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노병례(盧炳禮) |
생몰 | 1903년 3월 18일 ~ 1994년 11월 5일 |
출생지 | 강원도 양양군 서면 용천리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노병례는 1903년 3월 18일 강원도 양양군 서면 용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이교학(李敎學)·이교성(李敎聲)·조화벽(趙和璧) 등과 더불어 만세시위를 꾀하고 4월 4일 양양 독립만세시위에 가담하여 시위대의 선두에서 시위를 이끌었다. 이어 4월 6일과 9일에도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었지만 학생임을 감안해 석방되었다. 1925년 9월에는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원 박유덕(朴有德)과 회합, 국외망명을 기도하다가 피검되어 양양경찰서로 송치되었으나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후 박유덕이 국내에 잠입하여 활동한 것에 연루되어 또다시 체포되어 1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1931년, 노병례는 양양농민조합(襄陽農民組合)을 결성하여 소작쟁의 및 농촌계몽에 힘쓰다가 조합원 130여명과 함께 체포되었고 1934년 6월 2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는 양양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 후 서울로 이주했고, 1994년 11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노병례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2017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