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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6 01:14:42

더블리너스

더블린 사람들에서 넘어옴
1.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Dubliners2. 아일랜드의 밴드
2.1. 개요2.2. 특성2.3. 멤버2.4. 역사2.5. 앨범
2.5.1. 정규 앨범2.5.2. 아일랜드 차트 싱글

1.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Dubliners

아일랜드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가 1914년에 집필한 소설. 국내에서는 '더블린 사람들'로 번역되었다.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주제로 집필한 짤막한 단편들을 모은 소설이다. 그는 더블린 출판업자들과의 불화로 고향 더블린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에 따른 작가의 더블린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소설 안에서 종종 드러난다.

2. 아일랜드의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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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경의 더블리너스. 뒷줄 왼쪽부터 로니 드루, 바니 매케너. 앞줄 왼쪽부터 루크 켈리, 존 시헌, 키어런 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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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의 더블리너스. 왼쪽부터 바니 매케너, 존 시헌, 로니 드루, 숀 캐넌.
멤버 생년월일 포지션 활동기간
로니 드루1934.9.16보컬, 플라멩코 기타2008.8.16 사망, 활동기간 1962~1974, 1979~1996
키어런 버크1935.2.18보컬, 기타, 하모니카, 틴 휘슬1988.5.10 사망, 활동기간 1962~1974
바니 매케너1939.12.16서브보컬, 테너 밴조, 만돌린, 아코디언2012.4.5 사망, 활동기간 1962~2012
루크 켈리1940.11.17보컬, 밴조1984.1.30 사망, 활동기간 1962~1964, 1965~1983
보비 린치1935.5.18보컬, 기타1982.10.2 사망, 활동기간 1964~1965
존 시헌1939.5.7서브보컬, 바이올린, 틴 휘슬, 만돌린활동기간 1964~2012
짐 매캔1944.10.26보컬, 기타활동기간 1974~1979
숀 캐넌1940.11.29보컬, 기타활동기간 1982~
에이몬 캠벨1946.11.29서브보컬, 기타, 만돌린활동기간 1988~
패디 라일리1939.10.18보컬, 기타활동기간 1996~2005
패치 워천1944.10.16.보컬, 밴조, 퍼큐션활동기간 2005~

2.1. 개요

클랜시 브라더스와 함께 아일랜드의 포크 음악계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클랜시 브라더스가 소녀시대라면 더블리너스는 2NE1쯤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멤버 수는 활동 시기에 따라 4인조 또는 5인조인데, 일단 현재는 4인조이다. 1962년에 조직된 그룹이 현재도 활동하고 있다! 물론 2013년 현재는 더블리너스라는 이름은 쓰지 않고, 더블린 레전즈(The Dublin Legends)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레전설 그 자체다!

클랜시 브라더스와 더블리너스 둘 중에 누가 아일랜드 포크 음악을 대표하는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둘 다이다. 두 그룹이 주로 활동한 시기는 일부 겹치지만, 활동한 장소가 다르기 때문. 클랜시 브라더스의 주된 활동 장소는 미국이었고, 더블리너스의 주된 활동 장소는 유럽이었다. 따라서 이 둘을 굳이 비교하는 것은 자장면짬뽕 가운데 무엇이 더 맛있는가를 비교하는 것과 같이 무의미하다. 클랜시 브라더스는 클랜시 브라더스대로, 더블리너스는 더블리너스대로 가치가 있는 것.

클랜시 브라더스도 물론 아일랜드 본토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클랜시 브라더스의 주된 활동 영역은 미국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클랜시 브라더스의 주된 팬층이었다. 그 인기가 대서양을 건너 본토 아일랜드와 영국까지 넘어간 것이다. (1964년에 아일랜드에서 팔린 앨범의 1/3이 클랜시 브라더스 앨범이었다.) 요약하자면 클랜시 브라더스는 영어권 국가에서 인기를 끌었다.

