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265ac><colcolor=#fff> 니콜라 뒤퐁에냥 Nicolas Dupont-Aignan | |
출생 | 1961년 3월 7일 ([age(1961-03-07)]세) |
프랑스 파리 | |
정당 | |
의원 선수 | 6 |
의원 대수 | 11, 12, 13, 14, 15, 16 |
선거구 | 에손 8구 |
약력 | 프랑스 국민의회 의원 (1997 ~ 2024) 이에르 시장 (1995 ~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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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우익 정치인. 현재 약진하는 프랑스(DLF)의 대표.2. 이름에 관하여
그의 성씨 "뒤퐁에냥(Dupont-Aignan)"은 법적으로는 단일 성씨로 등록되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부모의 성씨를 둘 다 쓰고 있다. "뒤퐁"은 부계성이고 "에냥"은 모계성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하나 있는데, 원래는 부계성만 갖고 "니콜라 뒤퐁"으로 태어났지만 학창 시절 같은 반에 "니콜라 뒤퐁"이라는 이름을 갖은 동명이인의 학생이 있어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헷갈려했고, 이 때문에 성씨에 모계성을 추가해 "니콜라 뒤퐁에냥"으로 개명했다. 이로서 "뒤퐁에냥" 자체가 법적인 단일 성씨로 등록되어 "뒤퐁에냥 가"의 1세대가 되었으며, 그의 자녀들, 즉 2세대부터는 "뒤퐁에냥"을 성씨로 사용한다."뒤퐁(Dupont)"에서도 볼 수 있듯이 프랑스어에서 단어 끝의 t는 묵음이지만, 하이픈 혹은 띄어쓰기 이후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단어가 있을 경우, 그 다음 단어를 시작할 때 전 단어의 t를 붙여서 "ㅌ" 발음이 나곤 한다. 이 때문에 Dupont-Aignan에서 뒤의 Aignan을 읽을 때 "태냥/타냥/테냥" 등으로 발음 및 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전술했듯이 별개의 성씨를 하나로 합쳐서 또 다른 성씨를 만들어낸 케이스이기 때문에, 이러한 프랑스어의 특징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뒤퐁에냥"이 맞는 발음이다.
3. 초기 생애
1961년 파리에서 장루이 뒤퐁과 콜레트 에냥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장루이 뒤퐁은 와인 유통/판매업자로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 출신이며, 모친 콜레트 에냥은 비행사 앙드레 에냥의 딸이다. 앙드레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메츠 부근에서 비행기가 추락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무사히 살아남았으며 1974년까지 생존했다. 뒤퐁에냥의 부모 둘 다 2017년에 사망했다.대부분의 프랑스 정치인들처럼 뒤퐁에냥 또한 시앙스포 출신이다.
4. 정치 경력
10대 초반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그는 1974년 대선에 공화국민주연합(UDR) 후보로 출마한 자크 샤방델마스 후보의 지원 유세에 뛰기도 했지만, 샤방델마스는 3위로 탈락했으며 결선에 진출한 우파 후보는 비(非)드골주의 계열의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이었다. 1976년 공화국민주연합의 후신인 공화국연합(RPR)에 입당하였지만, 이 때만 해도 사회당 소속의 미셸 로카르와도 가깝게 지내는 등, 드골주의 우파 성향임에도 좌파들과도 소통하고 교류하는 등 상당히 포용적이고 유연한 성향이었다. 말 그대로 정파색이 없어서, 1993년에는 비드골주의 우파 계열인 프랑스 민주연합(UDF) 소속의 프랑수아 바이루 교육부 장관의 비서실장으로도 일하는 등 매우 온건하고 성향을 가리지 않는 편이었다.허나 1997년 총선에서 RPR이 참패하면서 온건파인 알랭 쥐페 총리가 실각하고, 강경파인 필리프 세갱이 당대표가 된 이후 뒤퐁에냥이 그의 측근 중 하나로 등용되면서 더 완고한 우파 성향을 띄기 시작했다. 실제로 1999년 1월 암스테르담 조약 비준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을 정도. 이 때문에 당 내에서 적잖은 반발을 샀고, 결국 당 하위 조직인 "일어나라 공화국이여"를 결성했다.
2002년 RPR은 대중운동연합(UMP)으로 재창당되었고,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했으나 14.9%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2004년 전당대회에도 재출마했으나 9.1%로 또 낙선했다.
2007년 대선에 출마를 선언했으나, 500명의 공무원들의 서명을 받는 데 실패해 불발되었다. 결국 그는 타 후보들에 대한 지지 자체를 하지 않고 사퇴했다. 최종적으로는 니콜라 사르코지가 후보로 선출되어 결선에서 당선되기에 이르렀으며, 뒤퐁에냥은 결선투표 때 사르코지를 지지했지만, 나중에 이를 두고 크게 후회했다.
이후 사르코지와 충돌한 끝에 UMP를 탈당했으며, 대선 직후에 치러진 총선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연임에 성공했다. 이후에는 UMP와 완전히 연을 끊는다는 명분으로 사회당 측이 지지한 표결에 찬성표를 던지는 등 대놓고 반(反)UMP 행보를 보이다가, 2008년 약진하는 프랑스(DLF)를 창당했다.
