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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9:01

더스틴 니퍼트/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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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더스틴 니퍼트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메이저리그

2.1.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니퍼트는 2002년 애리조나에 입단해 최고 97마일(156km/h)의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를 던지는 파워피쳐로 미국의 대표적인 마이너리그 유망주 관련 사이트인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선정하는 유망주 TOP 100에 2번('04, '06) 들어갔다. 그만큼 구단의 기대를 많이 받았으며 당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마이너리그 구단의 홈구장이 투수에게 불리한 구장이었음에도 선전하며 200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파일:external/www2.pictures.gi.zimbio.com/Colorado+Rockies+v+Arizona+Diamondbacks+S-IG8pDO0RAl.jpg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뛰기엔 제구력이 매우 부족했던 니퍼트는 애리조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며 2007년에는 패전처리로 전업하는 등, 애리조나에서 3년간 2승 3패 방어율 6.43의 성적을 기록한 뒤 2008년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2.2. 텍사스 레인저스

텍사스에서도 첫 해 브랜든 맥카시가 팔꿈치 염증으로 전반기를 날리는동안 5선발 돌려막기에 참가해 3승 5패 방어율 6.40으로 부진했던 니퍼트는 그대로 잊혀지는 듯 했지만 텍사스 레인저스의 빈약한 투수사정 덕에 5선발과 패전처리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살아남았고, 제구력을 다듬는 데에 성공하며 2009년 10번의 선발 출장 경기를 포함해 20경기에 출전해 5승 3패 3.88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파일:external/www3.pictures.zimbio.com/Toronto+Blue+Jays+v+Texas+Rangers+1hZGRloZQGpl.jpg

하지만 젊은 선발투수들이 성장하고 있던 텍사스 역시 니퍼트에게 5선발 기회를 더이상 주진 못했고, 추격조 불펜과 땜빵 선발 등의 자리를 맡으며 4승 5패 방어율 4.29를 기록한 니퍼트는 구단 역사상 첫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었다. 원래 디비전 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됐었고 리그 챔피언쉽과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으나, 월드 시리즈 4차전 중 텍사스의 우완투수 알렉시 오간도[1] 부상으로 이탈해 대체 선수로 엔트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월드 시리즈 출전은 없었고, 니퍼트는 시즌 종료 후 미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3. KBO 리그

사실 니퍼트는 메이저 리그의 선수 계약 시스템 덕에 한국에 굴러들어온 복덩이 같은 투수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1군 등록일수가 3년을 넘을 경우 연봉 조정 대상자가 되어서 연봉 협상과 중재를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데, 이를 악용해 마이너 리그 강등으로 등록일수를 조정하는 편법[2]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등록일수 2년에서 3년 사이의 선수들 중 등록일수 상위 17%의 선수에게 연봉 조정 자격을 주는 이른바 슈퍼-2 제도가 있다. 니퍼트는 2010년 계약 종료 당시 2년 140일 등록이 되어있어서 슈퍼-2 제도의 수혜자가 되었다. 그러나 텍사스 레인저스 입장에서는 니퍼트 같이 보직이 애매한 투수에게 최저 80만 달러 이상의 거액[3]을 지불하기는 아까웠기 때문에 더 이상 마이너 리그 강등을 시킬 수 없는 니퍼트와의 계약을 포기한다.

만약 니퍼트에게 옵션이 남아있었다면 백업용으로 마이너에 두다가 부상자가 나올 때 잠깐 올렸다 내리는 식으로 계약할 수도 있었지만, 니퍼트는 옵션이 모두 소진된 상태였으므로 메이저 구단들이 백업용으로 두기에는 곤란했을 것이다. 사실 니퍼트 말고도 아킬리노 로페즈, 크리스 부첵, 조조 레이예스 등 다년간 메이저 경력이 있는 KBO 리그 용병 선수들은 땜빵으로 쓰이다 옵션이 사라지고 토사구팽당한 경우가 흔하다.

연봉 조정 자격을 가진 니퍼트와의 계약을 나머지 메이저 리그 팀도 아예 시도하지 않았고, 니퍼트는 차선책으로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시도하지만 이것저것 저울질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최종 계약이 결렬되었다. 그리고 이 틈을 놓치지 않은 두산 베어스와 계약하였다.

