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大韓光復會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부에서 박상진 등이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이다.
2. 활동
만주에 군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여 일제와의 전면전을 치르는 것에 주안을 두었다. 또한 독립군 양성을 위해 군자금 조달 및 무기 구입에 주력했다.대한광복회의 전신은 1913년 경상북도 풍기군[1]에서 유림인 채기중이 결성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과 1913년 음력 2월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안일암(安逸庵)에서 박상진을 비롯하여 서상일·이시영(李始榮)[2]·홍주일(洪宙一)·이영국(李永局)·윤상태(尹相泰) 등이 결성한 조선국권회복단으로, 1915년 8월 25일 경상북도 대구부 달성정[3] 달성공원에서 이 두 조직이 합쳐지면서 대한광복회로 발전하였다.
본부는 경상남도 울산군 농소면 지당리[4]에 있던 박상진 생가에 있었다. 본회는 조직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확대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고, 만주에 군관학교를 설립한 뒤 독립군을 양성하여 국내에 확보한 독립군 기지를 거점으로 적당한 시기에 일본 제국과 전면전을 치러 조선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에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대 강령을 내걸고 각처에 곡물상을 설치하여 독립군 기지로 확보하는 한편, 군자금 조달, 독립군 기지 건설, 의협 투쟁으로서의 조선총독 처단 계획, 친일 부호 처단 등으로 계획이 추진되었다.
주요 활동상으로 유명한 것이 경주 광명리에서 우편마차를 공격하여 세금을 탈취한 사건이 있으며, 일본인 소유 영월의 중석광과 운산 금광 수송마차를 공격하여 자금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전국의 부호들에게 통고문을 발송해 의연금 모집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의연금 모집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1916년 전라남도 벌교 부호 서도현, 1917년 11월 경상북도 칠곡 부호 장승원(張承遠), 1918년 1월 충청남도 아산 도고면장 박용하(朴容夏)를 처단하는 의협활동도 전개하였다.
하지만 박용하를 처단한 장두한이 체포되면서 조직이 드러나게 되었고, 1918년 2월 총사령 박상진 등 조직원 상당수가 체포되면서 조직이 와해되었다. 이후 총사령 박상진을 비롯해 김한종, 채기중 등이 순국하였고, 일부 회원들은 부사령 김좌진이 파견되어 있던 만주로 망명하여 한훈을 중심으로 하는 광복단결사대, 우재룡을 중심으로 하는 주비단을 조직해 활동하게 된다.
3. 조직원
- 총사령 : 박상진
- 부사령 : 이석대(이진룡) → 김좌진
- 지휘장 : 우재룡, 권영만
- 지부장 : 김선호(경기도), 이관구(황해도), 김동호(강원도), 채기중(경상도), 김한종(충청도), 이병찬(전라도)
4. 성향
국권을 회복하고 공화정치를 실현하는 것을 마지막 목표로 두었다. 신민회가 공화주의를 주창한 것을 시작으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공화주의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5. 강령
1. 부호의 의연금 및 일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하여 무장을 준비한다.
2. 남북 만주에 군관 학교를 세워 독립 전사를 양성한다.
3. 종래의 의병 및 해산 군인과 만주 이주민을 소집하여 훈련한다.
4. 중국·아라사 등 여러 나라에 의뢰하여 무기를 구입한다.
5. 본회의 군사 행동·집회·왕래 등 모든 연락 기관의 본부를 상덕태상회에 두고, 한만(韓滿) 각 요지와 북경·상해 등에 그 지점 또는 여관·광무소(鑛務所) 등을 두어 연락 기관으로 한다.
6. 일인 고관 및 한인 반역자를 수시(隨時)·수처(隨處)에서 처단하는 행형부(行刑部)를 둔다.
7. 무력이 완비되는 대로 일인 섬멸전을 단행하여 최후 목적의 달성을 기한다.
2. 남북 만주에 군관 학교를 세워 독립 전사를 양성한다.
3. 종래의 의병 및 해산 군인과 만주 이주민을 소집하여 훈련한다.
4. 중국·아라사 등 여러 나라에 의뢰하여 무기를 구입한다.
5. 본회의 군사 행동·집회·왕래 등 모든 연락 기관의 본부를 상덕태상회에 두고, 한만(韓滿) 각 요지와 북경·상해 등에 그 지점 또는 여관·광무소(鑛務所) 등을 두어 연락 기관으로 한다.
6. 일인 고관 및 한인 반역자를 수시(隨時)·수처(隨處)에서 처단하는 행형부(行刑部)를 둔다.
7. 무력이 완비되는 대로 일인 섬멸전을 단행하여 최후 목적의 달성을 기한다.
6. 여담
- 1910년대 활동했던 독립운동 비밀 결사 단체로 대한독립의군부와 양대 비밀 결사 단체로 한국사 교과서에서 2010년대 이후로는 거의 무조건 다루는 단체가 되었다. 두 단체가 비밀결사라는 점은 공통점이지만 대한독립의군부는 고종의 복위를 노리는 복벽주의를 추구한데 반해 대한광복회는 공화주의를 추구했다는 점이 큰 차이가 된다. 재미있게도 총사령 박상진은 스승 허위의 아들 허학 등과 함께 대한독립의군부에 가입하였다. 대한독립의군부가 1914년 해체되었고, 대한광복회는 1915년에 창립되었다.
- 유명 독립운동가들과 연관이 많이 된 단체다. 당장에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이 부사령을 맡았고, 의열단을 만든 김원봉은 자신의 고모부 황상규가 대한광복회의 창립에 참가하게 되자 거기에 충격을 받고 대한광복회의 강령을 바탕으로 의열단을 설립하게 된다. 물론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가 된 허위(독립운동가)|허위]]는 대한광복회를 만든 박상진의 스승이고 그의 의병 활동이 이 단체의 결성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