반면 더블리너스는 아일랜드 본토가 주된 활동 영역이고, 그 인기가 영국과 유럽 대륙으로 넘어간 것이다. 더블리너스는 유럽 대륙에 아일랜드 음악 열풍을 불러일으킨 원동력인 것이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등 유럽 대륙에서 더블리너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1970년대 이후로 거의 매년 더블리너스가 하는 것이 유럽 대륙 투어다. 요약하자면 더블리너스는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유럽인 동시에 영어권 국가인 아일랜드 본국과 영국을 제외하면, 클랜시 브라더스와 더블리너스의 팬덤은 겹치지 않는 셈. 따라서 미국에서는 클랜시 브라더스, 유럽 대륙에서는 더블리너스, 아일랜드와 영국에서는 둘 다가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의 최종 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요약하자면 더블리너스는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에서 클랜시 브라더스와 쌍벽을 이루는 레전설이며 먼치킨.

2.2. 특성

전반적인 특성은 클랜시 브라더스와 거의 다를 것이 없...다고는 할 수가 없다. 물론 레퍼토리를 보면 클랜시 브라더스와 더블리너스가 상당 부분 겹친다. 클랜시 브라더스가 부른 곡을 더블리너스가 부르기도 하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이는 아일랜드 포크 음악들 가운데 트래디셔널 곡들, 그러니까 누가 지었는지 모르는 곡들은 저작권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 물론 현대에 들어와서 새로 지은 곡들은 저작권이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같은 곡을 여러 가수가 각자 다른 버전을 만들어서 부르는 것이 관행이다. 그렇지만 클랜시 브라더스는 클랜시 브라더스대로 특성이 있고, 더블리너스는 또 더블리너스대로 특성이 있는 것.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2.3. 멤버

저 먼 나라의 걸그룹 애프터스쿨처럼 멤버 변동이 아주 심한 그룹이라서 몇 년도부터 몇 년도까지 누가 멤버로 있었는지가 은근 헷갈리는 그룹이다. 위키백과 영어판 더블리너스 항목에는 위키백과 한글판의 그 그룹 항목처럼 멤버별 활동 시기를 나타내는 표가 다 있을 정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2012년 4월 5일 바니 매케너가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이에 따라 바니 매케너의 포지션을 채우기 위해 제리 오코너(Gerry O'Connor)라는, 테너 밴조와 바이올린을 다루는 뮤지션이 대타로 들어왔다. 존 시헌이 2012년 가을에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2012년 12월 말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더블리너스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레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제리 오코너와 숀 캐넌, 폴 워천(패치 워천의 동생), 에이몬 캠벨은 2013년 현재도 계속 4인조로 공연을 하고 있다. 그룹 이름은 더블린 레전즈. 아예 스스로 레전설임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비록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금도 더블리너스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멤버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숀 캐넌의 나이가 2013년 11월 29일로 73세가 된다! 이쯤 되면 완전히 아일랜드판 꽃보다 할배 수준.

