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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16 13:55:40

니코메데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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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티니아 왕국 9대 군주
Νικομήδης | 니코메데스 3세
파일:니코메데스 3세.jpg
제호 한국어 니코메데스 3세
그리스어 Νικομήδης
영어 Nicomedes III
존호 바실레프스
별명 에우에르게테스(Euergetes: 후원자)
생몰 년도 미상 ~ 기원전 94년
재위 기간 기원전 127년 ~ 기원전 94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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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티니아 왕국 9대 군주.

2. 생애

비티니아 왕국 제8대 군주 니코메데스 2세의 아들이다. 헤라클레아의 멤논에 따르면, 어머니는 니사라고 한다. 반면에 그라니우스 리키니아누스에 따르면, 아이를 낳은 지 9일만에 사망한 아리스토니카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는 성인이 된 뒤 카파도키아의 왕 아리아라테스 6세와 라오디케[1]의 딸 니시와 결혼했다. 기원전 127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비티니아 왕이 되었다.

기원전 104년, 폰토스 왕국미트리다테스 6세와 협의하여 파플라고니아를 분할했다. 로마는 사절단을 보내 파플라고니아 분할을 취소하라고 요구했지만 두 사람 모두 응하지 않았다. 한편, 가이우스 마리우스킴브리 전쟁을 준비하면서 그에게 원군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노예 약탈자들이 자국의 주민들을 마구 잡아다가 노예로 삼아버렸기에 병력을 보낼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 소식을 접한 원로원은 동맹국의 자유 시민을 노예로 삼는 걸 금지하고, 시칠리아 법무관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네르바에게 노예가 된 동맹국 자유 시민을 해방시키라고 지시했다. 네르바는 재판소를 설립하여 800명 가량의 동맹국 출신 노예들을 해방시켰지만, 노예 소요주들이 집단 항의하고 뇌물을 건네자 재판소를 폐쇄하고 더 이상 노예를 풀어주지 않기로 했다. 이에 반발한 노예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제2차 노예 전쟁이 발발했다.

기원전 102년, 아리아라테스 6세가 급사한 뒤 미망인 라오디케가 14년간 어린 아들 아리아라테스 7세를 대신하여 다스리고 있던 카파도키아 왕국을 침공하여 단숨에 굴복시킨 뒤 라오디케와 결혼했다. 이에 미트리다테스 6세가 카파도키아를 침공하여 니코메데스가 남기고 간 비티니아 수비대를 몰아내고 아리아라테스 7세를 복위시켰다. 그러나 아리아라테스 7세가 미트리다테스 6세가 섭정으로 지정한 고르디오스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곧 아리아라테스 7세를 모살하고 자신의 사생아인 아리아라테스 9세를 카파도키아 왕으로 옹립했다. 이 일련의 일로 비티니아와 폰토스의 사이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기원전 100년, 폰토스와 비티니아는 전쟁을 단행했다. 양측은 로마의 지원을 받고자 로마에 잇따라 사절을 보내 원로원 의원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쳤다. 한편, 카파도키아 주민들은 미트리다테스 6세의 잔혹한 통치에 반감을 품고 아리아라테스 7세의 동생 아리아라테스 8세를 옹립했다. 이에 미트리다테스 6세는 기원전 96년 카파도키아를 전격 침공하여 아리아라테스 8세를 몰아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아들을 로마로 보내, "이 청년은 아리아라테스 6세가 라오디케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번째 아들이다."라며 카파도키아 왕으로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미트리다테스 6세는 환관 고르디오스를 로마로 보내 아리아라테스 9세가 아리아라테스 6세의 아버지인 아리아라테스 5세의 아들이라고 우겼다.

로마 원로원은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이해하지 못해 별다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 후 미트리다테스에게 연전연패한 니코메데스 3세는 니코메디아에서 포위당하자 로마 공화국에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원로원은 기원전 95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등 사절단을 파견해 미트리다테스 6세에게 당장 철수하라고 명령했고, 아직 로마 공화국과 싸울 생각이 없던 미트리다테스 6세는 순순히 철수했다. 그 후 사절단은 그에게 파플라고니아에서 철수하라고 지시하고, 미트리다테스 6세에게 카파도키아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두 왕 모두 따랐으며, 카파도키아 왕은 주민들의 추대를 받은 아리오바르자네스 1세가 맡았다.

한편, 그는 기원전 102년 라오디케 왕비와 함께 델포이에 막대한 자금과 노예 30명을 기증했다. 델포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아폴로 신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왕이나 왕비 중 한 명의 동상을 세우고, 두 사람의 후손에게 델포이 신탁에 대한 우선권을 부여했다. 그는 이 일로 에우에르게테스(Euergetes: 후원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첫번째 아내 아리스토니카와의 사이에서 니코메데스 4세를 낳았고, 2번째 아내 니사와의 사이에서 딸 니사를 낳았다. 세번째 아내 라오디케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보지 못했다. 한편, 키지코스 출신의 정부 하그네가 있었으며, 그녀로부터 소크라테스 크레스투스라는 사생아를 낳았다. 기원전 94년에 사망했고, 적자 니코메데스 4세가 왕위에 올랐다.


[1] 폰토스 왕국의 군주 미트리다테스 6세의 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