가 항복했다.
- 제3군 - 폴란드 전역에서 북부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했으며 전역이 마무리 된 후 16군으로 재편됐다.
- 제4군 - 폴란드 전역에서 3군과 함께 북부집단군 소속이었으며 프랑스 전역에서는 12군, 16군과 함께 A집단군 소속으로 주공을 담당했다. 바르바로사 작전부터는 9군, 2,3기갑집단과 함께 중부집단군 소속으로 중부전선을 담당했으며 바그라티온 작전 때 전멸했다가 재건됐다. 종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는 북부집단군 소속으로 동프로이센에 갇혀서 절망적인 방어전을 수행하다가 2군과 합쳐졌고 지휘부는 독일로 이동해 21군을 구성했다.
- 제5군 - 폴란드 전역 당시 마지노선을 방어했으나 전투에는 거의 휘말리지 않았고 18군으로 재편됐다.
- 제6군 - 프랑스 전역에서 18군과 함께 B집단군 소속으로 저지대 침공에 참여했으며 바르바로사 작전에서는 남부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청색 작전에서 B집단군 소속이 되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전멸했다가 재건되어 동부전선 최남단을 담당했다. 1944년 여름에 루마니아에서 다시 괴멸됐지만 또다시 재건되어 종전 시점에서는 헝가리 동부와 오스트리아를 방어하고 있었다.
- 제7군
- 제8군 - 폴란드 전역에서 10군, 14군과 함께 남부집단군 소속으로 참전 한 뒤 2군으로 재편되었다. 이후 쿠르스크 전투 이후 켐프 분견군이 8군으로 개칭되면서 다시 창설됐고 우크라이나와 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에서 종전을 맞이했다.
- 제9군 - 프랑스 전역 도중에 창설되었으며 독일군이 돌파에 성공한 이후 B집단군에 증원되었다. 바르바로사 작전에서는 2,3기갑집단과 함께 중부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하였고 르제프 전투에서 돌출부를 방어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북쪽 공세를 담당했으나 패배한 이후 드네프르 강으로 밀려났고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괴멸됐다가 재건됐다. 이후 폴란드를 방어하다가 종전 시점에서는 중부집단군 소속으로 베를린을 방어하고 있었다.
- 제10군 - 폴란드 전역에서 8군,14군과 함께 남부집단군 소속이었으며 전역 종료 후 6군으로 재편됐다. 1943년에 이탈리아에서 재창설되어 14군과 함께 C집단군/남서전구사령부 소속으로 종전시까지 이탈리아를 방어했다.
- 제11군 -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12군을 대신하기 위해 창설됐다. 본래 목적은 루마니아 방어였으나 1기갑집단, 6, 17군과 함께 남부집단군 소속으로 공세에 참여했다. 이후 세바스토폴 전투에 참여했으며 크림반도 전역 종료 후 레닌그라드로 이동해 북부집단군 휘하에서 공세에 참여했다. 1942년 말에 휘하 부대는 18군에 넘기고 지휘부는 돈집단군이 되었다. 이후 지점 작전 진행을 위해 서쪽에서 이동해 온 오버라인집단군 지휘부로 11군[17]을 재창설했으나 공세 실패 이후 곧 해산되었다. 종전 직전에 서부에서 재창설됐지만 곧 포위되어 항복했다.
- 제12군 - 폴란드 전역 이후 창설되어 프랑스 전역에서 4, 16군과 함께 A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 1기갑집단, 2군과 함께 참전하여 전역이 종료된 후 그대로 남아 E집단군으로 재편됐다. 이후 북부집단군 지휘부[18]와 11군 지휘부의 잔존 세력으로 재창설하여 베를린 서부를 담당했으나 베를린 구출에 실패한 뒤 항복했다.
- 제14군 - 폴란드 전역에서 8군,10군과 함께 남부집단군 소속이었으며 전역 종료 후 12군으로 재편됐다. 1943년에 이탈리아에서 재창설되어 10군과 함께 C집단군/남서전구사령부 소속으로 종전시까지 이탈리아를 방어했다.