2.4. 역사

1962년에 더블린에 있는 'O'Donoghue's Pub'이라는 이름의 술집에서 조직되었다. 멤버들 가운데 연예인 커리어를 밟은 사람은 문자 그대로 아무도 없었다! 멤버들 전원이 그냥 술 퍼마시기 좋아하는 일반인들이었다. 이 술집을 자주 드나들던 로니 드루(Ronnie Drew, 1934~2008), 키어런 버크(Ciaron Bourke, 1935~1988), 루크 켈리(Luke Kelly, 1940~1984), 바니 매케너(Barney McKenna, 1939~2012) 네 사람이 각자 잘 다루는 악기를 하나씩 맡아 그룹을 조직했던 것. 로니 드루는 플라멩코 기타, 키어런 버크는 틴 휘슬, 루크 켈리는 5현 밴조, 바니 매케너는 테너 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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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니 드루 키어런 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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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 매케너 루크 켈리
멤버들의 원래 직업도 아주 골 때리니, 로니 드루는 원래 스페인으로 가서 영어 선생님을 하다가 아일랜드로 돌아왔고, 키어런 버크는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한 이과생이었으며, 루크 켈리는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나 다름없는 일자리를 전전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바니 매케너는 그나마 좀 음악을 하던 멤버였는데, 더블리너스에 가입하기 전 몇 달 동안은 역시 아일랜드 포크 음악을 대표하는 그룹(이 그룹은 보컬보다는 악기 연주가 중심이라, 대중적인 인기는 클랜시 브라더스나 더블리너스에 비해 밀린다.)이라 할 수 있는 치프틴스(The Chiefteins) 멤버였다. (지금 치프틴스는 순수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에서 나름 입지를 차지하고 있지만(물론 스타일은 앞서 말했듯 많이 다르다) 당시에는 그냥 신생 그룹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튼 이렇게 같은 술집을 자주 드나들던 넷이서 의기투합해 조직한 그룹이니, 음악 스타일도 딱 그런 스타일이 나왔다. 더블리너스 음악 스타일이 클랜시 브라더스와 달리 문자 그대로 길거리나 시장 바닥, 그리고 더블리너스의 탄생지인 술집에서 부르는 스타일의 소박하고 걸쭉한 스타일인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그것이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더블리너스의 최대 특징으로 작용하여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은 요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룹의 이름은 처음에 '로니 드루 발라드 그룹(Ronnie Drew Ballad Group)' 이었으나 로니 드루가 이것을 싫어했다. 이걸 쉽게 표현하자면, 걸그룹 이름을 지을 때 리더나 가장 인기 있는 멤버 이름을 따서 소녀시대태연 그룹, 2NE1CL 그룹, 원더걸스선예 그룹, 카라박규리 그룹, 시크릿전효성 그룹, 포미닛현아 그룹, 애프터스쿨유이 그룹이라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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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7월 공연 포스터.
그룹 이름을 뜯어고쳐려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학 오덕후인 루크 켈리가 들고 있던 제임스 조이스의 <Dubliners>, 그러니까 1번 항목의 그 책이 멤버들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책 제목 앞에 정관사를 붙여서 그룹 이름으로 하게 된 것. 이들은 1964년 첫 번째 앨범을 발매했다. 그러나 1964년 말에 루크 켈리가 잉글랜드로 옮겨 가면서 그룹을 잠시 탈퇴했다. 루크 켈리는 1965년 리엄 클랜시의 솔로 앨범에 피처링을 했지만, 그것 외에는 별다른 솔로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루크 켈리 대타로 보비 린치(기타, 보컬)와 존 시헌(바이올린, 틴 휘슬, 만돌린)이 들어왔다. 보비 린치는 전기 사업을 하는 아마추어 가수였지만, 존 시헌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전문 음악가였다. 더블리너스 음악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존 시헌의 바이올린 소리라는 것을 감안하면 존 시헌의 합류를 통해 현재의 더블리너스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1964~1965년경 TV 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했을 때의 더블리너스. <McAlpine's Fusiliers>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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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비 린치 존 시헌

1965년 말 보비 린치가 탈퇴하고, 루크 켈리가 복귀했다. 로니 드루, 키어런 버크, 존 시헌, 바니 매케너, 루크 켈리 이렇게 5명의 라인업을 흔히 더블리너스의 오리지널 라인업으로 간주하는데,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이 라인업으로 전환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더블리너스가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 라인업을 더블리너스의 오리지널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라인업에서 메인보컬은 정말 걸쭉한 최저음을 구사하는 로니 드루와 역시 굉장히 걸쭉한 중저음을 구사하는 루크 켈리가 각각 스패니시 기타와 5현 밴조 반주를 붙여 주로 맡아 불렀고, 바니 매케너와 존 시헌이 각각 테너 밴조와 바이올린으로 선율을 반주했으며, 키어런 버크는 기타를 치거나 틴 휘슬 또는 하모니카를 연주하면서 몇몇 곡에서는 메인 보컬을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아일랜드 전역은 물론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다른 나라들, 그러니까 독일이나 스위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같은 곳에서도 인기를 끌며 클랜시 브라더스와 함께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의 양대산맥으로 등극했다.


1973년, <The Merry Ploughboy>를 부르고 있는 더블리너스.

레퍼토리를 보면 더블리너스는 드링킹 송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술집에서 데뷔한 그룹에다가 멤버들 전원이 초특급 주당들인데 드링킹 송을 안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술은 곧 더블리너스의 정체성인 셈이다. 더블리너스는 1970년대 초반까지 아일랜드와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제외한 북서유럽 전체에 걸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다니며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단 미국에선 별로 인기를 누리질 못했는데, 클랜시 브라더스의 입지가 하도 강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클랜시 브라더스와 더블리너스 가운데 어디가 더 뛰어난 그룹인가를 논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 무의미하다. 어쨌든 이렇게 더블리너스는 아일랜드 본토의 포크 음악계를 휩쓸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가톨릭 CCM인 <Hand me down my Bible>을 부르고 있는 더블리너스.