사실 니퍼트에게 처음 관심을 보인 구단은 의외로 KIA 타이거즈였다.[4] 하지만 KIA는 좌완이라는 이점 때문에 트래비스 블랙클리를 선택하였고, 니퍼트는 과거 한국에서 뛰었던 아킬리노 로페즈의 조언으로 두산으로 갔다.

한편 이후 니퍼트의 뇌진탕 부상 전력 때문에[5] 니퍼트를 포기하고 브라이언 배니스터를 선택한 요미우리는 제대로 통수를 맞아버렸다.[6]

3.1. 두산 베어스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g25o8Wl1I1sqk8veo9_r1_1280.png
두산 베어스 No.40
더스틴 니퍼트
Dustin Nippert
나에게 두산은 너무나도 큰 존재이기 때문에 도저히 한 문장으로 말할 수가 없다.
당신에게 두산 베어스는 어떤 존재냐는 질문에. #
니퍼트라면 기꺼이 내 등번호 21번을 양보하겠다. 니퍼트는 외인 선수가 아니다.
박철순에게 니퍼트는 어떤 선수인지 물어보았을 때 #
두산 베어스 역대 최고의 외인 투수를 넘어 KBO 리그 역대 최고의 외인 투수로 도약했던 시절로, 두산 팬들에게 니느님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시절이다. 두산 팬들에게 있어서는 절대 잊지 못할 용병, 그 이상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니퍼트 스페셜 1
니퍼트 스페셜 2

3.1.1.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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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에서의 첫 시즌이자 15승과 2.55라는 좋은 평균자책을 기록하며 두산의 역사에 남을 만한 외국인 선수로의 시작을 알린 시즌.

3.1.2. 2012 시즌

파일:12니퍼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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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도에 비해 성적이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리그에서 손꼽히는 에이스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3.1.3. 2013 시즌

파일:13니퍼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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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출전하진 못했지만 역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시즌.

3.1.4. 2014 시즌

파일:14니퍼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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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타고투저와 팀이 망했던 시즌이었음에도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두산의 1선발로써 제 몫을 했다.

3.1.5. 2015 시즌

파일:15니퍼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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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인해 정규 시즌에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화려하게 부활하여 KBO 역사에 남을 대활약을 펼치며 14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했다.

3.1.6. 2016 시즌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 (2016)
파일:16니퍼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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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care about numbers. My teammates mean more to me than anything.
제 개인 기록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에겐 제 팀 동료들이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2016년 8월 20일, 개인 최다승 달성 경기 수훈 인터뷰 중.
... a bunch of people told me that I couldn't do this...
... I really appreciate it. I'm gonna retire in Doosan Bears. [7]
많은 사람들이 제가 (야구선수로써 성공을) 할 수 없을거라 말했습니다.
(팬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꼭 두산 베어스에서 은퇴하겠습니다.
2016년 9월 13일, 본인 첫 20승 달성 경기 수훈 인터뷰 중.

22승을 거두며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 커리어하이 시즌. 생애 첫 KBO 골든글러브도 흭득했다.

3.1.7. 2017 시즌

파일:더스틴_니퍼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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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 함께 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외국인 역대 최다승 기록 후

출발은 좋았으나 적지 않은 나이와 더불어 그동안의 누적된 피로가 쌓이며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끝내 포스트시즌에서도 반등하지 못하면서 정든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3.1.8. 작별

2018 시즌은 니퍼트에게는 의미가 깊은 시즌일 수 있었다. 니퍼트가 그 동안 한 것을 생각하면 6승 정도는 올릴 수 있기에 KBO 통산 100승이 가능하고 한국선수 였다면 대졸 8년차로 FA도 되는 시즌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2017 시즌이 끝난 후 두산은 니퍼트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하였으나 협상은 계속한다고 밝혔다. 보류선수 명단에 있으면 두산은 니퍼트에게 올해 연봉의 75퍼센트인 157만 달러 이상을 보장해야 한다. 즉, 다른 구단과 협상을 할 수 있도록 일단 풀어주되 두산으로 오겠다면 157만 달러 밑으로 새로 계약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두산이 조쉬 린드블럼을 영입하면서 니퍼트와 작별하게 되었다.