- 제15군 - 1군과 함께 서부에만 있던 부대로 프랑스 전역 종료 후 1941년에 창설됐다. 노르망디 작전 시점에서는 7군과 함께 B집단군 소속으로 프랑스 북쪽해안을 담당하다가 독일 서부로 밀려났고 루르에서 부대가 와해되면서 항복했다.
- 제16군 - 프랑스 전역에서 4,12군과 함께 A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했고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18군, 4기갑집단과 함께 북부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해 레닌그라드 공략을 담당했다. 1944년 말에는 쿠를란트 집단군 소속으로 쿠를란트에 갇혔고 그 상태로 종전을 맞이했다.
- 제17군 -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남부집단군 소속으로 6, 11군, 1기갑집단과 함께 참전했다. 청색 작전에서 A집단군 소속으로 코카서스 전역에 참여했으며 이후 유일하게 타만 반도에 남아 있다가 1943년 말에 크림반도로 후퇴했다. 크림반도에서도 밀려난 이후에는 중부집단군 소속으로 폴란드 남부와 독일 남동부를 방어하다가 항복했다.
- 제18군 - 프랑스 전역에서 6군과 함께 B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했고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16군, 4기갑집단과 함께 북부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해 레닌그라드 공략을 담당했다. 1944년 말에는 쿠를란트 집단군 소속으로 쿠를란트에 갇혔고 그 상태로 종전을 맞이했다.
- 제19군 - 1943년에 프랑스 남부 방어를 위해 창설됐다. 1군과 함께 G집단군 소속으로 용기병 작전 이후에는 독일 남서부로 후퇴하였고 계속 밀려나다가 종전을 맞이했다.
- 제20산악군 - 1942년에 핀란드 지원을 위해 라플란드군으로 창설됐으며 이후 20산악군으로 개칭됐다. 이후 쭉 핀란드에 주둔하다 1944년 말에 노르웨이로 철수해서 노르웨이를 담당했다.
- 제21군 - 종전 직전에 독일 북동부 방어를 위해 창설된 부대로 휘하에 배속된 부대가 이미 괴멸된 상태라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 제24군 - 1944년 말에 독일남부 방어를 위해 창설되었다. 배속된 부대가 없어 19군에 배속되었다가 사단급 부대 몇개를 배속받았다.
- 제25군 - 1944년 말에 네덜란드를 방어하기 위해 창설되었으나 곧 네덜란드에 갇혔고 종전 직전에는 네덜란드 전구사령부로 개편되었으나 군단급 이상의 전력을 보유하지 못했다.
- 제1기갑군 - 프랑스 전역에서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으로 창설되어 4군, 12군, 16군과 함께 A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했으며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는 1기갑집단이 되어 2군, 12군과 함께 참전했다. 바르바로사 작전에서는 6군, 11군, 17군과 함께 남부집단군 소속이었다. 청색 작전에서는 1기갑군이 되어 A집단군 소속으로 코카서스 전역을 담당했고 이후 드네프르 강을 따라 쭉 밀려나 4기갑군과 함께 북우크라이나 집단군 소속으로 폴란드 남동부와 슬로바키아를 방어하다가 체코에서 항복했다.
- 제2기갑군 - 프랑스 전역 도중에 돌파에 성공한 기갑부대들을 모아 구데리안 기갑집단으로 창설됐다.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2기갑집단이 되어 4, 9군, 3기갑집단과 함께 중부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했으며 2기갑군으로 승격된 이후 르제프 돌출부 남부를 담당했다. 쿠르스크 전투 이후 독일군이 오룔 돌출부를 포기하면서 유고슬라비아로 이동하여 F집단군/남동전구사령부 소속으로 대파르티잔 전투에 투입되었다. 종전 시점에서는 남부집단군 소속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항복했다.