그렇게 잘 나가던 더블리너스에게 1974년이 다가왔다. 1974년은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몰고 온 해인데, 도대체 1974년에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클랜시 브라더스가 무너지고 더블리너스가 무너졌다. 이 해에 클랜시 브라더스는 각자 갈 길을 찾아 흩어짐으로써 공중분해된 것이다. 더블리너스는 그보다 더한 것이, 일단 키어런 버크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처음에는 금방 회복될 것 같았지만, 결국은 반신마비가 되면서 더 이상 연예계에서 버틸 수 없게 되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로니 드루가 그룹을 탈퇴했다. 이유는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이로써 더블리너스의 기타 라인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이대로는 정상적인 음악 그룹으로 활동할 수가 없게 된 상황이었다.

결국 로니 드루의 대타로 30세밖에 안 된 젊은 가수이며 뮤지컬 배우인 짐 매캔이 들어왔다. 짐 매캔으로 말할 것 같으면 원래 의대생이었다. 그런데 의대생이 갑자기 음악에 필이 꽂혀서 연예계에 데뷔하게 된 것. 한국에서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짐 매캔은 이미 3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그것도 베드로 역으로 출연하기도 한 스타 가수였다. 그런 짐 매캔이 그룹에 합류함으로써 더블리너스는 간신히 한 숨 돌릴 수 있었던 것. 짐 매캔의 보컬 스타일은 미성이 덜하다는 것만 빼면 리엄 클랜시와 상당히 비슷하다. 때문에 더블리너스 음악 스타일에도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참 다행히도 이 4인조 라인업은 더블리너스가 기존에 구가하던 인기를 거의 그대로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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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매캔.


1976년, <Farewell to Carlingford>를 부르고 있는 더블리너스.

키어런 버크의 대타는 왜 없었냐고 묻는다면, 키어런 버크는 탈퇴한 것이 아니라 활동을 중단한 것이었다. 중풍으로 인한 반신마비 때문에 더 이상 가수 활동을 할 수는 없지만(골동품 상점을 차렸다) 여전히 그룹의 일원으로써 간주한 것. 따라서 대타도 뽑지 않고, 더블리너스 공연 수익금의 일부는 키어런 버크에게 나눠 준 것이다. 그렇게 1979년까지 4인조로 운영되던 그룹은, 1979년에 로니 드루가 복귀하고 짐 매캔이 탈퇴하면서 '사실상의 오리지널 라인업-키어런 버크' 형태로 복귀하게 되었다. 이후 짐 매캔은 솔로 가수로 인기를 끌면서도 이따금 더블리너스 공연 때 게스트로 출연했다.


1980년경, <The Town I Loved So Well>을 부르고 있는 더블리너스.

이렇게 오리지널 라인업에서 키어런 버크만 빠진 형태로 복귀한 더블리너스의 앞길에 또다시 난관이 부딪히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루크 켈리였다! 1980년 루크 켈리는 코크에서 공연 도중에 쓰러졌다. 검사 결과 뇌종양으로 판정을 받았고, 안 그래도 키어런 버크가 중풍으로 쓰러져 연예계에서 은퇴하는 일을 겪은 지 불과 6년밖에 되지 않은 더블리너스는 문자 그대로 충격. 다행히 루크 켈리의 상태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고, 루크 켈리는 곧 복귀했다. 그러나 완치된 것은 아니어서 공연을 빼먹는 일이 하도 많이 생기는 관계로, 1982년에는 루크 켈리와 동갑이고 목소리도 비슷한 숀 캐넌이 멤버로 합류했다. (한편 같은 해, 아주 잠깐 동안 멤버였던 보비 린치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루크 켈리는 1983년까지 진짜 아일랜드의 임윤택이 따로 없는 활약을 보여 주었지만, 1984년 1월 뇌종양이 악화되면서 43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자리는 숀 캐넌이 맡게 되었다. 숀 캐넌은 골웨이 출신으로, 1960년대에 잉글랜드에서 가수로 데뷔했지만 그다지 큰 인기는 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더블리너스에 가입하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루크 켈리와 같은 1940년생이고 목소리도 루크 켈리만큼 걸쭉하진 않지만 음역대와 음색이 굉장히 닮아서 사실상 제 2의 루크 켈리가 된 셈. 실제로 루크 켈리가 메인보컬을 부르던 곡들은 이후 숀 캐넌이 메인보컬을 불렀다. 숀 캐넌의 비중이 로니 드루, 루크 켈리, 존 시헌, 키어런 버크, 바니 매케너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것은 이렇듯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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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캐넌.