이후 KT의 김진욱 감독에게 직접 러브콜을 보냈다는 기사가 나왔다.[8] 하지만 구단들이 니퍼트나 해커에게 보이는 태도를 보면 니퍼트에게 KBO에서 뛸 자리는 없어 보이는 상황. # 대부분의 구단이 외인 협상이 마무리 단계이며, 투수 용병을 못 뽑은 구단들도 전부 용병 재영입에 대해서는 선을 그어버렸다.

이 와중에 두산 팬들의 재영입 요구 시위가 벌어졌다고 기사가 떴다. 1차 목표는 재영입이지만, 불가능하다면 갑자기 떠나는 아쉬움이라도 달랠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하는 상황. LG 트윈스에서 정성훈을 칼 같이 내치는 모습, 그리고 그에 대한 항의를 보고 동병상련 및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그리고 먼 훗날 2024년 7월, 옆집의 장수 용병 케이시 켈리가 부진으로 인한 웨이버 공시 후 LG 구단이 고별식을 마련해 줬는데 두산 팬들 사이에서 이 사건이 재조명되기도 했다.[9]

니퍼트는 두산에서 뛴 7년간 아래와 같은 성적을 남겼다.
두산에서의 7년간 성적
경기 선발등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ERA WHIP sWAR 완투 완봉
185 177 1115⅔ 94 43 0 1 1030 86 381 51 917 469 432 3.48 1.26 28.5 8 2

3.2. kt wiz

파일:kt wiz 더스틴 니퍼트.jpg

2018년 1월 4일 kt wiz와 총액 100만 달러로 계약을 체결하였다.# 다른 기사에 따르면 두산과 협상 당시에 니퍼트는 최저선을 150만 달러로 잡았고, 금액차에 두산은 협상을 포기하고 린드블럼을 영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다른 팀들도 그를 찾지 않자 선수 본인이 스스로 몸값을 낮춰가며 홍보를 했다고. 덕분에 에이전트 보라스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됐다.[10]

한편 같은 날에 종목은 다르지만 K리그의 레전드이자 동갑내기 축구 선수인 데얀 다미아노비치[11] 서울 연고 팀에서 수원 연고 팀으로 이적하는 오피셜이 떴다. 이쪽은 게다가 더비 매치이자 앙숙 관계어서 K리그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적으로 불릴 만큼 파장이 더 큰 상황이었다.

3.2.1.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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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wiz에서의 첫 시즌이자 마지막 시즌, 그리고 정든 한국에서의 마지막 시즌.

3.3. 두산 베어스 (은퇴식)

3.3.1. 2024 시즌

9월 14일 잠실 KT전 은퇴식이 예정되어 있는데, 외국인 선수도 은퇴 선수 특별 엔트리를 통한 선수 추가 등록이 가능하다는 KBO의 유권해석에 따라 두산 소속으로 선수 등록이 예정되어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다만 두산이 현재 순위싸움이 치열하고 하필 상대도 4-5위 경쟁팀인 KT이기 때문에 실제로 등판할 수 있을지는 현장에서 상황을 보고 결정될 것이라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

두산의 2024년 외국인 투수(라울 알칸타라, 브랜든 와델, 조던 발라조빅, 시라카와 케이쇼)[12]가 영 좋지 못한 성적을 보여주어서 그냥 니퍼트가 선발로 뛰는 게 낫겠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실제로 9월 14일 발표된 엔트리 등•말소에 따라 14일날 두산 베어스 소속으로 선수 등록이 완료 되었으며, 덕아웃 상주 및 경기 출전까지 모든 것이 자유롭게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1981년생인 니퍼트가 선수로써 등록되며 현재 KBO 리그 최고참 선수들인 1982년생 오승환, 김강민, 추신수를 제치고 단 하루지만 KBO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이는 2021년 은퇴 선수 특별 엔트리가 시행된 이후 5번째로 등록된 사례이며, 하술한대로 니퍼트의 등판 환경이 여의치 못해 경기에는 뛰지 못하며 처음으로 은퇴 선수 엔트리로 등록됐지만 경기에는 나서지 못한 사례가 되었다. [13]