- 제3기갑군 - 바르바로사 작전을 위해 창설됐으며 2기갑집단, 4,9군과 함께 중부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이후 3기갑군이 되어 북부집단군과 중부집단군을 연결을 담당했으며 바그라티온 작전 때 괴멸됐다가 재건되어 동프로이센을 방어했다. 1945년에 소련군이 동프로이센을 포위하자 4군에 휘하 부대를 넘기고 지휘부는 독일 북동부로 이동했다.[19] 이후 비스툴라 집단군에 배속되어 종전을 맞이했다.
- 제4기갑군 - 바르바로사 작전을 위해 창설됐으며 16, 18군과 함께 북부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태풍 작전에서는 중부집단군 소속으로 주공을 담당했으며 청색 작전에서도 B집단군 소속으로 6군과 함께 주공을 담당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는 남쪽 방면의 주공을 담당했으나 패배한 이후 키예프까지 밀려났고 이후 1기갑군과 함께 북우크라이나 집단군 소속으로 폴란드 남동부를 담당했다. 종전 시점에서는 폴란드에서도 밀려나 독일 남동부를 방어하고 있었다.
- 제5기갑군 - 1943년에 튀니지 방어를 위해 창설되었고 곧 아프리카 집단군에 배속되었다가 항복과 함께 전멸했다. 1944년 봄에 서부기갑집단이 창설됐고 팔레즈 포위전에서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으나 8월에 5기갑군으로 재편됐다. B집단군 소속으로 아르덴 공세에 참여했으나 실패했고 루르에서 포위되어 항복했다.
- 제6기갑군 - 비공식적으로 6SS기갑군으로도 불리며 아르덴 공세를 위해 창설됐고 공세 실패 후에 동부로 이동해 봄의 새싹 작전에 참여했다. 종전 시점에서는 오스트리아에 있었다.
- 제1공수군 - 1944년 봄에 창설되어 노르망디 작전 이후에 서부전선에 투입됐으며 마켓가든 작전 당시 H집단군 소속으로 네덜란드의 25군과 함께 북서전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 동프로이센군 - 종전 직전에 2군 사령부 및 2군과 4군 소속 부대를 동프로이센군으로 재편했으며 동프로이센 지역에 흩어진 모든 부대들의 방어전을 담당했다.
- 아프리카 기갑군 - 북아프리카 전역을 담당한 부대로 아프리카 기갑집단으로 창설되어 기갑군이 되었고 엘알라메인에서 패한 후 독일-이탈리아 기갑군이 되었다가 튀니지 전역에서 아프리카 집단군이 되었다.
- 노르웨이군 - 1940년에 노르웨이 방어를 위해 창설됐고 1944년 말에 핀란드에서 철수한 20산악군에게 담당구역과 부대를 넘기고 해산됐다.
2.4. 군단
문서 참조.2.5. 사단
- 기갑교도사단
- 15기갑사단
- 44사단 : 오스트리아 출신 장병으로 구성.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전멸함.
- 250보병사단 : 일명 청색사단. 스페인 의용군으로 편성한 부대. 항목 참조.
- 기갑척탄병사단 그로스도이칠란트: 국방군 최정예 사단으로 일명 대독일 사단으로 알려져 있다. 세부 사항은 문서 참조
- 제7기갑사단: 에르빈 롬멜이 프랑스 침공때 이끈 그 유령 사단이다.
- 제21기갑사단: 북아프리카 군단의 주력 사단 중 하나였다. 토브룩과 제 1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 참여하여 영국군을 몰아붙였지만 중과부적으로 제 2차 엘 알라메인 전투 패전이후 영국군과 미군에게 썰려나갔고 북아프리카 전역의 패배와 함께 사실상 부대가 해체되었다. 하지만 북아프리카에서 전공이 많은 21기갑사단을 그대로 해체시키긴 그랬던 국방군 사령부는 재창설하여 서부전선으로 배치하였다. 재창설된 21기갑사단은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캉에서 영국군과 맞붙어 싸웠는데 버나드 몽고메리가 이들을 돌파하기 위해 계획한 굿우드 작전 역시 21기갑사단에 의해 실패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패튼이 이끄는 미군이 코브라 작전을 성공하여 독일군을 팔레즈 포위망에 가두면서 사단은 큰 피해를 입었다.