(영상 잘림)
1984년경, <The Banks of the Roses>를 부르고 있는 더블리너스. 전 멤버인 짐 매캔과 뒤에 멤버가 되는 에이몬 캠벨,패디 라일리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아무튼 이렇게 루크 켈리의 죽음으로 난관에 빠져 있던 더블리너스 앞에 한 줄기 찬란한 빛이 비췄으니 그것은 바로 1987년 데뷔 25주년 기념 행사였다. 데뷔 25주년 기념 앨범의 프로듀싱을 당시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 최고의 프로듀서인 에이몬 캠벨이 맡게 된 것. 에이몬 캠벨은 1965년 불과 19세 때 음악계에 데뷔한 PD인데, 가수는 아니고 기타와 만돌린을 다루는 음악가이지만, 여러 유명 가수와 음악 그룹들의 PD를 맡아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도록 이끌었던, 아일랜드 포크 음악 프로듀싱 분야에서는 그야말로 먼치킨이었다. 그런 에이몬 캠벨이 25주년 기념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더블리너스는 다시 슈퍼스타로 등극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에이몬 캠벨의 대박 작품은 아일랜드계 잉글랜드 펑크 록 밴드인 포크스(The Pogues)와 더블리너스가 함께 부른 트랙으로, 싱글로도 발매된 <The Irish Rover>. 이 싱글은 아일랜드 차트 1위에 오르며 더블리너스와 포그스를 동시에 슈퍼스타로 만드는 데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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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몬 캠벨.



1987년, 25주년 기념 특별방송에서 포그스와 함께 <The Irish Rover>를 부르고 있는 더블리너스.

1988년 키어런 버크는 53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더블리너스를 다시 슈퍼스타로 띄워 준 먼치킨 PD 에이몬 캠벨은 더블리너스 멤버로 가입했다. 에이몬 캠벨의 가입으로 인해 더블리너스는 다시 5인조로 복귀했고 그런 먼치킨 PD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문자 그대로 먼치킨 그룹으로 등극할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한 가지 문제점은 기타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 악기가 로니 드루도 기타, 숀 캐넌도 기타인데 에이몬 캠벨도 기타를 맡음에 따라 기타 셋, 바이올린 하나, 테너 밴조 하나라는, 상당히 비대칭적인 구도가 형성되었다. 어쨌든 더블리너스는 이렇게 1990년대 초반까지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하며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95년 로니 드루가 그룹 탈퇴를 발표했다. 로니 드루는 더블리너스의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인 관계로 로니 드루가 탈퇴한다는 것은 더블리너스 입장에서는 엄청난 데미지일 수밖에 없었다. 참 다행히도 로니 드루의 대타로 들어온 멤버는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초특급 먼치킨 솔로 가수인 패디 라일리였다. 패디 라일리는 이미 예전부터 더블리너스 공연 때 게스트로 출연하거나 앨범에 피처링을 하는 등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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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디 라일리.

패디 라일리가 합류하면서 셀틱 응원가인 <The Fields of Athenry>를 비롯한 패디 라일리가 불렀던 곡들이 더블리너스 레퍼토리에 추가되었다. 패디 라일리의 합류는 여러 모로 더블리너스 전체에 큰 이익이 되었던 셈. 패디 라일리는 또 더블리너스의 유럽 투어를 통하여 자기 나름대로 유럽 전역에 걸쳐 팬덤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 바니 매케너와 숀 캐넌의 건강 악화로 인해 더블리너스 해체설이 나왔으나... 페이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2년, 더블리너스는 문자 그대로 대박이었다고밖엔 표현할 수 없는 40주년을 맞게 되었다. 더블리너스 데뷔 40주년은 문자 그대로 화려한 축제의 장이 되었다. 40주년을 맞아 전 멤버였던 로니 드루와 짐 매캔이 합류하였고, 40주년 기념 앨범을 스튜디오 하나, 라이브 하나를 발매했다. 로니 드루, 짐 매캔, 패디 라일리, 숀 캐넌이 모두 기타를 치는 관계로, 40주년 기념 행사 때는 기타만 5대가 등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002년, 4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셀틱 FC와 아일랜드 축구 대표팀의 응원가인 <The Fields of Athenry>를 부르고 있는 더블리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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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년 기념 행사를 위하여 한 자리에 모인 전/현 더블리너스 멤버들. 왼쪽부터 짐 매캔, 패디 라일리, 로니 드루, 에이몬 캠벨, 존 시헌, 바니 매케너, 숀 캐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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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경의 로니 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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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의 존 시헌.