아쉽게도 경기가 한 점차 접전으로 진행되어 니퍼트의 등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 16일 이승엽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니퍼트는 경기 중 실내 불펜장에서 계속 몸을 풀고 있었고 실제로도 4점차 이상 벌어지면 이닝 선두타자나 2사 무주자 상황에서 등판을 시키려고 했지만 타선이 점수를 뽑지 못해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에 윤희상, 전병두의 사례처럼 1회초 선두타자만 상대하게 한 뒤 곽빈을 냈으면 어땠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반응도 있었다. 다만 4위 자리를 두고 한창 시즌 막판 순위 경쟁 중이었기에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14] 그럼에도 7년만에 두산으로 돌아와 옛 동료들과 두산 베어스의 니퍼트로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특히 양의지는 은퇴식 시작부터 눈물을 보였으며, 니퍼트도 양의지가 꽃다발을 전해주자 눈시울을 붉혔다. 소감문을 낭독할때는 여러번 목이 메여 연설을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15] 그래도, 두산 유니폼을 입고 프로야구 경력을 마치고 싶다던 니퍼트의 바람은 다행히 이뤄졌다.

그렇게 2018년을 끝으로 방황하던 에이스는 6년 만에 돌아와 은퇴식과 함께 영원한 에이스로 남게 되었다.

Goodbye, ACE!

4. 연도별 기록

4.1. MLB

파일:MLB 로고.svg 더스틴 니퍼트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e3d4ad>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5 ARI 3 1 0 0 0 14⅔ 5.52 10 1 13 1 11 1.568 82 0.1 0.0
2006 2 0 2 0 0 10 11.70 15 5 7 0 9 2.200 42 -0.3 -0.4
2007 36 1 1 0 2 45⅓ 5.56 48 5 16 0 38 1.412 86 0.2 -0.2
<rowcolor=#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8 TEX 20 3 5 0 0 71⅔ 6.40 92 10 37 1 55 1.800 70 0.3 -0.5
2009 20 5 3 0 1 69⅔ 3.88 64 7 29 4 54 1.335 120 0.9 1.4
2010 38 4 5 0 5 56⅔ 4.29 61 7 34 5 47 1.676 105 -0.3 0.5
MLB 통산
(6시즌)
119 14 16 0 8 268 5.31 290 35 136 11 214 1.590 87 0.9 0.7

4.2. KBO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더스틴 니퍼트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승률 4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11 두산 29 15
(3위)
6 0 0 187
(2위)
2.55
(2위)
150 8 0.714
(3위)
74 150
(2위)
1.14
(2위)
160.6 6.05
(1위)
2012 29 11 10 0 0 194
(2위)
3.20 156 15 0.524 76 126 1.16
(5위)
119.5 4.47
2013 19 12 4 0 0 118 3.58 108 7 0.750
(4위)
38 104 1.20 118.6 2.49
2014 30 14
(3위)
7 0 1 179⅓
(3위)
3.81
(5위)
186 17 0.667 54 158
(4위)
1.31
(3위)
129.7 4.92
2015 20 6 5 0 0 90 5.10 104 4 0.545 37 76 1.52 128.0 1.21
2016 28 22
(1위)
3 0 0 167⅔ 2.95
(1위)
151 15 0.880
(1위)
66 142 1.24
(2위)
173.1 6.26
(3위)
2017 30 14
(4위)
8 0 0 179⅔ 4.06 175
(2위)
20 0.636 87 161
(2위)
1.40 118.6 4.15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승률 4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18 KT 29 8 8 0 0 175⅔
(5위)
4.25 209
(2위)
26
(5위)
0.500 48 165
(5위)
1.41 124.6 5.29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승률 4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24[16] 두산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8시즌)
214 102 51 0 1 1291⅓ 3.59 1239 112 0.667
(2위)
480 1082 1.29 130.6 34.83
완투, 완봉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완투 완봉
2011 2완투
(4위)
1완봉
(3위)
2012 3완투
(2위)
0완봉
2013 1완투
0완봉
2014 1완투 0완봉
2016 1완투 1완봉
<rowcolor=#373a3c> 통산 8완투 2완봉