2012년 대선에 DLF 후보로 출마했다. 이번에는 708명의 서명을 얻어 간신히 출마할 수 있었다. 유로존 탈퇴 및 프랑으로의 환원을 공약으로 내세워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1.79%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다만 그가 시장을 지낸 이에르에서는 24.88%를 득표하는 등 소소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결선투표에는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다.
2017년 대선에도 DLF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하지만 4.70%를 득표해 군소 후보 중에서는 나름 선방했는데, 당시 전국적으로 깔린 정치권 전반에 대한 혐오 정서로 인해 어느 정도 반사이익을 본 것. 결선에는 에마뉘엘 마크롱과 마린 르펜이 진출했는데, 결선에서 르펜 지지를 선언했다. 르펜도 외연확장을 목적으로 뒤퐁에냥을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밝히는 등 공동정부 구성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결선에서 르펜이 낙선하면서 없었던 일이 되었다. 허나 뒤퐁에냥의 이러한 행보는 이른바 "공화국전선"을 깨뜨렸다는 논란을 일으켰으며, 실제로 르펜-뒤퐁에냥 연대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2022년 대선에 DLF 후보로 어김 없이 또 출마했으나, 이번에는 에릭 제무르라는 또 다른 극우 후보의 등장과 르펜의 지지율 상승 등의 악재 속에서 2.06%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이번에도 결선 때 "마크롱을 막기 위해" 르펜을 지지했으나, 이번에는 르펜이 그 어떠한 화답도 하지 않았고, 르펜도 또 낙선했다.
이후 2024년 조기총선이 치러지면서 그는 DLF 후보로 국회의원 재선에 도전했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부터 32.96%의 득표율로 신인민전선(NFP) 베랑제 세르농 후보에 밀려 2위를 기록하는 등 불안불안한 조짐을 보이더니, 2차 투표에서 37.48%의 득표율을 획득해 끝내 낙선하고 말았다. 프랑스 총선은 대선과는 달리 결선에 3명 이상 진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번에는 공화당 프랑수아 뒤로브레이 후보가 3위로 진출해 22%를 득표해 보수 표심을 갈라먹은 것. 문제는 DLF가 사실상 뒤퐁에냥의 1인 사당이나 마찬가지인 탓에, 그의 낙선이 당에 미친 타격은 매우 심각했다.
사실 뒤퐁에냥의 낙선은 비단 어부지리만은 아니었다. 르펜의 국민연합이 네오나치, 백인우월주의 등 극단주의 색채를 상당수 버리고 외연확장을 하면서 지지층을 넓히는 데 성공했고, 이 때문에 매우 완고한 우익이지만 너무 극단적이지는 않은 유권자들이 죄다 국민연합으로 넘어가면서, 뒤퐁에냥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 공화당 에릭 시오티 대표도 강경파였고, 총선에서 시오티파가 국민연합과 연대를 하는 바람에, 뒤퐁에냥이 설 자리가 더더욱 없어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당의 간판이나 마찬가지인 뒤퐁에냥이 낙선하면서 DLF와 그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군소 정당들이 잘 버티는 프랑스에서 DLF가 해산할 가능성은 낮지만, 당의 존립 여부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일단 살아남자는 명분으로 국민연합과 연대할 가능성이 있다. 허나 그 대신에 대선 불출마 등 지분 상당수를 국민연합에 내줘야 할 건 뻔하며, 한때 그가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바이루가 마크롱의 들러리로 전락한 것처럼 뒤퐁에냥 또한 르펜의 들러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가 르펜은 명목상 당권을 자신의 조카사위인 조르당 바르델라에게 넘겨주었고, 르펜도 차기 총리로 바르델라를 밀어주고 있기 때문에, 뒤퐁에냥이 총리가 될 가능성은 사라졌으며 그냥 위상이 좀 낮은 각료 자리를 맡거나 할 가능성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물론 뒤퐁에냥이 국민연합과만 연대한 것은 아니고, 공화당과도 연대한 적도 있지만, 이 또한 시오티가 궁지에 몰리면서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항간에서는 궁지에 몰린 시오티가 DLF에 합류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하지만 시오티는 이미 9월 22일 공화당을 탈당하고 2012년 대중운동연합 시절에 만든 공화국우파연합의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낮다. 뒤퐁에냥은 2024년 선거에서 낙선했기 때문에 정치적 생명 자체가 박살날 가능성이 높다.
5. 성향
40년 넘게 드골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다. 스펙트럼 상으로는 공화당과 국민연합의 중간 격으로, 완고한 우익으로 간주되지만, 최근에는 마린 르펜과의 유사점이 많아지면서 아예 극우로 분류하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그의 성향에 대해서는 약진하는 프랑스 문서를 참조할 것.6. 여담
- 부인 발레리 베키에리니(Valérie Vecchierini)는 뒤퐁에냥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으로 일했지만, 2018년 사임했다. 이는 개정된 법 때문인데, 바로 직전 대선 때 벌어진 프랑수아 피용 공화당 후보의 스캔들의 여파로 보인다. 피용이 아내 페넬로프를 비서로 채용했는데 이 때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비서 명목으로 급여만 타먹었다는, 빼도 박도 못 할 횡령 의혹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고, 결국 이 것이 법률 개정을 통해 가족을 보좌관/비서로 채용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