그런데 이러한 축제의 와중에 비보가 날아들었으니, 짐 매캔이 후두암 판정을 받은 것. 결국 짐 매캔은 후두암 치료를 위해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목소리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리엄 클랜시만큼은 아니라도 아주 부드럽고 감미로운 미성을 구사했는데, 후두암 때문에 목소리가 완전히 맛이 가 버린 것. 참 다행히도 후두암은 완치가 되었다.

40주년 콘서트를 마치고 로니 드루는 다시 그룹을 떠났고, 다시 5인조로 전환한 더블리너스는 이후 2년간 유럽 투어를 비롯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했는데 2005년, 패디 라일리가 그룹을 탈퇴했다. 아예 음악계에서 은퇴한 것. 이에 따라 더블리너스 자체가 해체되는 것이 아닌가, 또 해체설이 나왔다. 그러나 역시 페이크로 밝혀졌다. 패디 라일리의 대타는 패디 라일리 못지않은 먼치킨, 패치 워천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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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 워천.

패치 워천은 1963년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Dublin City Ramblers)라는 4인조 포크 그룹 멤버로 음악계에 데뷔했는데,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 멤버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클랜시 브라더스가 소녀시대, 더블리너스가 2NE1이라면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는 카라애프터스쿨쯤 된다고 보면 되겠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사이가 문자 그대로 리즈 시절이었다.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의 멤버 네 자리 가운데 메인 보컬 한 자리와 반주 한 자리는 자주 바뀐 반면 나머지 한 자리는 패치 워천이 계속 맡았던 관계로, 사실상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의 아이콘은 패치 워천과, 지금도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숀 맥기네스라 할 수 있었는데, 아무튼 이런 먼치킨이 더블리너스 멤버로 합류하게 된 것. 물론 2005년 당시에는 솔로 가수였다. 1995년에 그룹을 탈퇴하고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패치 워천은 담당 악기가 5현 밴조였다. 1984년 루크 켈리 사후 21년 만에 5현 밴조를 다루는 멤버가 더블리너스에 합류하게 된 것. 이에 따라 1988년부터 17년간 계속되던 기타 3대짜리 불균형 시스템은 기타 2, 밴조 2, 바이올린 1 체제로 전환되었다. 더블리너스의 리즈 시절이었던 1960년대 중후반의 체제와 거의 유사한 구도가 형성된 셈.


2006년 7월 23일 더블린의 바이커 스트리트(The Vicar Street)에서 <Whiskey in the Jar>를 부르고 있는 더블리너스.

이에 따라 더블리너스 레퍼토리에도 <The Ferryman> 같은 패치 워천이 불렀던 곡들이 추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패치 워천이 퍼큐션도 맡은 관계로 더블리너스 역사상 최초로 퍼큐션이 라인업에 추가가 되었다. 더블리너스는 2006년에 라이브 앨범을 한 장 발매했다. 이 공연 때는, 비록 목소리가 맛이 간 탓에 함께 공연을 하지는 못했지만, 짐 매캔이 공연의 사회를 보았다. 한편 더블리너스는 이 무렵 개설된 유튜브를 통해 또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유튜브를 통해 시공간 장벽이 무너져 내림에 따라 인기를 구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