2014년은 사상 최악의 타고투저의 해로 손꼽히는 시즌으로 대부분의 투수들이 고전한 해이다. 니퍼트는 이러한 해에서도 투수지표 대부분에서 상위권을 차지했으며 세부 스텟에서는 2011년 다음으로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통산 52승을 거둠으로써 외국인 투수 최초로 2011년 이래로 4년연속 10승, 한 팀에서 5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2015년 정규시즌에는 계속된 부상과 불운 끝에 KBO리그 진출 이후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부상을 딛고 일어난 2015년 포스트시즌에는 팀의 14년만의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2016년 7월 12일 KBO리그 통산 70승을 기록했다. 2016년 몬스터 시즌을 보내며 80승 고지에 올랐기에 갑작스런 부상이나 노쇠화만 없다면 17시즌 중 리오스의 통산 90승 기록을 뛰어넘을 전망이며 2년만 폼을 유지한다면 외국인 투수 최초의 100승도 가능하다.

2017년 7월 21일 한화전 승리로 90승을 달성,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던진 투수 중에선 다승 2위에 올랐다. 7월 27일 kt전에서 91승을 달성해 다니엘 리오스가 가지고 있던 외국인 투수 최다승 기록을 경신했다. 남은 건 외국인 투수 최초 통산 100승과 장호연이 가지고 있는 두산 프렌차이즈 최다승(109승) 기록이다. 그러나 2017년을 마지막으로 두산을 떠나면서 이 기록을 달성하지 못 하게 됐다. 그래도 kt 위즈와 계약하면서 외국인 투수 100승 기록을 달성했다.


[1] 오간도는 공교롭게도 2017년 시즌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다.[2] 그러나 스몰마켓 팀은 유망주를 최대한 오래 데리고 있기 위해 지금도 의도적으로 유망주의 승격을 늦추는 편이다.[3] 메이저 리그에서 연봉 조정 자격을 갖게 되면 최소 연봉에 묶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백업 선수여도 80만~100만 달러의 연봉은 받는다.[4] KIA뿐만이 아니라 LG 트윈스에서도 관심을 보였다.[5] 2010년 7월 20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6회말 오스틴 잭슨의 라인드라이브성 타구에 머리를 직격당했다. 주변 야수들이 모두 뛰어왔을 정도로 누구라도 심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6] 이때의 일에 대한 후회인지는 몰라도 요미우리는 이후에도 니퍼트에게 꾸준한 관심을 보냈다.[7] 결국 니퍼트가 이때 했던 말은 2024년 구단에서 특별 엔트리 등록과 함께 은퇴식을 진행하며 8년만에 현실화되었다.[8] 그러나 13일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김진욱 감독과 통화한 적이 없다고 하니 진실은 저 너머로...[9] 이후, 두산에서도 9월 14일 KT전 은퇴식을 연다고 밝혀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모양이다.[10] 참고로 보라스는 이 해에 MLB에서도 자신들의 고객들의 계약 목표치를 전부 못 넘기면서 완전히 조졌다.[11] 둘 다 1981년 생이며 생일도 2개월 차이이다.[12] 그나마 브랜든은 부상 이전까지의 성적은 좋고 발라조빅은 남은 경기 활약에 따라 평가가 반전될 여지는 있으나 알칸타라, 시라카와는 성적도 별로인 상황에서 부상까지 당했다.[13] 2021년 5월 29일 한화 김태균, 2022년 7월 3일 LG 박용택 : 플레이볼과 동시에 교체 (경기 기록은 남음)
2022년 10월 7일 KIA 나지완, 10월 8일 두산 오재원 : 경기 후반 대타로 출전
[14] 경기 전 이승엽 감독 또한 큰 점수차가 나올 경우에만 등판이 가능할 것 같다고 밝혔다.[15] 댓글들을 보면 두산팬은 물론 타팀팬들도 연설을 보다가 울었다는 댓글들도 더러 있다. 특히 모국어 영어가 아닌 서툰 한국어로 진심을 전하며 눈물을 참는 니퍼트의 연설은 큰 감동을 보여주었다.[16] 은퇴식 특별 엔트리에 따른 선수 등록. 비록 등판은 불발되었으나 KBO 정식 선수로 등록 되었기에 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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