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하크 파샤 궁전에서 바라본 시가지
이스하크 파샤 궁전과 멀리 보이는 아라라트산
1. 개요
터키어 Doğubayazıt쿠르드어 Bazîd
아르메니아어 Պայազատ [1] / Դարոյնք [2]
튀르키예 동부 아으르주의 도시. 도우베야즈트, 도우베야짓, 도구바야지트, 도구베야지트 등으로도 표기된다. 으드르에서 남쪽으로 40km, 아으르에서 동남쪽으로 80km, 반에서 동북쪽으로 140km 떨어진 해발 1620m의 고원에 위치한다. 주민들은 대부분 쿠르드인이고, 인구는 약 8만명이다. 동남쪽 외곽의 이스하크 (이삭) 파샤 궁전과 동북쪽 20km 지점의 아라라트산 (아으르산)이 주요 관광지이다.
동쪽 10km 지점의 치프틀릭은 튀르키예의 마지막 쿠르드 독립 국가였던 아라라트 공화국의 수도인 쿠르다바였고, 남쪽 50km 지점은 찰디란 전투가 벌어졌던 찰드란 분지이다. 남쪽과 동남쪽으로 20~25km 방향에 이란과의 국경이 있다. 사실 이스하크 파샤 궁전 일대가 베야즈트라 불리던 원래 도시가 있던 곳이었는데, 1930년 아라라트 공화국 멸망 당시 파괴된 후 현재의 시가지가 세워진 것이다.[3]
2. 역사
옛 베야즈트 성채와 모스크 일대
이스하크 파샤 사라이 (이삭 파샤 궁전)
1877년 베야즈트 전투
고대 우라르투 왕국 시기부터 성채가 세워졌고, 아르메니아 인들이 주로 거주하며 다루니크 혹은 다로인크 (Դարույնք)라 불렸다. 고대 아르메니아 왕국 시기 다루니크에는 왕실 보물고가 있었고, 4세기에 사산 제국이 공격했지만 함락하지 못했다고 한다. 중세 바그라투니 왕조의 아르메니아 시기에는 왕자들이 다루니크에 거주했고, 성탑이 둘러진 요새 도시가 형성되었다. 922년 가기크 1세가 다루니크를 주교구로 삼았고, 11세기에는 동로마 제국에 이어 셀주크 제국이 일대를 지배했다. 셀주크 시기부터 타브리즈와 에르주룸을 잇는 노상에 있던 다루니크 일대의 평원은 산지를 지나던 유목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중간 거점으로 활용되며 점차 중시되었다.
1064년부터 튀르크 부족들이 일대에 정착했고, 14세기 후반에 서부 이란을 지배하던 잘라이르 왕조의 왕공 바예지트가 성채를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16세기 사파비 왕조 시기부터 도시는 바예지트에서 유래한 베야즈트로 불리게 되었고, 1514년 찰디란 전투 후 일대는 오스만 제국령이 되었다. 오스만 시기 사파비 왕조와의 국경 지대였던 베야즈트 일대는 자치적인 쿠르드 베이 (태수)가 통치했고, 그중 하나인 콜라크 압디 파샤는 1685년부터 궁전을 세우기 시작했고, 이는 그의 후손인 이스하크 파샤에 의해 완공되어 이스하크 파샤 궁전이라 불리게 되었다. 1821년에 압바스 미르자가 이끄는 카자르 왕조 군이 베야즈트를 점령했으나 종전 후 철수했다.
1856년 크림 전쟁의 아나톨리아 전역에서 러시아 제국군이 베야즈트를 점령했고,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중인 1877년 6월에 러시아 군이 공성전 끝에 재차 점령했다. 이듬해 휴전 후 러시아 군이 철수할 때에 많은 아르메니아인 주민들이 동행하여 세반 호수변에 '신' 베야지트 (현 가바르)를 건설했다. 1차 대전과 터키 독립 전쟁에서도 베야즈트는 큰 피해를 입었다. 1920년부터는 일대에서 황이 생산되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후 일대에는 쿠르드 인이 대다수가 되었는데, 1927년부터 아라라트 공화국 설립에 적극 가담한 이유로 1930년의 토벌 당시 터키군에 의해 궁전과 모스크 및 성채 일부 외에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기존 시가지의 서북쪽에 현재의 새 시가지가 세워졌고, 동쪽 베야즈트란 뜻인 도우베야즈트로 명명되었다. 2006년에는 조류 독감 유행으로 4명이 사망했다.
3. 볼거리
옛 베야즈트 (에스키 베야즈트) 유적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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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키 베야즈트와 바위산 | 이스하크 파샤 궁전과 베야즈트의 옛 모습 |
17세기 말엽 동남부 아나톨리아에서 활약한 학카리 출신의 학자 아흐메트 하니의 영묘
3.1. 베야즈트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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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야즈트 성벽과 모스크 | 두 돌산과 성벽 |
성채와 모스크
하부 성벽 모습
3.2. 이스하크 파샤 궁전
전체 전경
정문의 모습
모스크 일대
모스크 내부
접견실
하렘의 거실
하렘의 방
목욕탕
내부 무덤
17-18세기에 현지 쿠르드 호족이 해발 1900m의 고지대에 세운 이스하크 파샤 궁전. 튀르키예 동부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로, 2005년에 발행된 100리라 화폐의 도안이 되었다. 기존 오스만 황궁 건축에 셀주크, 아르메니아, 바로크 양식이 더해져 독특한 모습을 지닌다. 방이 396개에 달하며, 각지에 화려한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1840년의 지진과 1877년과 1차 대전기 러시아의 침공으로 일부 파괴되었다. 이후 1937년까지는 병영으로 쓰였다. 2004년과 2011년에 복구 공사가 있었다. 입장료는 25 리라고, 월요일에는 휴관일이니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