2008년 8월 16일, 더블리너스의 전설이었던 로니 드루가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일랜드 전역이 추모 분위기로 가득했고, 이 해에 더블리너스는 로니 드루를 기념하는 싱글을 발매해 1위에 올랐다. 다음 해인 2009년에는 루크 켈리, 키어런 버크, 로니 드루에 대한 추모를 주제로 한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이렇듯 2000년대에도 문자 그대로 꽃보다 할배가 부럽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던 더블리너스는 2012년, 마침내 대망의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한 그룹이 50년간 멈추지 않고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다는 것은 여러 모로 대단한 일이기 때문에, 이 50주년 기념 투어는 40주년 때보다도 더한 대대적인 축제로 열리게 되었다. 일단 한 그룹이 50년간 유지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단한 일인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엄청난 인기를 일관되게 지켰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이렇게 완전 축제 분위기 속에 50주년 투어를 진행하던 더블리너스 앞에 복병이 나타났다. 4월 5일, 바니 매케너가 갑자기, 정말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세상을 떠난 것. 이전부터 바니 매케너의 건강 이상설은 설이 아니라 사실로 밝혀진 바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떠날 것이라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니 매케너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50주년 투어를 한껏 즐기고 있던 멤버들과 팬들 모두 충격에 빠졌다. 야심차게 준비한 50주년 투어를 빵꾸를 낼 수는 없기 때문에, 제리 오코너라는 테너 밴조 및 바이올린 연주자가 바니 매케너 대타로 합류했다. 그리고 50주년 투어는 예정대로 계속되었다.

2012년 가을, 존 시헌이 중대 발표를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50주년 투어를 끝으로 음악계에서 은퇴하겠다는 것. 박수 칠 때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5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시점에서 이제 물러나겠다는 존 시헌의 발표는 곧 이제 더블리너스의 시대가 50년 만에 끝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2012년 12월 30일, 더블리너스는 그 고향인 더블린에서 마지막 공연을 했고, 이 공연에는 짐 매캔도 비록 기타만 치긴 했지만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리고 2012년 12월 31일 연말 방송 출연을 끝으로 존 시헌은 공식적으로 은퇴했고, 더블리너스의 시대는 50년 만에 화려하게 마무리되었다.


2012년 12월 31일. 더블리너스의 마지막 공연.

2013년 현재 나머지 멤버들, 그러니까 숀 캐넌, 패치 워천, 에이몬 캠벨, 제리 오코너는 4인조 그룹으로 계속해서 공연을 하고 있다. 이름은 앞서 설명했듯 더블린 레전즈. 원래 멤버들 성씨의 약자를 따서 CCWO라 하거나, 아니면 더블리너스의 정신(The Spririt of the Dubliners)라 하려 했으나, 보다 인상적인 이름인 더블린 레전즈로 하게 된 것이다.

원래는 존 시헌의 대타로 데지 도넬리(Dezi Donnelly)라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합류할 것으로 발표되었으나, 데지 도넬리가 합류하지 않음에 따라 바이올린도 다루는 제리 오코너가 바니 매케너 대타가 아닌 존 시헌 대타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되었다. 2013년 2월달 공연 일정이 전부 취소된 것은 이 때문인 듯. 숀 캐넌이 2013년 11월 29일로 73세가 되지만 아직까지 은퇴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2013년 말까지는 계속해서 활동할 모양이다. 따라서 존 시헌의 은퇴로 더블리너스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는 없겠다. 비록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더블리너스의 시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

더블린 레전즈의 경우, 더블리너스에서는 메인보컬 부를 일이 없던 에이몬 캠벨이 몇 곡에서는 메인보컬을 부른다. 또한 더블리너스 시절에는 기타만 주구줄곧 치던 숀 캐넌이, 더블린 레전즈 전환 이후에는 만돌라와 기타를 곡 분위기에 따라 바꿔 가면서 친다.

2014년 10월에 패치 워천이 건강 이상을 이유로 탈퇴했다. 그리고 대타로 14살 아래인 동생 폴(1958~)이 합류했다. 특이하게도 밴조는 일반적인 5현 밴조를 치는데, 기타는 하프 사이즈를 친다.

더블리너스는 50년간 문자 그대로 먼치킨급의 인기를 구가하며 아일랜드 포크 음악의 아이콘으로 존재했다. 클랜시 브라더스의 인기가 폭발적이었지만 짧았던 반면, 더블리너스의 인기는 폭발적이진 않았지만 50년간 계속되었다. 여러 모로 더블리너스는 클랜시 브라더스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의 전설이며 먼치킨이라 할 수 있겠다.

2.5. 앨범

2.5.1. 정규 앨범

2.5.2. 아일랜드 차트 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