2.6. 전투단
3. 해군
3.1. 수상함 전대
3.2. 잠수함 전대
4. 공군
4.1. 항공함대
LuftflotteLuftflotte 1
Luftflotte 2
Luftflotte 3
Luftflotte 4
Luftflotte 5
Luftflotte 6
4.2. 구축항공단
ZerstörergeschwaderZG 1
ZG 26
ZG 76
4.3. 전투항공단
JagdgeschwaderJG 1 외자우(Oesau)
JG 2 리히트호펜(Richthofen)
JG 3 우데트(Udet)
JG 5 아이스미어(Eismeer)
JG 6
JG 7 노보트니(Nowotny)
JG 11
JG 20
JG 26 슐라게터(Schlageter)
JG 27 아프리카(Afrika)
JG 50
JG 51 묄더스(Mölders)
JG 52
JG 53 피크 아스(Pik As)
JG 54 그륀헤르츠(Grünherz)
JG 71
JG 73 슈타인호프(Steinhoff)
JG 77 헤르츠 아스(Herz As)
JG 104
JG 130
JG 132
JG 133
JG 135
JG 138
JG 141
JG 144
JG 231
JG 232
JG 234
JG 300 빌데 자우(Wilde Sau)
JG 301
JG z. b. V.
4.4. 야간전투항공단
NachtjagdgeschwaderNJG 1
NJG 2
NJG 3
NJG 4
NJG 5
NJG 6
NJG 11
NJG 100
4.5. 폭격항공단
KampfgeschwaderKG 1
KG 2
KG 3
KG 4
KG 6
KG 26
KG 27
KG 30
KG 40
KG 51
KG 53
KG 54
KG 55
KG 76
KG 77
KG 100
KG 200
4.6. 급강하폭격항공단
SturzkampfgeschwaderStG 1
StG 2
StG 3
StG 77
4.7. 고속폭격항공단
SchnellkampfgeschwaderSKG 10
SKG 210
4.8. 지상공격항공단
SchlachtgeschwaderSG 1
SG 2
SG 3
SG 10
SG 77
5. 관련 문서
[1] OB는 최고사령관이라는 뜻인 Oberbefehlshaber의 줄임말로 국방군최고사령부 직속이다.[2] 병력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서부전구사령부와 함께 유의미한 전구사령부의 역할을 수행한 유이한 사령부이다.[3] 남부 집단군 분할[4] 남부 집단군 분할[5] B집단군에서 돈집단군, 돈집단군에서 남부집단군으로 개칭[6] 남부집단군에서 개칭[7] A집단군에서 개칭[8] 북부집단군에서 개칭[9] 중부집단군에서 개칭[10] 북우크라이나집단군에서 A집단군, A집단군에서 중부집단군으로 개칭[11] 남우크라이나집단군에서 개칭[12] 동부전선을 담당한 육군최고사령부 소속이 아닌 국방군최고사령부의 남동전구사령부를 구성[13] 북서집단군으로 개칭[14] 육군 소속이지만 지휘부는 무장친위대로 구성, 휘하 부대는 G집단군에 흡수되고 사령부는 동부로 이동해 11군을 지휘하면서 동지 작전을 진행했다.[15] 1943년 11월에 프랑스로 이동[16] 흩어진 군단들을 지휘하는 사실상의 야전군급 제대로 지휘부도 12군 사령부로 구성되었다. 집단군 자체도 F집단군에 배속되었으며 군집단이 아닌 집단군이 집단군 휘하에 배속된 사례는 E집단군이 유일하다.[17] 흔히 11SS기갑군이라 불리는 부대로 공식적으로는 육군 소속으로 SS가 부대명에 들어가지 않는다.[18] 전쟁 기간 대부분 중부집단군으로 존재한 부대다.[19] 이동한 이유 자체는 지점 작전을 위해서였으나 도저히 시간을 맞출수가 없어 11군이 공세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